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탱이들
1
비가 너무 오지 않는다. 벌써 가뭄이라니.
비 소식이 생기면 비가 오기 직전에 아랫 밭에 풀을 뽑고 옥수수를 심으려고 했는데 그 핑계로 아랫 밭이 그때 이후 방치되고 있다. 올해도 이렇게 망하는 건가... 밭에다 마음 한번 내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그래도 정원에는 꽃들이 얼추절추 피어나고 있다.
쬐그만 정원 구석에 놓여진 돌 모서리에서 켈리포니아 포비 하나가 힘겹게 자라나고 있었다. 지난 주말 울림이가 그 싹을 보더니 "얘 이름은 구탱이야! 구석에서 자라니까 구탱이!"라고 한다. 이음이를 부르더니 같이 키우자며 열심히 쓰다듬어 준다. 평평한 데서 잘 자란 꽃 보다 구석진 곳에서, 어느 돌부리 사이에서 나는 그런 꽃들에게 눈이 더 가는 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한 주가 지나고 어제 다시 그 싹을 보러 갔더니 훌쩍 자라 꽃대까지 올라왔다. 옆에 있는 같은 종류의 포비들은는 아직 잎만 나왔는데 신기하게 구탱이만 꽃대가 올라와 있다. 내가 "너희가 이뻐해줘서 잘 컸나 봐! 얘만 꽃대도 나와 있어!"라고 했더니 몹시 뿌듯했는지 이음이와 우리를 불러 자기들끼리 또 분주하게 움직인다. 구탱이 주변에 풀들을 뽑아주고 구탱이를 밀고 있던 돌을 아주 살짝 옮겨주고(이름이 구탱이라 구석 자리는 유지해야 해서 아예 치울 수는 없다고) 물과 좋은 흙을 잔뜩 주었다.
오늘 저녁 먹기 전에는 이음이가 딸기를 따왔다.
아직 조금 덜 익었지만 엄마랑 아빠에게 빨리 주고 싶었는지 두 개를 따와서 하나는 엄마가 먹고 하나는 아빠를 주라고 한다. 나는 이음이가 전해주는 딸기를 받으며
"딸기가 벌써 익었어??"
하고 놀랐더니 이음이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해줬는데!!!"
라며 함께 놀란다. 그 말이 귀여워서
"그러니까. 너네도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잘 크잖아"
라며 웃었더니 이음이는
"아니? 엄마는 우리한테 엄청 많은걸 해 주고 있잖아"
라고 말했다. 감동한 나머지 나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이음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2
어젯밤에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아이들 몰래 시계를 30분 앞당겨 놓았다.
중요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아이들과 같이 보기에는 너무 늦게 끝나고 아이들을 재우고 보기에는 전반전을 하나도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큰 어린이들은 시계를 볼 줄 알기 때문에 억지로 일찍 재우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쓴 꼼수가 다행히 잘 통했고 전반전이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오늘 아침이었는데...
자기 전에 30분 앞당겨 놓은 시계를 원상 복귀하는 걸 깜빡한 것이다. 심지어 울림이가 못다 한 숙제를 아침 일찍(7시) 같이 하기로 해서 일찍 일어났는데 울림이 숙제 다 하고 나니 맞춰 놓았던 알람이 울려서 너무 당황했다. 덕분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6시 반에 기상했네^^...
8할이 지지고 볶는 일상이지만 간혹 아름다운 2할의 순간들이 삶을 빛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