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나의 하루 피곤도를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가로 측정한다.
요 며칠은 측정은커녕 잠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놀라서 호다닥 깼다.
오늘은 아침일찍 아이들 등원하고 지원네 음식 받으러 가볍게 갔다가 또 한 시간 넘게 놀다 왔다.
다 같이 파자마 바람으로 만나서 수다 떨고 커피 마시고 그림 그리고 놀다가 정작 원래 목적인 음식을 두고 와서 오후에 다시 갔다 왔다. 예나 지금이나 덜렁거리는 건 똑 닮은 노자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집안일을 좀 하고 점심은 우리가 며칠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자연드림 사골라면을 끓여줬다. 어린이에게 라면을 끓여 주는 것이 양심에 여간 걸리는 일이 아니라서 미루고 또 미뤘는데 오늘은 결국 해주고 말았네. 나는 감자라면 먹으려고 반개만 끓여줬는데 나중에 더 먹고 싶어 해서 다음엔 한 개를 다 끓여 주겠다 약속했다. 라면 한 개를 다 먹을 수 있는 다섯 살 이라니. 넌 정말 놀라운 어린이야.
오늘은 어린이들을 일찍 하원하기로 마음먹고 2시에 학교에 갔다. 생협에서 쭈쭈바 하나씩 사들고 울림이 이음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다 같이 홍성도서관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 들어온 책들이 많아서 어린이들도 나도 신나게 책을 골라 잔뜩 빌려왔다. 홍성도서관은 작년부터 한 사람당 스무 권씩을 빌릴 수 있는데 네 사람 이름으로 거의 다 빌렸으니 족히 50권은 빌려 온 것 같다. 대부분 동화책과 만화책 이기 때문에 50권이라고 해도 일주일도 안돼서 다 본다. 책을 이렇게 잔뜩 빌려 놓으면 들고 올 때는 고생이지만 며칠은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다.
집에 와서 어린이들은 책 읽고 나는 못다 한 집안일을 다 하고 다시 홍동에 갔다.
저녁시간에는 웬만해선 나가는 일이 없는 우리 집 식구들인데 오랜만에 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어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런데 의사소통 불찰로 각자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고... 배가 고파 예민했던 나는 조금 화가 났지만 그런 엄마를 옆에서 열심히 보필해 주는 어린이들에게 감동받아(혹은 배가 좀 채워졌기 때문에) 금세 마음이 풀렸다(내가 단순한 건지 아이들이 똑똑한 건지). 밥을 다 먹고 나니 손님은 강의하는 시간이 되어 멀리서 눈인사만 하고, 그래도 오랜만에 이 시간에 나와 있는 것이 아쉬워 지원이 얼굴이나 잠깐 보러 뜰에 갔다. 요즘 뜰에서는 술만 팔고 있어서 맞은편 편의점에서 어린이 음료수와 과자를 사갔다. "저희 모구모구(음료수 이름) 한잔 하고 갈게여~" 씩씩하게 외치고 몇 분 기분만 좀 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이들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엄마가 하는 말을 척척 들어줘서 속으로 '이거 맥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다행히(?) 순수하게 엄마를 돕고 싶었던 어린이들이었기에 나는 또 감동을 받아 어린이들을 꼬옥 껴안아 주고 무사히 잠들었다.
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저 하루를 나열해 보기만 했는데도 또 한 바닥이 가득 찼다.
피곤에 쩔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돌아보니 또 사랑이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가볍게 한 줄만 써,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러기에 나는 매일 이렇게 받는 게 많은 사람이다. 이번생에 가볍게 살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