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바람

 

 

'꼬박'은 첫 아이 울림이로 부터 시작해 둘째 이음, 셋째 우리까지의 태명이다. 울림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여러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을 찾아갈 때쯤 '이녀석을 앞으로 뭐라고 부를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우리 부부는 별것도 아닌 이 이름에도 한참을 고민했다. (나중에 진짜 이름 '울림'을 정할 때도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 해 2만원의 벌금을 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을 놀리던 '꼬마박사'의 줄임말로 '꼬박'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사전을 찾아보게 되었고, '어떤 상태를 고스란히 그대로'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 얼렁뚱땅 정해버렸다. (지나친 고민의 결과는 항상 얼렁뚱땅이 되고 만다)

 

첫째 꼬박이 울림이의 탄생과 함께 생겨난 나의 블로그 <꼬박일기>도 이 태명을 이어받아 시작했다. 이왕 쓰기로 한 거 '꼬박꼬박 잘 쓰자'라는 의미도 함께 담아. 쓰다 보니 매일 쓰는 그 행위의 뿌듯함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 글을 보고 안부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사가 좋았다. 우리를 응원해주고, 선물을 보내주고, 우리 집에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점점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다. 어느 날은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또 어떤 날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던 친구들이나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았다. 처음 매일 쓰던 열의는 많이 옅어지고 지금은 가끔 명맥만 이어오는 블로그가 되었지만 그래도 꼬박일기는 나에게 꽤나 뿌듯한 존재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도 많았지만 나는 지금껏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한 것에 후회 한 적은 없다. 아이들로 인해 내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었는지 어느새 내 삶에는 나보다 아이들로 채우는 날이 더 많아졌다. 기울어진 마음은 어떤 면면에서 나를 점점 두렵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길 공허와 공백을 채우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다섯 살 '우리'가 아직 집에 있는 이유는 떠나갈 '우리'보다 남겨질 내가 더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 두려움과 공허를 넘어보려 꼬박일기를 썼다. 쓰고 나면 매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날들도 아이들을 빼면 별 볼 일 없어 보일 것 같았던 나도. 그저 각각의 존재 만으로 마음이 채워지곤 했다.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불안함과 공허를 채우기 위해 썼던 편지 같은 글들이 이제는 되려 나에게 돌아온다. 그동안 잘 해왔다고, 지금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그래서인지 지난 꼬박일기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자주 울컥이고 만다. 처음에는 그 울컥임이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름다웠던 그 시절들이 나에게 주는 위로라고 느낀다. 자주 감정이 요동치고 시도때도 없이 울컥이는 나와는 달리 침착하고 이성적인 남편도 오래된 꼬박일기를 보며 훌쩍이는건(만취 상태에 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어느새 나도 남편도 지나온 시절에 울컥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 울컥이는 시간을 함께해준 존재들이 고맙다. 그 고마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꼬박일기에 오래오래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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