일기/아랫집 할아버지 일기

아랫집 할아버지 일기 4 (봄)

nohhaewon 2019. 12. 2. 00:07

1.

요 근래 글이 쓰고 싶어 근질근질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상황이, 손이, 몸이, 머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쓰지 못하고 있다.

사실 최근에 많은 일들과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영켜 글로 잘 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턱턱 막혔던 것도 같다.

잘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왜 매번 이렇게 무언갈 하려 하면 이렇게나 잔뜩 힘이 들어가는지.

2020년 목표 1번에는 '뭐라도 해보기(힘빼고)'를 넣어야 겠다.

 

아무튼, 이렇게 글쓰기 전에 마음이 복잡 할때 아랫집 할아버지의 일기를 옮긴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할아버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 지고 위로 받고 또 용기가 생긴다.

 

울림이는 이제 1학년이 다 끝나 가는데 옮기지 못한 할아버지의 글 속 울림이는 아직 입학식이다.

이제는 적어도 계절 별로 한번씩은 옮겨 놓자는 생각에 계절도 적어 두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옮기고 싶은데...

 

이곳으로 이사온 지 벌써 일년이 넘어간다. 

겨우 기어 다니던 우리는 이제 뛰어 다니고, 

아직 아기 같았던 이음이의 말투도 점점 또렷해 지고,

아직 유치원생이던 울림이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전히 좋은 이웃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2.

 

2019.3.2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이음이가 대청마루를 내달리며 혼자 소리를 지릅니다. 그럴 땐 온몸으로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우리, 멧돼지가 파 놓은 구덩이 보러 갈까.’ 아이들을 데리고 산길을 오릅니다. 오솔길 왼쪽 제법 가파른 비탈을 내려갑니다. 저만치 다랑논에 서너 군데 커다란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습니다.
‘할아버지, 물이 고여 있어.’ ‘응, 멧돼지들이 내려와 웅덩이를 파고 목욕을 한 곳이야.’ 신기한 듯 한참이나 내려다 봅니다.
‘우리, 나무하고 갈까.’ 지난해 마을 어른이 표고버섯을 키우려고 베어가고 남은 참나무 가지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습니다.
울림이는 기계톱으로 나무를 베는 것을 늘 보고 싶어 합니다. 강화도 사시는 외할아버지가 쓰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음이 손을 잡고 산비탈을 올라 오솔길을 내려가는데, 어느새 끙끙대며 울림이가 기계톱을 들고 옵니다. 울림이는 기계톱이 어디 있는지 눈여겨 보아 두었나 봅니다.
‘너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 걸 들고 와’ 놀라서 묻자 ‘나는 도깨비잖아.’ 울림이가 배시시 웃습니다.
‘너희들 위험하니 저만치 떨어져 있어’ 아이들을 멀찌감치 푹신한 가랑잎 위에 앉혀 놓고, 나무를 벱니다. 나무를 서너 도막이나 잘랐을까 하는데, 울림이가 뭐라고 소리칩니다.
얼른 기계톱을 멈추고 쳐다보니, 이음이가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너무 소리가 커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음이는 아직 어리고 소리에 퍽 예민합니다. 이음이를 데려다 저 위쪽에 앉혀 놓고, 몇 도막 더 자르고 그만두었습니다.
울림이는 아내가 꽃밭 만드는 데 가고, 나는 손수레를 끌고 와서 땔감을 싣고 그 위에 이음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

이음이는 형을 잘 따르고 무척 좋아합니다. 더구나 형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나고 결혼하고 싶다고 합니다. 나도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 우리 울림이와 똑같은 형을 갖고 싶은지 물어봅니다.
울림이 이음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있습니다.
계순옥 황금성, 김정남 노광훈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도 알고 있고, 해뜨리 평원이 삼촌, 지원이 여원이 이모 이름도 압니다. 마을에도 많은 삼촌과 이모들이 있습니다.
지난 번 잠깐 들르신 장선생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아이들 키우기에는 알맞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도란도란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연둣빛 번지는 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3

부옇게 미세먼지가 끼는 날이면, 아이들은 집 안에서 놀거나 입마개를 하고 뛰어서 우리 집으로 옵니다.
냉이를 캐던 그 날도 미세먼지가 끼었습니다. 한참 냉이를 캐다가 뒤돌아보니 어느 새 이음이가 입마개를 벗어 던졌습니다.
‘야, 이음이 너 미세먼지’ 라고 소리 치니까, 이음이는 언덕에 웅크리고 누운 채 주먹을 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숨을 꼭 참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숨을 못 쉬어 죽겠다고 하니, 참았던 숨을 내쉬며 빙긋이 웃는 이음이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울림이는 미세먼지가 코로 들어와 폐에 쌓인다고 가르쳐 주며, 호흡기관과 소화기관을 안다고 합니다. 그 날 그 날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는 것도 울림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제법 높은 산기슭이라, 아랫동네에 비가 오면 여긴 눈이 내리고,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목이 컬컬할 만큼 미세먼지가 낄 때가 있습니다.
어느덧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 삶이 미세먼지를 부르고, 아이들이 마음껏 숨쉬고 놀 수 있는 곳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3.4

늦잠을 깨운 아이처럼 부스스 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투정 부리듯 봄도 이 땅엔 오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산허리에 먼지 연기가 가득합니다.
울림이 가는 걸 보려고, 아내는 일찍 바깥에 일하러 나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 어디 가는지 알아.’ 저만치 문 앞에서 울림이가 묻습니다. ‘입학식.’ ‘어떻게 알았어.’ ‘할아버지가 생각했지.’
오늘은 울림이 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 엄마 아빠 우리 이음이와 함께 학교에 갑니다.
저 아이들이 있어 그나마 봄은 피어나고, 세상은 눈부십니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우리 집에 왔습니다. 울림이 손에는, 선물 받은 꽃그릇과 구슬 주머니가 들려있습니다.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도 입학식에 오셨다고 합니다.
방에서 구슬치기 놀이를 하다가 문득 엊그제 ‘할아버지, 나 귀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던 울림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귀를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묻자, 두 귀 모두라며 귀를 움직여 보입니다.
나는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람들도 옛날에는 개나 고양이처럼 귀를 움직였다고 해. 사냥할 때 집중하려고 그랬던 거지. 더는 사냥을 하지 않게 되자 ‘이개근’이란 근육은 퇴화되고, 지금은 몇몇 사람만 귀를 움직일 수 있단다.’
곁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이음이가, 할아버지도 귀를 움직일 수 있냐고 묻습니다. 나는 볼을 씰룩거리고 눈을 찡그려 보기도 하면서 할아버지는 안 된다며, 이음이는 움직일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음이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진화해서 그런 거야.’ 이음이는 진화해서 귀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털끝만큼도 장난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음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울림이, 너는 아직 진화가 덜 된 거야.’ 울림이는 펄펄 뛰듯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얼른 장난말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이음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집에 갔다 온다고 방을 나갑니다.

 

3.5

학교 첫날 울림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물어봐도 잘 말해 주지 않습니다. 겨우 알아낸 건, 담임선생님이 여선생님이고 1반 선생님보다는 나이가 적고 뒷머리를 땋았다는 겁니다.
산들이는 1반이고, 하온이는 같은 반인 2반이라는 걸 오자마자 먼저 떠들썩하게 얘기하는 걸 보면 울림이에겐 동무 사이가 더 마음이 쓰이나 봅니다.
요즘도 학교에서 아이들도 줄을 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청소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때는 왼쪽 가슴에, 접은 손수건 위에 이름표를 달고 ‘앞으로 나란히’ 줄을 맞춰 섰습니다.
청소는, 비로 쓸고나면 석필이나 초를 가지고 교실과 골마루 나무 바닥을 반들반들하게 문질렀습니다.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너무 미끄러워 아이들이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교사가 되어서도 평생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도 소중한 공부라고 생각하여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 사이에 청소 시간을 따로 만들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젊은 선생님 말고는 대부분 선생님들은 하던 대로 아이들에게만 청소를 시키고 딴 일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변기를 사 줄까’ 하니 빙긋이 웃던 울림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울림이는 저희 집 말고 다른 화장실은 잘 가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놀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면 벌써 저희 집 화장실에 가 있습니다. 요즘은 많이 진화했습니다. 지난 번엔 언덕에서도 오즘을 누었으니까요.
이음이는 변기를 선물 한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또 신이 났습니다. ‘공부하다가 똥이나 오줌이 마려우면, 교실 변기에 앉아 똥 오줌을 누며 공부하고 ...’ 라면서 그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서 무척 재미있나 봅니다.

 

3.8

어제는 아이들과 비석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아내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네모난 납작한 돌을 골라 왔습니다. 비석치기 하는 돌을 아내는 ‘목자’라고 부릅니다. 오랜만에 하는 놀이라 아내와 나는 아이들보다 더 들떠 있습니다.
마당에 두 줄을 긋고, 울림이와 아내, 이음이와 내가 편을 먹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하는가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울림이와 이음이가 뒤돌아서 등을 붙이고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가위 바위 보’ 이음이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 ‘이음아 손을 올려 가위바위보를 내야지.’ ‘자, 다시 가위 바위 보’ 이음이는 까치발을 들고 어깨만 올립니다.
아, 이음이는 뒤돌아서 하는 가위바위보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입니다. 손짓을 해서 가르쳐 주니, 그제야 보를 내어 이겼습니다.
처음엔 발등에 돌을 얹고, 다음엔 발목 사이에, 그 다음엔 무릎과 가랑이 사이에 돌을 끼우고 그러다가 차츰 올라가 배꼽 위, 어깨 위, 등 위, 머리 위로 돌을 얹어 나르며 비석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이음이는 거의 한 번도 저 쪽 금에 닿지 못하고 가는 길에 돌을 떨어뜨렸지만,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우습기도 하고 참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이음이에겐 모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울림이가 아닌 아내와 편을 먹은 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놀이를 마무리한 일이 그렇습니다. 놀이 규칙을 잘 모르는 이음이는, 그 동안 놀이를 하다가 지면 억지를 부리거나 울음을 터뜨렸거든요.
울림이는 초등학교에 이음이는 어린이집 ‘나무반’에, 그만큼 떨어진 사이에서, 이음이는 혼자 서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3.9

오늘도 비석치기를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까마득히 잊고 밭에 오자마자 제법 비탈진 언덕을 오르내립니다. 물을 주려고 밭으로 이어놓은 호스 줄을 잡고 마치 산을 타듯 오릅니다. 올라오다 주르륵 미끄러져 울음을 터뜨리다 금방 그치고는, 이음이는 다시 야무지게 가파른 산을 오릅니다. 온통 흙을 뒤집어 쓴 듯합니다. 아내는, 인절미에 흙고물을 묻혀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흙을 잔뜩 머금은 마른 풀뿌리를 언덕 아래로 집어던지고 놉니다. 에고 너희들 때문에 할아버지 ‘죽겠다’(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제목). 너희들이 학교 간 뒤 몰래 집을 짊어지고 이사 가야겠다고 하니,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좀처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울림이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도 먼저 학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은 손을 뺀 나머지 몸으로 제 이름을 표현하는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엉덩이로 이름 쓰는 것도 가르치느냐고 짐짓 놀려댔지만, 나중에 ‘할아버지, 나 우리 반에서 두 명 빼고 친구들 이름을 다 알아.’ 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저렇게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들 이름을 익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제 그제 이틀은 계단 오르내리는 걸 했다고 합니다. 교실이 2층에 있으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오르내리는 공부를 했나 봅니다.
할아버지 학교에서는 계단을 뛰어내리고, 난간에 올라 미끄럼도 타고, 교실 창에 줄을 매어 오르내리는 것도 가르친다고 하니 곁에서 아내가,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그런 위험한 걸 다 가르친다고 핀잔을 합니다.
선생님도 예쁘시고, 학교도 재미있다고 하니 참 다행입니다.

 

3.10

단이가 짖더니 산속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나고 이윽고 꽹과리 소리가 납니다. 지리산에 살 적에도 가끔, 대숲 골짜기 큰 나무 아래 바위 틈에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곤 했는데, 어쩌면 ‘홍동의 강원도’라 부르는 여기도 외딸고 깊은 곳이라 사람들이 찾아와 굿을 하나 봅니다. 초롱산 어디쯤인가 등잔처럼 생긴 명당이 있다고 했는데, 맑은 기운이 감돌아 그런가 보다 생각해 보지만,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귀에 거슬립니다. 내가 받은 서양 교육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지도 않는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할아버지, 저 게 무슨 소리야.’ 하고 울림이가 물으면, 나는 짐짓 못 들은 체하며 ‘어디에 무슨 소리가 나는데’ 라고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저기 산 속 꽹과리 소리 말이야.’ ‘아, 저 소리.’ 한참 뜸을 들이곤 ‘으음, 무당이란 사람들이 굿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나쁜 일이 생기지 말아 달라고 산신령님에게 비는 거야,’
꽹과리는 왜 치냐고 물으면, 주무시는 산신령님을 깨우려는 거라고 말할 겁니다.
울림이는 틀림없이 내 말이 사실일까 아닐까 갸우뚱거리며 머릿속으로 셈을 할 테고, 곁에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이음이는, 재미난 상상을 하며 고 귀여운 입으로 산신령님 구름 타고 어쩌고저쩌고 막 지꺼릴 겁니다.’
그 사이 짧은 굿은 끝났습니다.

 

3.11

어제는 아이들과 주사위 놀이를 했습니다. 주사위 세 알을 한꺼번에 던져, 나온 숫자들을 더해 그 수만큼 말이 앞으로 나아가는 놀이입니다.
주사위 놀이판은 울림이가 그려 왔습니다. 1에서 60까지. 그런데 5와 6이 거꾸로 적혀 있어, 그 곁에 나머지 숫자들도 넘어져 있은 듯 보입니다.
마름모꼴로 둘러싸인 숫자에 가면 한 번 더 주사위를 놀 수 있고, 동그라미로 감싼 숫자에 다달으면 달리던 말을 서로 바꿔 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숫자에 가면 사다리를 타고 앞으로 몇 칸 더 갈 수 있고, 어떤 숫자에 가면 미끄럼을 타고 도로 뒤로 돌아와야 합니다.
울림이가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우리 넷이 주사위를 놀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말이 나고, 아내가 그 다음, 이음이가 그그 다음, 울림이가 골찌로 났습니다.
울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사위 판을 거두며 그만하자고 합니다. 우린 또 그만두어야 합니다.
나는 그제야 울림이에게 들려주려고 생각해 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야. 마을에 사는 한 젊은이가 학교를 다니다가 나라에 전쟁이 나 싸움터에 끌려갔어. 군인들이 수류탄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 그 젊은이가 차례가 됐지. 수류탄 알지. 석류처럼 생긴, 던지면 쾅 터지는 것. 고리를 빼고 던지려는 순간 저 앞에 어미 토끼가 새끼 토끼 여러 마리를 데리고 지나가는 거야. 젊은이는 차마 그 곳으로 던지지 못해 앞에 떨어뜨렸고 젊은이는 그만 흩어지는 쇳조각에 맞아 죽었어.’
나는 이야기를 들려준 뒤, 참 용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울림이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이음이가 갑자기 ‘할아버지, 이렇게 던지면 되지.’ 라며 주먹 쥔 오른손을 몸의 왼쪽으로 방향으로 바꾸어 던지는 시늉을 해 보입니다.
나는, 이미 수류탄은 손끝을 떠났고 그 건 어렵다고 이음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참 용기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음이는 총명합니다. ‘총명하다’고 할 때 ‘총(聰)’은 ‘귀가 밝다’ 라는 뜻입니다.

 

3.17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아이들을 데리러 왔습니다. 벗어 놓은 겉옷을 입히는 데도 한나절이 걸립니다. 이리 달아나고 저리 숨고, 입혀 놓으면 도로 벗고, 아이들은 쉬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할아버지 어릴 땐 비 사이로 막 뛰어다녔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울림이는 바람처럼 언덕을 올라 ‘이렇게 말이지’ 하며 현관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음이는 손바닥을 펴서는 새의 날개처럼 겨드랑이 붙인 채, 스케이트를 타듯 몸을 오른쪽을 비스듬히 옮겼다 왼쪽을 눕혔다 가끔 고개를 들고 비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저러다간 한밤중에나 집에 닿을 듯합니다.
어제는 아빠가 앞마당에 텐트를 쳐주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서 일 마치고 여기 들어와.’ 이음이 울림이가 번갈아 고개를 내밀며 소리칩니다.
아내는 집들이 간다며 돌아가 과자 두 봉지를 챙겨 왔습니다. 텐드 안은 아늑하며, 마당 앞인데도 먼 들판으로 나온 듯 괜히 마음이 들뜹니다.
텐트 안 빨랫줄에 걸어 놓은 아이들 그림책을 보여줍니다. 울림이가 칠해 놓은 빛깔은 어찌 저렇게 고울까요. 이음이가 그어 놓은 금도 이제 이야기로 살아나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듯합니다.

-

텐트 안에서 울림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방엔 한 사람이 권투 연습을 하다가 개미를 쳐다보고 있고 왼쪽 방에서는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치는 모습도 눈에 보이듯 그렸습니다. 콧수염도 있고 뒤로는 방귀를 뿡뿡 뀌고 있습니다.
소리치는 사람의 볼에 동그라니 붉게 칠하고는, 소리치다가 오히려 저쪽 사람에게 반해 볼이 붉어졌다고 합니다.
나는 재미있는 듯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울림이가 교실을 날아다녀 여학생들이 소리치고, 소리치던 여학생들이 도리어 울림이한테 반해서 볼이 발가스레 물들고 울림이반 여학생들 얼굴이 다 빨개지고 ... ‘ 울림이는 헤벌쭉 웃습니다.
그런 울림이를 그저께는 몹시 나무랬습니다. 울림이 너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음이가 형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알면서 혼자 떼어놓고 초등학교에 갔다고.
어린이집에 가면 이음이 손을 잡고 교실에도 데려다 주고 지켜 주었는데, 이음이는 이제 어린이집에도 가기 싫다고 하며 엄마한테 일찍 데리러 오라 하고.
이음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못 들은 체 쉬지 않고 울림이를 혼냅니다. 울림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덟 살이라 ... ‘ 여덟 살이라 저도 할 수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라는 뜻인데, 나는 ‘그래서 우리하고만 초등학교에 같이 입학하고 싶다고 하고 ... ‘
그예 이음이가 크게 소리칩니다. ‘나는 어린이집이 너무 좋아.’
울림이가 가르쳐준, 친구들과 선생님 이름입니다.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교실에 앉아있는 듯합니다. 이름은 울림이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 잘못 적었을 수 있습니다.
최희영 김용원 박주원 신민서 신지용 정우연 송하율 김소율 윤혜린 남혜민 최민 유하온 황울림 윤경아 선생님

 

3.20

마을을 둘러 살펴보러 왔는지 경찰관 두 분이 우리 집에 들렀습니다. 외진 곳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 더욱 정겹게 느꼈을 겁니다.
마당에 서서 이야기하는 경찰관에게, 들어와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아내가 부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도 함께 따라 들어와 탁자에 마주앉습니다.
아이들은 경찰관이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곤, 우리 집에 처음 들른 날처럼 아내가 주는 음료와 사과를 먹고마실 뿐 아무 말 없이 조용합니다.
‘아이들이 참 얌전하네요.’ 라고 한 분이 묻자, ‘아니에요, 얘들 날아다녀요’ 라고 하니, 울림이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일어섭니다. 아이들보고 인사하러 나가자고 하니까 제 자리에 앉아 꼼짝도 않습니다.
저만치 차에 타 시동을 걸려고 하자, 이음이가 뛰어나와 ‘야, 아저씨 잘 가.’ 라며 소리칩니다. ‘쟤 살아났네.’ 한 분이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울림이 너 무서워 덜덜 떨고 있었지.’ 나는 울림이를 짓굿게 놀립니다.
울림이 : 아니.
나 : 그럼 뭐했어. 혼자 자고 있었어.
울림이 : 그래, 너무 안 무서워 자고 있었다.
나 : 집이 덜덜 떨며 흔들리고 있던데, 너 잘못한 거 있지.
울림이 : 집이 잘못했나 보지.
나 : 아니, 어떻게 집이 잘못해.
울림이 : (잠깐 생각하다가) 우릴 춥게 했잖아.
하긴 구들방이 있는 바깥채보다 안채가 더 춥습니다. 이 쯤에서 나는 슬그머니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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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모나이트 사건’

겨우내 마늘밭을 덮은 볏짚을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일 그만하고 같이 놀자고 소리칩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꾸물대니까 밭으로 올라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조심조심 비탈을 내려오는데, 울림이가 집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합니다. 암모나이트 같은 것을 찾았다고 합니다. 마치 굉장한 것을 발견한 듯 목소리가 들떠 있습니다.
등이 번들거리고 마치 아주까리 씨앗처럼 생겼는데, 납작한 돌 위를 기어갑니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그려놓은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머뭇거리다가, 이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데 ... ‘ 잠깐 멈췄다가 ‘이건 진드기야.’ 라고 말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던 엄마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손톱 끝을 모아, 이만큼 작은 것이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어 이렇게 통통하게 된 거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크게 실망할 줄 알았는데, 이마저도 신기한 듯 자세히 내려다봅니다.
뜰에 내려서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알갱이 무스까리 꽃을 보여주었는데 어서 방에 가서 놀자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꽃밭 귀퉁이 흰 노루귀와 연보랏빛 노루귀 꽃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아직 달팽이 집이나 꼬물꼬물거리는 것에 더 눈이 갑니다.

 

3.22

울림이와 카드놀이를 합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이건 몇이야 이건 몇이야 하며 숫자를 물었는데, 오늘은 10, 20, ... 180까지 거침없이 읽어내려 갑니다.
깜짝 놀란 목소리로 너 어디서 이걸 배웠어 하니까,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울림이가 저절로 알게 되었다는 말은, 여기저기서 듣고 배운 것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숫자를 제대로 알고 있나 보려고, 423을 종이에 적어 읽어 보라고 하니 까먹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에 울림이가 ‘일십백’이라고 하길래 숫자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라고 하니 더듬더듬 ‘사백이십삼’이라고 읽습니다. 다시 903을 써 주니까 ‘구백삼’이라고 금방 읽어냅니다.
‘이제 울림이 학교 안 가도 되겠다, 숫자도 다 읽고.’ 라고 하니, 학교는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온이란 친구가 보고 싶어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온이가 결석하면 어떡할래, 하온이가 멀리 이사 가면 어떡할래 라고 놀리자, 뜬금없이 오늘 학교에서 연필 잡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야, 학교에서 그런 것도 다 가르쳐 주는구나.’ 하니, 빙긋이 웃으며 연필 잡는 법은 알고 있었다고 능청스레 말합니다.
울림이에게 또 당했습니다. 울림이는, 내가 학교 가지 말라고 말리는 줄 알고, 아직 배울 게 있으니 학교에 가야 한다며 내 말을 살짝 피해 간 겁니다.

시들해진 나는, 곁에 있던 이음이에게도 형한테 다 배우니까 학교 안 가도 되겠다니까, 이음이는 작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합니다.
‘나는 아직 글씨를 잘 몰라 학교에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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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도 자꾸 아이들 집으로 눈이 갑니다. 어제도 늦더니 오늘도 해가 다 지도록 아이들이 집에 오지 않습니다.
며칠 전, 반에서 주원이가 말을 듣지 않아 선생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선생님 곁에 주원이 울림이 하온이 이런 차례로 앉았다고 했는데 ...
오늘은 거름더미를 만들었습니다. 높이 1.5m 길이 4m 쯤 되는 철망을 둥그렇게 엮어, 안쪽 둘레를 볏짚으로 둘러 쌓아가며, 가운데 깻묵과 왕겨를 켜켜이 쌓은 뒤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었습니다.
철망은 지우가 가랑잎을 쌓아 두려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가랑잎이 썩으면 달큼한 냄새가 납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아이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하니, 아내가 내려가 전화를 해 보자고 합니다.
불빛을 비추며 차가 언덕을 올라옵니다. 해맑은 아이들 소리가 납니다. 아, 다행입니다.
울림이가 윗니를 뺐다고 합니다. 어스름 속을 뛰어내려 오더니, 아내에게 들렀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나에게 달려옵니다.
손전등으로 이를 비추어 봅니다. 이를 빼는데 하나도 안 아팠는데, 앞니를 빼다가 잘못 건드렸는지 입술이 아팠다고 합니다. 마알간 잇몸에는 아직 핏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 소리에 갑자기 밖이 환해진 듯합니다. 아이들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까닭이겠지요.

 

3.24

‘할아버지 뭐 해?’ 오이 덩굴이 올라갈 울타리를 손보고 있는데, 이음이가 묻습니다.
‘오이가 손 잡고 올라갈 수 있게 울타리를 고치고 있어.’ ‘나도 올라가고 싶다.’ ‘이음이도 오이가 되면 되지.’
‘내가 어떻게 오이가 돼.’ 내 대답이 싱거웠던지, 울림이를 따라가 징검다리 놀이를 합니다.
잔디씨를 뿌려 키운 잔디밭에 벽돌로 테두리를 쳐 놓았는데, 벽돌을 듬성듬성 빼내어 징검다리를 건너듯 건너다닙니다.
아이들에겐 모든 것이 놀이입니다. 가랑잎을 쌓아 두려고 만든 철망 속에 들어가선 그걸 굴리고 다니기도 하고, 작은 비닐 온상을 떠받치는 쫄대를 난간 위에 걸쳐 놓고는 낚시 놀이를 합니다.
그마저 시시해지면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연장을 가지고 놉니다. 호미 괭이 삽 톱 정전가위 들도 모두 아이들에겐 장난감입니다.
손이 시려 보여 집에 가서 장갑을 가져오라니까, 집에 가면 점심을 먹으라고 하니까 안 간다고 하더니, 엄마가 부르니 할 수 없이 달려갑니다.
울림이가 먼저 달려가고. ‘나 좀 데리고 가지.’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뒤따라 가던 이음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때 무엇인가에 소스라치듯 놀란 엄마가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이음이는 울던 것도 까먹었습니다.
‘또 단이가 뼈다귀를 물어다 놓았을까.’ 뛰어올라가 보니 마당에 어른 손가락만한 지네 한 마리가 엎드려 있습니다. 조심스레 집어 보니 죽어 있습니다.
이럴 땐 엄마도 애기 같습니다. 울림이가 그러는데 우리 집에서 벌레를 가장 안 무서워 하는 사람은 우리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무당벌레를 집어 입에 넣은 것을 엄마가 꺼냈다고 합니다.

 

3.25

마당에 벽돌을 깝니다. 장화를 팔에 끼고 로봇처럼 아이들이 걸어옵니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놀자고 보챕니다. ‘이것 다 깔고 놀자, 너희들이 도와줘.’
길바닥에 까는 벽돌이라 제법 크고 무겁습니다. 이음이는 벽돌을 하나씩 들어나르다가 힘이 부치는지 깔아 놓은 벽돌 위에 앉아 쉽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울림이는 네 장씩 묶어 놓은 벽돌을 한꺼번에 들어나릅니다. 더러 떨어뜨려 벽돌 귀퉁이가 깨지고, 바닥에 놓다가 손가락끝이나 발등을 찧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벽돌 한 쪽부터 조심스레 놓는 것을 배웁니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벌레가 나타났다’ 놀이를 합니다. 내가 ‘벌레가 나타났다, 엄마.’ 하면, 아이들은 ‘아아아아아’ 엄마 흉내를 냅니다.
‘아빠’ 하면 ‘으으으으으’, ‘울림이 이음이’ 하면 가만있다가, ‘우리’ 하면 ‘집어 먹어.’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내가 말하면 울림이는 ‘예’라고 대답합니다. 여전히 다른 말은 친구한테 하듯 반말을 하면서도.
아마 엄마가 학교에서도 집에서 하듯 ‘응’ ‘그래’ 하며 반말을 쓸까 봐 존댓말을 가르치나 봅니다. 나는 참 어색한데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데리러 왔는데도 가지 않자, 아빠가 곧 오니 같이 오라고 엄마는 우리를 업은 채 먼저 갑니다.
언덕 아래 아빠 차가 옵니다. 아이들은 달립니다. 어느새 울림이는 비탈을 올라 사잇길로, 이음이는 언덕길을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세상에 저토록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일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 새 저녁을 다 먹었는지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라며 재미있는지 몇 번이고 되풀이합니다. 아이들이 처음 쓰는 존댓말입니다.

 

4.1

층층나무를 옮겨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이들이 달려와 소리칩니다. 우리를 업고 엄마도 뒤따라 왔습니다.
‘호미’가 쥐를 던지며 놀고 있다고, 처음 보는 광경인 듯 무척 놀라워 하는 표정입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덩달아 나도 아이들처럼 가슴이 뜁니다.
저만치 앞에 두고 달아나면 쫓아가 입으로 물어다 던졌다가 놓고 가끔은 앞발로 움켜쥐면서,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고 있습니다.
그런 생쥐를 울림이는 손으로 만지고도 싶고 키우고도 싶다고 합니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결이 달라보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 곱고 맑은 하늘을 지니고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아, 저 뿌리에서 엄마 가지가 돋아나고 그 끝에 봄날 연둣빛 눈부신 새순으로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4.3

가끔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 제법 어른스러워진 울림이 앞에서 내가 재롱을 떠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산을 내려오다가, 수염 기른 도사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 닮은 나무를 주워 와선, 아이들에게 너스레를 떱니다.
‘할아버지가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서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내가 장군일 걸 알아채곤 장군님 하며 이 칼을 바치는 거야.’ 하며, 나무를 들고 휘익 바람을 가르듯 휘둘러 보입니다.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던 울림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산신령이 잘못 본 거지.’ 하며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합니다.
갑자기 찌그러져 어디론가 숨어들고 싶지만, ‘너희들 한 번 덤벼 봐, 후회하고 말거야.’ 하며 우렁차게 소리를 칩니다. ‘후회하고 말 거야.’는 놀이를 할 때 이음이가 나한테 자주 쓰는 말입니다.
나무는 칼이 되었다가 땅에 놓으면 밧줄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몸을 가누며 밧줄을 타고 다니며 놉니다.
이음이는 넘어져 손가락이 긁혀 쓰라린 듯 엄마가 보고 싶다고 글썽입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상처를 소독한 뒤 약을 듬뿍 발라주고, 울림이 손에 박힌 가시도 빼어줍니다.
엄마가 오자 이음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울림이는 가시가 어떻게 박혔는지 설명하느라 바쁘고, 나는 이음이를 아내는 울림이를 업고 집에 바래다 줍니다.

 

4.4

어디에서 들었나 봅니다. 네 잎 토끼풀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울림이는 ‘할아버지, 네 잎 토끼풀 찾았어.’ 하면서, 세 잎에다가 한 잎을 붙여 보여줍니다.
한 잎을 덧붙여서라도 행운을 바라는가 봅니다. 울림이는 ‘행운’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도 들은 이야기를 해 줍니다. 세 잎 토끼풀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토끼풀은 ‘행운’이라고. 울림이는 ‘행복’을 갖고 싶다고 합니다.
세 잎 토끼풀을 뜯어 가득 손에 쥐고 엄마 아빠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울림이가 바라는 행복 가운데 하나는, 아빠가 어서 박사 논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논문이 통과되어 늘 아빠가 곁에서 함께 놀아주는 게 울림이가 그리는 행복입니다.
혹시 알고 있나요. 사람의 입에서 따뜻한 입김과 차가운 입김이 나온다는 것을. 어제 울림이가 알려주었습니다.
손바닥에다 ‘하’ 하고 불면 따뜻한 입김이, ‘후’ 하고 불면 차가운 입김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함께 노는 것이 날마다 누리는 조촐한 ‘행복’입니다.

 

4.9

툭닥 툭탁 망치질 소리가 골짜기를 흔듭니다. 엄마가 사 준 자그마한 망치입니다. 유리를 낄 때 창틀에 덧대는 나무에 못을 박던 망치가 떠오릅니다.
울림이는 손끝이 야무집니다. 엊그제는 책상 귀퉁이마다 못을 박는데 하도 모질게 내려쳐 ‘죽는다, 죽어.’ 하니까, ‘못이 죽어.’ 하며 빙긋이 웃습니다. 망치 자루 어디쯤을 잡아야 망치 끝에 힘이 가는지 가늠하며 세상을 배웁니다.
‘오랜만에 절벽이나 타 볼까.’ 지난해 가을만 해도 나뒹굴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제 제법 땅에 몸을 붙이고 재빠르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립니다.
마음도 넉넉해진 듯합니다. 높이 2m 너비 20cm 시멘트 난간 위에 서서는, 나무 막대기를 칼처럼 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할아버지는 배가 없으니까 장군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가리킵니다.
내가 배를 불쑥 내밀며, 너희 내 배에 올라타 놀지 않았느냐며, 여기 배가 있으니 장군님이라고 우깁니다. 그 전 같으면 ‘그 배가 아니고.’ 하며 따졌을 텐데, 오늘은 저도 배를 쑤욱 내밀며 장군 흉내를 냅니다.
아장아장 걸어서 우리도 우리 집으로 오고, 아이들은 밭 가생이 풀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4.10

‘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는데...’ 울림이가 묻습니다.
울림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마치 먼지기둥처럼 솟아난, 쇠뜨기 생식줄기인 홀주머니이삭입니다.
‘아, 쇠뜨기란 풀의 꽃줄기야. 뱀밥이라고도 부르지. 할아버지가 살던 운산 아이들은 소가 잘 뜯어먹어 소국수풀이라고도 했어.’ 라며, 그 곁에 흙을 밀고 나오는 쇠뜨기풀을 보여줍니다.
쇠뜨기풀 마디를 떼었다 다시 제자리에 끼우니, 불럭장난감 같다며 재미있는 듯 몇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모기에 물렸을 때 쇠뜨기풀을 짓이겨 바르면 간지러움이 가라앉는다는 이야기, 코피가 나거나 물속에 들어갈 때는 쑥을 뭉쳐 코와 귀를 막았다는 어릴적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이럴 때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울림이보다 많이 아는 것도 있으니까요. 울림이는, ‘논학교’에 풀꽃선생님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풀꽃할아버지라고 나를 치켜세웁니다.
속으로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하긴 학교에서도 담임이 없을 때는 ‘시와풀꽃반’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풀꽃반 담임이라고 부르고 다녔으니까요.

 

4.17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아내한테로 뛰어갑니다. 아내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꽃모를 뜰에 옮겨심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한다며, 아내가 파 놓은 작은 흙구멍에 꽃모를 넣더니 끝내는 아내가 쥐고 있는 모종 칼까지 가지고 갑니다.
부드러운 부엽토가 뿌리를 감싸고 있어, 아기처럼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고 해도, 흙덩이를 부스러뜨리거나 꽃모를 밟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안개꽃 몇 포기를 줄 테니 집에 가서 심어 보라고 하니, 안개꽃을 심으면 우리 집에 비가 오겠다며 장난을 치더니, 그마저 엄마한테 맡기고 또 아내한테 달려듭니다.
손수레에 태워 초롱산까지 데리고 간다고 하자 그제사 따라나섭니다. 조금 올라가면 가파른 자갈길이 나옵니다. 내가 힘든다고 하니, 이음이는 제가 내려서 간다고 합니다.
울림이도 따라 내리고, 우리는 꽃구경도 하고 아까시나무 가시를 따서 코뿔소 흉내도 내며 쉬엄쉬엄 산길을 오릅니다.
길 끝에는 통나무 작업장이 있습니다. 60cm 남짓한 높이에 걸쳐 놓은 통나무 위를 곡예를 하듯 타고 놉니다.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그네도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엄마가 너희들 찾으러 초롱산에 올라갔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산을 올려다보며 ‘엄마’ 하고 소리칩니다.
아이들 소리가 맑게 메아리칩니다. 나도 따라 ‘우리야’ 하고 큰소리로 부릅니다.
길을 내려가는데, 멀리서 아이들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다투듯이 비탈진 길을 달려갑니다.

 

4.18

울림이는 꽃다지 이름을 압니다. 언덕에 나란히 앉아 울림이에게, 냉이와 꽃다지가 어디가 다른지 찬찬히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꽃빛만 아니라 잎과 보이지 않는 뿌리도 서로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금방, 냉이는 하트 모양인데 꽃다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줄기에 매달린 씨앗주머니가, 냉이는 하트 모양이고 꽃다지는 주걱 모양입니다. 나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씨앗이 영글면, 씨앗주머니를 조금씩 아래로 잡아당겨 냉이 줄기를 흔들면 차르르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씨앗 소리가 납니다. 나는 ‘꽃종소리’라고 부릅니다.
울림이는 이제 저만치 떨어져서도, 우리 민들레와 서양민들레를 가려냅니다. 꽃을 받치고 있는 ‘총포’라는 것 말고도, 꽃빛만 봐도 다르거든요.
오늘은 아이들이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놀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개구리가 화상을 입을까봐 아이들에게 면장갑을 끼고 만지게 하는 엄마가 참 지혜롭다고 합니다.
개구리는 살갗이 사람 손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울림이 이음이의 영리함이 엄마 아빠에게서 온 것이겠지요.

-

산벚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지지난해 집을 지어 이사 올 때는 그렇다고 치고, 지난해에도 울림이네 닭장 곁에 한 그루가 눈에 뜨었는데,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골짜기만 해도 스무 그루나 되는 듯합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꽃이 좋아?’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울림이네 마당에 피어 있는 제비꽃이라고 했습니다.
‘울림이는?’ 울림이 제일 작은 꽃이 좋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보여준 꽃마리를 가리키자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 아내가 보여준 봄맞이꽃인가 봅니다. 어제는 예쁘지 않다고 하더니 하늘거리는 그 조그만 하얀 꽃이 떠올랐나 봅니다.
요즘 들어 울림이는 풀이나 꽃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지난 번 광주리나물 꽃대롱 끝에 고인 꿀을 빨아먹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쇠뜨기풀 줄기를 뗐다 붙였다 할 때부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어려운 꽃이름 무스까리도 알고 뭉게구름 하얗게 일렁이는 조팝나무 꽃도 압니다.

 

5.2

‘할아버지, 쓰스삐 쓰스삐 이렇게 우는 새가 뭐야?’ 언덕에 앉아 이음이가 묻습니다. ‘아, 지금 우는 저 새, 곤줄박이야.’ ‘그렇구나. 지난 번 새는 오랑오랑 울었지.’ ‘야, 이음이 너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할아버지가 얘기해 줬잖아.’
이음이가 혼자 집에 왔습니다. 장난말로, 엄마가 이음이 보고싶어 어린이집에 안 보냈구나 하니, 오늘은 어린이집이 쉰다고 합니다.
생강밭에 볏짚을 덮으러 가는데 졸래졸래 따라옵니다.
‘할아버지, 누가 이음아 하고 부르지? 엄마 목소리는 아닌데.’ 가만히 들어보니 멀리서 낮닭 우는 소리입니다.
산은 옅고 짙은 푸르름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소나무 잎이 가장 짙고, 상수리나무 잎은 누르스름한 푸른 빛을 띠고, 밤나무 어린 잎인지 바람에 물결치는 산벚나무 잎인지는 희읍스름한 푸른 빛으로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쓰삐 쓰삐’ 내 마음 저 깊은 산속 가장 귀엽고 예쁜 새는 이음이와 울림이와 우리입니다.
‘쓰삐 쓰삐’는, 울림이가 되지빠귀 소리를 흉내낸 말입니다.

 

5.15

이음이에겐 여자친구 봄들이가 있는데, 이음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하는 울림이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습니다.
‘울림이 너, 오늘 학교에서 뭐 했니?’ ‘까먹었어.’ ‘공부는 안 하고 예쁜 여자친구만 바라본다고 다 까먹었지?’
울림이는 ‘아니야.’ 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내가 가만 있을 리 없지요.
‘너, 여자 친구 이름이 아니야 구나.’ 울림이는 ‘아니야, 아니, 아니라고’ 하면서, 이음이한테 하듯 한 대 쥐어박을 듯합니다. ‘하여튼 여자친구 성이 ‘안’이구나.’ 울림이는 죽을라고 합니다.
엊그제 아침엔 학교 가는 길에 가방을 메고 돌계단을 내려오더니, 마아가렛 한 송이를 꺾어 갑니다. 아내가 ‘선생님 갖다주려나 봐.’ 라고 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울림이에게 ‘너, 그 꽃 아니냐 주려고 했지.’ 라고 물으니, 엄마한테 주었다고 합니다. 울림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엄마인가 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야’ 잘 있느냐며 얼마 동안 울림이를 놀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