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이 되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쓰는 첫 일기는 서른이 된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 해 보려고 한다.
서른에 맞이한 나의 첫 겨울은 동굴 속의 나날이었다.
울림이가 학교에 가고, 이제 어딘가에 정착해서 살 생각을 하니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지역의 일들과 관계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있게 장착 해 두었던 뻔뻔함들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려워 졌다.
이런 나의 우울함과는 무관하게 삼형제를 수반한 집안에 다양한 일들은 무심하고 야속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 우울한 날들을 나도 그저 무심하게 지내다 보니, 다시 별거 아닌 일들이 되어간다.
그렇게 봄이 오고,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한번 켠다.
다시 나의 자리를 찾아 관계를 맺을 용기가 생겨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그저 무던히 해 나가야 겠다 생각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누군가의 삶에 내 삶을 빗대어 휘둘리지 말고 나는 그저 내 일을 해나가자 마음 먹는다.
우리를 낳고 이사를 와서 여러모로 많이 지쳐 있어 한참 정체 되어 있던 나의 관심사와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또 실천해 보려는 요즘이다.
요즘 마음이 가는 -자급자족, 수작업, 어린이와 자연- 을 주제로 할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해보려 한다.
마당에 목화 심기, 작은 텃밭이지만 작물 키우기, 아이들과 아지트 만들기, 어린이 장터 등등-
올해는 좋은 인연으로 일주일에 한번 여러가지 수작업을 주제로 풀무학교에 수업도 나가게 되었다.
재밌는 일들과 좋은 인연이 생길거 같아 매주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날씨가 좋아지니 꼬물꼬물 동굴 밖으로 나올 힘이 생긴다.
2
오늘은 울림이가 장염에 걸려 처음 학교를 빠졌다.
주말 부터 우리가 내동 설사를 하더니 옮았는지 어쨌는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파해서 쉬기로 했다.
울림이가 학교에 안가니 이음이도 당연하다는 듯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혼자 세 녀석들 데리고 의료 생협 갔다 치과 갔다(하필 오늘 예약ㅠ) 장까지 보고 들어 왔더니 오후 2시.
울림이는 고단했는지 방에 누워 있다 잠들고 우리랑 이음이랑 나는 날이 너무 따뜻해 밖으로 나갔다.
닭 풀어주고(지네좀 많이 잡아달라고 재촉하고) 마당 풀도 뽑고 아랫집에도 내려갔다 데크에 돗자리 펴고 놀다보니 하루가 다갔다.
해질 무렵 울림이도 일어나 어기적 어기적 아픈 몸을 이끌고 데크로 나와 눕는다.
넷이서 뒹굴 뒹굴 놀다가 들어가 씻고 밥먹고 나니 하나 둘 쓰러져 잠들고 오늘은 비교적 일찍 육퇴.
생각보다 많아진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드라마를 볼까, 바느질을 할까, 집안일을 할까 하다
시간이 많을 때만 하게 되는(혹은 할 수 있는) 블로그가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맘처럼 술술 써지지가 않는다.
아직 글을 쓰다보면 몸이 베베 꼬이고 수십번 썼다 지웠다를 한다.
새해 첫 다짐이 짧게라도 1일 1글 이었는데. 3월이 다지나가고서야 올해 첫 글을 쓴다.
언제쯤이면 나는 글을 좀 편하게 쓸 수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릴 때 마다 마지막엔 꼭 '가볍게라도 자주 쓰자'하고 다짐하고는 잘 지켜 지지 않는다.
난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인가 보다.
그럼에도 이번이 또 마지막 이라 가정하며 다짐한다.
앞으론 가볍게라도 자주 남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