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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날! 울림이와의 공식적인 첫 외출인데다 가족들을 만나고 맛있는 명절 음식 실컷 먹을 생각을 하니 몇일 전부터 기다려 졌다. 결혼하고 첫 명절 이었던 추석은 임신 말기였던 나를 배려해 주신 시부모님 덕에 서울에서 보냈고, 시댁에서 지내는 명절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밥을 먹고 청소 싹 하고 짐을 싸는데 시간이 꽤나 많이 걸렸다. 특히 짐 싸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요 작은 아기 하나 생겼다고 남편이랑 나랑 둘이 여행 갈 때 싸는 짐에 두 세배 이상의 짐이 생기다니 놀라웠다. 가까운 곳에 가기에 이런저런 짐을 더 챙기기도 했지만 기저귀, 옷, 손수건, 물티슈, 빨래 통 등 이런 저런 짐을 챙기다 보니 챙겨야 할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부랴부랴 짐싸고 청소하고 한참만에 드디어 출발!
우리 시부모님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하시고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 하시기 때문에 겨울에도 몹시 춥게 지내시 기로 소문이 자자 하다. 그런데 울림이 온다고 이틀 전 부터 난로에 불을 때고 처음으로 보일러까지 돌리셨단다. 남편은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로 겨울에 양말 벋고 지낸 게 처음이라며 연신 감탄하고, 중간에 놀러 온 환영삼촌도 이 집에 들어 오면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하신다. 아무쪼록 우리는 울림이 덕에 따뜻한 명절을 보냈다ㅎㅎ
오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신기술 발표하는 황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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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숯불구이를 저녁으로 냠냠 맛나게 먹고 울림이가 잠든 저녁 타임. 이런저런 과일들과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고구마를 구워먹으면서 어머니가 써 놓으신 육아 일기와 남편의 어린이시절 흔적들도 함께 봤다. 어릴적 남편이 썼던 편지와 일기들, 상장, 그림 등등 차곡차곡 꼼꼼히 보관하신 어머니. 지난 번에는 남편의 신생아시절 옹알이 하는 것 부터 어린이가 되어 터를 부르는 것 까지 녹음 해 두신것을 듣기도 했더랬지.
거의 첫 장에 두 돌이 다 되어서야 드디어 통잠을 잤다는 글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육아 일기는 주로 바람오빠, 해뜨리오빠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록 해 둔 것이 많았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언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자니 우리 울림이도 얼른 커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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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설 연휴의 시작. 아침 부터 자신의 장기를 선보이며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듬뿍 받는 우리의 황울림:)
할아버지랑도 잘 있고요
엄마랑 아침부터 쭈쭈쭈도 해요:)
그리고 본격적인 설 음식 준비 시작. 설 당일 우리집 식구들도 오기로 되어 음식도 두배로. 미리 주문해 두신 음식들을 꼼꼼히 펼치시는 시 어머니.
그리고 정성을 다해 떡을 써시는 시아버지.
아빠는 일광욕 하는 울림이 촬영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옆 동네 사는 환영삼촌과 선경이모가 왔다. 두 분도 일정이 있어 오래 있다 가지는 못 했지만 얼굴보니 참 좋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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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작은 삼촌과 도련님 도착. 너무나 맛있는 서천 우럭회를 먹으며 하하호호.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언제나 처럼 마을 취미실로 가 당구치고 탁구치고 으쌰으쌰
탁구치는 부부
첫째대 둘째 탁구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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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 아침. 정성스레 준비한 제사 음식을 꺼나 제삿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 후 떡국을 후루룩 챱챱. 명절엔 역시 먹는 재미. 하지만 난 이번 설에 먹어도 너~무 먹었다능ㅜ,ㅠ
처음으로 해뜨리 삼촌 품에 안겨 본 울림이. 아직은 해뜨리 삼촌도 울림이도 어색한 사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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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마치고 삼촌이 집으로 돌아 가신 후 얼마 안되어 우리집 식구들이 도착했다. 마침 생일이 하루 차이나는 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생신이 설날과 딱 겹쳐 또 다시 양가 총집합! 오자마자 울림이 한 번씩들 안아보고 서로를 반긴다. 점심 상 겸 만남의 술 상을 간단히 간단히 가지고 다같이 모여 앉아 새배와 덕담을 주고 받았다. 우리들만 새배 하는 것이 아쉬워 양가 부모님들 끼리도 맞절을 하신다. 그리고 그걸로 또 아쉬워 포옹까지. 아,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고 위하는 사돈이 어디있나. 이거슨 우리나라 결혼풍습계에 혁명과 같은 일. 이렇게 모든 식구들이 모여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내 평생 이보다 큰 자랑거리가 어디 있겠나 싶다.
울림이도 한 잔 할 텨?
맞절!
절만 하기 아쉬우니 다같이 포옹까지. (어? 엄마가 어디갔지?)
(울 엄마 요기잉네~?ㅋㅋㅋ)
'할아버지 울림이 한테 뽀뽀좀 해죠요' '면도를 안 했는데 괜찮나 모르겠네..'
아이고 우리 손주 우쮸쮸쮸~
할머니 배애 걸터 앉아 편하신 황울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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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본격적인 파뤼타임! 시 어머니는 양력 1월 11일, 아버지는 양력 11월 12일이 생신이시다. 아,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이 인연을 어찌할꼬. 그저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는 수 밖에;-) 설 맞이겸 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케잌, 그리고 기타와 잼배를 꺼냈다. 두 분다 오십대시니까 초는 다섯개만 꼿고 아버님의 감미롭고 흥겨운 축하 공연과 남편의 통쾌한 잼배소리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선물도 주고 받고. 하하호호다같이 모이면 늘 즐거운 우리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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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외 할아버지 품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황울림. 아, 이렇게 사진으로 오래 보고 있으니 울 아버지 참말로 멋지다. (이런말 하면 분명히 엄마가 질투 하겠지만) 역시 나의 오랜 이상형 아버지. 이젠 2등으로 밀리셨지만 너무 슬퍼 하지 말아요. 아버지에겐 저보다 이쁜 엄마가 있으니:-)
그리고 아침부터 시어머니 돋보기 안경 빌려 바느질 하는 엄마. 엄마도 시어머니도 이제 돋보기 안경 쓰실 나이가 되셨다.
저리가~ 뭐 이런걸 찍노~
아침으로는 부페식 비빔밥. 아침엔 비빔밥을 먹어야 겠다시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 각자 먹을 자기가 먹을 만큼 떠먹을 수 있도록 부페식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재안하니 흔쾌히 승락 해 주셨다. 먹을만큼 덜어 가니 남길 우려가 없어 좋고,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취향 껏 먹을 수 있으니 좋고, 밥프고 국프고 반찬 나를 일 없으니 좋고. 일석 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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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렸던 3박 4일간의 짧고 굵은 명절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마지막날 집에 오기 직전에 갑자기, 아주 불현듯 찾아온 치통만 빼고는 아주 즐거웠던 설 이었다. 어머니의 육아일기를 함께 보며 옛 추억을 되새기고,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주고받고, 생일 파티를 하고, 틈틈히 어머니 살림을 틈틈이 훔쳐(?)보고, 화로에서 군고구마를 계속해서 구워먹고 먹고.. 먹고... 먹으면서.(이제 시댁 식구들을 비롯한 시댁 친척 분들에게 까지 나는 '잘 먹는 애' '먹는거 좋아하는 애'로 완전히 소문났다. 앞으로 인사도 '오, 잘먹는 해원이 잘 있었어?'로 받게 될 것만 같다. 웃프다^_ㅠ)
이렇게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 후 늘 드는 생각은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는 거다. 친가, 시댁 식구들이 모두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가족들이 우리나라에 몇 이나 될까. 이렇게 손꼽아 명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며느리는 우리나라에 몇 이나 될까. 어렵고 힘든 일은 본인이 더 많이 하시려는 시어머니는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분명 어마어마하게 큰 덕을 쌓았을 전생에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년 설에는 울림이가 걸어다니고 뛰어다닐 것이다. 말도 엄마 아빠 정도는 하려나? 울림이 덕분에 매년 색다른 명절을 보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울림이의 동생들, 도련님의 아이들, 언젠가 지원이의 아이들도(...?) 다 같이 모이면 더욱 즐겁고 풍성한 명절을 보낼 수 있겠지. 이렇게 매년이 명절이 기다려 지니 참말로 조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