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은 우리 생일, 21일은 이음이의 생일이다.
그런데 마침 올해는 아랫집 할아버지의 생일도(음력 이여서 매해 바뀌는데 올해는) 2월 20일!
생일 파티겸 간만에 아랫집 윗집 식구들 모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
조금씩 준비해서 만나자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진수 성찬이다.
아랫집에서는 파스타(크림-토마토 두가지 맛!)와 챱스테이크, 닭봉, 유부초밥을.
우리집에서는 셀러드와 약밥, 홍합스튜, 그리고 생일 케이크를 구워 갔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 못지 않은 메뉴와 맛에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생일 파티를 하러 가기 전에 할아버지는 뭘 좋아하실까 같이 고민 하는데
울림이 이음이 모두 "할아버지는 우리들 그림을 제일 좋아하지~!"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는 울림이가 갑자기 하나 더 생각이 났는지
"아! 할아버지 밀크 캬라멜 좋아해!"라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 밀크 캬라멜이 많은데 이거 삼촌거냐고 물어보니까 삼촌이 할아버지가 좋아신다고 했었어"라며ㅎㅎ
하지만 그건 이미 할아버지네 많이 있다는 아이들 말에 다같이 문구점에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어른들이 이례적으로 주고 받는 선물을 내가 사서 드리는 것 보다
작고 소소하더라도 아이들의 눈으로 직접 고른 선물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구점에 들어가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데 한참을 둘러보던 울림이가 여기 귀여운 향초 있다며 나를 부른다.
알록달록 귀여운 과일 모양에 향초들이다. 울림-이음-우리가 하나씩 드리면 좋을 거 같아 각자 하나씩 골랐다.
그걸로는 아쉬워 이음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피카추 그림이 그려진 연필 세트를,
울림이는 색연필과 연필을 바꿔 낄 수 있는 알록달록한 연필-색연필 세트를,
우리는 빤짝이가 잔뜩 붙어 있는 작은 수첩을 하나씩 골랐다.
선물을 준비하고 나니 아이들이 아니면 줄 수 없는 이 선물들이,
포장해서 드리기 직전까지 자기가 같고 싶다며 마음에 들어 하던 것들을
"그래도 할아버지 생일 이니까"라며 큰맘 먹고 전하는 그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리면서 본인들도 기대가 됐는지 주는 사람들이 꺅꺅 거리며 더 난리다.
선물을 뜯고 나서도 이건 어디에 쓰고 어떻게 쓰는거라며 신나게 설명한다.
할아버지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는지 "이런 선물은 평생 처음이다~"라시며 웃으신다.
울림이랑 이음이가 할아버지께 직접 그린 카드도 하나씩 드렸다.
울림이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열심히 그리더니 정말 비슷하게 그렸다.
할아버지도 "내 머리카락이 세가닥이냐~!"라며 장난스레 말씀 하시면서도 울림이가 이렇게 자기를 그려 준건 처음이라며 좋아하셨다.
선물 전달식을 마무리 하고 오랜만에 윗집 아랫집 식구들 다같이 둘러앉아 술 한잔 하며 도란도란 즐겁게 이야기 나눴다.
특히 삼촌이랑 남편까지 이렇게 다같이 모인게 오랜만이어서 평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
대화 중에 내가 '삼촌이 워낙 깔끔한 성격이어서 아이들이 자주 놀러와서 힘든일은 없냐고, 혹시 집에서 내가 지도해야 할 일들은 없겠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이들과 저의 일이라서요"라는 삼촌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삼촌도 아이들과의 불편함 지점을 나에게 말하신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이들이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 그 문제를 늘 아이들과 직접 해결하려고 하셨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올해는 신기하게도 양력인 내생일과 음력인 할머니 생신이 또 하루 차이가 되어
겸사겸사 우리 엄마 아버지가 오셔서 하루, 또 우인이 언니가 와서 하루 함께 만나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 날 아침에는 엄마랑 아버지가 아랫집 할머니할아버지네서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원이 낳고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며 제일 큰 조기를 구워주셔서 너무 큰 감동을 받드셨다고 했다.
이런 대접은 생전 처음 이라며...
매번 드리는 것 보다 받는게 많아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할머니 생신에는 부담 드리고 싶지 않아 몰래 선물만 드리려고 했는데(지난번 할아버지 처럼).
준비한 선물을 빨리 알리고 싶던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 입이 간질간질 하는 바람에 진즉에 다 들통나고ㅋㅋㅋ
나중엔 오히려 내가 케익이랑 이쁜 꽃다발을 선물 받아 버렸다ㅠㅠ
(거의 반 강제로) 나도 아이들과 남편에게 귀여운 선물들을 받았다.
울림이의 편지에는 눈물까지 찔끔 났던.
길었던 생일만큼 오래도록 행복했던 날들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