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긴 방학이다.
체력적으로 힘든건 사실이지만 아이들도 나도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오히려 싸우는 시간이 덜 하고 같이 재밌게 노는 방법을 터득 해 가는 것 같다.
하루종일 소리 치고 울고 싸우는 날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하루종일 카드놀이 하나로 하루를 보낸다.
언제나 '경쟁자' 이기만 했던 형제들이 이제는 조금 '동지'가 된 느낌이랄까.
무당벌레 훈련중ㅋㅋㅋㅋㅋ
우리의 아지트
2.
며칠 전 남편이 벼르고 벼르던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사서 마루에 설치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 설명 해 주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 중 하나로 생각하는 남편은 그 행복을 더 극대화 시켜주기 위한 도구로 이 거대 칠판을 구입 한 것이다.
(오늘 밤에도 자야 하는 아이들을 붙들고 '감옥과 죄수'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30분을 떠드는 바람에 나만 혼자 애먹었다)
남편이 처음 커다란 칠판을 사겠다고 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집에 설치 되어 있는 이 칠판을 보니 너무나 황바람스러운 이 물체에 웃음이 났다.
그래도 요 칠판이 있으니 아이들도 아빠도 신이나서 마루에 앉아 그리고 쓰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함께 할 이야기가 더 다양해졌다.
(방금도 남편은 아까 자기 전에 (엄마가 말리는 바람에)아이들이게 다 설명 해주지 못 한 무언가를 그려 놓았다.........)
3.
오늘은 어제 아이들이 밭에 만들어 놓은 돌 화덕에 불을 지펴 마쉬멜로를 구워 먹었다.
어제 드디어 아랫밭 만들기에 돌입해서 풀을 베고 있는데 울림이랑 이음이가 옆에 오더니 둘이서 꿍짝꿍짝 뭔가 신나게 만든다.
해가 다 지도록 안들어 오며 만들던 것이 오늘 아침 보니 돌로 만든 작은 화덕이다.
꼼꼼하게 잘도 쌓았다. 둘이 낑낑대며 저렇게 커다란 돌을 옮겨 화덕을 지켜 볼 의자도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울림 이음이의 시그니처 포즈
저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가만히 두기엔 아까워 작은 불에도 구워먹기 좋은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낮엔 볕이 뜨거워 해질 무렵 하기로 하고 밭일을 하는데 아이들이 옆에 와서 "파이어~ 파이어~" 노래를 부른다.
슬슬 시작하기에 앞서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도 초대 하자고 했더니 벌써 초대 했단다ㅎㅎ
초대 손님들을 모시고 저 쪼그만 화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젓가락에 마쉬멜로우 하나씩 꽂아 구워 먹는다.
우리도 옆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유기농 곰돌이 젤리를 젓가락에 꽂아 먹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나게 먹었다. 조그만 화덕이지만 나름 화력이 좋다.
아이들 덕분에 즐거워진 어른들은 다음에 한번 날 잡고 화덕을 더 크게 만들어 생선도 구워먹고 소세지도 구워 먹자고 했다.
곰돌이 젤리 굽는 우리ㅋㅋㅋ
그나저나 저기 밭으로 써야 되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옮기지...
4.
이건 얼마전에 아주 오랜만에 열폭 했던 나의 감정의 쓰나미 기록.
2020. 3. 19
어제 밤 오랜만에 이음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어른들이 늘 별거 아닌 일로 싸우듯,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느날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게 된다. 어제가 그랬다. 이를 닦기 전 캬라멜을 먹겠다고 하는 이음이. 안 된다고 하는 엄마. 결국 이음이는 대성통곡을 나는 신경질. 이음이가 캬라멜을 먹겠다고 하기 전 이미 만화 예고편 귀파기 등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고 평소보다 취침 시간이 늘어지니 점점 지쳐갔다. 남편은 바빠서 없었고 저녁도 못 먹은 나는 배도 고프고 신경이 더 예민해 져 있었다. 울고 불고 하는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강압적으로 달랜 후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캬라멜을 먹지 않고 이를 닦이고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너무 못나서 눈물이 핑 돈다. 사실 귀도 내가 파주고 싶어서 파줬고, 평소에는 이 닦기 전에 먹고 싶은거 다 먹게 해 줬는데 갑자기 내가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소리치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한 내가 너무 못나고 속상하고 미안했다.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사이 몰래 훌쩍거리고 있는데 이음이가 와서는 미안하다고 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히려 이음이가 놀라 “엄마 울어?”라며 내 눈을 쳐다본다. “이음아 엄마가 더 미안해. 귀도 엄마가 파주고 싶어서 파주고 평소에는 먹으라고 했었는데 엄마 힘들다고 안된다고 하고 엄마가 어른이라고 무섭게 해서 정말 미안해...” 조용히 방에 있던 울림이가 슬 나오니 이음이가 달려가 “형아~ 엄마 운다~?” 하고 말하니 울림이가 나지막히 말한다. “알아 듣고 있었어” 사실 울림이는 이음이 보다 내가 훌쩍이고 있는걸 먼저 알고 있었다. 내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는걸 보더니 방으로 슬쩍 들어가서 책보는 척 하며 상황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아까 내가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와 있을때에도 마루에서 울고 있는 이음이에게 울림이가 열심히 달래줬었다. “이음아- 어떻게 하고 싶어서 그래? 지금 먹고 싶어서? 그냥 내일 먹자. 내일 먹고 지금 빨리 가서 엄마한테 이 닦아 달라고 해~ 응? 이음아~”라며 계속 이음이를 설득했다. 부쩍 커버린 울림이도 기특해서 꼭 안아 주며 고맙다고 했다. “울림아 정말 고마워. 아까 이음이도 달래주고 엄마 우는 것도 모르는 척 해줘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던 우리도 옆에서 이제야 안심이 되는 듯 웃는다.
이 글은 읽을 때 마다 그날 느낀 감정이 생생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눈물이 난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5.
코로나와 그로 인해 길어진 방학으로 아이들과 부대끼며고 아웅다웅 지내며 지칠때도 있지만,(딱 3시간 정도 만이라도 혼자 카페에 가서 글 쓰고 싶다)
한편으로는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막상 용기 내지 못했던 '학교도 어린이집도 안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를 실현할 수 있어 즐겁다.
아- 언제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나의 꼬박이들.
간만에 꼬박일기에 꼬박이들 이야기를 적었다.
역시, 세상에서 자식 덕질이 제일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