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6
자꾸만 내 겨드랑이를 파고들더니 ‘우리’가 내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들었어요. 낮잠 잘 시간인데 울림와 이음이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니까 엉겁결에 따라온 듯해요. 이불을 덮어주고 가만히 무릎을 빼내어 베개를 베어주었어요. 하르르 꽃잎 한 장이 내려와 앉았을까.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고요한 숨결이 함박눈 내린 새벽 같아요. 한 시간 남짓 그렇게 잠들었을까. 짓궂게 울림이가 곁에 누워 끌어안고 볼을 만지니, ‘우리’가 깨어났어요. 금방 울먹이며 엄마를 찾아요. ‘엄마가 보고 싶구나.’ 두툼한 윗옷에 싸 안아 엄마에게 데려다 주었어요.
2021. 1. 19
부드러운 새의 속깃털이 날리는 듯하더니 가루눈이 뿌리고 눈연기로 하얗게 흩어져요. 소복히 쌓인 눈을 따라 아이들이 왔어요. 눈 위에 드러누웠다가 엎드려 헤엄치기도 하고, 끝내 ‘우리’는 눈을 먹었어요. 나는 부엌 창가에 기대어 그 광경을 훔쳐보고 있었어요.
2021. 1. 26
부산한 발길에 떠들썩한 목소리, 갑자기 언덕길이 환합니다. 밭에서 대나무로 엮은 낡은 꽃울타리를 뜯어내고 있는데, 울림이와 이음이가 언덕을 뛰어내려가고 있어요. 나는 짐짓 모른 체 ‘너희들 어디 가니?’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가던 걸음을 재촉하며 ‘아랫집 할아버지네.’ 하고 대답해요. 마치 남의 일처럼 ‘그렇구나.’ 하고 딴청을 부리며 하던 일을 계속하니, 이음이가 ‘할아버지는 옆집 할아버지, 텃밭 할아버지이잖아. 우린 아랫집 할아버지 집에 가.’ 하며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달려갑니다. 현관엔 아이들 신발이 나자빠져 뒹굴고 있겠지요. 아이들이 늘 눈부신 건 가슴에 빛덩이를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2021. 2. 1
아이들이 서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새해 인사하러 왔다고, 해뜨리 삼촌이 그린 그림과 함께 황금성 선생님이 보내준 사진이에요. 울림이 손에는 ‘책도 조금만 읽어라.’ 하는 할아버지 편지가 쥐어져 있네요. 울림이는 책에 폭 빠져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겐 서천 할아버지인 친할아버지와 강화도 할아버지인 외할아버지와 초롱산 할아버지인 아랫집 할아버지가 있어요.
2021. 2. 6
<어쩌구와 저쩌구가 경험하는 이상한 모험>은 다음 편에
<어쩌구와 저쩌구의 이상한 모험. 1
등장인물 : 어쩌구, 저쩌구, 달도맨(나쁨), 루로전기, 자장지, 가제영감
#1
저쩌구 : 어! 넌?
어쩌구 : 자장지. (아마 자장지를 가리키는 듯함)
#2
어쩌구와 저쩌구가 자장지에 함께 올라탔는데, 저쩌구만 타고 있고, 루로전기가 나타났어요.
울림이의 연재만화 ‘어쩌구와 저쩌구가 경험하는 이상한 모험’,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
2021. 2. 17
수북이 가루눈이 쌓이고 다시 겨울이 온 듯해요. 말긋말긋 꽃눈들은 맨몸으로 이 추위를 견디고 있겠지요. 숯으로 그린, 아이들 그림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궁이 불을 쬐고 있어요. 가운데가 물개를 그린 ‘우리’ 그림, 왼쪽 아래가 이음이 그림, 어쩌구 저쩌구를 그린 울림이 그림은 오른쪽에 있어요.
2021. 2. 20
눈밭에서 고라니처럼 소리 지르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뜰에 나온 나를 보자, 자빠질 듯 ‘우리’가 달려와, 언덕으로 이어진 마당 가장자리에 오똑 멈춰섰어요. ‘우리야!’ 하고 반갑게 소리쳐요. 내가 ‘우리’를 부를 땐 늘, 첫음절인 ‘우’를 높게 소리내지요.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우리’는 눈사람처럼 서서 아무말없이 나를 내려다봐요. 그러더니 팔을 내려 허벅지에 붙인 채 두 다리를 벌려요. 나도 따라 두 다리를 벌리고 ‘우리’ 흉내를 내자, 얼른 다리를 오무리고, 그런 채로 서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와 ‘우리’는 벌써 ‘배를 튼 사이’라 아무말 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아요. 며칠전 마당에서 놀다가 느닷없이 배를 보여달라잖아요. 내가 배를 보여주자, 우리도 웃옷을 걷어붙이고 배를 보여줬어요.
어제 그제는 아이들과 연을 날리며 놀았어요. 엊저녁 통나무 작업장에 올라가 날린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떠있는 매보다 높이 올라갔어요. 까마득히 올라갔다가는 끝내 세차게 굽이치는 바람에, 울림이 연은 얼레에 묶인 실이 풀리어 초롱산을 넘어가고, 이음이 연은 바위절벽 아래로 떨어져 높다란 나무에 걸렸지만요. 언제인가 연을 찾으러 초롱산에 올라가자고 약속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어요. 나에게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꽃이 지고 나서야 늘그막에 가슴에 피어나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꽃이에요.
2021. 2. 28
‘할아버진 손바닥에 바람을 일으켜 너희들을 쓰러뜨릴 수 있어.’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내자, 어디 해보라며 이음이가 먼저 내 앞에 떡 버티고 섭니다. 오른 손바닥을 펼친 뒤 가지껏 힘을 모아 앞으로 쫙 내뻗어 봅니다. 이음이는 꼼짝도 않습니다. 한 차례 더 해보지만, 딱 잘라 ‘봐, 안 되지.’ 하며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다음은 울림이 차례입니다. 나는 울림이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울림이만은 쓰러뜨릴 자신이 있습니다. 힘을 모으고 손을 뻗어 울림이 겨드랑이 가까이에 대자, 울림이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봤지, 너희들.’ 하며 큰소리쳐 보지만, 간지럼을 잘 타는 울림이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합니다. 다시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부챗살처럼 손을 펼쳐 파란 하늘에 매 일곱 마리를 띄우며, ‘할아버진 새들도 날게 할 수 있다.’고 하자, 이음이는 언제 보았는지 ‘아니잖아. 먼저 이렇게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고(하늘에 매가 나는 것을 보고) 나서 손을 들었잖아.’ 라며 통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엊그제는 공을 차다가 아이들에게 토네이도슛을 선보이겠다고 했습니다. 가끔 공이 휘는 바나나킥과 발로 마당을 차 흙바람을 일으켜 회오리슛을 자랑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무 빨라 축구공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어디 해 봐.’ 하는 아이들 앞에서, 공을 세워 놓은 채 힘껏 헛발질을 하곤, 앞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봐, 공이 안 보이잖아.’ 라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내 발 밑에 그대로 멈춰있는 공만 쳐다보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곤 나 혼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할아버지 얼굴 빨개지는 거 봐.’ 멀뚱멀뚱 아이들이 쳐다봅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와 놀아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집에서 쉬었다가 학교로 돌아간 우인기가 틀어준 노래를 듣습니다. 마룻바닥에 무겁게 갈아앉아 있던 공기가 날아올라 새털처럼 가볍게 떠다닙니다. 오늘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나뭇가지처럼 출렁입니다.
2021. 3. 1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부엌 창문 밖, 텃밭으로 오르는 언덕 오른쪽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집 임자가 살려고 손수 지은, 다락이 있는 이층 통나무집입니다. 오랫동안 세를 놓고 보살피지 않아 이제는 낡고 칙칙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집 왼쪽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물이 올라 연둣빛 바람이 일렁이는 듯합니다. 빛 바랜 거무스름한 통나무집이 산뜻한 연둣빛에 묻힐 듯한데, 버드나무 실가지가 한결같이 집 쪽으로 쏠리고, 집 전체가 부옇게 그렁그렁 눈물 속에 부풀어오르는 까닭은 그 곳에 울림이 이음이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 3. 3
‘얘들아, 어서 집에 가야지.’ 날이 어둑해져서 지나가듯 말을 꺼냈는데, 전혀 뜻밖에 ‘아직 안 깜깜하잖아.’ 하고 ‘우리’가 대꾸를 해요. 그저 아무말 없이 형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던 ‘우리’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에요. 그 말이 하도 귀여워, 손을 펴 ‘우리’ 눈을 가리고, 윗옷을 들춰 ‘우리’ 얼굴을 덮어씌워 어둡게 해보지만, ‘우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자꾸 안 깜깜하다고 해요. 점심 때가 되어,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하면, 밥 먹으러 가면 다시 못 논다며, 안 가려고 떼를 쓰던 울림이 이음이 생각이 나요. 아이들은 놀아도 놀아도 시간이 모자른 듯해요.
요즘 ‘우리’와는 하키 놀이 비슷한 걸 하며 놀아요. ‘우리’가 처음 시작한 놀이인데, 마당비로 작은 축구공을 쳐서 몰고다니는 거예요. 공이 굴러가면 그저 웃으며 따라가고, 아직 아무런 규칙이 없어요. 그러다가 마당을 벗어나 공이 비탈길을 내려가면 큰소리로 웃으며 데굴데굴 굴러가듯 따라가 주워오곤 하지요.
어젠 새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아내와 함께 배웅하러 나갔어요. ‘너희들, 못 놀아서 어떡하지?’ 하니,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갔다와서 마음껏 놀면 되지.’ 라며 환하게 소리쳐요.
2021. 3. 4
큰일났어요. ‘우리’가 나보고 밀차(손수레)를 사달라고 해요. ‘반들’이네 집에도 밀차가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고요. ‘반들’이는 ‘우리’ 친구예요. 그래서 밀차를 어디에다 쓰려느냐고 물으니까, 작은 축구공을 넣어둔대요. 빚을 내서라도 ‘우리’에게 노란 밀차 한 대를 뽑아줘야 하겠어요.
하나 더 일러바칠 게 있어요. 글쎄 어제 ‘우리’가 ‘이음이 바보!’라고 놀렸대요. 사연은 이래요. 나하고 ‘우리’는 마당에서 작은 축구공으로 하키 놀이를 하고, 어제따라 책벌레인 울림이는 ‘why’라는 책을 들고 와서는 폭 빠져있었어요. 이음이는 혼자 심심해서 나보고 축구를 하자더니, 데구루루 마루 밑으로 들어간 작은 축구공을 따라 들어가 공을 움켜쥔 채 꼼짝도 않고 있었거든요. 다행스럽게, 몇 번이나 ‘우리’가 ‘바보’라고 소리쳐도, ‘이음’이는 아무 대거리도 하지 않았어요.
2021. 3. 5
벌써 열흘이 지났나 봐요. 연이 잘 날지 않자, 울림이가 ‘아빠가 오면 잘 날 텐데...’ 라고 해요. ‘그럴 거야, 아빠는 무엇이든지 잘하니까.’ 라고 내가 말하자, 울림이는 ‘아빠(이름)는 바람이니까.’ 하며 배시시 웃어요. 괜히 내 말이 싱겁게 돼 버렸어요. ‘아빠가 화내면?’ 엊저녁 아궁이 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울림이가 꺼낸 말이에요. 그 때 마침 아이들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나는 또 잊고, 아이들 아빠가 화내는 모습을 잠깐 떠올려 보았는데, ‘토네이도’ 라며, 울림이와 이음이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아빠 이름을 가지고 놀아요. 아빠가 오면, 이음이도 울림이 형아도 아궁이 불도 할아버지네 집도 다 집어삼켜버린다며.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우리’가 ‘삼촌도(집어삼켜요.)!’ 라고 해요. 내가 ‘삼촌?’ 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도!’ 라고 하며, 대화에 끼어들어요. 아이들 아빠가 화내는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2021. 3. 7
오늘은 아이들과 ‘스무고개’가 아니라, ‘무한대고개’ 수수께끼 놀이를 했어요.
첫째 고개 : 우리 집에 있어?
울림이 : 없어.
둘째 고개 : 울림이 집에는 있는 거니?
울림이 : 없어.
셋째 고개 : 이 세상에 있기는 한 거니?
울림이 : 없어.
...
답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울림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진흙 덩어리’였어요.
울림이 :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릴 때 엄마 아빠와 친구였어요. (‘엄마 아빠를 닮아 할아버지도 잔소리가 많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나 : 왜?
울림이 :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요.
복수초 곁에 또 한 송이가 흙을 들추고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었어요. 흙을 들추었다기보다는, 복수초의 속삭임을 듣고 땅이 문을 열어준 것이겠지요.
2021. 3. 11
요즘은 ‘우리’에게도 짓궂게 장난을 쳐요. 마당에서 놀다가 ‘우리’가 넘어지면, 나는 부리나케 ‘이~오 이~오’ 구급차 소리를 내며 달려가지요. ‘우리’는 얼른 일어나며 ‘괜찮아요.’ 라고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하겠는데.’ 하며 놀려요. 그러면 아파서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울음을 삼키며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되풀이해요. ‘우리’는 병원에 가고,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하거든요. 내가 자꾸 놀려서인지, 어제는 내 뒤를 따라 오다가 넘어졌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며 혼자서 ‘괜찮아요.’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뒤돌아보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올해 네 살인데도, 몇 살이냐고 물으면 ‘세 살’이라고 우기는 ‘우리’. 네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가야 된다고 했는지, 엄마 곁에 꼭 붙어있고 싶어서 해가 지나도 ‘우리’는 영영 나이를 먹지 않아요.
2021. 3. 14
‘어디야? 어디야?’ 하고 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더니, ‘놀러갈래요.’ 하고는 전화가 끊깁니다. ‘우리’ 목소리입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잠바를 두 겹이나 껴입고, 엄마가 다듬어서 보냈을 머리핀 두 개를 꽂고 왔습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방안에서 지우 삼촌과 놀고,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해서 ‘우리’와 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초롱산 아래 통나무를 옮기는 커다란 크레인이 보입니다. 저기 가 볼까 하니, ‘우리’가 선뜻 따라나섭니다. 두발자전거를 끌고 끙끙대며 비탈길을 올라가니, 자동차 뒤꽁무니가 보입니다. ‘우찬이 아빠 차다.’(처음엔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 ‘우상’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제대로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어요.) 우찬이는 이음이 친구인데, 우찬이 아빠 차라는 걸 ‘우리’는 금방 알아챕니다.
며칠 전부터 우찬이네 집을 짓는다고 통나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름이 어른 손으로 두 뼘이나 되는 ‘더글라스 퍼’라는 아름드리나무를 기계톱으로 켜는 일입니다. 귀를 후벼파는 시끄러운 기계톱 소리, 눈보라처럼 날리는 톱밥. ‘우리’는 내 다리에 바싹 붙은 채, 오랫동안 뚫어지게 지켜보고 서있습니다. 문득 ‘캄펑의 개구쟁이’에 나오는 만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고무나무 숲에서 윙윙대는, 주석을 채취하는 준설기에서 나는 소리를 듣던, 만화 속 주인공. 어느새 나도 ‘라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우리’와 함께 서있습니다.
2021. 3. 15
아이들 말처럼 나는 이제 ‘늙은이’이어서 아이들만큼 높이 뛰거나 빨리 달리지 못해요. 놀이기구인 ‘방방’ 위에서 놀 때도,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웠거나 엎드려 있지요. 아이들은 내 둘레를 방방 뛰어다니다가 마치 나무 위를 오르듯 내 등을 타거나 내 목을 두 손으로 휘감고 놀지요. 링 위에서 레슬링을 할 때는, 울림이 혼자 편을 먹고, 나는 이음이와 ‘우리’와 한 편을 먹어요. 먼저 이음이가 나섰다가 힘에 부쳐 ‘터치’라 하며 내 손바닥을 치면 내가 나가 싸우고, 내가 힘들면 ‘우리’와 터치를 하지요. 고라니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울림이는 이제 아무도 상대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거나 두발자전거로 쏜살같이 내달릴 때도, 나는 길 한쪽에 비켜서서 서로 부딪치거나 비탈로 떨어지지 않도록 손짓을 하거나 크게 소리치는 일밖에 하는 일이 없지요.
울림이 이음이는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도 무엇이든지 혼자 힘으로 해 보겠다고 우겼어요. 톱질, 망치질, 도끼질,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까지도 끝내 저희들 손으로 해 보아야 직성이 풀려요. 그럴 때 나는 곁에서 조바심 치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형들을 닮았어요. 엊그제는 손가락에 붙인 밴드가 떨어져 새 것으로 붙여주겠다고 하니, 내 손을 밀치며 제 손으로 덕지덕지 감아놓더니 또 그 위에 약을 발라야 한다잖아요. 이제 ‘우리’는 혼자 외발손수레에 올라타기도 해요. 그러던 울림이가 이제 제 힘으로 되지 않을 땐 내게 부탁을 해요. ‘나무총’을 만들며 나무를 빗금으로 자르는 건 힘드니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더니, 어제는 나무 모서리에 못을 박아 달라고 가져왔어요. 남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만큼 울림이 마음이 성큼 커버렸어요. 땅에서 발을 뗀 채 바람처럼 내달리다가도 자전거 핸들이 삐뚤어질 땐 ‘할아버지’ 소리지르며 고쳐달라고 내게 뛰어오는 ‘우리’는 봄하늘이 안겨 오는 듯해요.
2021. 3. 16
집에 뛰어가더니, 울림이가 로봇자동차를 가지고 왔어요. 무선조종기로 전후좌우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차 앞에는 두 손이 달려 있어 물건을 집을 수도 있어요. 바퀴는 무한궤도(탱크 바퀴)로 가벼운 장애물도 뚫고 지나갈 수 있어요. 마당가에 있는 지하수 펌프 위 평평한 함석에 놓고 한 번 멋지게 선을 보이더니,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연결한 선을 빼어버려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음이와 ‘우리’가 어느만큼 거리를 둔 채 손으로 만지지도 않고 ‘나도 한 번 해 보겠다.’고 떼를 쓰지 않는거예요. 울림이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위엄까지 느껴졌어요. 그 위엄은, 이런 복잡한 기계를 조립할 수 있다는 울림이만의 자부심에서 오는 것 같았어요. 곁에서 보다 못해 ‘이음이와 우리도 해 보고 싶을 거야.’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요. 울림이는 뻐기듯 ‘집에 들어가서 해 줄 게.’ 하며,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안방 침대 위에서 먼저 ‘우리’에게, 나중에 이음이에게 어떻게 조종하는지 찬찬히 설명해주고 한 번씩 움직여 보게 해주었어요. 가끔 느끼지만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요. 그 질서는 아무리 동생 것이라도 남의 것을 만질 땐 꼭 허락을 받는 거예요.
요즘은 ‘우리’도 만화영화에 맛을 들여, 우리집에 오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만화영화(보고 싶어요.)’ 라고 해요. 엄마는 못 보게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들이닥치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요. 만화영화를 보다가 초인종이 울리면 얼른 텔레비전을 끄고 시치미를 뚝 떼지만, 집에 가서 저희들이 먼저 털어놓거나, ‘우리’가 말을 배우고 난 뒤부터는 ‘형아들 뭐했어?’ 하고 엄마가 물어보면 ‘만화’라고 일러바치지요. 안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뒤로부터는, 허구한 날 텔레비전을 켜놓고 멍하니 죽치고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보면 마음이 사나워지는 것 같아 아예 텔레비전을 없애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울림이네처럼 빔프로젝트를 사서 가끔 영화를 보자는 것이었어요. 먼저 아이들에게 번지르르하게 자랑을 늘어놓았어요. 할아버지네는 너희 집보다 엄청 좋은 빔프로젝트를 사서 밤낮으로 틀어놓을 거라고.
아이들이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돈이 없지 않느냐고. 우물쭈물 내가 대답했지요. 초롱산에서 산삼을 캐거나, (지금도 어디에서 숨어서 자라고 있을) 댕구알버섯을 팔아서 사겠다고. 그러자 울림이가 조용히 말했어요. ‘그냥 싼 거 사.’ 라고 말이에요. 한껏 부풀려 놓았던 풍선이, 울림이가 툭 던진 그 한 마디로 탁 터져버렸어요. 엊그제는 아내와 빔프로젝트 사는 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아내는 너무 비싸니까 좀더 생각해보자 하고, 나는 기왕 사는 바에 제대로 된 것을 마련하자고 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울림이가 ‘질투 나서 그러는 거지.’ 라고 하잖아요. 울림이에게 또 한 방 얻어맞아 지금 나는 그로기(실신) 상태예요. 글쎄 내가 울림이네 집에 있는 걸 보고 시샘이 나서 덩달아 빔프로젝터를 산다는 거예요.
2021. 3. 17
울림 여자친구 이름을 아세요? 예, 맞아요. ‘안’이에요. 울림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반에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울림이는 ‘아니야.’라고 했어요. ‘안’이야라고? 그럼 여자친구 이름이 ‘안’이겠구나 하니, 아니라고 해서, 그래 ‘안’이라고. 울림이는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채 짜증을 내듯이 아니라잖아 라고 되풀이했어요. 가만히 물러설 내가 아니지요. 그래 ‘안’이라잖아. 울림이는 죽을상이었어요. 그렇게 되어 울림이 여자친구는 이 세상에 없는 ‘안’이 되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안’은 잘 있느냐고 짓궂게 물어봤지요. 이제 울림이는 삼학년으로 올라가고, 울림이와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는데, 엊그제 이음이와 놀다가 무슨 말 끝에 이음이가 속삭이듯 ‘아니(‘안’이)’는 울림이형 여자친구 이름이잖아 라고 하며 씩 웃어요. 아침에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눈물이 나도록 크게 웃었어요.
날이 끄무레해서인지 엊그제 저녁에는 아궁이에 불이 잘 들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앉기에는 비좁은 아궁이 앞에서 이음이가 나무 부스러기를 집어넣고 몽당비로 불을 부치고 하더니 죽어가던 불씨가 살아났어요. 이음이 너, 인디언 이름으로 ‘불을 살리는 자(사람)’라고 불러야 하겠구나 라고 했어요. 울림이가 오자, 이제부터 이음이 이름을 ‘불을 살리는 자’라고 부를 거라며, 이음이 이름은 오래 전에 까먹었다고 하니, 방금 할아버지가 이음이라고 했잖아 하며 울림이가 따져요. 나는 또 장난스럽게 하여튼 다시는 이음이란 이름은 안 부를 거라며 이음이라는 이름을 꺼냈어요. 비탈길에서 킥보드를 탈 때도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나는 더 크게 ‘불을 살리는 자’라고 외쳤어요. 울림이가 그 이름은 너무 길어 싫다고 해서 ‘불을 살리는 자, 불을 살리는 사람’을 줄여 ‘불사’라고 하니, 저희들끼리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가 좋니, ‘불사’가 좋니? 하다가, 정작 어둑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이음이가 나보고 ‘할아버지, 나는 이음이라고 불러.’ 라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어요.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지어 준 ‘이음’이란 이름이 좋은가 봐요.
2021. 3. 18
‘우리’가 도시락 가방을 메고 우리 집에 왔어요. 엄마가 아침 먹고 할아버지 집에 놀러가라니까 하도 섧게 울어서 할 수 없이 도시락을 싸보냈다고 해요. 그림책을 읽으며 빵과 햄과 딸기도 먹고 ‘붕놀이(장난감 자동차 놀이)’도 하다가 마당으로 나왔어요. 햇빛이 비치니 ‘우리’가 ‘아, 따뜻하다!’ 라고 해요. 자전거를 타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한 발을 핸들 위로 들어올리는데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졌어요. ‘다시 해 볼 까.’ 하고 ‘우리’ 오른발을 잡아 자전거 손잡이 위로 올려줘도 비틀거리며 다시 넘어져요. ‘아빠는 그렇게 탔는데.’ 라고 하니까, ‘응, 아빠도 그렇게 탔어.’ 라고 하더니, ‘그 건 안 돼.’ 하며 그만두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아빠는, ‘캄펑의 개구쟁이’라는 만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빠를 가리키는 거예요.
며칠전 ‘우리’와 함께 ‘캄펑의 개구쟁이’를 읽었는데, 만화 속에서 아빠가 두 다리를 핸들 위로 올리고 있는 모습(사진)이 떠올라 ‘우리’가 따라한 거예요. 갑자기 생각난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그 장면을 마음에 꼭 새겨두었을지 몰라요. 마늘밭에서 걷어낸 짚을 길가에 까는 것을 도와주다가, ‘할아버지 터널 봐.’ 라고 하더니,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내 목소리에 힘입어,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지나는 10m 남짓한 긴 시멘트 관을 아래에서 위로 기어올라왔어요. 나는 윗구멍에 얼굴을 들이밀고 잇달아 소리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아찔한 모험은 울림이 이음이도 여태껏 한 번도 도전하지 못한 거예요.
2021. 3. 19
학교에 갔다오자마자 가방을 멘 채 우리집으로 달려와 ‘연못놀이’를 하고 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호미를 가져다가 수국나무 아래에다 구덩이를 파고 ‘우리’는 조그만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와 퍼붓는 거예요. ‘야, 할아버지 밤에 가다가 연못이 빠지겠다.’ 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이음이 등에 꼭 붙어있는 어린이집 가방에는, 이음이가 삐뚤빼뚤 글씨를 쓴 동그란 이름표가 매달려 있어요. ‘ㅣㅇ음황’, ‘이’는 거꾸로 돌아앉아 ‘음’을 바라보고 있고’, ‘황’은 얼마나 크게 썼는지 ‘이음’을 끌어안고도 남아요.
뜰에는 이제막 무스까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어요. ‘얘들아, 이 꽃 이름이 뭐지?’ 울림이가 먼저 달려왔어요. 쭈그려 앉아 꽃을 보더니, ‘포도알꽃’이라고 하며, 이음이 도감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우겨요. 그러고 보니 보랏빛 작은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포도송이 같아요. 이음이는 알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귀에 담아 두고 있거든요. 입을 오물오물하더니 ‘미시까리!’ 라고 소리쳐요. 나는 얼른 이음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워담아, ‘봐, 이음이가 무스까리 라고 했잖아.’ 라며 ‘미시까리’를 무스까리라고 고쳐 말했어요. 울림이는 이음이가 ‘미시까리’라고 말했다고 우겨대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지. 저렇게 빼뚜름히 서서 말을 하면, 말이 입에서 나오다가 미끄러져서 무스까리가 미시까리가 될 수 있어.’ 라고 덩달아 우겨요. 그러면 ‘미숫가루’도 미끄러진 것이냐며, 울림이가 기가 찬 듯 웃으며 대들어요.
마침 아이들 아빠 차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어요. ‘야! 아빠다.’ 하더니 이음이가 뭐라는지 알아요. 아빠가 집에 온 건 우리가 한 시간 더 놀 수 있다는 뜻이라며, 말도 안 되는 뜻을 갖다 붙여요. 그러면서 이음이는 도끼질을 시작하고, 울림이는 대나무를 쪼개고, ‘우리’는 벌써 두 벌째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갔어요.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소리친 것도 꽤 오래됐어요. 아마 하룻밤이 지난 지금 아침에도 밖에 나가면 밤새 집에 가지 않고 아이들이 뛰놀고 있을 거예요.
2021. 3. 25
집에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아이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울림이, 이음이, ‘우리’ 차례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음이는 집에 갈게 하면서 장난스레 우리 집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고, 아쉬운 듯 벽돌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그제서야 일어섭니다. ‘우리’는 두발자전거를 끌고, 나 보고는 작은 축구공을 들고 오라고 해서, 나는 축구공을 볼모로 잡혀 따라갑니다. 집에 올라서자 ‘우리’는 그예 방방을 타고 가라며 나를 붙잡습니다. 빙글빙글 뛰어다니다가 엉금엉금 기어다니다가 그물 위에 드러눕습니다. 동쪽 하늘에 활 모양의 현(弦)을 엎어 놓은 것 같은 하현달이 떠있습니다. ‘아! 달이 떴네.’ 하니, ‘우리’가 ‘나무가 떴네.’ 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파란 하늘연못에 나무도 떠있습니다.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일어서면, ‘우리’가 밀어뜨기를 되풀이합니다. 창문을 열고 ‘우리’ 밥 먹어어야지 하고 소리치는 엄마에게, ‘우리’가 나를 안 보내줘요 라고 일러바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마당에 놓인 지붕 달린 자전거를 타고는, 이건 뭐고 이건 뭐고 이건 기름 넣는 거고 하며 고 조그만 입으로 재잘거리며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손으로 배를 가리키며 ‘할아버지도 기름 넣어야 해.’ 하니까 ‘아니야, 밥이야.’ 하더니, 그제사 나를 풀어주며 ‘안뇽!’ 이라고 합니다.
2021. 3. 26
‘우리’가 ‘자전거’라고 소리낼 때,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꽈리를 문 듯 입안 가득 몽글몽글 공기방울이 피어나, 마치 영화 속 부시맨이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렸어요. 아! 그 소리가 ‘자전거’를 뜻하는구나 하고 알았을 때도, 따라할 수도 없고, 새소리처럼 받아적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다 엊저녁에서야 제대로 알아들었어요. ‘우리’는 ‘자전거’를 ‘장겅거’라고 소리내요. 여린입천장소리인 ‘ㅇ’소리와 ‘ㄱ’ 소리가 네 차례나 이어지니, 입안 가득 동그라미를 물고 있는 듯 들린 거지요. 이제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해요. 어제는 괴물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괴물이 나타나서 돌도 던지고, 나무도 던지고, 할아버지 집도 던져서 괴물이 죽었는데, 할아버지 집 속에는 할아버지도 들어 있었다며 혼자 숨넘어가듯 크게 웃어요. 또 괴물을 만나 ‘메롱!’ 이라고 해서 괴물이 죽었는데, 내가 ‘괴물이 약올라서 죽었겠다.’ 라고 하니, 그 말은 무슨 뜻인지 몰라, 그건 아니라고 해요. 어제는 ‘어흥!’ 하며 내가 괴물이 되어, 혼자 집에 놀러온 ‘우리’와 온종일 ‘괴물놀이’를 했어요. ‘우리’가 신이 날 때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고 자전거를 달려요. 그러다가 가끔 풀숲으로 들어가기도 하지요. ‘우리’는 늘 파아란 하늘에 살고 있어요.
2021. 3. 31
나무를 하러간 사이에 벌써 두 차례나 ‘우리’한테서 전화가 와 있어요. 전화를 거니 ‘우리’가 받아요. 아침이면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놀고 싶어.’ 라고 하더니, 오늘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싶다고 해요. 부엌 창으로 내다보니, ‘우리’는 보이지 않고 현관 문이 소리 없이 열려요. 서둘러 나가 어서 오라고 맞이하니, 달려와 우리 식구들 품에 폭 안겨요. ‘우리’ 등에 매달려 온 가방에는, 장난감 자동차와 엄마가 싸서 보낸 도시락이 들어 있어요. 참(간식)으로 먹으라고 넣은 꿀을 섞은 옥수수 알갱이에요. 사진은, 내 신발 옆에 벗어 놓은 ‘우리’ 신발이에요. 이렇게 ‘우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2021. 4. 3
울림이 이음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에요. 엄마는 차에서 내리더니 뒤로 돌아가 뒷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를 번쩍 들어 내려요. 엄마가 텃밭 앞에 쭈그려 앉아요. 엄마 따라 ‘우리’도 엄마 곁에 쭈그려 앉아요. 때를 맞춰 지붕 너머에서 아침 햇살이 건너오고, 텃밭에는 이제막 새순들이 흙을 들추고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요. 엄마와 ‘우리’가 쪼르라니 앉아 있는 뒤쪽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듯 부옇게 흐려요. 요즘 내 가슴에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2021. 4. 6
저녁나절 마른 대나무를 쪼개 불쏘시개를 만드는데 ‘우리’가 왔어요. ‘모자 어딨어?’ 하고 묻자, 순간 ‘우리’가 어리둥절해 하는 듯했어요. 아침에 엄마를 뒤세우고, 살랑살랑 밝게 빛나는 녹둣빛 모자를 쓰고 ‘우리’가 걸어왔거든요. 모자를 가지고 한나절은 놀았어요. 눈이 안 보이게 푹 눌러 쓰고 자전거를 달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눌러 돼지코 흉내도 내고, 나무 꼬챙이에게도 모자를 씌워 주고, 내 모자 위에 ‘우리’ 모자를 덧씌우며 까르르 웃고, 그 모자를 쓰고 내가 만든 으아리 꽃울타리 밑을 ‘터널’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줄도 몰라요. ‘우리’에게는 자꾸자꾸 시간 가는 대로 이 세상 모든 게 낯설고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어른들은 지나간 시간에 얽매여 시큼털털한 것들을 곱씹고 사는데, ‘우리’는 나뭇가지에서 갓 따낸 싱그러운 ‘야생사과’ 한입 햇살 가득 베물고 있어요.
2021. 4. 7
엊그젠 이음이가 와서는 ‘할아버지 집에 오랜만에 왔지.’ 하길래, 얼떨결에 나도 ‘아, 그래! 그 동안 너희들 어디 먼 데 갔다 왔구나.’ 하며 장단을 맞춰 보지만 어딘가 어설프게만 느껴졌어요. 그러고 보니, 토요일 낮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아침엔 거미줄 같은 가랑비 어른거리고 하루종일 날씨가 궂었던 일요일 빼고 오늘(월요일) 왔으니 겨우 하루 우리 집에 오지 않은 거예요. 나는 겨우 ‘하루’라고 말하지만, 이음이게는 어쩌면 천 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지요. 이음이가 오랜만에 왔다고 말할 때, 나도 ‘할아버지도 이음이가 보고 싶어 그 새 폭삭 늙어버렸다.’고 하며 모자를 벗어 허옇게 센 머리를 보였주었으면 좋았으련만은, 이음이와 나는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듯해요. 하긴 온종일 부엌 창문으로 아이들 집만 바라보고 있으면, 보다못해 지우가 ‘아버지, 이젠 그만 쳐다봐요.’ 라며 안스러워 하니까요.
땔나무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쪼르르 달려와서 김밥 하나를 쥐어주고 갑니다. 다시 쪼르르 집으로 달려가더니 또 김밥 하나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잘 나눠 줍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젤리사탕 같은 것도 먼저 제 입에 하나 넣고 나에게도 하나 줍니다. 오늘은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마당에 놓인 긴 탁자 밑을 보더니, 호수 같다고 합니다. 무리진 토끼풀이 호수 물 같고, 띄엄띄엄 피어 있는 봄까치꽃이 연꽃 같아 참 예쁘다고 합니다. 그 너머에는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이 자갈 사이에 피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나비가 수선화꽃을 스치며 날개가 노란빛으로 물들었는지, 노랑나비가 날아가며 수선화 꽃잎을 노랗게 물들였는지 알 수 없는 맑게 갠 봄날입니다.
2021. 4. 8
처음에는 이음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할아버지, 꽃 모양을 보고 동쪽인지 남쪽인지 알 수 있는 나무 이름이 뭐지?’ 하고 물어볼 때였어요. 한참만에 생각이 떠올라 ‘아, 참나무. 참나무 가운데 단단한 상수리나무.’ 라고 대답했어요. 벌써 서너 달이 훌쩍 넘은 일이에요. 등산길을 내느라 벌목해 놓은 상수리나무 가지를 주워 와 톱으로 베고 있는데 아이들이 왔어요. 이렇게 촘촘한 곳은 겨울에 자라고, 성긴 곳은 여름에 자라났으며,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나이테를 보고 남쪽 북쪽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이테를 둘러싼 짙은 무늬가 마치 꽃잎인 듯 예뻤는데, 이음이는 제 마음속 나이테에 그 고운 꽃무늬를 깊게 새겨두었던 거예요. 요즘 울림이는 말수도 적어지고 건들건들 겉도는 것 같아, 어제는 ‘너, 사춘기지?’ 하니까, 아직 초등학교 삼학년이라서 ‘삼춘기’라며 제법 말을 가지고 놀아요. 언제가는 울림이 저는 부천에서 태어나서 ‘부처님(부천님)’이라며,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흉내를 내기도 하더니, 지금 그런 나이인가 봐요.
2021. 4. 9
‘우리’가 구들방에 들어가더니 책 한 권을 들고 와서는, 이 책 엄마 집에도 있다고 해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면 아랫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아이들 생일 때 엄마가 저희에게 선물한 거예요. ‘아, 그렇구나!’ 글씨도 모르는 ‘우리’가 저 나름대로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 같은 것을 보며 익혀 두었나 봐요. 오늘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울림이 자전거를 끌고 마을 저 아래까지 놀러갔어요. 논을 흙으로 메워 비닐하우스를 지은 터에 마사 흙이 내 키만큼 쌓여 있었어요. 미끄러지듯 올라가 내려오기를 수차례, ‘우리’와 나는 구름비행길 타고 날아가 몽골 고비에 서 있는 듯했어요. 마사 흙더미 아래 노랗게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자, ‘우리’가 ‘민들레꽃’이라고 또렷이 말해요. 누가 이름을 알려줬냐고 물어보니 그냥 알았대요. ‘민들레꽃이 나를 민들레라고 불러달라고 했구나.’ 하니, ‘응’이라고 대답해요. 오지 않으려는 ‘우리’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오며, 애기똥풀 꽃가지도 꺾어 보이고, ‘할아버지, 메롱!’ ‘우리, 메롱!’ 혀를 내밀며 놀았어요.
2021. 4. 10
‘우리’가 밀차(외발 손수레)를 몰고 다니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기기로 했어요. 곁에서 울림이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내 보내려고 그러냐고 물어요. 하긴 돌이 지나면서 밀차를 타고 다니고, 세 살부터는 손수 몰고 다녔으니까 그럴 만도 하네요. ‘우리’가 ‘빨간불이에요.’ 묻는 것은 파란불이어야 출발한다는 뜻이에요. 사진을 찍으려 하니, 운전 솜씨가 평소보다 영 서툴러요. 오늘도 ‘우리’가 저희 집으로 밀차를 몰고 갔어요. 밀차는 ‘우리’ 곁에서 하룻밤 행복하게 보낼 거예요.
2021. 4. 23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마을길을 내려갔습니다. 비탈이 가파른 곳은 발바닥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가고, 기울기가 느슨한 곳은 발을 땅에서 뗀 채 바람을 가르며 달려갑니다. 작은 다리를 지나 마을회관 쪽으로 가는데, 빈 밭에 쌓여 있는 흙무더기를 보자, 그리로 가보자고 하여 발길을 돌립니다. 걸어서도 올라가고 자전거를 끌고도 올라가선 미끄러지듯 내려옵니다. 그러다 자전거 오른쪽 바퀴가 빠졌습니다. 손으로 나사를 조여 보지만 다시 빠져, ‘우리’ 자전거는 내가 끌고간 울림이 자전거에 싣고, ‘우리’는 빠진 바퀴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도랑물 소리를 좋아합니다. 물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물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차가 지나가면 얼른 달려와 내 뒤에 섭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내 등뒤에 숨습니다. ‘아빠 차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가다가 ‘우리’를 보고 차를 멈춥니다. ‘아빠 차 타고 갈까?’ ‘우리’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럼 이따 만나.’ 하곤 아빠 차가 먼저 올라갑니다. ‘이따 만나.’ ‘이따 만나.’ ‘이따 만나.’ 아빠가 떠난 뒤, ‘우리’는 혼자서 높게 낮게 말의 가락을 바꿔가며, 아빠가 다정스레 건네던 말을 세 차례나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놀러왔어요. 가방 속에 넣어온 그림책을 꺼내 로봇자동차가 그려진 스티커 붙이는 놀이를 하다가, 내 핸드폰을 잠깐 달라고 해요.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이것저것을 누르며 ‘이 건 뭐야?’ ‘이 건 뭐야?’ 꼬치꼬치 캐묻더니, 사진을 눌러서 펼쳐 봐요 한 장 한 장 넘기더니, 지난번에 만화영화를 보며 먹던 과자 사진이 나오자 그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해요. 과자를 찾으러 다락에 올라갔는데, 마침 엄마가 ‘우리’를 데리러 왔어요. 엄마는 바깥에서 점심 약속이 있나 봐요. ‘우리’가 안 가려고 해요. 점심은 할아버지 집에서 먹으면 된대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고 해도 안 간대요. 엄마는 밖에 나가면 늦어질 텐데 걱정이라고 해요. 내가 나서서, 올 때 할아버지 아이스크림도 사 가지고 오라고 하니 그제야 엄마를 따라나서요. ‘우리’는 손가락 두 개를 펴더니 ‘두 개.’ 하더니,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요. 하나, 둘, (셋)까지 셀 줄 아는 ‘우리’에게 ‘다섯’은 엄청 많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엔 ‘하나’, ‘둘’, ‘(셋)’, 그리고 ‘많다’이니까요.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돌아올 땐, 할아버지 집에 먼저 들르자고 엄마한테 약속을 받아내더니, 차에 타고는 할아버지는 무슨 아이스크림이 좋은지 물어 봐요. 저녁 무렵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왔어요. 엄마가 깜빡 잊고 집으로 올라가려다, ‘우리’가 말을 해서 차를 돌려 할아버지 집으로 먼저 왔다고 해요. 나는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요. ‘우리’가 손에 쥐어준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먹고 있어요.
2021. 4. 24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나는 결코 그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를 왜 셋이나 낳았지.’ 하고요. 사실은 이래요. 그 날 ‘우리’는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보채고, 이음이는 나무 계단 위 내 곁에 앉아 동그란 나무 조각을 유리처럼 맨들맨들하게 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말했지요. ‘할아버지가 셋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우리와, 하나는 이음이와, 하나는 울림이와 놀아주게.’ 그러자 이음이가 ‘아이를 왜 셋이나 낳았지.’ 하고 먼저 말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보챌 때면 이음이 말이 재미있어 따라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엄마한테 가서는 할아버지가 그 말을 했다고 일러바치고, 엄마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장난이라고 말했다나요. ‘이실직고’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들 셋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울림이는 내 머리를, 이음이와 ‘우리’는 내 두 발을 잡아 들어올려 날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위를 떠다니게 하니까요. 출렁이는 방방 위에 누워 있을 때처럼요.
2021. 4. 25
오늘 하루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아침나절엔 아이들이 아빠와 방방을 뛰며 노는 모습을 한참동안 흐뭇이 지켜보았는데.
저물녘에도 방방을 뛰며 노는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자글자글하고, 밥 먹으라는 엄마 목소리도 스쳐갔는데.
금방이라도 금방이라도 ‘우리’가 저 언덕을 내려오면 가슴이 쿵쾅거리며 무너질 것만 같아, 지그시 손바닥으로 가슴을 누르고는 비껴서서 저녁 하늘을 본다.
잠 잘 때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우리’ 목소리가 자꾸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일하고 나서 놀자고 하면 ‘그래도, 그래도.’ 하며 달리기 시합을 먼저 하자고 하던.
2021. 5. 4
‘우리’가 가지고 노는 컵에는 영문자로 ‘나는 플라스틱이 아니에요’ 라고 적혀 있어요. 뒤쪽에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었다고 한글로 풀어놓았는데,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었다고 해요. 방방(트램펄린)에 올라와서는 컵에 담아온 자갈을 쏟아 버리더니, 콧등과 눈에, 입가에 컵 주둥이를 대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여요. 그러더니 바닥에 휙 던지고는 컵도 방방을 태워주고 축구공이라고 발로 차고 다니기도 하다가 컵 앞쪽 두 군데가 위아래로 찢어졌어요. 찢어진 두 쪽을 아래로 열어젖히더니 엘리베이터 문이라고 해요. ‘우리’가 벗어놓은 양말 두 짝을 태우자 문은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가요. 내가 크게 소리내어 층수를 세고, ‘우리’는 빨강 검정 짝짝이 양말 손님을 5층에다 13층에다 내려주곤 다시 내려와요. 지금도 궁금하기만 해요. 어떻게 엘리베이터가 컵 같은 통인 줄 알았을까요. 읍내 롯데마트에서 타 봤다고 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을 ‘우리’ 모습을 떠올려 봐요.
2021. 5. 5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은 울림이가 좋다고 해서 보게 됐어요. 202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으로, 며칠전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보았다는 영화에요. 할아버지도 보았다고 하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어요. 이음이는, 문어가 상어에게 물려 다리 하나가 뜯겨 나갔는데 그 곁에 다시 조그만 다리가 생겨 자라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 목소리가 가장 높고 빨라진 곳은 다시 상어가 문어를 공격하는 장면에서였어요. 문어는 마치 방패를 들고 선 것처럼 수없이 많은 빨판에 온갖 조개와 굴 껍데기를 붙여 몸을 숨기더니, 그래도 상어가 달려들자 어느새 몸을 피해 상어 등에 올라탄 거예요. 상어는 제 등 위에 달라붙어 있는 문어를 더는 공격할 수는 없었어요. 이 이야기를 할 적에는 아이들이 마치 저희들이 문어가 된 것처럼 볼이 발가스레 피어났어요. 문어가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는 엄마에게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은 암컷 문어가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어젯밤엔 아내와 함께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좀처럼 영화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아내가 참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해요. ‘이 눈은 언제 그치려나.’ 라고 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슴에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에요. 창밖엔 줄곧 세차게 봄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2021. 5. 12
‘우리’가 흙더미에서 기차놀이를 하다가 꿈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꿈에... 컴컴한데...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왔어.’ 이렇게 ‘우리’가 한 말을 적어 놓으니 짧기만 한데, 그 말을 들을 땐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내가 물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우리’는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무슨 까닭인지 ‘우리’는 대답을 않고, 꿈 이야기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어요. 전에 ‘우리’ 동무 ‘반들’이네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우리’가 말한 적이 있었어요. 엄마가 밥 먹으라고 ‘우리’를 불러요. 우리는 기차놀이하던, 움푹 파인 넓다란 흙구덩이를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 해요. 가만히 둘게, 밥 먹고 와서 놀아라고 하니까, 그래도 아쉬운지 흙 한 줌과 길쭉하고 네모난 돌멩이 기차를 들고 갔어요.
2021. 5. 22
엊그제 하루종일 비가 뿌리던 날, 아내가 고구마를 튀겨 아이들 집에 갖다 주러 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가 나와 ‘할머니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더라며, 그 말을 전하면서도 아내는 가슴이 설레는 듯했어요. 어제도 등에 자동차 장난감을 한 짐 지고 와 안방 침대에 쏟아 놓으며, ‘할아버지 집에 오고 싶었어.’ 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혼자 ‘붕(자동차)’을 운전하여 서천에도 가고 강화에도 가는 붕놀이를 했어요. ‘우리’ 눈빛에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버지가 보고 싶은 그리움이 가득 일렁여요.
2021. 5. 23
오늘은 흙더미에서 ‘붕놀이’를 했어요. 마을로 내려가는 오른쪽 산기슭에 이음이 친구 ‘우찬’네가 집을 지어 이사를 오는데, 통나무집 짓는 게 궁금해서 ‘우리’한테 같이 내려가보자고 하니 안 가고 싶다고 해요. “‘우리’는 집 짓는 게 궁금하지도 않니?” 하고 따지듯 물어도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해요. 나도 물러서지 않고 잠깐만 보고 와서 ‘붕놀이’를 하자니까, ‘우리’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글쎄 ‘엄마가 찾을 수 있어.’ 라고 하잖아요. 엄마가 찾으면 가까이 있어야 하니까 멀리 가면 안 된다는 논리예요. 그 전에는 엄마가 몇 번이나 소리쳐 불러도 꿈쩍 않았는데, 한 마디로 가기 싫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우리’ 너, 저 번에는 할아버지와 집 짓는 거 보러 갔잖아 하고요.
우리 : 그 때는 크레인 보러 갔어.
나 : 지금도 크레인이 있잖아.
우리 : 지금은 안 움직이잖아. (이 말도 가기 싫다는 ‘뜻이에요.)
며칠전엔 ‘우리’네 베란다에서 같이 ‘붕놀이’를 하다가, 문득 집에 세워 둔 자전거가 생각났나 봐요. 언덕을 내려오며, “할머니, 할머니 집에 ‘우리’ 자전거 있어?” 하고 ‘우리’가 소리쳐요. 아내가 부러 ‘없어.’ 하고 딱 잘라 말하니까, ‘우리’가 혼잣말인 듯 ‘할머니가 지금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먼저 뛰어내려가요. 뒤따라 오며 그 말이 무척 귀엽게 느껴졌어요.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할머니 말은 틀렸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직 ‘ㄷ’ 발음과 ‘ㅈ’ 발음이 헷갈리게 들리지만은 ‘우리’는 제 생각과 느낌을 한껏 표현해 내요. 이음이는 ‘먹으는 거, 잡으는 거’를 거쳐 ‘먹는 거, 잡는 거’로 소리냈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먹는 거, 잡는 거’라고 소리내는 것도 달라요.
2021. 5. 25
이음이와 ‘우리’가 잠옷 바람으로 왔어요.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언덕길을 내달리고, 마당에서 물놀이 하고, 이제막 익기 시작한 오디를 따먹으며 바깥에서 한참 놀다가, 할머니를 보러 방에 들어갔어요 ‘야들 보소.’ 하는 말이 들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아내 배에 올라타고 목을 끌어안고, 할머니 어서 일어나라고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야단이에요. 한참 있다 조용해서 다시 들어가보니, ‘우리’는 아내 팔을 베고, 이음이는 침대 곁에 쭈그려 앉아 강아지 키우는 영상을 보고 있어요. 할머니 병문안 왔다더니 저러고들 있어요.
2021. 5. 31
‘우리야, 물 꼭 잠가.’ ‘우리야, 물 꼭 잠가.’ 하고 아내가 두 차례 되풀이하여 말하니까 ‘우리’가 물조리를 들고 달려가며. ‘물 꼬옥 잠갔어.’ 하며 ‘꼭’을 ‘꼬옥’으로 두음절 늘여 말해요. 엄마 생일 때였던가.’ 그그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해.’ 라고 쓴 울림이 편지가 떠올랐어요. 잠깐 ‘우리’가 보이지 않길래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진흙에서 놀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왔어요. 그러곤 또 붕놀이를 하재요. 흙더미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다가, 공을 차기고 하다가, 굴러가는 공을 따라 내려가 길가에서 오디를 따 먹기도 하다가, 아내와 함께 우찬이네 집 짓는 데까지 갔어요. 아직 기와를 얹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천으로 지붕을 덮어 이제 거의 집 모양을 갖추었어요.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집으로 올라오는데, 갈림길에서 아내가 ‘우리’에게 이제 엄마 집에 데려다 줄까 하고 물었어요. ‘아직 20분 안 됐어.’ 라며 ‘우리’는 더 놀다 가고 싶어 해요. ‘20분이 뭐야. 훨씬 지났는데.’ 하고 내가 말하니까. ‘우리’는 지금 40분이라고 해요. ‘우리’는 아직 40분밖에 안 지났다고 가기 싫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숫자를 잘 모르고 20분이 40분보다 훨씬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아내가 장난스레 ‘40분이 뭔데?’ 하고 물으니까, 조금 생각하다가 ‘비밀이야.’ 라고 말해요. 엄마나 형들한테 듣긴 했는데 ‘우리’는 40분이란 뜻을 저도 몰라 안 가르쳐 준다는 말일 거예요. 말을 조금씩 익혀가는 ‘우리’가 여간 사랑스럽지 않아요. 요즘은 ‘게임 중독’이란 말도 쓸 줄 알아요. 오늘 아침에도 내복 바람으로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기곤 붕놀이를 하러 밖에 나가재요.
2021. 6. 6
신현태 : 이제야 ‘우리’를 만나는구나!
이후란 : 니가 동화 속에 나오는 ‘우리’구나!
어제 아침 두 분 선생님이 초롱산에 들러 처음으로 ‘우리’를 만났어요. ‘우리’는 수줍어 고개를 숙이고 엄마 곁에 꼭 붙어 있었어요. 갑자기 현태 선생님은 차로 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왔어요. ‘칼림바Kalimba’라는 악기였어요. 선생님이 문방구에 들렀다가 ‘우리’ 생각이 나서 사둔 거래요. 손톱으로 튕겨서 소리내는 악기인데, 선생님은 어려서 양철을 오려 돌돌 말아 튕기며 이런 악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해요. 나중에 다시 엄마와 함께 ‘우리’, 울림이, 이음이가 집에 왔어요. 엄마가 갑자기 준비한 선물이라며, 종이에 무언가를 싸서 선생님께 건네 주었어요. 외할머니가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한 듯한 비누 공예품과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였어요. 나는 그 자동차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들을 학교에 배웅하러 갈 때에도 날마다 우리 집에 올 때에도 제 몸처럼 등에 붙어있는 가방에 소중히 모시고 다니는 거예요. ‘우리’도 선생님에게 제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주고 싶었던 거예요. 오늘 아침 아내가 말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듯 기뻤어.’
2021. 6. 8
제목 : ‘어차피 못 씻어!’
울림이와 이음이가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고 있어요. ‘우리’의 손가락과 손바닥, 입가에는 벌써 검보라빛 오딧물로 흥건히 물들었어요. 수돗가로 가더니 물을 틀어 비누를 잔뜩 칠하고 거품을 내며 손을 씻어요. 아무리 씻어도 금방 물든 오딧빛은 약간 바랜 채 그대로 남아 있어요. “‘우리’ 너, 어떡할거니? 엄마가 보면.” 하고 말하니, 엄마한테는 손을 안 보여 주겠다고 해요. 그래, 엄마한테는 놀다가 손이 없어졌다고 해라 하며, 다시 뽀득뽀득 손을 씻어 주고 입가도 닦아 주었어요. 조금 있다가 이음이가 수돗가로 달려가고, 뒤따라 무슨 말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누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 더구나 ‘우리’가 한 말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차피 못 씻어!’ ‘우리’가 이음이에게 소리친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짐작하겠어요. 저도 순간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씻어 봤자 오딧물이 안 지워지니 쓸모 없는 짓이란 뜻이었어요. ‘어차피 씻으나 마나야.’ 라는 말이겠지요. ‘어차피’란 말을 네 살짜리 아이가 쓴 것도 재미있지만, 조금 전 ‘우리’가 겪은 일을 이렇게 여섯 마디로 뭉뚱그려서 나타낸 게 놀라워요. 어차피 못 씻어!’ 그 자리에 알맞은 말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머릿속에서 제 힘껏 만든 문장이지요.
2021. 6. 9
‘우리’ 가방을 떠난 ‘붕(장난감 자동차)’은 지금 어디를 달려가고 있을까요. 청양을 지나 부여로, 저녁놀 가득 번지는 논산으로, 신현태 선생님 마음속으로 씽씽 달리고 있어요. 선생님이 보내온 글과 그림이에요. 어쩌면 ‘우리’가 겪는 첫번째 이별이었을 '붕카의 떠남'.....선물을 받았지만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잔잔히 남아있어요. "우리야! 붕카는 잘 있어요"~~
2021. 6. 10
‘모자를 한 것 같아.’ 지칭개 작은 꽃봉오리 앉은 무당벌레 를 보고 이음이가 한 말입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한테 앉고 싶다며 풀을 뽑고 있는 내 무릎에 앉습니다.
나 : ‘내 무릎에 모자를 했네.’
이음 : ‘그건 아니지. 머리에 해야지.’
나 : ‘그럼 이건 뭐라고 하지?’
이음 : ‘이건 합체한 거지.’
요즘 이음이는 어린이집에 잘 가지 않습니다. 형 울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곤 곧바로 우리 집으로 달려옵니다. 무릎에 앉힌 채, 요즘 형과 많이 싸우지 라고 묻자 처음엔 아니라고 하더니, 조금 싸운다고 합니다. 동생 우리는 자꾸 쫓아오고 형 울림이는 저 멀리 달아나고, 가운데에서 이음이는 제 나름대로 힘들어 하는 듯 보입니다. 개망초와 민들레도 서로 친척이라며 두 손을 다리는 꼭 붙여 움직이지 못하는 풀 흉내를 내거나, 공벌레 흉내를 내며 허리를 굽히는 이음는 여전히 귀엽습니다.
2021. 6. 18
어서 엄마는 집에 가라고 되뇌자 엄마는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집에 가서 혼자 펑펑 운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어요. 엄마는 혼자 집으로 가고 ‘우리’는 흙더미 위에서 붕놀이를 하며, 어두울 때까지 할아버지와 계속 놀자더니 잠은 엄마 곁에서 잔대요. 오늘 처음 ‘우리’를 무등(목말) 태워 주었어요. ‘우리’는 내 이마를 잡은 채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라고 속삭였어요. 잠깐 바람처럼 스쳐가는 ‘우리’ 말에 마음이 간지러웠어요.
2021. 6. 23
‘할아버지, 아픈 데 괜찮아졌어요?’
앞마당에서 소리치는 우렁찬 ‘우리’ 목소리는 서천할아버지를 닮았어요.
‘어, 괜찮아.’ 있는 힘껏 소리치자 ‘우리’는,
‘엄마, 엄마, 할아버지 괜찮대.’ 하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내일 (놀러) 갈게.’ 라고 해요. 그러더니, 울림이가 두 손에 이음이 신발을 신고 강아지처럼 기어서 내려오고, 이음이는 뒤쫓아 오고, ‘우리’는 구르듯이 작은 언덕길을 뛰어와요.
늘 그렇듯이 ‘우리’와 나는 붕놀이를 해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우리’가 내년에 어린이집에 간다고 해요. ‘우리’가 어린이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누구하고 놀지? 라고 하니, ‘우리’는 금방 마음을 바꿔 어린이집에 안 가고 할아버지와 논다고 해요.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 ‘우리’ 바지를 만지게 하며, 오늘은 기저귀를 안 차고 팬티를 입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해요. 일년 가운데 낮이 가장 긴 날, 낮과 밤 사이에 나는 ‘우리’와 함께 있었어요.
2021. 7. 6
텔레비전 속 만화영화에 빠진 이음이에게 슬그머니 장난을 치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음이가 너무 좋아.’ 하며, 앉아 있는 이음이를 부둥켜안고는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넘어지면서도 이음이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치 나를 타이르듯이 ‘나를 좋아하면 잘해 줘야지. 만화영화 볼 땐...’ 이라며, 만화영화 볼 땐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맥없이 이음이를 껴안은 손을 놓습니다. 이제는 이음이에게도 말이 밀립니다. 사진은, 아음이 할아버지가 보내주셨습니다.
2021. 7. 15
강아지를 보러 개집에 들어갈 땐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우리’는 요즘 형들과 붙어다니며 잘 놀고 있어요. 어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등이 가렵다고 긁어 달라고 해요. ‘업드렷!’ 하면, ‘우리’는 무릎을 꿇고 팔굽혀펴기하듯 엎드리고, 나는 옷속으로 ‘효자손’을 넣어 등을 긁어 주지요. 내가 손으로 긁어주려고 하면 꼭 등긁개(등긁이)로 긁어 달래요. 토돌토돌 땀띠가 난 듯한 등을 긁어 주다간 가끔 엉덩이도 긁어 주지요. 등이 시원해지면 곧 붕놀이가 시작 되고, ‘효자손’은 어느새 ‘우리’가 가장 아끼는 차 위로 올라가 ‘크레인’으로 변신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뭐라고 뭐라고 지껄여요. 나는 ‘우리’가 하는 말을 거의다 알아들어요. 아마 엄마와 형들, 아빠 다음으로 나는 ‘우리’와 가장 말이 잘 통할 거예요.
2021. 8. 29
아이들 집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풀을 깎고 있었어요. 뒤에서 차가 멈추더니 창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아이들이 소리를 쳐요. 몇 년만에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할 수 없어요. 어제도 밭에서 당근을 옮겨심고 무씨를 뿌릴 때 만났거든요.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엄마하고 도서관 나들이를 가나 봐요. 엄마 뒤에 앉은 ‘우리’는 자리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어요. 마치 천 년을 두고 앞에 서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던 바위의 눈빛 같았어요. 차는 미끄러져 내려가고, 얼마 있지 않으면 엄마와 함께 밤을 주우러 나올 아이들을 생각하며 밤나무 아래 칡덩굴이 엉킨 풀숲을 말끔히 깎았어요. 부엌 뜰에 이름 모를 풀꽃이 날아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커다란 잎과 몸집에 견주어 꽃은 작아요. 꽃은 파르스름하니 나팔꽃 같고 열매는 꽈리 같아요. 창문으로 아이들이 사는 집이 보여요. 세 아이가 소리치면 초롱산 골짜기는 마치 떠들썩한 교실에 들어선 듯해요.
2021. 9. 3
길을 쓸고 있는데, 아이들 집 쪽으로 올라가던 차가 멈췄어요. 먼저 엄마가 내리고 뒤따라 이음이와 ‘우리’가 내리더니, 반가이 ‘할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뛰어올라 왔어요. 가까이 와서 ‘우리’가 걸치고 있던 윗도리를 자꾸 벗으려고 하니, 이음이가 맨위에 채워져 있던 단추를 조심스레 끌러줘요. 아, 그러고 보니 윗옷을 벗어 한 손으로 빙빙 돌리고 올라오던 이음이 형처럼 따라 하고 싶었나 봐요. 요즈음 이음이는 어린이집엔 가지 않아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힘을 아껴두어야 한대요. 집에 들어오더니 ‘우리’가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더니 옥수수 냄새라고 해요. 아내가 갓 쪄낸 옥수수를 주니 그 자리에서 두 자루나 먹었어요. 그것도 키를 재어 가장 큰 것으로요. 저녁나절 엄마 카카오톡으로 사진 한 장이 날아왔어요. 어제 아침 집에 와서도 나무조각으로 집들을 지었는데, 기차가 다니는 정겨운 마을, ‘우리’가 꿈꾸는 마을일까요? 나는 사진을 받고 ‘우리’에게 답장을 썼어요.
‘우리’ 마음속엔 예쁜 마을이 도근도근 숨쉬고 있구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초롱산 기슭 백동마을(내가 사는 마을 이름)이야. 날마다 울림이 이음이 ‘우리’가 뛰노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얼굴도 볼 수 있으니까.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어 주어 고마워^^
2021. 9. 18
‘우리’가 문을 열고 나와 서있어요. 나는 ‘우리야!’ 하고 소리쳤어요. 뒤따라 이음이가 나오더니 ‘할아버지’ 하고 손을 흔들어요. 아이들을 보러 언덕을 뛰어 올라갔어요. 이윽고 책을 든 채 울림이가 나와요. 아직 엄마 아빠는 아무런 기척이 없어요. 마루 위에 놓인 접는 걸상에 앉으니, 그것은 작다며 ‘우리’가 큰 걸상을 가져와 펴 주어요. ‘우리’와 나란히 앉으니 세상이 참 예뻐 보여요. ‘여기서 바라보니 하늘이 참 곱구나.’ 라고 하니, ‘우리’가 ‘구름도 멋있어.’ 라고 되받아요. 내가 ‘우리’ 등을 긁어주고 있는데, 이음이가 내 손등을 만지며 왜 이렇게 꺼칠꺼칠하냐고 물어요. 늙어서 그렇다고 하니, 이음이가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 죽지 마.’ 라고 해요. 가슴이 아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이음이가 다시 할아버지는 형제가 몇인지 물어 봐요. 넷이라고 하니까, 그네를 타며 책을 읽고 있던 울림이가 형제가 많으면 좋지 라며 이야기에 끼어들어요.
얼떨결에 나는 할머니 형제는 아홉이라고 했어요. 그러자 울림이가 혼잣말로 ‘일병이, 이병이, 삼병이’ 라고 하잖아요. 나는 넘겨 짚어 ‘너, 윤구병 선생님을 알아?’ 하고 물으니, 아빠가 이야기해 주었다고 해요. 선생님 형제는 첫째가 윤일병, …, 아홉째가 윤구병이거든요. 할아버지는 변산반도에 윤구병 선생님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고 하니, 아빠한테 말한다고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아빠도 벌써 일어나 있었나 봐요.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해줄까 하며, ‘춥지도 덥지도 않는 어느 날…’ 하며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실은 엊그제 아이들과 함께 읽은 ‘팥빙수의 전설’이란 동화예요. 아이들은 다 알면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요. 나는 줄거리만 거칠게 이야기하는데, 곁에서 듣고 있는 이음이는 사이사이에 팥빙수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사를 정확히 이야기해요. 아직 글씨도 모르는 이음이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 기억하고 있는지 참 신기해요.
2021. 9. 19
일하다 쉬며 누워서 보는 아이들 집이에요. 오늘은 아침 일찍 아이들이 서천할아버지네 가서 집은 텅 비고, 가을볕에 자전거만 졸고 있어요. 아내는 아이들이 없으니 집에 향기가 사라졌다고 해요. 목화송이 부푸는 하늘은 파아랗기만 한데 입가엔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이란 노래가 맴돌아요.
2021. 9. 21
걸상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우리’가 내 무릎으로 올라오더니 내 눈가에 내 볼에 붙은 것을 떼어줍니다. 예초기로 언덕을 깎을 때 묻은 풀 부스러기입니다. 하나 하나 떼어주는 고 조그만 손가락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우리’와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걷기 전부터, 말을 배우기 전부터 내 손수레를 타고다녀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는 어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강화로 데리고 같습니다. 울림이 말로는 3박3일인데, 가는 날은 강화에 가서 자기만 해야 하니까 그런 셈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다시 초롱산은 고요 속으로 돌아가고, 이따금 풀벌레 소리만 가늘게 떨립니다.
2021. 9. 28
이야기 하나 ‘딸꾹질’
‘우리’가 침대 위를 기어다니며 ‘붕놀이’를 하고 있어요. 꼬물꼬물 발가락이 귀여워 뒤에서 양쪽 새끼발가락을 잡았는데, 뒤돌아 보며 그건 딸꾹질할 때 하는 거래요. 그 말이 귀여워 나는 계속 ‘우리’ 새끼발가락을 붙잡고, ‘우리, 너 지금 딸꾹질하고 있지?’ 하며 딸꾹질 놀이를 했어요. 밖에서 도토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이음이에게 ‘우리’가 들려 준 얘기를 하니, 그게 아니라고, 딸꾹질을 할 땐 새끼발가락이 아니라 새끼손가락을 꼭 눌러야 한다며, 서천에 사시는 친할머니가 가르쳐 주었다고 해요.
이야기 둘 ‘가여워’
‘가여워’
이음이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곁에서 놀고 있던 ‘우리’가 혼잣말처럼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가 ‘할아버지, 단이는 몇 번 결혼을 해?’ 하고 물어, 일년에 두 번이라고 하니, 이음이가 그 동안 단이가 나은 새끼가 엄청 많았겠다 라고 하던 때였어요. ‘우리’는 문득 올봄에 태어난 강아지들이 생각났나 봐요. 지금은 텅 빈, ‘우리’가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개집에 꼬물꼬물거리던 강아지가 가여웠던가 봐요.
이야기 셋 ‘오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뛰어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데, 길 아래 쪽을 쳐다보며 ‘우리’가 ‘오디가 열었나?’ 하는 거예요. 갑자기 오디 따먹던 생각이 났나 봐요. ‘오디는 (초)여름에 열어.’ 라고 대답하니, 여름이 언제냐고 다시 물어, 더울 때라고 하니, ‘우리’는 지금 덥다고 해요. ‘야, 니가 덥다고 오디가 열리냐.’ 하고 놀리니, ‘우리’도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려요.
이야기 넷 ‘오줌 멀리 누기’
며칠 전에 ‘우리’가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언덕으로 데려가니, 자꾸 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동안 변기에 앉아서 눠서 그랬나 봐요. 오줌은 서서 이렇게 누는 거야 라고 가르쳐 주며, 울림이와 이음이와 할아버지는 누가 멀리 오줌을 누나 내기를 했다는 얘기도 들려 줬어요. 이제는 오줌이 마려우면 쉬 마렵다며 내 바지를 잡아 끌고가서는 둘이서 누가 멀리 누나 내기를 하지요. 엊저녁엔 넷이서 오줌 누기 시합을 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멀리 누려고 물을 잔뜩 마시고 참느라고 난리였어요.
2021. 9. 29
이음이 한글 배우기 1
‘이음이 한글 가르치기’란 말보다 ‘이음이 한글 배우기’라는 말이 어울릴 듯해요. 어차피(‘우리’가 쓰는 말) 한글은 이음이가 배우기 때문이지요. 며칠전 엄마가 와서 이음이가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해요. 아이들이 그림과 글자로 일기를 쓰는데, 이음이도 울림이 형처럼 글씨로 적어 보고 싶다고 한대요. 이음이가 배우고 싶다면 한 번 가르쳐 보겠다고 선뜻 대답했어요. 나도 내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까지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이음이가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글자는 ‘이, 음, 우, 유, 두’ 다섯 개예요. 나는 ‘가, 나, 다, 라 …’부터가 아니라, 이음이가 알고 있는 글자로부터 한글을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유’는 우유갑에서 날마다 봐서 저도 모르게 익히게 되었다고 해요. 나는 먼저 이음이가 모르는 ‘으’이라는 글자를 적어 읽어 보라고 했어요. ‘음’이라는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가 한 소리 ‘음’으로 뭉뚱그려진 것이 아니라, 낱낱의 소리 ‘으’ 소리(모음)와 ‘ㅁ’ 소리(자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에다 ‘ㅁ’을 붙인 ‘임’이라는 글자를 읽어 보라고 하니, 금방 ‘임’이라고 소리내며, ‘이런 거야!’ 하며 이음이도 놀라워 했어요. 나는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는 일이 글자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한글이라는 틀, 동시에 우리말의 틀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21. 9. 30
엄마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어요. 한쪽에는 이음이가, 또 한쪽에는 ‘우리’가 볼펜으로 그려넣은 예쁜 문신이에요. 엄마가 두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줄 때, 엄마 얼굴에는 뿌듯해 하는 느낌이 묻어났어요. 문득 지우가 병설유치원에 다닐 때 만들어 준 카네이션이 생각났어요. 삐뚤빼뚤 종이를 오려 만든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가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나는 내가 퍽 자랑스러웠어요. 사진은 우리 집 강생이들이에요. 비가 그치고 살짝 부푼 듯한 파란 하늘을 매 한 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천천히 돌고 있어요.
2021. 10. 2
“‘우리’는 세 살이야.”
묻지도 않았는데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가 말했어요. 나는 얼른 알아채고 “‘우리’는 내년에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구나.” 라고 하니, 풀죽은 목소리로 ‘응’이라고 해요. ‘우리’는 올해 네 살이고, 내년에는 다섯 살이거든요. “‘우리’는 엄마가 좋지. 엄마 곁에 있고 싶지.” 라고 이어 말하니, ‘우리’가 속삭이듯이 ‘할아버지, 좋아!’ 하며, 엎드려 기어와 조그만 두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져요. 내가 ‘우리’ 마음을 보듬어 주어서 그런가 봐요.
오늘은 집 둘레길을 세 바퀴 돌았어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걸어서요. 가다가 풀섶에 밤이 떨어졌나 살피기도 하고, 자동차 바퀴에 밟혀 뭉그러진 도토리도 주워서 만져보고, 빠알갛고 마알간 넝쿨 열매도 따서 맛보고, 너무 시어서 같이 퉤퉤 뱉고, 미국자리공 열매를 으깨서 검보랏빛 물이 든 손가락을 치켜들고 ‘아이고, 무서버라(무서워라)’ 놀이도 했어요.
2021. 10. 3
엊그제 ‘우리’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수줍게 “‘우리’는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했을 때, 마치 사랑의 고백을 듣는 듯했어요. 어젯밤에는 울림이네 풀밭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닥불놀이을 했어요. 불가에 둘러앉아 한참 놀고 있는데, 아빠 곁에 앉아있던 ‘우리’가 아빠에게 “‘우리’는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말했어요. 아빠는 ‘우리’는 왜 할아버지만 좋아? 우리 가족 모두 좋지 라는 뜻으로 말을 고쳐주었어요. 그러자 얼른 ‘우리’는 아빠도 좋고, 울림이 이음이 형도, 삼촌 할머니도 다 좋아 라고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왔어요.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엄마를 빠뜨렸어요. 아빠가 ‘엄마는?’ 하니까 그제사 ‘아! 엄마도 좋아.’ 라고 서둘러 말했어요. 아빠는 한 가지 잊은 게 있어요. ‘우리’가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말할 때 ‘우리’ 속에는 이미, ‘우리’가 좋아하는 아빠 엄마, 울림이 이음이 형,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지원이 이모가 들어있다는 사실을요.
2021. 10. 8
이음 : 할아버지가 지리산에 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없었지?
나 : 음, 한 살쯤이었을까, 엄마 뱃속에 있었을까?
이음 : 아, 애기씨로. … 근데 그 때 내 생각은 있었을까?
이음이는 묻고 있어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지금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에 묻혀 썩지만 마음(생각)은 죽지 않고 살아 다른 옷(몸)을 입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해 주었어요.
나 : 이음이는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 다시 태어날거야.
이음 : 할아버지도 좋은 곳에 갈거야.
나 : 자꾸 자꾸 다시 태어나다가 아주 아주 착해지면 빛처럼 환해져서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아.
이음 : 부처님처럼.
나 : 응.
일곱 살 이음이와 네 살 ‘우리’가 그린 그림이에요. 울림이가 일곱 살이고, 이음이가 네 살 때 그린 그림과 거의 비슷해요. 요즘 ‘우리’는 달팽이를 제법 잘 그리는데, 더듬이는 꼭 세 개를 그려넣어요.
2021. 10. 10
이제 나는 아랫집 할아버지일뿐 더는 이음이와 울림이 친구가 아니에요. 요즘 이음이와 울림이는 집에 오면 ‘지우 삼촌’만 찾아요. 인터넷 게임을 알고나서부터는요. 지난번 이음이보고 ‘할아버지, 이음이 친구지?’ 하고 말하니, 이음이가 ‘그럴리가 있어? 할아버지이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봐서 괜히 머쓱했어요. 엄마가 불러 울림이와 이음이는 밥 먹으러 가고, ‘우리’만 남아 나보고 집에 바래다 달래요. 닭이 닭장에서 꼬꼬 소리내서 무섭다나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고, 나는 터덜터덜 뒤따라갑니다. 내가 ‘터덜터덜’ 입으로 소리내고 가면, ‘우리’는 그 말이 우스운가 봅니다. 집에 가선 장난감을 마당에 놓고 왔다고 해서 되돌아와 다시 가는데, 언덕 도랑에 가로질러 놓은 다리까지 배웅해준다고 하니까 개미가 있어 무섭다고 해요. 맨날 다니는 길이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집까지 같이 가자는 이야기이지요. 나는 나이를 먹지 않고 늘 네 살에 늘 머물러 있는 듯해요. 네 살인 ‘우리’하고만 친구 사이이니까요. 달팽이 그림은 ‘우리’ 수첩에서 옮겨왔어요.
2021. 10. 15
이음이가 드디어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어요. 며칠 전 거추장스러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자전거 뒤를 서너 차례 잡아주었는데, 엊그제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 50m남짓 달려갔어요. 이음이는, 내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어떻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는지 자세히 알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 준 지 두 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재미있어 해요. 이음이도 자전거를 나처럼 배웠어요. 뒤에서 자전거 꽁무니를 잡고 따라가가다 슬그머니 손을 놓고는, ‘이음아, 할아버지 손 놓았어.’ 하면 이음이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몇 바퀴 못 가고 넘어졌어요. 몇 번 넘어지곤 하다가 ‘할아버지, 이제 잡지 말아 봐.’ 라고 말하곤 혼자 내달렸던 거예요. 이음이 스스로도 대견한지 소리없이 흐뭇이 웃었어요. 넘어질 땐 자전거와 함께 땅에 나뒹굴어서, 자전거 탈 땐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말을 하며, 지리산에 살 때 신현태 선생님이 지게를 질 때는 지게를 벗어 나뭇짐을 부리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안장이 높아 혼자 올라탈 수는 없지만, 이제 멈출 때는 사뿐히 뛰어내릴 줄도 알아요. 이음이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그림은, 울림이 만화 속 주인공들이에요.
2021. 10. 20
올 들어 첫추위가 찾아온 날 금당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들이를 갔어요. 엄마는 빨래를 널고 온다고 해서, 우리 먼저 지우 삼촌 차를 타고 떠났어요. ‘우리’는 앞자리 할아버지 무릎에 앉고, 울림이와 이음이는 뒷자리 할머니 곁에 앉았어요. 마치 햇살 반짝이며 시냇물 흘러가듯 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마을길을 내려갔어요. 학교에 닿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텅빈 운동장을 내달리고 놀이터에서 한참이나 놀았어요. 얼마전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엄마는 혼자 공 모는 연습을 하고, 삼촌은 농구를 하고, 할머니는 꽃씨를 모으다가 잔디밭에서 은행을 주웠어요. 나중엔 편을 갈라 축구를 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음이가 같은 편을 먹고, 울림이는 삼촌과 엄마와 한 편이 됐어요. 울림이가 공을 몰고 오자 할아버지가 울림이 몸을 잡아 넘어뜨리며 반칙을 했지만, 공은 또르르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끝내는 2대2로 비겼어요. 엄마가 싸온 참(간식)을 먹고, 돌아올 무렵에는 시이소와 미끄럼틀을 타고 나란히 앉아 그네도 탔어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유난히 파아란, 엄마가 깨끗이 빨아 널은(넌) 눈부신 하늘을 보며, ‘우리’와 할아버지는 더 오래토록 엄청 늦게까지 놀고 싶었어요.
2021. 10. 22
틀림없이 ‘찝게(집게)’라고 들렸어요. 나뿐 아니라 아내 귀에까지도요. ‘우리’가 고구마를 캐는데 밭에 올라와서는 ‘할아버지, 찝게.’ 라고 소리쳤거든요. 갑자기 무슨 찝게일까 하는데 ‘찝게 먹어.’ 라고 해서, ‘우리’ 뒤를 따라가면서도 혹시 ‘쥬스’라고 한 말을 잘못 들었나 했어요. 그런데 내려가보니 ‘식혜’였어요. 식혜를 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고 한 거예요. 식혜 한 깡통을 따서 나눠 마시며 ‘할아버지는 찝게라고 한 줄 알았어.’ 라고 하니까, ‘당연히 찝게는 아니지.’ 라며 딱 잘라 말해요. 아직도 나는 ‘우리’가 소리내는 ‘ㅅ(ㅆ), ㄷ(ㄸ), ㅈ(ㅉ)’ 들은 잘 가려내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식혜’라는 말은 모를 거라는 생각이 굳어져 안 들렸는지도 몰라요. 마치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 가운데 ‘숙주나물’이나 ‘고사리’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2021. 10. 25
‘뛰어다니는 풀’
울림이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와서 ‘뛰어다니는 풀’이라고 해요. 나는 금방 알아들었어요. ‘메뚜기구나!’ 라고 하니, 손가락 사이에 낀 메뚜기를 보여주며, 벼메뚜기라고 해요. 한참 지나, 울림이 이음이와 같이 마을길을 올라오며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메뚜기를 뛰어다니는 풀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풀도 푸른 빛깔을 띠고 메뚜기 푸른 빛깔을 띠고, 메뚜기는 풀 조각이 뛰어다니는 것 같아.’ 라고 하니까, 울림이 저도 그렇게 똑같이 생각했다고 해요. 푸르고 맑은 바랭이풀 영혼이 벼메뚜기로 옮아가는 신비로운 순간을 나와 울림이가 함께 본 거예요.
사진은 울림이(위)와 이음이(아래)가 벽돌에 숯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2021. 10. 26
‘자석의 탄생’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자석을 서로 가지려고 다투었어요.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자석을 내다버리려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다 넣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마음이 약해 자석이 탄생했어요. 이음이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마음 약한 엄마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던 자석이 다시 태어난 것이지요. 아, 이럴 때 ‘탄생’이란 말을 쓰는구나! 이음이에게서 탄생이란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어요.
뒷이야기
‘아이고! 아깝다. 할아버지 같으면 자석을 멀리 던져버렸을 텐데.’ 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여서 던지는 척하다가 돌려줄 걸.’ 이라고 이음이가 말했어요. 나중에 학교에서 돌아온 울림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니, 할아버지는 자석을 더 많이 사주었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사진은, 이음이가 그린 이음이네 집이에요.
2021. 10. 27
이음이 한글 배우기 2 ‘감’의 탄생
오랜만에 이음이가 한글을 배우러 왔어요. 며칠전에 지나가는 말로 ‘우리’라는 글자를 쓸 수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먼저 이음이한테 아는 글자를 적어 보라고 했어요. ‘리, 으, 응, 우, 유, 야, 아, 음, 움, 어, 이’ 열한 자인데, ‘리, 응, 움’은 이음이가 새로 알게 된 글자이고, ‘리’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거꾸로 써 놓았어요. 이음이는 동그라미 ‘ㅇ’이 없는 ‘ㅣ’도 [이]라고 하는 게 아직 이상하다고 했어요. 그건 무척 중요하다며, 이음이가 모르는 글자 ‘기’를 종이에 적고는, 이 글자는 ‘[기~ㅣ](일부러 길게 소리냄)라는 소리를 적은 걸까, [가~ㅏ]라는 소리를 적은 걸까?’ 하고 물어보니, ‘기’라는 소리를 적은 거래요. ‘그래, 맞아.’ 라고 칭찬하자, 이음이는 무언가 찾아낸 듯, ‘할아버지, 나, 감(열매)도 쓸 수 있어.’ 하더니 색연필로 커다랗게 ‘감’이라고 적었어요. 놀라운 일이에요. 이음이 쪽에서 보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낸 거예요. 다시 이음이 말로 고치면 ‘감’이라는 글자가 ‘탄생’한 거지요. 이음이는 ‘ㄱ’에다 ‘ㅏ’를 붙이면 [가]라고 읽고, ‘가’ 아래 ‘ㅁ’을 붙이면 [감]이란 소리를 나타낸다는 것을 찾아낸 거예요. 시나브로 이음이는 한글의 원리를 깨치고 있어요. 그러고는 ‘응’이라는 소리에서, 위에 있는 동그라미 ‘ㅇ’은 소리가 없는데, 아래에 있는 ‘ㅇ(이응)’은 왜 소리가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옛날에는 소리값이 있는 ‘ㅇ’은 꼭지 달린 ‘ㆁ’으로 구별하여 썼다고 하니, 이음이도 앞으로 그렇게 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글자로 적었어요!
2021. 10. 29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저리 비키라고, 안 보이는 데로 가라고 ‘우리’가 눈치를 줘요. 처음에는 자꾸 귀찮게 무엇을 물어봐서 그런 줄 짐작했어요. ‘우리’에게,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는 어디 있었느냐고 캐물었거든요. ‘우리’는 엄마 젖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어요. ‘아니,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젖을 먹고 있어.’ 라고 하니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곁에서 듣고 있던 이음이가,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고 하는 것일 거야 라며 손가락 빠는 흉내를 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는 왼쪽 새끼손가락이 긁혀 혼자 쓰린 아픔을 참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보고 저리 가라고 한 거예요. 며칠전에, 자다가 눈이 아팠다고 했던 ‘우리’ 말이 떠올랐어요. 그 때는 눈을 뜨고 있었다며. 아, 아이들도 모두 잠든 한밤중에 홀로 깨어 그 아픔을 참고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어요. 가끔 꿈 이야기도 하는 ‘우리’ 말을 듣고 있으면 새나 꽃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해요. 그림은, 울림이 ‘동물도감’에 나오는 고슴도치예요.
2021. 11. 4
새벽녘 살짝 비가 뿌리고 숲속에 가을이 무겁게 내려앉았어요. 마당 한 귀퉁이에 받쳐 놓은 ‘우리’ 자전거가 어느새 꽃나무처럼 우리 집 풍경이 됐어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었던 자전거, 왼쪽 손잡이가 떨어져 고쳐 달라고 끌고 오면 푸른 테이프로 칭칭 감아 주곤 했는데…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우리’의 세 살이 세발자전거에 고스란히 얹혀 지금도 꿈속을 달음박질치고 있어요.
2021. 11. 5
“‘우리’는 기저귀 안 하고 이제 팬티 입어.”
‘우리’가 한 말이에요. ‘우리’가 언제 이 말을 했는지 들려주려고 해요. 달리기 내기를 할 때, 울림이가 있으면 울림이가 심판을 보지만, ‘우리’와 나, 이음이 셋이 있을 적엔 번갈아가며 ‘준비, 시작’이라고 출발하는 말을 해요. 한번은 이음이 차례인데, ‘준비, 시작’이라고 하지 않고, ‘준비, 시~’하고 한참 끌더니 ‘자장면’이라고 하는 거예요. ‘시작’이 아니고, ‘시자장면’이니, 이 때 출발하면 물론 반칙을 하는 거지요.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다음날부터 ‘우리’는 웃음 가득 머금고는 ‘시~자장면, 시~자장면’이라고 몇 차례나 되풀이했어요. ‘준비’라는 말은 잊어버리고요.
엊그제였어요. 뜬금없이 “‘우리’는 기저귀 안 하고 이제 팬티 입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순간 ‘무슨 말일까? 기저귀 안 찬 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하며, 너무 차분하게 말해서 깜박 속을 뻔했어요. 그러다 생각이 났어요. 언제인가 내 차례일 때, ‘준비’라는 말을 꺼내놓고 한참 뜸을 들이며 ‘저기 하늘 좀 봐. 오늘은 매가 아주 낮게 날아.’ 하며 딴소리를 하다가 재빨리 ‘시작’이라 소리치곤 나 혼자 내달린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는 그 때 생각이 나서 나를 따라한 거예요. 나는 뒤늦게서야 알아채고 “‘우리, 너!” 하는 사이에 ‘우리’는 먼저 자전거를 타고 내뺐어요. 물론 ‘준비, 시작’이란 말도 빼놓고요. 아침이면 저기 언덕에 서서 ‘안녕!’이라고 먼저 소리치고, 내가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답하면 따라서 손을 흔드는, 초롱산 숲속에 하나뿐인 귀여운 친구, ‘우리’가 있어 날마다 몸 가눌 길 없는 기쁨을 누리고 살아요.
2021. 11. 8
아이들이 뛰어오던 발소리도, 까르르 웃음소리에 출렁이던 언덕도 초겨울 비에 젖습니다. 덩그러니 남은 까치집, 창으로 내다보이는 상수리 나무에 앉았던 이파리들도 날아가고 지금은 옷깃을 여미고 집으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비가 그치자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들어서자마자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두 손을 만져보라며 내밉니다. 이음이가 구름이 헥헥거리며 숨차게 달려가다 땀이 나서 비가 온다고 하니, ‘우리’도 한 마디 거듭니다. ‘구름이 해를 덮었어. (그래서) 비가 떨어져. (손으로 접는 시늉을 하며) 구름이 접혀서 비가 오는 거야.’
2021. 11. 9
예쁜 조약돌이나 가랑잎을 줍듯,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우리’가 쓰는 말을 모읍니다. 곁에 종이가 있으면 얼른 적어 두지만, 밖에서 놀 때 ‘우리’가 하는 말은 땅바닥에 적거나 혼자 속으로 되풀이하여 기억해 둡니다. 요즘 문득 알게 된 ‘우리’의 말버릇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저를 가리킬 때 ‘나’를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라고 말하지, ‘나는, 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 형들이 ‘우리’라고 부르니, ‘우리’는 저를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이음이에게 이 말을 하니, 이음이가 “‘우리’야, ‘우리’가 ‘나’야.” 하고 말해 줘도,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만 짓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저를 ‘나’라고 말할까요? 이제부터 ‘우리’를 ‘나’라고 불러볼까 하는 재미난 생각도 합니다. 사진은,이음이가 그리고 쓴 그림문자와 한글입니다. ‘이음이랑 엄마’란 글자도 보이는데, 나머지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입니다.
2021. 11. 12
‘바람이 나와서 말라.’
‘엄마 차도, 뱀이 그래서 죽은 거야.’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면서 ‘우리’가 한 말이에요. ‘우리’와 나만이 알 수 있는 두 문장으로 이어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울림이와 이음이에게 풀어 보라고 했어요. 울림이는 장난스럽게, 이음이는 차분하게, 서로 다투며 제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여러분도 무슨 말일까 짐작해 보아요.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시간에 겪은 일을 한 순간에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첫째, 여름날 엄마 차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둘째, 뱀이 엄마 차(짐작)에 깔려 죽었다.
셋째, 죽은 뱀이 말라 있었다.
이제 어렴풋이 짐작이 가나요? 얼마전 ‘우리’가 나와 함께 눈으로 본 것은, ‘우리’네 집으로 올라가는 찻길에서 차바퀴에 깔려죽어 말라 비틀어진 뱀이었어요. 그 길로 다니는 차는 엄마 차이고, 깔려죽은 뱀을 마르게 한 것은 엄마 차에서 나온 바람이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뱀을 보자, ‘아! 불쌍해.’ 라고 말했어요.
2021. 11. 16
“‘우리’는 손이 없다고.”
길에 떨어진 가랑잎을 쓸어 모읍니다. ‘우리’가 나오고, 곧이어 이음이가 나옵니다. 풀숲에 수북이 가랑잎이 쌓이자, 이음이는 ‘낙엽산’이라고 부릅니다. 마당비도 가져오고 뜨락을 쓰는 비도 가져와 낙엽산을 만듭니다. 낙엽 무더기 위를 뛰어다니던 ‘우리’가 아까부터 나한테 어제 두고간 세발자전거를 가져다 달라고 보챕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와야지.’ 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도 덩달아 “‘우리’는 손이 없어요.” 하며 거듭니다. ‘손’이 없다니? ‘우리’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나를 따라 집에 와서 이음이는 킥보드를,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다시 집으로 갑니다. 이음이가 ‘우리’한테 장난감 트럭도 가져와야지 하는 바람에 한 손으로는 장난감 트럭을 들고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길을 올라갑니다. 이음이는 다시 길에 놓여있는 뜨락비도 ‘우리’한테 가져오라고 합니다.
“‘우리’는 손이 없다고.”
‘우리’는 투덜대며 집으로 갑니다. ‘우리’는 아까 내가 한 말 뜻을 알아차리고 금방 배워 따라합니다.
2021. 11. 19
내일 아침에는 ‘우리’와 이음이와 함께 새총 만들 Y자 나뭇가지를 찾으러 산에 가기로 했어요. 울림이도 따라가고 싶다고 해요.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체험학습을 내면 되지 않을까 하니, 그건 안 되고 내일 아침 감기 걸리면 된다고 해요. 울림이와 이음이와 둘러서서 감기 걸리는 여러가지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물장난에서부터 이마를 100도로 올리는 방법까지. 내가 장난말로 이음이가 울림이 형이 열받도록 막 약을 올리는 것은 어떨까 하니, 여태까지 잠자코 앉아 있던 ‘우리’가 갑자기 ‘메롱, 메롱!’ 하는 거예요. 설마 이런 말은 모르겠지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우리’는 다 알아듣고 있는 거예요. 내가 꼭 안아 주니까 숨이 막힌다고 놓아 달래요. 밭일을 마치고 마루에 걸터앉아 신을 갈아 신는데, 저만치 숲의 안섶에 커다란 나뭇잎 몇 이파리가 팔랑거려요. ‘가지 끝에 새가 날아와 앉았을까, 저 곳에만 바람이 부는 걸까?’ 하는 순간, 숲 가장자리에 서있는 졸참나무 이파리들이 마구 손을 흔들고, 바람이 지나는 길이 보여요. 아침이면 ‘우리’ 웃음소리로 맑게 메아리지던 숲속으로 저물어 가는 눈빛이 참 고와요. 이윽고 나무들은 총총 머리에 별을 이고 또 하룻밤 나들잇길을 떠나지요.
2021. 11. 21
이제부터 할아버지는 ‘초롱산 할아버지’라고 불러. 서천에 사는 친할아버지는 ‘서천 할아버지’이고, 강화에 사는 외할아버지는 ‘강화 할아버지’이고, 할아버지는 초롱산에 사니까. 가만히 있더니 그 말에 대답은 않고; “‘우리’는 자전거 타는 ‘우리’야.” 라고 해요. ‘우리’는 저를 ‘자전거 타는 우리’라고 불러 달라는 거예요. ‘자전거 타는 우리와 초롱산 할아버지’ 무슨 책이나 영화 제목 같지 않나요? 드디어 울림이 이음이 생물도감과 ‘우리’도감이 책으로 나왔어요. 엄마가 펴낸, 손바닥만한 크기의 사랑스런 책이에요.
2021. 11. 22
‘할아버지, 눈 와!’ 이음이가 소리를 질렀어요. 창밖에 흩뿌리던 비가 어느새 싸래기눈으로 바뀌었어요. 곧바로 ‘엄마한테 전화해.’ 라고 말했을 때, 순간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음이를 바꿔주니, ‘엄마, 눈 와!’ 라고 하는 거예요. 이음이는 첫눈 내리는 모습을 방안에 있을 엄마에게 맨처음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사진은, 엊저녁 늦게까지 집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엄마 품에 안겨 돌아가는데, 미처 따라기지 못한 ‘우리’ 신발이에요. 엄마에게 안겨가면서 잠깐 눈을 뜨곤 ‘할아버지 집에서 놀고 싶어.’ 하던 목소리도 신발과 함께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2021. 11. 23
‘할아버지, 나중에도 할아버지 집에 놀러오고 싶은데 …’ 내 품에 안겨 이음이가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는 이다음에 커서도 지금처럼 할아버지 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인가는 아이들이 초롱산을 떠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슬펐어요. 얼른 마음을 일으켜세워 ‘언제든지 오면 되지.’ 라고 하니까, 길을 몰라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생각난 것이 ‘초롱산 할아버지’였어요. 아이들이 나를 가리킬 때 ‘아랫집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초롱산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초롱산이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해서요. 초롱산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이음아, 네 마음속엔 이미 초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단다. 할아버지는, 하늘 높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미끄러지던 매의 날개짓으로 저물녘이면 웍웍 울던 뒷산 바위 부엉이 소리로 네가 나무에 바짝 붙어 깨금발 하고 따먹던 검보랏빛 오디 열매로 잎새에 물결치는 햇살로 나뭇가지를 흔들면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로 빈 숲길을 스치는 바람으로 언제까지나 초롱산에 살아있을 거야.’
2021. 11. 24
눈싸움을 하다가 이음이는 먼저 돌아가고, 혼자 남아 나무 난간 턱에 쌓인 눈 위에서 붕놀이를 하던 ‘우리’는 내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갑니다.
‘할아버지, 뒤가 계속 보여.’ 할아버지 등 뒤로 길이 계속 따라오고 강아지 단이도 쫓아옵니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안고 가니 눈이 네 개이구나.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
언덕을 올라서자, ‘우리’에게 따뜻한 꿀차를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 목소리가 부엌 창으로 새어나옵니다.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며, 갑자기 ‘우리’가 무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는지, ‘우리’ 말을 잘못 들었는지 이상하게 여깁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조금전 ‘우리’에게 ‘점심 먹고 이따 만나.’ 라고 하니까, ‘점심 먹고?’ 라며 ‘우리’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거든요. ‘우리’는 얼른 다시 만나 놀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할아버지에 놀러올(놀러갈) 거야, 라고 말한 것입니다.
2021. 11. 25
아침나절 이음이가 새의 깃털을 주으러 가자고 전화가 왔어요. 이음이를 만나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물으니, 책을 보다가 깃털펜이 나와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먼저 닭장에 들러 닭의 깃털을 세 개 줍고, 이음이랑 ‘우리’와 함께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열흘 전쯤 나무 하러 갔다가 숲길에 깃털이 부스스 흩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매가 잡아먹고 남긴 산비둘기 깃털 같았어요. 그 사이 세찬 바람에 모두 날려갔는지 몇 차례 둘러봐도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비둘기나 까마귀 깃털은 너무 가늘어 깃털펜으로 쓸 수 없다고 해요. ‘펜(pen)'의 어원이 라틴어로 '깃털'이라는 의미를 지닌 'penna'인 것도 알게 되었고요.
다시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산으로 올라갔어요. 저만치 예산이 보이는 산마루까지 올라갔는데도 오늘따라 까치 깃털 하나 만날 수 없었어요. 내친김에 산을 돌아 저 쪽 골짜기로 감을 따먹으러 갔어요.아무도 돌보지 않는 감나무 높이 바알갛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이따금 새들이 감을 쪼아먹으러 왔어요. 장대로 쳐서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것은 그 자리에서 먹었어요. ‘우리’ 입술에 감물이 덕지덕지, 첫눈이 온 뒤라 꿀처럼 달았어요. 그 가운데 성한 것 하나는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나뭇잎에 싸서 이음이가 들고 왔어요. 덤불을 지나며, 떨어뜨릴까 조심하라고 하니, 이음이가 ‘손에 든 감을 엄마라 생각하고 죽지(다치지) 않게 잘 들고 간다.’고 해요. 언제 친구로 사귀었는지 이음이가 ‘바위 친구’라고 부르는 곁으로, 길이 아닌 곳으로 내려가다가 그만 넘어졌어요. 가랑잎 위에 나동그라져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감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왼손에 고이 받쳐들고 있었어요. 넘어지는 순간에도 엄마 생각을 했나 봐요.
2021. 12. 9
‘좋은 장소 찾으러 갑시다.’ 라며, 전화를 받자마자 느닷없이 이음이가 어른 말투로 말했어요. 엊그제 함께 산책을 가자고 했는데, 달려오는 울림이 이음이 손엔 사진기가 들려 있는 걸 보면 멋진 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봐요. 마을회관까지 가기로 했어요. 울림이 이음이는 킥보드를 타고 미끄러지듯, ‘우리’는 엄청 빨리 달려, 나는 뒤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바람이 휘몰아치듯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조용하던 온 마을이 들썩거려요. ‘안녕하세요.’ 라며 이제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해요. 마을회관 빈 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는 운동기구가 있는데, 아이들은 제 키와 몸집에 맞게 놀이기구처럼 타고 놀아요. 네 시가 넘어 집을 나왔으니 이제 곧 어두워지려고 해요. 저 너머에서 오셨는지 낯선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회관을 나오시면서 아이들이 참 예쁘다며 딸을 셋이나 두었느냐고 물으셔요. 머리카락도 길고 곱상하니 여자아이처럼 보였나 봐요. 아니라고, 아들 셋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아빠가 된 듯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안아 달라고 해요. 얼마만큼 올라오는데 이음이가, 할아버지가 힘드니 ‘우리’한테 내려서 걸어가라고 하니, ‘우리’는 싫다는 몸짓으로 나를 더 꼭 붙잡아요. 다시 등에 업혀 오면서, 따라오는 강아지들을 ‘단이씨’ ‘보리씨’라고 부르더니, 엄마 이름은 노해원이고, 아빠 이름은 황바람이라며 ‘해원씨’ ‘바람씨’ 라고 혼자 불러 보아요. 저기 달님이 있다며 먹는 시늉을 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는 ‘우리’가 한 쪽 베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초생달이 떠 따라오고 있었어요.
2021. 12. 13
‘우리’는 두 다리를 까딱까딱하다가 어느새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고, 울림이는 가끔 지루한지 기지개를 켜는데, 이음이는 처음 앉은 그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 자세로 아빠 연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기타리스트 조대연 연주회가 있었어요. 홍동면 장곡리 ‘오누이다목적회관’에서 마을사람들을 모시고 열린 조촐하고 정겨운 음악회였어요. 독주가 끝나고 이어 아빠 황바람과 함께 세 사람이 연주하는 차례가 됐어요. ‘시네마천국’이란 영화음악이 흐르는데, 아빠 기타소리는 뒤늦게 나오고, 그 소리마저 가느단 빗소리나 벌레소리처럼 끊일 듯 말 듯 들려와 이음이를 무척 애태웠나봐요.
다음날 아침 아내를 만나자, 이음이는 아빠 (기타) 소리가 너무 작아 안타까웠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과 말소리를 생생하게 붙잡아 글로 쓸 수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아내가 아쉬워했어요. 아내는 개망초와 냉이 같은 풀꽃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아빠 기타소리는 대연이 삼촌 기타소리를 더 빛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역을 다해냈다고 이음이에게 말해 주었다고 해요. 물론 두 번째 함께하는 연주곡에선 아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기타소리가 먼저 나와 마을사람들의 큰 환호성과 함께 손뼉소리가 터지고 이음이 마음이 활짝 꽃 피어났겠지만요.
2021. 12. 24
엊그제 저녁에는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 마을활력소에서 열린 아카펠라 공연에 갔어요. 마을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는, 아직 이름도 정하지 않은 노래 모임인데, 성탄의 기쁨을 함께하고 한 해를 보내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마을사람들을 불렀어요. 손님은 서른 남짓 왔는데, 거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고, 늙은이는 아내와 나뿐이었어요. 노래를 하다 음정(?)이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부르고, 어설프고 소박한 그대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었어요.
1부, 2부가 끝날 때마다 경품행사가 있었는데, 경품으로 나온 선물은, 노래를 부르는 아홉 사람이 준비한, 저마다 사연이 있는 정성스러운 물건이었어요. 책이나 장난감, 손수 가꾼 채소 들이 있었는데, 가장 갖고 싶었던 선물은, 언제든지 부르면 그분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약속이 적힌 엽서였어요. ‘뭉게구름’ ‘수고했어, 오늘도’ … 내 무릎에 앉아 두 발을 까닥이는 ‘우리’와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는 이음이와 울림이. 홍동에 살아서 누리는 조촐한 기쁨이었어요.
2021. 12. 24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인데, 이음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할아버지 지금 어디 있냐?’고,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할아버지 먼 데 가서 저녁에 돌아온다고 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지금이 저녁이지.’ 하고 소리치는 ‘우리’ 목소리가 들려와요. 별일 없으면 이음이는 ‘우리’를 데리고 날마다 집으로 놀러 와요. 지금 놀러오고 싶다는 말일 거예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우리’가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별 따 줘.’ 라고 해요. ‘그래, 알았어.’ 라곤 했지만, 여간 걱정이 아니에요. 며칠전 ‘우리’가 크리스마스에는 별을 따는 것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만 알았어요. 별 따는 장대라도 준비해야 하는지, 기차를 타고 가며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 따라 생각이 흔들리고 있어요.
2021. 12. 25
아이들이 성탄 인사를 보내왔어요. 다행히 별은 ‘우리’가 딸 수 있다고 하네요. 오늘 만나면 별을 어떻게 따는지 물어 봐야 하겠어요. 또 ‘비밀이야.’ 하며 안 가르쳐 줄 수도 있겠지만요. 밖에 가루눈이 뿌리고 있어요. 아궁이에 장작 한 부섴을 넣으니 삼킬 듯이 빨아들여요.
할아버지 별 우리가 딸 수 있어서 안 따도 돼요. 선물 고마워요. -우리-
오늘 트리 만들었는데 못 보여줘서 다음에 보여 드릴게요. -울림-
머랭사탕도 고맙고 케이크도 고마운데 케이크에 있는 난쟁이 누가 먹어요? 나눠 먹어요? -이음-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도 메리크리스마스! -울림 이음 우리-
‘머랭사탕도 고맙고 케이크도 고마운데 케이크에 있는 난쟁이 누가 먹어요? 나눠 먹어요?’
엊저녁 아이들이 보낸 성탄 인사에서, 이음이가 한 말이 떠올라요. 엊그제인가 이음이와 ‘우리’가 집에 놀러왔어요. 아내가 사과를 깎아 주자, 이음이가 한두 입 먹더니 오른쪽 이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려요. 이가 썩었나 보구나 하니, 아니라고 새 이가 돋아나 아프다며 이럴 땐 얼음을 먹어야 한대요. ‘아이스크림을 줄까.’ 아내가 말하니, ‘아이스크림!’ 하고 곁에서 ‘우리’가 반가워해요. 장난말로 아이스크림은 이가 아플 때 먹는 거라고 하니, ‘우리’가 또박또박 말했어요. ‘아니야,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야.’ 라고. 아내는 아이스크림 대신 얼린 망고를 냉장고에서 꺼내 작은 접시 두 개에 나누어 주었는데, 쏟다 보니 이음이 그릇에는 수북이, ‘우리’ 그릇에는 너댓 개가 담겼어요. ‘우리’는 제 그릇에 담겨 있는 망고를 다 먹고는, 아직도 제법 남아 있는 이음이 그릇은 아예 넘보지 않고, 먹던 사과를 먹어요. 오늘은 느닷없이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달려와 문을 열어젖히더니 AA건전지를 여덟 개를 빌려 달래요. 서랍을 다 뒤지고 손전등에 있는 건전지를 빼내어 여덟 개를 맞췄어요. 문제는, 이 여덟 개를 어떻게 나누어 가져가는가예요. 알고보니 집에서 오면서 울림이 이음이는 세 개씩, ‘우리’는 두 개를 가져간다고 정하고 온 거예요. 셈을 아는 울림이와 이음이가 정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두 개를 주머니에 넣은 뒤, 안 흘리게 지퍼를 잠가 주니 기분 좋게 뒤따라 뛰어갔어요. 엄마는 늘 큰아이 울림이나 둘째 이음이나 막내 ‘우리’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는데, ‘우리’는 아직 셈을 모르는 듯해요. 물론 말로는 열까지 셀 줄 알지만요.
2021. 12. 30
‘우리’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몸을 잘못 가누어, 방바닥에서 엎드려 놀고 있는 이음이 머리에 부딪혔어요. 이음이는 아팠는지 얼른 일어나 주먹을 쥐고 ‘우리’ 어깻죽지를 때렸어요. 그렇게 끝났으면 됐는데, ‘우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고 자꾸 우기는 바람에 두 대나 더 맞았어요. 나도 이음이한테 맞아 봤는데 이음이 주먹이 꽤 맵거든요. 어제는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는 비행기 이름이, 내 귀에 들리기는, ‘수퍼이스’라고 하는 거예요. ‘수퍼이스?’ 라고 내가 따라 하니까 아니라고 해요. ‘스파이스?’ 그래도 아니라고 해요. 아무래도 잘 몰라서 이음이한테 물어보니까 ‘슈퍼윙스’라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한테 따라해보라면서 ‘슈•퍼•윙•스’라고 하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라고 몇 차례나 되풀이하면서 한 마디도 따라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울림이 이음이와는 달리 우직한 구석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