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 점심시간 (주제:점심시간)
“얘들아~ 밥먹자~!!” 창문을 열고 소리친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럴 줄 알고 10분 전에 불렀지. 오늘 점심은 메뉴는 등갈비를 이용한 폭립. 날짜가 오늘까지라 그런지 고기에서 조금 꿉꿉한 냄새가 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
나는 장을 볼 때 새로운 음식을 해먹어 보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이것저것 사두고는 못 먹게 되기 직전에 급히 해 먹거나 상해서 버리게 될 때가 많다. 매번 같은 상황을 맞이 하면서도 나는 왜 자꾸 책임지지 못할 재료들로 냉장고를 채우게 되는가. 나에 대한 지나친 신뢰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지나친 희망인지, 뭐가 됐든 지나친 선택. 냉장고도 내 마음도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것을 더 많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 와서 그런지 열심히 잘 먹고, 나는 점심을 먹으며 저녁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한다.
3월 9일 / 산책 할 수 있을까? (주제:산책 후 글쓰기)
산책을 갈 수 있을까? 가지 못할까? 이미 시작부터 마음이 50대 50이다. 결국 산책을 가지 못했다. 원래 걷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산책은 좀 귀찮게 느껴지거나 임무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러워진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 혼자 산책을 한 해 본지가 언제였지, 떠올려 보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근 몇 년 동안 산책을 할 때 항상 아이들과 함께했고, 아이들을 위한 산책을 해왔던 것 같다. 오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아직 집에 있는 우리랑 둘이 슬쩍 나가 볼까, 하다가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꼬맹이 쫓아다니다 힘 빠질 것 같고 결국 귀찮아져서 나가지 못했다.
… 에잇,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늘은 귀찮아서 못 나간 게 크다. 오늘은 혼자만 있었어도 산책은 나가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날씨도 따뜻하고 좋은데 한번 나갔다 올 걸 그랬나. 오늘은 왠지 글도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3월 10일 / 느긋한 계획 (주제:오후 4시)
평소 오후 4시면 학교에 간 아이들을 데리고 왔거나 데리고 오고 있는 시간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아이들을 데려와서 4시에는 조금 느긋하게 집에서 글쓰기를 위한 관찰을 좀 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우리랑 둘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3시가 훌쩍 넘었고, 부랴부랴 나가서 아이들 데리고 집에 가려고 보니 벌써 4시다. 오늘은 논밭상점에서 고구마 사서 오느라 평소랑 다른 길로 갔더니 남편이 일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랑 겹쳐 우리가 아빠 보러 가자고 조른다. 얼굴만 잠깐 보고 올까, 하고 들렀다 집에 오니 5시가 넘었다.
인생에 내가 계획한 데로 흘러가는 게 얼마나 있을까. 나는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포기도 잘한다. 자주 지각을 하고, 마무리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자책할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해원씨는 참 느긋 거 같아”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안심한 적이 있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3월 11일 / 덕후의 추억 (주제:애정하는 물건)
나는 덕질 하는 게 취미다. 아마 중학교 때 nell이라는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였던 것 같다. 아니,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처음으로 만화 잡지를 샀던 때부터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덕질하는 게 너무 좋다. 덕질 그 자체로의 즐거움이 제일 크지만 물건, 혹은 그 대상과 쌓이는 추억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부터 장난감과 동화책을 좋아했다. 엄마가 된 후 이 두 가지를 수집하는게 훨씬 유리 해 져서 너무 좋다. 일반 어른들보다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이 볼 수 있으며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세상엔 이쁘고 귀여운 것들이 너무 많고, 그것들이 하나 둘 쌓여 있으면 기분이 좋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자식 덕질인데 오늘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미뤄 둔다.
3월 12일 / 사진 속 마음 (주제:핸드폰 속 사진)
내 핸드폰 사진의 지분은 90%가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언제부터인지 나는 나를 찍는 게 어색하다. 나를 잘 찍지 않다보니 막상 찍으려 할 때는 어떻게 찍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연애 시절엔 남편이 나를 많이 찍어 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가 찍은 사진의 지분도 대부분 아이들 차지다.
얼마 전 동생이 셀카를 찍어 보내 길래 나도 찍어 보려 했으나 역시 잘되지 않았다. 액정이 깨졌다는 핑계를 대려다 아이들에게 한 장씩 찍어 달라고 해 봤다. 아이들이 찍은 나의 모습이 내가 찍은 나의 모습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사진에도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나 자연스러운데 되려 나는 왜 나를 어색해 하나. 조금 더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 생각했다.
3월 15일 / 추억의 무게 (주제:영화소개)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기생충이었던가, 어쨌든 나의 인생 영화를 뽑으라 하면 나는 가장 먼저 ‘이터널 선샤인’을 뽑는다. 짐 캐리와 미쉘 공드리의 좋합 이라니, 이 두 사람이 만들어 오던 각각의 영화를 사랑해 오던 나에게 이 소식은 엄청난 기대와 행복을 안겨 주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서로의 기억을 지워 서로를 잊으려고 했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잊혀진 기억 속에서 다시 서로를 찾고, 끌리고, 도망가다 결국 붙잡게 되지만 다시 망설이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당연하고 평범한 연인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미쉘 공드리 식 표현과, 짐 캐리 식 정극연기가 만나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피해 도망가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결국 막다른 곳에 도착하고 기억이 곧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말한다. “그냥 음미하자”라고.
우리의 기억, 혹은 추억은 결국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 추억을 어떻게 해야 음미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추억들을 떠올릴 때면(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무언가 서운해져서 인지 심장이 저릿저릿하다. 언젠가 아랫집 할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추억에도 무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3월 16일 /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 (주제:자유주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 빨래는 평소에 세배 이상 쌓여 있고. 설거지는 평소와 같이 산더미. 뭐라도 해야 하는데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해야 할 일은 계속 생긴다. 집안일은 왜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는 거야 투덜투덜. 심지어 오늘 난생처음 인터넷 사기도 당했다. 애들 재우고 일어나 남은 집안일도 하고 글도 쓰려했건만, 막내가 늦게 자는 바람에 같이 잠이 들어 버렸는데 일어나니 10시가 넘었네. 아, 망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다, 주문을 왜 우며 오늘은 글도 마음도 생각도 가볍게… 가볍게…. 약속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아무렇게나 끄적여 본다.
3월 17일 / 당연하지 않은 꾸준함 (주제:꾸준히 한 것)
‘꾸준하다’를 사전에 찾아보니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봐도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다. 오히려 ‘가끔 부지런하고 끈기가 없다’라는 뜻이라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벌려놓고는 어떻게든 마무리는 짓는다, 하면서 쌓아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꾸준히 해야 하는 일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날도 가끔 있지만 지치는 날이 더 많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꾸준히 이뤄 오는 일들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 같을 때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꾸준하게 해 오는 일들은 그저 당연하게 이루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치열하게 이루어 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나는 너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너희를 돕는 사람이지, 당연하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하고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
3월 18일 / 이음이와의 다짐 (주제:자유주제)
이음이는 날 닮아 그런지 우유부단하다. 며칠 전에도 바쁜 와중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말았고, 서로 화해하며(주로 내가 사과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눠 보았다.
나 : 이음이랑 엄마는 왜 이렇게 선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
이음 : 음…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
나 : 오, 맞아.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겠네. 그럼 우리 미리 생각해 두는 연습을 해볼까? 예를 들어 이음이가 평소에 많이 고민하는 어린이집을 갈지 안 갈지, 옷은 뭘 입을지 같은걸 하루 전 날, 자기 전까지 생각해서 미리 결정 해 두는 거야.
이음 : 오~ 좋아!
나 : 그리고 미리 결정 해 둔 것은 바꾸지 않기. 만약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된다면 그다음 번엔 그것과 다른 결정을 하면 되니까. 무슨 선택을 하든 완전히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하긴 쉽지 않거든. 엄마도 그래~
이음 : 아~ 엄마도?
나 : 그럼~ 엄마는 지금 이음이보다 훨씬 많이 살았는데 아직도 어려워. 그래서 엄마도 매일 연습해. 그러니까 이음이도 엄마랑 같이 연습해 보자!
이음이 덕분에 나도 다시 마음에 새겨 보는 다짐.
3월 19일 / 존중의 태도 (주제:책 소개)
‘어린이라는 세계’, 다 읽는 것이 아쉬워 조금씩 조금씩 아껴서 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 김소영이 가지고 있는 그 시선과 존중의 태도에 계속해서 감탄하고, 감동받는다. 작고 힘없고 어린것들이 가진 순수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특별하다.
언젠가 내가 아랫집 삼촌에게 아이들과 함께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지(아이들이 힘들게 하는 점이 없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삼촌은 나에게 “그건 아이들과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서요.”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과의 문제를 어른의 말을 거치지 않고, 당사자인 아이들과 아이들의 언어로 해결하려는 모습에 크게 감동받았던 기억이다.
사랑과 존중은, 그것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이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그것을 잘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핑계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이를, 나아가 인간을 대하는 존중의 태도를 배운다.
3월 22일 / 처진 가슴 (주제:나의 몸-여성의 몸)
모유 수유를 하면서, 인간을 신이 만들었다면 신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열 달이나 품고 고생해서 낳았는데 모유 수유까지 왜 여자 몫인 걸까, 남자는 필요도 없는 찌찌를 왜 달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세 아이의 모유 수유를 다 끝내고 나니 아이들이 다 가져가기라도 한 듯 가슴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홀랑 사라져 축 처지고 납작해졌다. 젖꼭지도 두꺼워지고 갈색이 되었다. 더 이상 출렁거릴 것도 없고 가벼워서 편하기는 한데, 처진 가슴을 보면 가끔 좀 슬프다.
나도 핑크 빗 젖꼭지가 있던 시절이 있었던가. 처진 가슴을 보면 슬프고 핑크 빗 젖꼭지가 부러운 이유는 젊은 여성의 상징을 탱탱한 가슴과 발그스름한 젖꼭지로 만들어 버린 미디어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처진 가슴도 당당히 들어내며 비키니를 입어 보리라. 세 명의 생명을 먹여 살리고 여전히 나의 오르가즘을 책임져 주는 나의 이 처진 가슴을 더욱 사랑해 주리라, 마음먹어본다.
그래도 신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면 모유 수유는 꼭 남자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면…
3월 23일 / 수많은 별일들 (주제:자유주제)
별일 없어?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별일은 많은 것 같은데 늘상 있는 별일 들이라 무던해진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멋지게 살고 싶은데,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무서워’라고도 덧붙였다. 가슴 저린 그리움은 덜 하고 현실을 좀 더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즐겁기만 했던 글쓰기도 요즘은 좀 무겁다.
오늘은 울림이를 잃어버려 울다가 결국 찾아 웃으며 집에 들어왔는데 ‘도마’라는 나보다도 어린 인디 가수가 엊그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참 좋아하던 가수였는데. 사는 건 뭐고 죽는다는 건 뭘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3월 24일 / 우리의 죽음 (주제:자유주제)
어제 ‘도마’의 부고를 접한 이후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첫 죽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나에게 슬픔보다 오히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족들이 각자의 다른 기억 속에 사소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순간들이 참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언젠가 죽는다면, 나의 장례식장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그 속에서 나를 좋은 기억으로 남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친정 식구들에게 우리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죽음에 대한 워크숍’을 하고 싶다고 제안하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나 우리 중 누가 사고나 병에 의해 진짜 죽을 준비를 해야 할 때 이런 걸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고, 우리 네 식구 이렇게 젊고 건강할 때 즐겁게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죽음 앞에 많이 외로워 봤던 엄마는 젊은 애가 뭐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며 처음에는 노발대발했었지만, 최근에는 ‘나는 수목장이 좋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장례를 치르게 될까,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사는 걸지도 모른다.
3월 25일 / 시끄러운 마음 (주제:자유주제)
요즘 나의 최대 난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이다. 마음은 시끄럽고 기운도 없어서 뭘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주어진 일들만 겨우 할 뿐이다. 근데 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자꾸 비교 대상을 찾게 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오늘도 밍기적 밍기적 대다가 아이들 하교하고 집에 왔더니 벌써 5시가 다 되어 버렸다.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 버려야 하나, 하다가 그래도 오늘은 흙을 좀 만져 볼까 싶어서 코딱지만 한 텃밭이자 정원에 가서 저절로 뿌려져 나온 새싹도 구경하고, 풀을 좀 뽑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극적인 기분 전환은 아니었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한 날에 바보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보려는 시도 정도에 그친 것 같다.
동생이랑 이런저런 힘들게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다가 내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은 자기도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느끼는 요즘’이라 대답했다. 우리 인생 어디로 흘러갈라나, 어디로든 가긴 갈 텐데… 잘 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좀 편해지려나, 도인이 아니고서야 그게 가능한가, 나이가 들고 가진 게 많아질수록 생각만 많아진다.
3월 26일 / 나의 글 (주제: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아이들과의 이야기다. 왜 내 글에는 항상 이렇게 아이들 이야기뿐일까. 이렇게 맨날 아이들 얘기만 하다가 나는 나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주제를 받고 쓰는 글쓰기를 해 가면서 아이들이 빠진 글은 나에게 오히려 어렵고 힘들 뿐 아니라 이상하고 어색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이 있는 나의 글 속에서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찾고 있었고, 아이들 덕분에 나와 더 마주 할 수 있는 거였다. 그걸 깨닫고 나니 아이들이 있는 내 글이 좋아지고, 불안함보다는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나는, 왜인지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는 말에 그만 울컥했다. 그런 어린이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서였는지, 그런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쥐여준 수많은 잘못들이 쓰라려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아이들의 그 ‘아무런 잘못이 없는 착함’이 가지고 있는 순수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한 시선을 사랑하며 글을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