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8
초인종이 울립니다. 이 시각에 누구일까. 아이들이겠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울림이, 이음이, 엄마 등에 업힌 우리가 와 있습니다. 엄마 손에 들린, 속이 훤히 보이는 플라스틱 통 안에는 반딧불이 세 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아, 반딧불이를 보여 주려고 여덟 시가 다 된 어둑어둑한 때 우리 집에 온 것입니다.
뜰을 나섭니다. 울림이를 손에 잡고 반딧불이를 찾아 나섭니다. 무엇이 얼비친 것은 아닐까. 반딧불이 한 마리가 풀섶에서 반짝이다가 곧 사라집니다. 우리도 걸려 함께 숲길을 흘러갑니다. 아이들 집 마당에 올라서니 반딧불이 두세 마리가 떠다닙니다. 울림이와 이리저리 몰아 두 마리를 잡고, 한 마리는 거미줄에 걸린 것을 잡았습니다.
‘왜 할아버지 집에는 반딧불이가 없을까?’ ‘반딧불이는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 라며 말을 주고받는데, 이음이는 ‘할아버지 집에는 아이가 너무 커서 그런가 봐.’ 라고 말합니다. 너무 큰 아이는 지우를 말합니다. ‘지우 삼촌은 어른이야.’ 라며 엄마가 웃습니다. 하늘에는 뭇별이, 내 가슴에는 꽁무니에 등을 단 반딧불이가 동동 떠흐르는 밤입이다.
오늘 울림이는 선생님한테 초콜릿 두 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열, 스물, 서른 ... 아흔’ 우리말로 숫자 세는 것을 다 외워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말로 ‘백’은 ‘온’이라고 한다며, 할아버지가 어릴적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할 때에는, ‘하나, 둘, 셋 ... 아흔아홉, 온’ 하고 아이들을 찾아나섰다고 하니, 그렇게 많이 세느냐고 합니다. 내가 빨리 세는 흉내를 내니, 울림이도 ‘일, 이, 삼, 사 ...’ 하며 숨이 넘어갈 듯 숫자를 세고, 재미있는 듯 이음이가 웃습니다.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가다, 길에 민달팽이가 있다고 하니, 울림이가 반딧불이를 준다고 나뭇잎으로 줍습니다. 반딧불이는 이슬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하니, 울림이는 엊저녁에 잡은 것은 늦반딧불이 수컷이며,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을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는다고 하며, 엄마와 같이 찾아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 ‘아빠 공부 다 끝났어.’ 라고 소리치던 울림이는, 마치 제가 겪은 일처럼 나에게 ‘공부하는데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음이는, 학위 논문을 마무리한 아빠에게 선물한다며, 고마리와 여뀌 꽃을 바랭이 줄기로 묶어 집에 가지고 갑니다.
2019. 9. 19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우리는 손수레에 타서도 칭얼거립니다. 손수레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해도 그대로입니다. 이음이가 풀섶에서 강아지풀을 꺾다가, 손수레 사이에 끼워 둔 가위를 건네주자 그제야 얼굴이 펴집니다. 이음이에게 그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저는 박사라서 다 안다며 입은 옷을 보여줍니다. 박사가 입는다는, 무릎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갈색 외투입니다. 아빠 황박사도 이런 옷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 하는 건 기분이 좋다는 뜻이랍니다.
오늘은 이음이가 오줌 마려운 것을 어떻게 아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오줌이 마려우면 고추가 머리에게 전화를 걸어 안다고 합니다. 숲길을 도는데 산에 사는 작은 모기가 눈에 띕니다. 올해 들어와서 초저녁이면 유난히 극성입니다. 우리 머리 둘레로 빌빙 도는 모기를 두 손으로 잡으려 하자, 이음이는 ‘외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며 시늉을 해 보입니다. 형 자랑, 아빠 자랑, 외할아버지 자랑, 이음이는 자랑쟁이입니다.
2019. 9. 21
문 앞까지 몰려와 서성이던 어둠이 문을 열자마자 떠밀듯이 확 덮칩니다. 부엌 창으로 새어나오던 울림이네 집 전등은 꺼져 있습니다. 아침마다 가슴 딛고 미끄러지듯 숲길을 내려가던 아이들이, 오늘은 강화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갔습니다. 토끼풀 밭에 꽂아 둔 나지막한 꽃등이 아이들이 오르내리던 언덕길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따금 바위산에서 올빼미가 울고, 흐린 하늘엔 풀벌레 소리만 가득합니다.
이제 딱지치기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슬놀이 한 지도 참 오래되었습니다. 킥보드는 대청마루 밑에 잠들어 있고, 베이블레이드나 자동차 변신 로봇 들이 더는 마당에 나뒹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사이에 ‘순간이동’이나 ‘변신’이란 말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울림이가 학교에 가고 글자도 배우고 바깥세상을 만나며 동화 속에서 빠져나오는 듯합니다. 하기는 우리가 외발 손수레를 혼자 밀고 열 걸음 남짓 가니, 시간도 꽤 흘렀습니다.
어제는 울림이가 ‘오랜만에 킥보드 한 번 타볼까.’ 하더니 반 바퀴도 돌지 않고 그마저 금방 그만둡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킥보드를 타고, 나는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누가 빨리 가나 내기를 하곤 했는데, 산을 오르는 비탈길과 마당이 참 심심합니다.
2019. 9. 24
고마리 줄지어 피어난 속으로 도랑물이 소리내며 흘러갑니다. 어느새 벌과 꽃등에가 찾아들었습니다. 밤새 이슬 젖은 위를 햇빛이 비추며, 울림이네 지붕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납니다. 콩잎에는 섬서구메뚜기 곁에서 베짱이가 가늘게 더듬이를 떨고 있습니다.
이음이는 오늘 어린이집에서, 홍성읍에 있는 남산으로 가을나들이를 떠납니다. 울림이는 물기 어린 바깥 차창에 우스꽝스러운 사람 얼굴을 그렸다가 다시 차에서 내려 낙서를 하고, 저러다가 차는 언제 떠날지 모르겠습니다. 차창에 손바닥을 대니, 우리도 안에서 고 귀여운 손바닥을 펴서 내 손바닥에 마주댑니다.
2019. 9. 26
방에서 아이들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아, 살았나 보다. 어제는 고뿔이 걸렸는지 우리는 줄줄 콧물이 나오고 이음이는 39도까지 열이 올랐는데. 윗밭에서 갓을 솎아주다가 아내는 ‘아이들 소리가 나서 참 좋다.’고 합니다. 누군가 밖에 나왔는가 봅니다. 내가 아이들이 나왔다고 하니, 아내는 까치 소리라며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렇게 들리느냐고 합니다. 가끔 새소리나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아이들 소리로 들리기도 하니까요.
오늘 아침엔 내가 제대로 들었습니다. 울림이가 밖에 나와 소리치고 있습니다. ‘빨리 나와.’ ‘당장 안 나와.’ 가만히 들으니, 울림이는 서둘러 밥을 먹고 학교 가기를 기다리고 식구들은 아직 아침을 먹고 있나 봅니다. ‘오늘은 아빠가 데려다 줘.’ 이음이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음이는 아파 어린이집에 못 가고, 아빠가 울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려는가 봅니다. 이음이는 괜찮을까. 두 눈이 퀭하니 온몸에 열이 가득하던 이음이가 생각납니다.
2019. 9. 28
오미자를 담근 유리병들을 엄마 혼자 들기에는 힘들어 보여, 함께 나누어 들고 울림이네에 잠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가 왔다고 인사를 하라고 하자, 오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옵니다. 아이들은 잘 됐다며 집에서 놀다 가라고 나를 붙듭니다. 울림이는 아빠한테 내가 못 가게 문을 닫으라고 하고, 이음이는 내 손을 붙잡고 안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아직 할아버지가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밥을 먹고 놀자고 하니 울림이와 이음이는 멈칫하는데, 우리가 따라나와 나에게 장화 한 짝을 건넵니다. 신을 신고 밖에 나가자는 뜻입니다. 우리를 번쩍 들어 품에 앉고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마당 귀퉁이에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은 장화 빛깔을 닮은 연노란 민들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뜰에서 서성이는 외할머니 마음일까요.
2019. 9. 30
‘야, 너 이 거 없지.’ 바둑판을 내밀어 보이며 이음이가 자랑합니다. 여기에서 ‘야, 너’는 물론 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에 울림이와 서로 ‘자랑 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울림이가 ‘우리 집엔 레고, 베이브레이드, 킥보드가 있어.’ 라며 이것저것 다 끌어내어 자랑을 하면,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단이, 보리, 호미, 밤이’ 우리 집에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을 들먹이며 자랑을 하고, 기가 죽은 듯 아무말이 없던 울림이가 생각납니다.
나무 난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바둑과 오목을 두고 알까기 놀이도 합니다. 오목은 외할아버지한테 두 번이나 이겼다는데 아무래도 외할아버지가 져 준 듯합니다. 몇 수 놓기 전에, 한꺼번에 두 알을 놓거나 내가 놓은 바둑돌 위에 제 것을 겹쳐 놓으며 울림이는 제가 이겼다고 우깁니다. 알까기도 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손가락으로 바둑알을 눌러 마치 끌어당기듯 내 바둑알 가까이 와서 튕겨냅니다.
아내는 밖으로 아침을 차려옵니다. 벌써 바나나와 빵을 먹었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밥에 참기름과 깨를 버무려 김밥을 싸 줍니다. 울림이가 ‘먹보 귀신’이라 부르는 우리는, 입에다 두어 개 넣고, 잘게 자른 김밥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분이 참 좋은가 봅니다. 앉아 있는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서서 느긋이 사과를 먹기도 하고, 아내 두 발을 붙잡고 서서 빙긋이 웃기도 합니다.
2019. 10. 7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 밤을 주으러 갑니다. 마을길을 내려가니,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에 묶어 둔 개가 짓습니다. 손수레에 탄 우리가 ‘웍’ 하며 그 소리를 흉내냅니다. 나는 우리가 내는 소리를 따라합니다. 요즘 우리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울림이는 ‘엉아’, 이음이는 ‘임이’라고 부릅니다. 밤 몇 톨 줍고 돌아오는 길에 고욤 두 알과 감꼭지 닮은 버섯 하나를 따서 나뭇잎에 싸 가지고 옵니다. 지금 그 길에 사느란 가을비가 내립니다.
2019. 10. 11
아이들이 학교에 가나 봅니다. 울림이가 마당에 나와 ‘할머니’ 하고 부르더니, 고개를 젖히고 서둘러 무엇인가를 입에 털어넣습니다. 이윽고 이음이가 ‘할아버지’ 부르고는, ‘야, 너 머리 깎았지.’ 라고 소리칩니다. 이음이 말이 따뜻이 내 가슴에 머뭅니다. 마을사람들이 절집 같다는 외딴 곳에 사는, 아무도 눈여겨 보아 주지 않는 나를, 더구나 머리 깎은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울림이와 이음이도 머리를 깎았습니다. ‘야, 너희 머리 깎았구나.’ 하고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울림이는 윗머리와 아랫머리가 층이 나게 가지런하게 깎았습니다. 아내는 도토리처럼 귀엽다고 합니다. 늘 보던 머리 생김새와는 달라, 어디서 깎았느냐고 물어보니, ‘저 위에 무료로 깎아주는 데서 깎았다.’고 이음이가 장난스레 대답합니다. 아, 엄마가 깎아주었나 봅니다. 아이들 머리는 늘 엄마가 깎아주는데, 이 번엔 머리 맵시가 조금 다릅니다. 젊었을 때는 내 머리와 우리 아이들 머리도 아내가 깎아주었습니다. 가끔은 내가 아내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는데, 따뜻한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2019. 10. 13
‘’야, 김종도.’ 성큼성큼 언덕을 내려오더니 돌계단 끝에 떡 버티고 서서 이음이가 나를 부릅니다. 아이들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기시던 장길섭 선생님이, ‘너, 할아버지와 친구구나.’ 라고 하시더니 여긴 평등한 세상이라며 웃습니다. 그 날은 통나무 일을 하시는 목정 선생님이 우리 식구와 울림이네 식구를 저녁식사에 부르셨습니다. 문당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이장 일을 하시는 장 선생님도 함께 모셨는데, 잠깐 사이를 내어(틈을 내어) 우리 집에 들르신 겁니다. 이음이가 내 이름을 대놓고 부른 일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낯선 사람 앞에서 나를 제 친구라고 우쭐거리고 싶었는 듯 보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이음이가 내 이름을 불러줘서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울림이가 절대 밟지 말라는, 모르고도 밟지 말라는, 아이들이 마당에 쌓아 놓은 모래성이 아침 햇살에 빛납니다.
2019. 10. 19
마당에서 아이들이 부드러운 흙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데리러 왔습니다.
울림 : 싫어. 밥 먹고 다시 놀게 하면 갈게.
이음 :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갈 거야.
우리 : (처음에는 따라나서더니, 형들이 가지 않자 절레절레 도리질을 치며 가기 싫다고 합니다.)
엄마는 해가 저 산 너머로 내려가면 오라고 하면서 혼자 돌아갑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오늘은, ‘엄마한테 갈까.’ 하니, 우리는 타고 있던 자전거를 눕혀 두고 내 품에 안기고, 이음이와 울림이는 뒤따라옵니다. 우리는 요즘 몸에 붙은 듯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발걸이도 없는 자전거를 두 발을 땅에 딛고 계단도 오르고,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비탈진 언덕을 제법 몸을 잘 가누며 오르내립니다.
어제는 아이들에게 잠자리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긴 대나무에 굵은 철사를 동그랗게 휘어 붙잡아 매고 나서, 이것으로 잠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울림이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어떻게 잡았을까.’ 하고 물으니, 울림이가 잠자리채를 내 목에 걸어 잡아당겨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이 동그란 철사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쳤을까). 우리 둘레에 있어.’ 라고 하니, 울림이는 꽃을 따서 넣었다고 합니다. 꽃으로 잠자리나 나비를 꾀어 낸다는 뜻이겠지요. 벌이나 나비, 잠자리 들이 날아다니다가 걸리는 것이라고 귀띔을 하니, 한참만에 이음이가 거미줄이라고 합니다. ‘야, 오늘은 이음이가 맞혔구나.’ 하고 꼭 안아주고 싶지만, 울림이가 틀림없이 서운해 할 것이기에 무심한 듯 ‘그래, 맞아.’ 라고만 했습니다. 엄마도 이런 잠자리채는 처음 본다고 합니다. 채에 쳐 놓은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리면 날개가 다칠까봐 조심스레 떼어주던 어린시절로 잠깐 돌아갑니다.
2019. 10. 21
초인종이 잇달아 울립니다. 문 앞에서 빤히 올려다 보는데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숲길을 쓸 때 낯선 차 두 대가 세워져 있어 울림이네 손님이 왔나 했는데 이 아이들인가 봅니다. 울림이 친구인 여덟 살 ‘세라’와 이음이 친구인 다섯 살 ‘종민’. 눈빛이 서양 아이인 듯한데, 동생 이름이 이종민이니 엄마가 외국인인가 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새로 사귄 친구들을 아내와 나에게 소개하고 싶어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할아버지, 이게 뭐야?’ 단이 털에 묻은 풀씨를 보고, 세라가 묻습니다.
나 : ‘이건 쇠무릎쟁이라는 풀의 씨앗이야. 단이가 풀밭에 돌아다니다가 몸에 묻은 거야.’
세라 : ‘왜 단이(다니)라고 한 줄 알겠다. 많이 다니니까.’
나 : 맞아. 단이는 온 산을 쏘다녀.
울림이와 이음이가 미리 알려주었는지, 세라는 단이(다니) 이름도 알고, 보리가 낯을 가려 사람을 피한다는 것도, 아랫밭도 윗밭도 할아버지 밭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씁니다. 나도 경상도에 살다가 지금은 여기에 산다고 하니, 왜 그런지 묻습니다. 엄마는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며, 엄마 아빠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구미에 산다고 합니다. 개쑥부쟁이 꽃이름을 묻더니, 이 꽃은 밝은 빛깔을 지닌 러시아 전통의 꽃이라고 엄마가 알려 주었다며, 러시아말로 알려주는데 따라 소리 내기가 힘듭니다. 주워 놓은 밤을 까 주었더니, 세라는 처음 먹어 본다며 참 맛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 꼬마친구들에게 주려고 금방 캔 고구마를 찝니다. 낮에는 아내와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는데 울림이가 중요한 일이라고 소리치며 우리를 찾습니다. 세라와 종민이가 간다는 것입니다. 울림이도 참 서운한가 봅니다.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라고 손을 흔들며 세라는 개쑥부쟁이 흐드러진 꽃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울림이 이음이 덕분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예쁘고 귀여운 친구들,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2019. 10. 22
세라가 강아지 이름을 왜 단이라고 했는지 안다고 했을 때, 순간 ‘단군’에서 따왔는지를 알고 있을까 했는데, 많이 다니(단이)니까 단이라고 불렀을 거라고 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잠깐 만났지만 세라는 우리말에 관심이 많고, 궁금한 게 참 많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도랑에 우렁이가 살고 있다고 하니, 세라는 울어(우러)서 우렁이인가 하고 묻습니다. 윗밭에 더덕과 도라지를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냐고 묻습니다. 단이가 몇 살인지, 단이가 할머니가 되면 몇 살인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도 물었습니다. 열두 살쯤이면 할머니가 되고 그 다음엔 죽는다고 하니,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아, 안타까워라.’고 가냘프게 내뱉습니다. 오늘 따라 울림이와 이음이도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도 많은가 봅니다. 갑자기 ‘쥐와 고양이 놀이’도 하자고 합니다. 꽃밭에 수 천 마리 벌들이 잉잉거려 세라가 무섭다고 해서, 괜찮다며 내가 벌을 잡아볼까 하자, 울림이가 그건 침을 쏘는 벌이 아니고 꽃등에라며 제가 잡는다고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으면 달려와 우리에게 자랑하는 울림이와 이음이에게, 오늘은 아내와 내가 자랑거리여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들깨를 베어낸 자리에 마늘을 심으려고 깻대를 뽑고 있는데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이음이가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어.’ 라며 울림이는 할머니를 찾습니다. 이음이가 하고 싶은 말은 말랑말랑한 사탕 봉지에 적혀 있다고 하는데, 이음이가 아내에게 건네준 사탕 봉지에는 ‘힘내요.’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가 손에 흙이 묻었다고 하니 사탕을 싼 봉지를 벗겨 입에 넣어줍니다. 쑥스러운 듯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울림이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꺼내 내 손에 쥐어 주는 사탕 봉지에는 ‘사랑해’ 라고 쓰여 있습니다.
밭에서 흙을 쌓아 섬을 만들고는 물을 길러 간 울림이는 돌아오지 않고, 이음이는 혼자 흙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엄마가 불러도, 대답이라도 하라고 해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습니다. ‘이음이 너, 배가 고파 대답할 힘도 없구나.’ 하니 장난스레 그렇다고 합니다. 이음이가 먹은 사탕 봉지에는 ‘배고파요.’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함께 두더지 집을 만들다가 내 등에 업혀 이음이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가 넘어간 뒤에도 어슴푸레한 빛이 있어 이음이는 ‘왜, 아직 어둡지 않아?’ 라고 묻고는, ‘우리가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아 어둠이 기다리고 있나 봐.’ 라고 혼자 대답합니다. 이 곳 초롱산 기슭에는 아이들이 일어나야 해가 뜨고 아이들이 잠들어야 그제야 어둠이 찾아오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지구가 돕니다.
2019. 10. 23
어제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이음이가 우리와 함께 놀러왔습니다. 이음이는 종이를 달라고 해서 스케치북을 찾아 주고, 나는 우리와 놉니다. 우리가 손으로 손수레를 가리키면, 태어나서 아기수레(유모차)보다 더 많이 탔다는, 손수레를 태워 달라는 말이 아니고, 나와 달리기 내기를 하자는 겁니다. 우리 둘만 알아듣는 손짓말입니다. 우리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는 손수레를 끌고 뒤따라갑니다. 우리는 늘 앞서가다가 잠깐 멈춰 뒤를 돌아봅니다. 내가 따라오는 걸 보고는 그제사 웃고는 소리를 지르며 내달립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숲길을 내려가 가랑잎 서너 장 도토리 몇 톨 손수레에 싣고 돌아옵니다.
이음이는 아직도 나무난간에 앉아 종이를 자르고 있습니다. 사람과 나비와 별 모양으로 종이를 오려서 종이인형극을 보여줍니다. 이음이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별과도 이야기합니다.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놀란 듯 우리가 세발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엉금엉금 계단을 기어올라 내 무릎에 앉습니다. ‘소리야, 달아나라.’ 하고 나는 우리 두 귀를 손바닥으로 막습니다. ‘어, 비행기가 지나갔을까.’ 두 귀를 열었다가 막기를 되풀이하고, 이음이는 재미있는 듯 웃습니다. 가을 바람이 차가운지 내 몸으로 막아달라고 하던 이음이도 얼른 내 품에 안깁니다. 지금 내 마음은 깃털 가벼이 하얀 구름이 떠가는 파란 가을 하늘입니다.
2019. 10. 24
울림이와 ‘쥐와 고양이’ 놀이를 합니다. 내가 고양이가 되어 쥐를 쫓아가면 얼른 계단을 딛고 나무난간으로 올라갑니다. 내가 뒤따라가려 하면 여긴 쥐구멍이라 고양이는 올라올 수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난간 둘레를 서성거리면,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며, 눈을 감고 오라고 합니다. 이는 울림이가 만든 규칙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노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웃고 소리 지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울림이가 만든 ‘사육사와 고양이’ 놀이는, 나와 이음이가 고양이가 되어 사육사를 쫓아가고, 잡힐 만하면 갑자기 사육사가 멈춰서서 주머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모이를 꺼내주고, 우리는 엎드려 모이를 주워 먹는 놀이입니다. 그러고는 사육사는 또 달아나지요. 울림이는 지금쯤 잠들어 있겠지요. 울림이 꿈속으로 들어가려면,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듯 눈을 감고 더듬더듬 찾아가면 되겠지요.
2019. 10. 31
‘할머니, 할아버지 있다.’ 아이들끼리 수런거리더니, 이윽고 이음이가 언덕을 내려다보며 ‘할머니.’ 하고 소리칩니다. 아내는 껄렁껄렁 다리를 흔들며, 보이지 않는 이음이 흉내를 냅니다. ‘이리 와 봐.’ 하고 이음이가 아내와 나를 부릅니다. 아내는 이음이가 눈부시어 쳐다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햇살이 울림이네 지붕으로 넘어오는 까닭도 있습니다. 햇살을 헤치며 울림이네 마당으로 올라갑니다. 엄마는 이음이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가 새로운 레고를 선물했나 봅니다. 이음이는 숲과 들판을 누비는, 한 쪽 바퀴가 큰 자동차를 보여주며 자랑을 쏟아 놓습니다. 뒤에 선 울림이도, 조각들을 맞추기가 꽤 까다로워 보이는, 우주선 같은 레고를 들고 한껏 자랑스러워 합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이음이는 ‘이거 좋지.’ 하며 다시 자동차 레고를 들어 보입니다. 언덕을 내려오며 아내는, 우리를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우리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2019. 11. 1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언덕을 내려옵니다.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아이들을 맞으러 얼른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오늘 학교에서 음악회가 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보러 오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울림이는 첫번째 나온다며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할아버지한테는 울림이가 말했으니, 할머니한테는 이음이가 말하면 좋겠다.’고 엄마가 얘기합니다.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 우리 음악회 해요.’ 라고 크게 소리치며 울림이가 집으로 달려갑니다. 이음이는 두 눈이 커지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합니다. ‘할아버지가 어서 가서 울림이가 입을 틀어막을게.’ 이음이를 달래고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울림이를 쫓아갑니다. 나는 잇달아 소리치는 울림이 입을 틀어막고, 낌새를 알아차린 아내는 아무말도 못 들었다며 시치미를 뗍니다. 그제야 뒤따라온 이음이가 ‘할머니, 오늘 음악회를 하니 와.’ 라고 합니다. 울림이가 어디에 서 있나 두리번거리며, 음악회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가끔은 두 눈이 젖곤 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이 부르는 ‘가을 밤’이라는 동요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오늘 아침 막 하늘에서 내려와 늘 아내와 나를 가슴 뛰게 합니다.
강당에서 퍼져 나오는, 5학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더니, 이음이가 ‘아, 어디서 들은 노래인데.’ 라고 합니다. 내 귀에도 익은 노래입니다. 뒤 운동장으로 올라가서 다시, ‘봐, 어디서 들은 노래 맞지. 내가 거짓말 안 했지.’ 라고 합니다. ‘그래, 맞아.’ 라며 앞뒤도 모른 채 나는 맞장구를 칩니다. 나는 짐짓, ‘거짓말은 어떻게 치지. 그거 되게 어려운데.’ 라고 이음이에게 물어봅니다. 그건 쉬운 거라며 이음이는 보기를 들어 말합니다. ‘하늘에 구름이 있지. 구름 위에 앉아 놀았다고 하는 거는 거짓말이야.’ 그래도 내가 어렵다고 하니까. ‘물고기 알지. 물고기가 땅에서 파닥파닥한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라며 다른 보기를 들어줍니다. 손에 구름 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 아이 하나를 그려 놓고는 ‘구름아 놀자.’고 하던 이음이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하기는, 단이가 고라니를 쫓아다닌다고 온 산과 다랑이논을 쏘다니다 오면, 내가 아이들 말로 ‘단이 옷이 다 젖었다.’고 하면, 이음이는 ‘그건 옷이 아니고, 털이 젖었다고 하는 거야.’ 라며 어른 말로 바꿔줍니다. 나는 갈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고, 아이들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갑니다.
2019. 11. 3
젊은 날,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깁니다. 하루는 뭘 팔러 다니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에 들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분이 가엾어 수세미 하나를 사 주고, 더운데 잠깐 쉬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이 집 큰아들은 늘그막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들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니 아이들이 늘 내 둘레를 맴돌았지만, 늙어서도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찾아들곤 했습니다. 예순이 가까워서도, 담임을 발표하는 날 내 이름이 불리면, 소나기 쏟아지듯 손뼉을 치며 아이들이 그리 좋아할 수가 없기는 했지만요. ‘이 거 귀엽지.’ 하며 울림이가 가리키는, 이음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팔랑개비 같기도 한, 종이 팽이 날개에 그린 그림은, 마치 ‘캄펑의 개구쟁이’ 라는 만화에 나오는 시골 아이들 같이 정겹습니다. 겁나게 귀엽다고 하니, 이음이가 더 귀여운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나는 안 된다고, 할아버지 쓰러진다고 두 눈을 가리니, 아이들은 억지로 눈을 가린 내 손을 떼어냅니다. 마치 알밤을 까먹는 다람쥐처럼, 두 손을 오무려 턱밑에 대고 입도 오물오물 이음이는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날마다 찾아오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그 할머니가 말한, 내 노을질 녘에 찾아든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9. 11. 8
‘할머니, 아직 그거 가슴에 있어요?’ 이음이가 묻습니다. 아내는 윗옷을 들추고 가슴속에 넣어둔 쪽지를 꺼내 보입니다. 순간 이음이 얼굴이 환히 피어나고, 아내는 이음이를 꼭 안아줍니다. 잇달아 우리와 울림이 볼을 쓰다듬고는 보듬어 줍니다. 엊그제 울림이 소풍 가는 날, 김밥과 함께 엄마가 받아쓴, 이음이 편지를 현관 밖에 두고 갔습니다. 몸이 아픈 아내는 이음이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에 젖어 목이 메고, 편지를 가슴속에 고이 넣어두었습니다.
‘할머니, 누워서 김밥 드세요. 그러면 또 소화가 안 되면 앉아서 먹으던가 하세요. 할머니 김밥 안에 좀 빠진 것도 있고, 김밥 그림도 색깔이 없어서 좀 다르게 했어요. 이제 끝. -이음-
(왼쪽 아래에는 ‘누워서 김밥 먹는 아내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2019. 11. 9
‘톳제비가 장난을 친 걸까. 어떻게 이게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걸까.’ 옷을 갈아입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니,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윗밭에서 양파모를 심고 있을 때, 울림이가 찾아 올라와 자랑하던 것이었어요. 내가 어릴적엔, 단추 구멍에 무명실을 끼어 빙빙 돌려서는 팽팽히 늘였다 줄였다 하면 잉잉 소리를 내며 단추가 돌아가는 노리개였습니다. 아까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를 손수레에 태워 산길을 내려갈 때 차삯을 달라니까, 울림이가 가랑잎 한 닢을 내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어준 건 기억이 납니다. 생각하면, 아이들이 우리 집 이웃으로 이사온 일도 톳제비 장난처럼 놀라운 일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신기한 것이 있으면, 달려와 맨먼저 우리에게 알려주는, 늘 가슴 뛰게 하는 아이들은 머언먼 신비한 나라에서 왔겠지요.
2019. 11. 11
엊그제는 강화에 사시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내가 집을 잠깐 비운 사이, 외할아버지가 닭장을 치우신다며 아이들이 장화를 빌리러 왔습니다. 엄마는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가서 장화 빌려주세요.’ 라고 하라며 가르쳐 주자, 이음이는 ‘우린 친구니까 그냥 빌려줘 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아내 말로는, 이음이가 광대나물 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장화를 빌려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발장 천사 인형 앞에 광대나물 꽃이 시든 채 놓여 있습니다. 저녁에는 외할아버지가 나와 아내를 집으로 부르셔서 오랜만에 술 한 잔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내 무릎으로 기어올라 아내에게 안기더니 내 품으로 건너와 폭 안깁니다. 이오덕 선생님 임길택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2019. 11. 14
웃음 가득 베문 채 몸을 흔들며 울림이가 계단을 내려옵니다. ‘울림이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 라고 물으니, 세 밤만 자면 생일이라고 합니다. 태어난 기쁨을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다녀가시고, 엊저녁에 서천에 사시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할아버지 수염을 어루만지던 우리, 엄마를 꼭 안아주던 할머니 모습이 가슴에 따뜻이 남아있습니다. 사진 속에 내가 웃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황금성 선생님이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2019. 12. 3
‘부채쉬’란 말을 아시나요. 참 오랜만에 만난 이음이가, ‘할아버지, 부채쉬 보여 줄까.’ 했을 때, 나는 금방 알아챘어요. 오줌이 마렵다고 했으니까요. 어제는 ‘할아버지, 부채쉬 하는 방법을 알려 줄까.’ 해서 ‘그래.’라고 했더니, 힘을 세게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부채쉬’는, 부챗살처럼 퍼지는 오줌’을 가리키는, 이음이가 말들어 낸 말이에요. 이음이와 울림이와 나는 가끔 나란히 언덕에 서서, 누가 오줌을 멀리 누나 내기를 하지요.
2019. 12. 4
‘이음아, 너는 할아버지와 친구지.’
‘응.’
‘할아버지와 친할버지도 친구거든. 그럼 이음이는 친할아버지와도 친구겠네.’
아무리 따져 꼬드겨도 이음이는, 친할아버지와는 친구가 아니랍니다. 엄마는 연극 연습하러 가고, 아이들은 포롱포롱 우리 집 구들방을 날아다닙니다.
2019. 12. 14
아궁이에 군불을 지핍니다. 굴뚝에서 피어올라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연기는,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이내’ 같습니다. 아이들 소리가 창문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어젯밤에도 구들방에서 늦게까지 놀다 갔습니다. 처음에는 울림이가 가져온 카드로 ‘메모리 게임’을 했습니다. 두 장의 카드를 뒤집어 같은 그림이 나오면 가져오는 기억력 놀이인데, 아이들이 훨씬 잘해, 아이들이 열 개를 맞추는 동안 나는 하나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합니다. 이어서, 울림이가 생각해낸 ‘텔레비전 놀이’를 합니다. 내가 채널을 돌리는 시늉을 하면 울림이는 전등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손전등으로 저희 얼굴을 비추며 노래도 하고 광고도 하고 연극도 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며 웃느라고 무엇 하나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합니다. 그 놀이마저 시들해지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노래를 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놀이를 합니다. 서로 먼저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울상을 합니다. 끝내 울림이가 들려주고 싶은 ‘감자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아내 흉내를 내어 뒷짐을 지고 다닙니다.
2019. 12. 19
햇빛이 비치니 창문에 난 아이들 손자국이 드러납니다. 저만치 높이이면 우리 손자국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락 계단도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내려옵니다. 곁에서 잡아주려고 하면 손을 뿌리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우리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내가 보니까,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구름 위를 걷듯 허공을 걷는 것입니다. 바닥에 풀썩 떨어져 손을 짚은 채 다시 일어납니다. 침대에서 거꾸로 흘러 내려와 쳐박히기도 하고,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높이 멀리 날아갑니다.
2019. 12. 26
이음이가 네 살 때 그린 ‘인어공주’를 아내가 수를 놓았어요. 이음이가 그린 인어공주는 눈이 참 선해 보여요. 이럴 땐 ‘착하다’보다는 ‘선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듯해요. 한자말이어서가 아니라 소리가 부드럽게 느껴지거든요. 수를 놓으면서 아내는, 이음이 마음이 되어 보았다고 해요. 살포시 웃음 띤 가느단 입술 선도 따라 그리기 어려웠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