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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이박 삼일간 우리 집에서 가족모임을 갖기로 했다. 무슨 인연인지 엄마랑 아버님이랑 생일이 양력 11월 20일로 똑같고 아버지랑 어머님이랑 양력으로 2월 12일 11일로 하루차이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어머님 아버님이 바람오빠를 낳으셨을 때의 나이와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나를 낳았을 때의 나이가 같다. 이건 나와 바람오빠 뿐만이 아니라 양가 사돈 끼리도 이어 질 수 밖에 없던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엄마와 아버님 생신을 따져보니 딱 1월 1일이다. 엄마와 아버님 생신+망년회+신년회+집들이까지 이건 도대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날인 것이다! 게다가 오빠와 내가 결혼하고, 또 이곳에 이사 와서 맞는 첫 생일이 새해라니. 아, 정말 우리는 엄청나게 두껍고 튼튼한 끈으로 연결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당연한 마음으로 약 한 달 전부터 두 분의 생일을 전 후로 모두 함께 만나기로 했다. 결혼식 전에 만나고 이렇게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건 처음이다.
아무튼 그런 관계로 주말동안 우리집은 비상. 이것 저것 정리하고 고치느라 분주했다.(거기에 요리 대장정까지 했으니...ㅋ) 그래도 오랜만에 또 다들 한 자리에 모여 맛난 것도 먹고 서로 얼굴 마주고 있을 생각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꼬박이도 오늘 반가운 손님들이 온다는 걸 알았는지 잘 때만 가끔 볼 수 있는 웃음을 연타로 날려준다ㅜ.ㅠ(감동) 꼬박아 이제 엄마 보고도 웃어줘!
방과 부엌 마루가 모두 붙어 있던 조그만 자취방 신혼집을 떠나 방과 마루와 거실이 있는 새로운 집, 거기에 아기까지 있으니 이제 부모님께 '우리 이제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거예요'하고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였다. 특히 우리집에서 요리 할 때마다 이것도 좀 사고 저것도 좀 사라며 안타까워 하던 엄마한테 이제 이런거 저런거 다 있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족한 냄비, 후라이팬, 주방 도구나 그릇 등등 얼른 다 장만해 놓고 싶었는데 인터넷으로만 보다보니 어떤걸 사야 할 지 잘 모르겠고 집 정리하고 아가 보느라 대부분 사지 못했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짱아찌 고구마 매실 쌀 등등을 풀어 놓으면서 그릇도 그대로, 주방용품도 그대로, 게다가 하나 있던 냄비는 뚜껑에 손잡이 까지 없어진걸 보고는 기가찬 듯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말. "너는 무슨 블로그에 후라이팬 사진 올리고 해서 다 사놓은 줄 알았더니 그 후라이팬 하나만 산거였어?" 나도 왠지 멋적어 예쁜거 사려고 고르는 중이라고 둘러 댔다. 그러고는 엄마도 이제 포기 했다는 표정으론 있는 그릇 없는 그릇 꺼내어 음식을 담아준다. 냉장고 부엌 배란다까지 꽉찼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다음은 시부모님 등장. 싱싱한 해산물들과 냄비 후라이팬까지 한 짐 가져오셨다. 주방엔 음식으로 가득차고 마루엔 사람들로 가득차고. 아, 신난다.
모두 모이자 마자 아버지들은 술을 어머니들은 술상을
모두 모여 이야기를
2차는 부엌에서
아버지들의 훈훈한 미소와 주름^_^
마무리는 울 꼬박이! (초점은 안 맞았지만 사진이 이거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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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은 계란 입힌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와 아기는 집에 있고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CB센터 옆에 있는 채식식당 아하라에 다녀왔다. 그 사이 나는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꼬박이 관찰. 아직 누군가를 보고 웃어주고 하진 않지만 표정이 날로 좋아지는 것 같다. 눈도 똘망 똘망 해지고. 맨날 인상만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표정이 좀 밝아 진 느낌?(물론 아직도 인상을 많이 쓰지만ㅋ) 아, 뉘집 자식인지 똘망똘망 잘도 생겼다!
가족들이 다시 돌아와서 꼬박이가 잠깐 잠들랑 말랑 하는 사이 여자들끼리 로컬푸드 매장이 있는 용진농협에 다녀왔다. 부모님이 오실 때만 누릴 수 있는 용진농협 쇼핑! 지난번 대선 날 어머님 아버님이랑 나온 이후 처음이다. 신나게 쇼핑을 하고 들어가려 하는데 오빠 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꼬박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울고 있으니 얼른 오라고. 아이고 이녀석이 깨버렸구나. 눈이 많이 와 빨리 가지도 못하는데 마음만 급하다. 내리자 마자 마자 집으로 달려가는데 계단에서 부터 아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들어가자 마자 아기가 새빨간 얼굴로 울고 오빠는 기진맥진. 보자마자 꼬박아 엄마 왔어, 엄마 왔어, 엄마 없어서 울었어? 배고파? 미안해 꼬박아. 하고 꼬옥 몇 번 안아주고는 젖을 물렸다. 아가도 기다렸다는 듯이 허겁지겁 먹는다. 이제야 다시 평화를 찾은 집. 꼬박이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오기 전 30가량 동안 숨 쉴 때 빼고는 울었다고, 간만에 아기 있는 집 같았다 하신다. 이렇게 한바탕 엄마랑 떨어져 호되게 울고 나서 인지 엄마 말고 다른 사람 한테는 잘 안 안겨 있으려 했다.
꼬박이 너무해. 힝. 이모 삐짐-3-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한테 안길 땐 울다가도 엄마한테 안기면 울음을 뚝 그친다. 그동안은 내가 안아줘도 젖을 물려야 그치곤 했는데 이렇게 나한테 오자마자 뚝 그치니 내가 이제 진짜 엄마 같다. 뿌듯하면서도 벌써 팔이 아픈 느낌과 빨리 아기띠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ㅋㅋ)
저녁을 먹기 전 다시 어머니들은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아버지들은 스크린과 빔을 달기위해 마루로 모였다. 이렇게 모여 서로 일 하는 건 처음 인데도 다들 어쩜 그렇게 호흡이 잘 맞는지 척하면 척이다.
어때요? 너무 단가? 간장을 더 넣을까요?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간장을 좀 넣을까요? 그래요 넣읍시다 넣읍시다.
자, 어제는 예비 모임이였고 오늘이 진짜다! 생일+새해+가족모임! 짝짝짝~ 저녁 즈음 도착한 도련님까지 합세해 이제 정말 양 가가 모두 모였구나. 어머니들이 한 상 푸지게 차려 준 밥을 먹고 케잌도 꺼내 촛불도 불고 새해 기념 참교육 윳놀이도 했다.(참교육 윳놀이는 일반 윳놀이와 달리 '참'과 '교총'이 있는데 '참'이 나오면 하나가 무조건 나는거고 '교총'이 나오면 제일 앞에 가던 녀석을 빼는 거다. 그리고 이 두녀석이 승패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부부 대항, 형제대항, 부자 부녀 대항 되는대로 붙었다. 설거지 내기도 하고 아기방 청소 내기도 했는데 다음날 다들 그냥 가버렸다능...T^T
일 년만 더 차이 났으면 같은 운명을 하셨을 두분! 생신 축하드려용~!
자, 이제 그럼 윷놀이 한 번 해볼까? 요렇게도 던져보고 조렇게도 던져보고~!
이박 삼일이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눈 폭탄이 쏟아져서 다같이 밥도 못 먹고 헤어졌다. 부랴부랴 짐싸고 두고 간 것 없나 확인하고(그럼에도 불구 두고갔지만.-엄마 옷이랑 지원이 칫솔. 아마 두사람은 이 글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꼬박이 주변에 모여 인사도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시끌벅적 했던 집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다시 세 식구 남아서 청소하고 밥먹고 꼬박이 재우고 고구마에 차 한잔 하고 이렇게 글 쓰고 나니 벌써 하루가 지난다.
부모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시니 괜시리 또 후회스러운 일들이 생각난다. 아, 그때 왜그랬지, 왜 이런말을 했을까, 그땐 이렇게 할껄, 저땐 저렇게 할껄 하고. 특히 엄마한테는 왜 작은 일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건지. 고마운 마음을 더 표현 하지는 못할 망정 되려 내가 엄마한테 잔소리하고 눈치 준건 아닌지 미안하다. 그리고 감기에 걸린 엄마를 걱정 하기 보다 그 감기가 꼬박이에게 옮길 것을 더 걱정 하는 나를 보면서 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 없다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 미안ㅜ,ㅜ 그래도 감기는 안돼ㅋ) 왜 엄마한테는 맨날 똑같이 후회 할 만한 일들을 반복하게 되는걸까. 법륜스님이 '내가 잘났다'하는 심성이 내면 깊이 깔려 있어 가족들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다음엔 정말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줘야지!
이박 삼일동안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가족이란 뭘까, 자식이란 뭘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 해 본다. 우리는 나중에 꼬박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꼬박이는 나중에 어떤 우리에게 자식이 되어 있을까. 우리도 아들의 아들을 보러 4시간 넘게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와서 30분 보고 다시 가는, 딸의 산후 조리를 위해 새벽일 하면서 밥 해먹이고 아기 똥기저귀 빨아주는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시금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이런 부모님을 만난 우리도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난 꼬박이도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쪼록 알차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년을 시작한다. 올 한해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