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틀을 앓아누웠다. 일 년에 한두 번 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때가 오는데 그때가 바로 어제였다. 그래도 축구를 시작하고 꽤 오래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어제는 여러모로 힘든 일의 연속이었고, 그 정점이 앓아 누움으로 끝났다. 시작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과감히 선택한 새벽 축구경기 시청부터였다. 꾸역꾸역 일어나 본 축구 경기는 없던 병도 생길 만큼 엉망인 경기력으로 끝났다. 남편이 출장으로 가져간 내 차에 울림이 가방이 딸려가 아침 댓바람부터 대성통곡. 울림이랑 싸우다 등교시간은 물론 아침에 잡혀 있던 나의 약속 시간도 늦어 버렸다. 해야 할 건 많은데 오전에 하기로 했던 작업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맛나게 얻어먹은 점심으로 기분전환 하나 했건만. 그마저도 된통 체해서 소화가 되기도 전에 밖으로 다 나와버렸다. 그 바람에 오후에 잡혀 있던 울림이 치과, 이음이 피아노는 다 취소하고 아이들만 겨우 하교해 계속 누워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아팠다. 이번 주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이 두 개나 있는데.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왔다. '왜 하필 지금...' 억울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출장 갔다 온 남편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고(넷이서 이상한 수학 문제를 계속 풀었다), 왔다 갔다 나를 살피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이 찔끔 났다. 티 내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주는 가족들이 고마웠다.
오늘같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에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지금 나에게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있는 것들을 헷갈려하지 않고 잘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육아, 그리고 그 시간과 함께든 나이(...)로 인해 나에게 생긴 좋은 변화는 진짜 중요한 것을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원래 나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언가 포기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별명이 '문어발'이었다. 그때는 학교와 세상과 나 자신을 향한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관심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다. 이곳저곳에 발 걸치고 있는 곳이 많아 생긴 별명이 '문어발'이다. 몸은 하나인데 다리를 여러 개로 뻗다 보니 모두 조금씩 부족해 욕을 먹거나, 몇 개만 제대로 하고 다른 것은 제대로 못해 욕을 먹거나. 어느 쪽이든 욕을 먹었다. 욕심을 버리고 한 가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게 어떻겠냐는 선생님들의 충고는 뒤로한 채 나는 더욱더 열심히 다리를 뻗어 나갔다. 그러나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양분이 부족하듯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해 이런저런 피해를 주기 일쑤였다. 이것저것 발을 걸치다 보니 늘어나는 오지랖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이기심으로 변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긴 순간,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겨난 순간. 나의 문어발은 자연스레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계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한껏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이제는 '편하니까 막 할 수 있는 거다'라는 말이 싫다. 아끼고 좋아하고 익숙해져서 생긴 편안함을 나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그랬고, 많이 후회했으므로) '얼마 있지도 않은 나의 에너지를 내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은 누군가들에게 빼앗기지 말자. 잘 아껴 두었다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래서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고 싶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자.'하고 자주 생각한다.
이제는 외발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발 정도로는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삶에 1순위는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균형을 잘 이루며 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렇게 필요 없는 관계나 활동반경을 줄이고 나니 이제 뭐가 진짜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모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옆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 같이 가보자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도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잘 못 믿던 나를 믿게 된다. 내가 나를 믿게 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 삶의 1순위인 것이다. 걸러내고 나면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크게 별 일일 것이 없다. 그래서 응원하던 축구팀이 엉망인 경기를 해도, 며칠 앓아누워 억울 한 날에도, 그렇게 되는 날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나는 금방 일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