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축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에게 ‘운동장에 나와 같이 공 차자’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밖으로 나가 공은커녕 달리기조차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축구를 보면서도 은연중에 ‘축구는 보는 거지 뛰는 건 아니야’라며 선을 그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부터 내 이름 앞에 붙는 ‘애 엄마’이라는 수식어는 실로 고귀하면서도 무거워서 물리적으로나 인식적으로 수많은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는 잔가지를 쳐주고 나아갈 길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대신 ‘영역 밖의 일’에 쉽게 겁을 먹게 한다. 그래서 내가 직접 피치 위를 달리는 모습은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나를 TV 밖으로 이끌어 준건 매일 같이 뛰자 말하던 우리 집 어린이들도 아니고, 매 경기 골을 넣고 있던 손흥민 선수도 아니고, 골때녀 같은 TV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소식도 아닌 내가 알고 있던 동네 언니들이 여자 축구팀에 나가 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언니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심지어 애도 많은 언니들이었다. 속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요동쳤다. 내가 뛰진 않더라도 그 언니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갔다.
내가 지금 뛰고 있는 팀 ‘반반FC’는 면단위 작은 마을에 생겨난 여성축구팀이다. 2021년 여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2년쯤 되어간다. 우리 팀의 가장 큰 특징은 팀 훈련도 팀원들의 생활 반경도 모두 30분 안팎에서 해결된다는 거다. 주 경쟁 상대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활반경 안에 있는 동네사람들이다. 같은 동네 고등학교 여자축구부와 초등학교 축구부, 그리고 족구팀 아저씨들이다. 이들과의 매치가 우리 팀의 가장 큰 행사 이자 재미다. 이렇게 동네사람들과 하는 축구는 경기 후 공공장소에서 마주쳤을 때 주고받는 인사가 특징적인데. 뜨거운 경기를 했을 때와 차갑게 식어 있는 일상 사이의 커다란 갭 속에서 주고받는 인사란. 정말 뻘쭘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나는 내 자식의 친구와도 치고받으며 경기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들과 마주쳤을 때 그 복잡한 미묘한 심경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팀 이름 ‘반반FC’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사실 공식적인 의미를 두고 있진 않다. 한창 팀 이름을 정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몇 주 동안 뚜렷한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차에 팀원 중 한 사람(조조)이 강아지를 데려 왔고 그 강아지 이름이 ‘반반’이었다. 그 이름을 듣고 코치님이 “우리 팀 이름도 ‘반반’으로 하는 거 어때요?”라는 제안을 했고 다들 별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팀 이름이 정해졌다. 만약 그때 온 강아지 이름이 ‘바둑이’라던가 ‘방울이’였다면 바둑이FC 나 방울이FC가 됐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름을 정한 과정도 너무 우리다워서 웃음이 난다. 그래도 코치님은 남의 집 강아지 이름을 가져온 것이 마음에 좀 걸렸는지 그날 밤 이런 문자를 남겼다.
읽고 나니 왜 반반이 되었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하지만 코치님 특유의 화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또 웃음이 났다. 우리 코치님에게는 두 가지 화법이 있다. 하나는 ‘무슨 말인지 대략은 알겠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는’ 화법이고, 또 하나는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무슨 말 인지 모르겠는’ 화법이다. 어찌 됐든 말이 끝나면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가 생기는 화법인데, 요즘 팀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법을 코치님의 이름을 따와 ‘민웅화법’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마지막에 남는 그 물음표 때문에 재차 물어서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얼추 익숙해진 팀원들이 대신 요약정리를 해주거나 대충 알아듣고 알아서 움직인다.
별다른 의미 없이 만들어진 이름이지만 나는 속으로 혼자만의 의미를 만들어 두었다. ‘일상 반 축구 반’ 일상만 유지하다 축구를 잊어버리거나 축구에만 빠져 일상을 해치지 않고 반반씩 균형을 잘 이루는 것. 그것이 내가 축구인(?)이자 생활인으로서 축구와 나를 오래오래 사랑하며 지낼 수 있는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농 반X라는 말이 있듯이 나에게는 이제 반축 반X의 삶이 시작된 샘이다.
그러나 내가 그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올해는 축구와 글쓰기만 하겠어!"라고 다짐 하고는 일주일에 세 번 축구를 가고 한 달에 한 번 축구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이 상황이 좀 우습다. 준비하던 대회가 끝나 이제 다시 일주일에 한 번 축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축구하는 날은 나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무엇보다 같이 훈련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분해하던 그 순간들이 쌓여 우정이 싹트고 추억이 만들어졌다. ‘이제 공동체는 질렸어’ ‘더 이상 관계 속에서 나를 들어내기 싫어’ ‘혼자가 최고야’하며 숨으려고만 했던 내가 ‘우리는 함께여야 해’ ‘우리 팀이 최고야’를 외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정확하고 섬세한 관계는 아니지만 둥글고 뭉툭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 우정에 기대어 부끄러운 플레이를 하고 부끄러운 인성을 들켜 머리를 쥐어뜯어도 발걸음은 다시 운동장을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