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드디어 생긴 아주아주 작은 여유. 이도 언제 깨질지 몰라. 언제 다시 폭풍쓰나미와 같은 육아가 시작 될 지 몰라 그동안 있었던 일들 기록이라도 하려 부랴부랴 왔다. 정말 이 작고 작은 여유가 생기기까지 얼마나 파라만장 했던가. 물론 아직 네버엔딩스토리라는 것이 함정...ㅠㅠ 그러므로 아직 그동안 밀린 일기를 쓰기는 힘들고 그동안 울림이랑 아웅다웅 하며 겪었던 일들을 얼른 기록 해 둬야지. 자, 그럼 파라만장했던 근 일주일간의 기록을 시작해 볼까나!(시작하기도 전에 눙무리....ㅠㅠ)
(-며칠 전 여기까지 쓰다 다시 폭풍 일상에 휘둘리다 이제야 다시 추스리고 적음)
2
그동안 정말 많은(힘겨웠던) 일들이 있었는데 그 많은 일들 중 당연 으뜸은 울림이의 성장과 모유수유였다. 그래서 조금은 길고, 조금은 지루 할 지 모르지만 그간 있었던 일 중 첫번째로 기록.
시작은 남편이 왔던 그 주 주말 부터인가? 울림이가 젖투정을 심하게 하면서 부터였다. 평소엔 잘 놀다가도 젖 먹을때만 되면 이상하리만큼 보채고 울고불고. 젖을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잠도 잘 못 잤다. 처음에는 또 도약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상하게 젖 먹을 때만 보채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자꾸 못 먹으니 걱정되고, 젖주는 나 역시 너무 힘들었다. 이가 나려고 그러나? 중이염에 걸렸나? 젖 투정 하는건가? 좀 굶겼다 먹어여야 하나? 자꾸 맞지도 않는 자가 진단만 하게 됐다.
울림이랑 그렇게 씨름 하다 결국 태어나 처음으로 한의원에 데리고 갔다. 지난번 문경이한테 추천 받았던 함소아 한의원. 맥도 집고 귀도보고 아무 이상 없는데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울림이가 울림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다는 것. 그 말에 가슴이 철렁. 선생님은 혼합수유를 할 것을 권했고, 우선 울림이 소화 기능을 돕는 증류(?) 한약 일주일치를 짓고 내 젖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산부인과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울어버렸다. 집으로 돌아 와서도 며칠은 울었던 것 같다. 아이들마다 성장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몸무게나 키나 그냥 수치에 불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동안 왜 신경을 못 써줬을까. 울림이의 성장 속도를 미리 잘 관찰 해 왔었다면 울림이도 덜 힘들고 잘 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왜 울림이 탓만 하고 있었나. 후회와 자책만 반복 될 뿐.
그렇게 괴로운 마음으로 내 젖, 그러니까 모유수유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산부인과를 찾으면서 또 한번 힘든 일이 찾아왔다. 모유수유를 상담해주는 산부인과가 없는 것. 내 개인적이 편견 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병원에 딱딱한, 혹은 쌀쌀맞은 분위기가 싫어 나름 고민하여 인권분만을 하는 병원, 여성병원 등을 찾아 이곳저곳 연락 했다. 하지만 다들 대충 대답해 주고 말거나, 그런 상담은 하지 않는다거나, 그곳에서는 그런 건 안 한다며 쌀쌀맞게 끊거나. 내 주변엔 대부분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 모유수유율이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울림이는 여전히 몸무게가 늘어나지 않고, 내 젖은 잘 먹지 못 하는데 이 문제를 상담할 곳이 이렇게나 없다니. 가뜩이나 힘든데 전화 넘어로 들려오는 쌀쌀맞은 목소리나 불친절한 목소리 들이 내 맘을 더 힘들게 했다.
그러다 겨우 모유수유를 권장하고 이와 관련된 상담을 해 준다는 익산의 제일산부인과를 찾았다. 바로 이 병원에 확인 전화를 하고 남편이랑 이 병원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이 병원에서 결국 내 젖 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젖 마사지와 막혀 있던 유구도 뚫고 약 처방까자 받아왔다(이 모든 과정을 겪기 까지 또 한번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것은 생략하고). 사실 다녀와서도 당장에 크게 변화 한 것도 없었고, 모든게 나의 문제 였다는 것이 밝혀지니 더 미안하고, 속상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원인을 알고나니 한결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일어난 문제에 대한 적절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울림이와 내가, 그리고 남편이 함께 노력하고 풀어내거나 풀어내지 못 한다 하더라도 그에 맞는 대안을 찾으면 되니까.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이유도 모르고 서로를 미워 하거나 원망하며 힘들어 하거나 지쳐 쓰러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3
그렇게 병원에 다녀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울림이의 성장곡선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젖 투정도 조금은 나아 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일주일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도 확실히 젖 양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이 몸무게가 거의 늘지 않았다며 결국 혼합수유를 권하신다. 남편과 나도 그간 고생하며 어느 정도 염두해 두고 있었던 일이기에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결국 돌아오는 길에 분유 한 통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밤 울림이가 내 젖을 먹고 모자라 할 때 하다 한 번씩 먹였다. 처음 분유를 타서 울림이에게 먹이는데 마음 한 켠이 씁쓸했지만, 그래도 이제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일 줄었으니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즐겁게 지낼 시간이 늘었으니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그동안 나 참 많이 노력했다고 다독여 줬다. 울림이가 젖 투정을 할 때부터 조산원에도 매일같이 전화하고, 주변에 모유수유를 하는 지인들에게 상담하기도 하고, 수수팥떡아이사랑(황금똥을 누는 아이)에 전화해서 상담해 보기도 하고, 이유식이나 과일도 열심히 먹이고, 젖 늘리려고 미역국이랑 밥이랑 한가득 먹고, 젖도 자주 물려야 잘 나온다고 우는 울림이 억지로 젖 물리고 먹인 뒤에는 또 짜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에 이어 울림이랑 나까지 감기에 걸려 얼마나 고생했는지. 힘들게 고생하고 무엇보다 잘 견딘. 나, 그리고 울림이에게도 수고했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4
그리하야 시작 된 혼합수유. 나의 혼합 수유 방법은 최대한 수유를 위주로 하고 여전히 젖 양을 늘리는데 힘쓰되 울림이가 젖을 먹고 난 뒤에도 부족해 하거나 허기져 할 때는 분유로 보충해 주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울림이가 배고파 하면 바로 젖을(양쪽 다) 물리고 부족해 할 경우 분유를(일반 아이들이 먹는 것의 절반? 혹은 절반 못 되게) 타서 먹이고 있다. 그리고 되도록 울림이에게 젖을 먹이고 난 후에는 곧바로 유축기로 짜주고. 이와 동시에 이유식과 과일 등 개월 수에 맞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열심히 머기면서 분유 먹는 횟수를 줄일 수 있도록 도울 계획.
5
이 일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몇 개월 부터 몇 개월까지는 이만큼 자라야 하고, 몇 개월 부터 몇 개월 까지는 저만큼 자라야 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의 범주에 내가 너무 연연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물론 중간에 아이가 아프거나 어떤 이상 증세를 보였다면 이야기가 달라 졌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혼합수유를 선택하게 된 것은, 지금 울림이와 나 사이의 문제는 울림이의 성장과 더불어 부족한 모유량의 문제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쪼록 앞으로 울림이 키우면서 이런 일이 수두룩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시 어머니가 이번 일로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 주시면서 마지막에 '그런데 해원아, 이제 시작이야...'라고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ㅎㅎ).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는 조금 더 견고하게, 뿌리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힘들 때 일 수록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