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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이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다 '꼬박이'처럼 생겼다)







둘째 꼬박이 이음이의 생일(21일) 하루 전날, 셋째 꼬박이가 나왔다.

주변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당사자인 우리가 걱정했던(혹은 예상 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전개로. 아주 순탄치 않게 말이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둘다 똑같은 진통 전개(평상시와 1도 다를게 없음->빠르게 지속되는 배뭉침(아프지는 않음)->몇시간 뒤 진짜 진통->3시간 반, 1시간 반 만에 출산)로 낳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똑같겠거니- 아니, 나오는 길이 두 번이나 열렸었으니 더 빨리 나올 것이라 확신하며 예정일 2주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꼬박이가 조산사 선생님이 도착 하시기 전에 나와 버리는 것만 걱정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무색하게 명절 연휴가 시작 되기 전날 부터의 가진통으로 조산사 선생님을 헛걸음 하게 하고,

진짜 진통이 시작되고서도 22시간 만에야 이 녀석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원래는 2박 3일 코스인데 그나마 셋째라서 반나절 줄인거라 하심...).

꼬박이가 나오는 위치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진통을 오래 겪은 거라 나오는 순간도 셋 중 가장 아팠던 것 같다.

세 번째 출산 임에도 이렇게나 다른 경험을 하면서, 임신에서 시작되는 모든 육아에 우리가 장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명절 하루 전, 조산사 선생님 헛걸음 하게 만든 날들. 14-16일)


(그래도 혹시 나오길 기대하며 열심히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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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꼬박이를 집에서 낳으면서 무엇보다 대견했던건 형아 꼬박이들.

가정 출산을 결심했던 가장 큰 계기가 조산원에서 꼬박이를 낳은 후 큰 아이들이 함께 숙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생 이별을 하거나, 

낳자마자 집으로 함께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과 낯선 공간에서 맞이하는 출산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그럼에도 내가 힘들어 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에 꼬박이가 나오기 전에 울림이 이음이에게 늘 일러 주었다.


"엄마가 꼬박이를 낳을 때 많이많이 아파 할건데,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울림이 이음이도 그렇게 낳았고, 꼬박이가 나오면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 했던 것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생길거야. 울림이 이음이가 그랬던 것처럼. 알겠지?" 하고.


그러면 울림이 이음이도 씩씩하게 알았다고 하면서 셋이서 꼬박이가 나오는 순간을 즐겁게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긴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평소처럼(어린이 집에도 가지 않고) 싸우기도 하고 밥도 먹고 간식도 먹으면서 놀다가

엄마가 힘들어 할 때면 와서 손 한번 잡아주고, 그러다 또 가서 놀았다.

더 놀랐던 것은 꼬박이가 나오기 직전에 극심한 진통을 겪을 때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방 한 구석에 앉아 함께 긴장하고 같이 힘을 주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울림이는 자기도 같이 힘 주고 기도 하느라 땀이 많이 났다고.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것은 진통이 시작 된 순간부터 꼬박이가 나오기 까지의 긴 시간동안 조산사 선생님과 남편이 계속 옆에 있어 주었던 것이다.

조산사 선생님은 내가 그 긴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계속 옆에 있으시면서 내 상태를 지켜봐 주셨다.

선생님이 만나셨던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뢰가 생기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서 선생님이 더 편해졌다.

더욱이 꼬박이가 나오기 직전 선생님의 연륜에서 뭍어 나오는 손길에 나도 남편도 정말 감탄했다.

꼬박이가 나오고 난 뒤에도 선생님은 나에게 "꼬박이 엄마, 나는 내 힘 될 때까지 이 일을 할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하며 

내가 이 선생님과 연이 닿은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던 그날 밤 부터 꼬박이가 나오는 2박 3일 동안 아이들과 내 곁을 지켜주었던 남편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었다.

새삼, 나에게 저런 남편이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던 시간들.

나는 사실 이렇게 내가 아무 것도 못 하게 되는 순간에 남편이 집안일이나 아이들 케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ㅋㅋ), 

이번 일을 겪으며 신뢰도 급 상승! 뒷심이 좀 부족 하긴 하지만 

조산사 선생님도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사람' 인 것 같다시며 남편의 모습에 감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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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히 출산 중 출혈이 거의 없었고, 회음부도 찢어지지 않아서(울림이때 찢어진 경험 이후로 출산 할 때 어떻게든 정신 붙들고 신경 쓰는 부분.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기 때문에-) 회복은 빠르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집이라 참지 못하고 방심 하며 집안을 좀 돌아 다녔더니 벌써 무릎이 쑤시려고 한다. 눈 감고 다녀야지 다시 다짐. 

그래도 어제 부터는 산후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쾌적한 집에서 큰 꼬박이들이랑 남편도 나가고 방에서 꼬박이랑 둘이 누워 있으니 조리원에 와 있는 기분이다(가 본적은 없지만).

꼬박이도 형님들이 없으니 너무나 잘 잔다. 그런 꼬박이를 보면 시작부터 험난한 막내 생활에 자기 살길을 찾아 가는 것 같아 우습다.





(왜인지 벌써 피곤한 엄마ㅋ;)






(벌써부터...)


(막내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조금 고생했지만 막내 꼬박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고, 

뱃속에 있을 때는 걱정만 했던 내가 그 걱정들이 무색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작은 생명체에 감탄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독수리 오형제가 된 우리 가족은 변화한 이 상황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더불어 그것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우리 앞에 생겨날지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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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꼬박(황이음) 낳던 이야기 링크 : 바로가기

첫째 꼬박(황울림) 낳던 이야기 : 바로가기 (하단에 출산기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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