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바람

 

첫아이 울림이를 낳고 느꼈다. 날 때부터 갖게 되는 모성은 없다고. 처음 본 아이는 귀엽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때 이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뭔가 엄마 흉내를 내보려 했나 보다. 나는 뭐에 씐 사람 마냥 아직 이름도 없던 아기에게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썼다. "오구 우리 아들 쉬 쌌어요?" "오구오구 우리 아들 오늘도 너무 귀엽네요~" 같은. 한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 현타가 왔다. 어느 날 퍼뜩 닭살이 돋았다. 나는 원래 보수적인 부끄럼쟁이라 남편과 사귀면서도 '자기'라던지 '여보'라던지 어떤 사랑이 담긴 애칭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 그대로의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원래의 나로 돌아와 그 단어를 쓰고 있던 나를 생각하니 창피했다. 피식피식 웃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몹시 부끄러웠다.

 

엄마라는 가면을 벗고 나니 다시금 문득문득 아이가 어색했다. '뭐지, 난 모성이 없는 사람인가'. 처음에는 내가 생각보다 좀 냉정한 인간인가 싶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사실 아주 당연한 과정이다. 아무리 뱃속에 열 달을 함께 지냈다 한들 뱃속에서 나와 내 옆에 있는 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존재다. 그 존재가 핏줄, 혹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그 연결 선들이 나와 낯선 존재를 곧바로 가까워지게 할 수는 없다. 물론 '아기'라는 갓 태어난 생명이 갖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순수한 본체 그대로의 매력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어색하고 낯설 수도 있는 당연한 과정이 어째서 '모성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의 생각까지 가게 된 걸까. 내가 좀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 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여성들에게 주는 '모성'의 압박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내 옆에 아이가 자연스러운 내 가족이 되기까지는 당연하게도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모성'이라는 사회적 시선에는 그 시간이 생략되어 있다. 사회에 떠도는 그 단어를 들으면 마치 여성이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 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모성'이라는 단어가 '우리 아들'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었던 것과 비슷하게 닭살스럽다. 아이를 어색해하던 내가 자식덕질을 하게 된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거치며 생각했다. 어떠한 인간관계들과 마찬가지로 부모 자식과의 관계도 함께 한, 혹은 서로를 위해 보냈던 그 시간 속에서 쌓여가는 기억과 추억이 있어야 사랑에 빠지거나 정이 드는 것이라고.

 

나는 원래 정이 많은 사람이다. 사실 내가 겉보기엔 사교적이나 내적으로 낯을 많이 가려서 쉽게 마음을 주지는 못 한다. 근데 과몰입이 심하고 이상한 포인트에서 정이 들기 시작 해서 한번 마음을 내어 주기 시작하면 정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주고 집착도 주는... 아무튼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사감 선생님 말 더럽게 안 듣다가 전근 가실 때 혼자 반나절을 운 적도 있다. 꼬박이들과도 그렇게 정이 들었다. '정'이라고 하기에는 좀 심하게 빠지긴 했는데. 어쨌든 나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정비례하며 사랑을 키웠다. 그러니까 모성 때문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정이 들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슬프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보다 더 한 사랑의 크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에 흠뻑 빠져 있을 때쯤부터. 아이들은 독립된 존재가 되어가고 나도 아이들과 독립과 분리할 준비를 해야 하는 때가 온다. 지금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잘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상태인데. 예를 들어 아이들과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서도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순간들이 아쉽고 서운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아이들을 기숙사 학교에 보내면서 교문 앞에서 우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되뇌인다. '너는 너고 나는 나.'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씨익 웃으며 말한다. "결국에 니 옆에 남는 건 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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