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방문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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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정현오빠가 왔었다. 여자친구인 연주씨를 보러 가는길에 살짜꿍 들러서ㅎㅎ 울림이 낮기전, 완주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낙성대 집에서 정현오빠와 연주씨를 만났었는데. 그때가 벌써 6개월도 더 전이었다. 연주씨는 그때 처음 봤는데, 남편에게도 받아보지 못 했었던 꽃다발을 받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더랬지. 그 후에도 꼬박일기 팬이라며 울림이를 위해 직접 뜨개질 해 만든 모자도 선물로 보내 주었다. 정현오빠도 완주로 이사하기 전날 낙성대집에서 하룻 밤 묵어가며 짐싸는걸 열심히 도와주었고. 모쪼록 이래저래 고마운 커플이다:)
오후 느지막히 완도 미역을 한 아름 들고 도착한 정현오빠랑 삼례 예술촌도 들렀다가 집에 저녁 먹고 밤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주로 정현 오빠의 지금의 마음과 앞으로 길에 대한... 그런 여러가지의 이야기들를 했는데,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무튼 간만에 진지한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었더랬다.
사실, 이날의 꼬박 일기는 한 달 간 묵혀 두었던 또하나의 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현오빠가 써준 그날의 꼬박 일기! 우리가 이번 꼬박 일기를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해서 흔쾌히 승락한 정현오빠가 다음날 바로 써 주었는데 게을러 빠진 내가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미안해요 정현오빠ㅠ,ㅠ) 그 날 사진을 꽤나 많이 찍은 걸로 기억하는데, 카메라도 여러대가 있었기 때문인지 지금 나에게 있는 사진은 이것 뿐. 급한맘에 요 사진 몇 장이라도 올리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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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정현의 꼬박일기
"참 좋은 인연입니다"
바람, 해원, 울림 세 식구가 사는 삼례에서 기차를 타고 세 시간 남짓 달려 목포에 도착,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해남에 도착했다. 터미널 앞 빠바에 앉아 울림이네 집에서 받아온 <글과 그림> 잡지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전날 서울에서 출발해 삼례 울림이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 땅끝 미황사에서 일주일 동안 입산수도를 마치고 나오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울림이가 태어난 때부터 (더 정확히는 ‘생겨난’ 일부터 ㅋㅋ) 쑥쑥 자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식을 부부한테서, 또 인편으로 블로그로 들어오다가 한 번 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도 한참이 지나 들른 게 어제였다. 사실 전에도 한 번 오려고 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어긋나 들르질 못했다. 그러기를 몇 달, 드디어 완주까지 내려온 것이다. 바람이 형과는 이사하던 날 서울에서 짐 빼는 걸 도와준 뒤로 7개월만이었고 해원 씨와도 거의 1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 바람 형은 삼례터미널에 도착한 나를 차에 태우자마자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어디론가 향했다. 내가 온 김에 가족나들이를 겸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린 곳은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라는, 특이한 이름의 협동조합이 위탁운영하는 곳으로 여전히 노란색 농협 마크가 커다랗게 찍힌 쌀창고며 옛건물들을 갤러리와 박물관, 작업실로 개조해 놓은 곳이었다. 세 시가 다 되었는데도 어쩌다보니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는 새살림 내외는 구경에 앞서 요기를 하자며 널따란 예술촌 한쪽의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는 포실포실 잘 익은 감자를 꺼낸다. 소금을 솔솔 뿌려 맛이 그저그만이었다.
나도 그제서야 울림이와 첫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보아왔던, 눈을 꼼박꼼박 목을 휘청휘청 하던 갓난쟁이의 티를 얼추 벗고, 이제는 꼬박이라는 태명 대신 울림이라는 또렷한 자기 이름에 걸맞게 똘망똘망한 자태가 제법이다. 녀석은 그 커다랗고 깊고 맑은 눈으로 처음 보는 삼촌을 바라본다. 옆에서 애기 아빠는 “울림아,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하고 연신 재촉을 해 보지만 울림이는 입까지 살짝 벌리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요것은 또 어떤 물건인고, 하고 나를 향해 묻는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서, 녀석의 눈빛을 요리조리 옮겨 살피며 귀여운 아기 모습을 실컷 구경했다. 사진도 좋았지만 처음으로 보는 아기의 모습은 더욱 좋았다.
부부에게는 첫 식사였을 감자를 해치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예술촌을 둘러보았다. 책 박물관, 목공 작업실, 예술 갤러리, 옛 인쇄 기구들, 디자인 상품 전시관까지 무척 다양했다. 좀 종잡을 수 없었다는 걸 빼면 볼만 했다. 부부는 아기를 번갈아 안아가면서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곳을 빠져 나와 간단하게 장을 본 후 신혼댁에 도착하니 다섯시 무렵이었다. 집을 보면 주인을 안다고, 아기자기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묻어났다. 어떻게 얻다보니 산업단지 부근의 빌라가 돼서 주변 모습은 수도권 주택지에 있는 느낌 비슷했지만 공기는 좋았다. 부부가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나는 울림이와 놀았다. 안아도 보고, 얼러도 보고, 눈싸움도 했다가 사진기를 꺼내 모습도 담았다. 이렇게 보면 엄마를 닮았고, 저렇게 보면 아빠를 닮았다. 바람이 형 말로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이 형과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다니던 이우학교 교육연구소 연수 프로그램에서 나와 바람이 형, 그리고 다른 대안학교 재학생 졸업생 두 명까지 해서 자신의 생활과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 자리가 첫 만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후 영 잊고 살다가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7년에 학교에서 만났다. 형은 대학원을 알아보러 온 참이었고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들이 글쓰기 모임을 통해 진작부터 알던 사이라는 걸 확인했다. 집에 돌아가서 확인해 보니 15년도 더 된 사진 속에 나와 바람이 형을 비롯해 당시 글쓰기 모임 소속 교사 자녀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 가을에 바람이 형은 환경대학원에 입학했고 나는 이듬해 군대를 다녀왔다. 몇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나한테는 다섯 해나 선배인 바람 형한테 많은 도움을 얻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여자친구가 생겼대서 만나보았더니 눈을 씻고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없다. 전후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바람 형의 응큼한 속을 알았지만 결혼 전부터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래저래 소중한 인연이다.
저녁을 맛있게 얻어 먹고 나서 설거지는 내가 맡아서 했다. 별 뜻 없이 먼저 나서서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두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굳이 안 말린댄다. 그 얘길 듣고 나니 오히려 약간 약이 올라서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그러나 애 딸린 신혼부부 살림이 만만치 않아서,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바람 형은 화장실에 불려 놓은 아기 똥귀저기를 빨고 해원 씨는 방으로 가서 울림이 젖을 물렸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내친 김에 씽크대며 주병 벽과 가스렌지까지 싹 씻어버렸다. 나중에 부엌을 돌아본 해원 씨가 나를 자주 불러야겠다며 씨익 웃는다.
울림이는 의외로 금방 잠이 들었다. 우리는 아까 사 온 맥주와 주전부리를 꺼내놓고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잠깐 아기가 잠에서 깨 소리가 날 때가 있었지만 거의 네 시간 가까이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형은 다음 날이 출근인데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뽄새가 회사에서 나이롱 직원이거나 사는 게 행복하거나 둘 중 하나인 듯 했다. 아님 둘 다 일 수도 있고.
우리가 나눈 대화는 주로 지금 사는 모습과 진로에 관한 것들이었다. 부부는 행복해보였고 실제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너도 나처럼 사고 쳐서 결혼해"라는 말이 어쩔지 거칠게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꾸려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이 사고를 친 것은 사실이지만 ㅎㅎ 스스로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기지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주변 상황 역시 그 선택을 지지하고 있었으니 참 복이 많은 부부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서로 "나랑 결혼하기 잘 했지?", "당연하지" 뭐 이런 식으로 수작을 하는데, 꼭 영감 꼬락서니다. 그런데도 눈이 시리지 않았다. 깨소금이 쏟아진달까. 보는 사람(나밖에 없었지만)도 선뜻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학생신분 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나는 이 두 '생활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선택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희망이랄까 가능성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대, 또 학생 대부분이 갖고 있는 불안 같은 것은 허상이라는 것, 사랑하는 이와 벗들과 함께 할 때 삶은 명확한 길을 보여준다는 걸 느꼈다. 밤이 깊었고 울림이도 쌔근쌔근 잠이 든 가운데 술자리는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손님인 내가 늑장을 부리다가 바람이 형이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 삼례에서 익산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에서 다시 고속철로 목포로 가는 환승 열차표를 끊었는데 그만 삼례에서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스마트폰으로 구입한 거라 환불도 안 된다. 버스를 타야 하나 어쩌나 하면서 삼례역을 빠져나오는데 택시 한대가 눈에 띈다. 20분 안에 익산역까지 가능할까요, 물으니 일단 타 보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탔는데 총알택시가 아니라 거의 총알 수준으로 달려서 15분 만에 도착했다. 택시비가 좀 나왔지만 열차표를 그대로 날린 것보다는 나았다. 차칸에서 아직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창밖으로 달려가는 호남평야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여행을 한다는 기분이랄까, 아쉬움도 밀려오면서 울림이 눈 한 번 더 맞추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남 시내를 싸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다가 드디어 여자친구를 만났다. 일주일 만이다. 맑은 낯으로 인사를 하는 게, 어쩐지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왜 혼자 완주에 갔다왔냐며 아쉬워하기도 했다(여자친구는 울림이 팬이다). 담에 꼭 같이 가자고 했다. 나도 꼭 그러자고 대꾸했다. 참 좋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