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곧장 며칠 전에 따 두었던 아카시아 꽃들을 다른 통에 옮겨두고 다시 새로운 아카시아 꽃들을 따러 달려간다.
울림이 등쌀에 못 이겨 또 이렇게 얼렁뚱땅 아카시아 효소를 담그고 있다.
옆에서 같이 하고 싶다는 이음이를 단칼에 거절하며 자기는 혼자서 해내고 싶기 때문에 같이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황울림(결국 따로 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웃기는 짬뽕이다.
2
오랜만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곧 출산을 앞둔 만삭의 오똥이 엄마 호지와 오똥이 아빠 빌궁. 만나자 만나자 하다 못 본지가 벌써 몇 개월...
이러다 애 나오겠다며 급 번개로 만났다. 배불뚝이 호지 직관을 손꼽아 기다려 온 나는 만나기 전부터 두근두근. 애기 낳기 전에 맛난 밥 한번 꼭 해주고 싶었는데 작은 목표 하나 달성한 것 같아 뿌듯했다.
오랜만에 집에 손님들이 와서 그랬는지 꼬박이들은 너무 신난 나머지 이상행동들을 마구 해댔다(울림이는 계속 이상한 연기를 했고 이음이는 이상한 몸짓을, 우리는 이상한 소리를 계속 내며 다녔다). 어린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해원이 같네 바람이 같네 하며 웃던 정신없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호지는 여전히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고, 빌궁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금세 삐졌다ㅋㅋㅋ 약 5년간 아직 대화 한 번 못해 본 '우리'와 빌궁이 언제쯤 첫 대화의 장을 열 것인지가 앞으로 우리 만남의 최대 관심사.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오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참 좋다.
지난 날의 어리숙하고 어설프고 모났던 모습을 지나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고, 이미 볼꼴 못볼꼴 다 본 것에대한 안도감도 있는 것 같다. 서로 만나서 많은 것을 하지 않았더라도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 함께하는 이 관계들이 참 따뜻하다.
3
어제는 가인이가 일하는 에코샵 홀씨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재밌는 물건들을 잔뜩 보내주었다.
루페, 나무피리, 새 피리, 스크레치, 손수건, 나무모형 맞추기 등등 엄청 여러 가지가 왔는데, 삼형제 답게 상자를 열어보자마자 분배부터 똑부러지게 하는 꼬박이들. 큰 형아 울림이가 나서서 세 개씩 들어 있는 것은 하나씩 나눠주고 개수가 맞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할지 논의할 수 있도록 의견을 묻는다. 다행히 그동안의 노하우가 쌓여서 그런지 큰 다툼 없이 알아서 척척 잘 나눴다.
가인이는 어린이들이 다 커버려서 재미 없어 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11살 울림이 포함 모두 취향 저격 당해 자기 전까지 신나게 놀았다. 오늘 아침에도 자기들끼리 일어나 책상 앞에서 스크레치 하고 만들기 하고 노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가인이모에게 감사를...
1 울림 : 엄마 피카소는 왜 유명해? 피카소 그림을 왜 좋아하는 거야? 엄마 : 글쎄... 어른이 되면 될수록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거든. 근데 피카소가 그걸 잘해서 그런거 아닐까?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해. 어른들은 아이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고, 아이들은 어른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잖아. 왜 그럴까? 울림 : 어른들은 아이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하고 아이들은 어른들 그림을 그리기 어려우니까? 엄마 : 자신들이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걸까? 울림 : 응 엄마 : 울림이는 어떤 그림이 좋아? 울림 : 나는~~ 내 그림!
자기애 참 강한 황울림ㅋㅋㅋ 나는 그런 네가 좋아. 오래오래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에게 몇 없는 부모로서의 바람이다.
2 이음이는 지난달 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이음이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작년에 함께 공연을 진행 했던 동연이 형: )
작년 동연이의 피아노 공연을 보며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이음이는 이후에도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학원을 보내야 하나 과외를 찾아봐야 하나, 학원을 보낸다면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과외 선생님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수십 가지 고민만 하다 몇 달을 흘려보냈다. 안 되겠다 싶어(+남편의 부추김으로) 동연이에게 상담을 하다가 직접 배우게 된 것. 다행히 이음이도 즐거워하고 두 사람을 이어준(?) 엄마도 뿌듯해하며(정작 동연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여튼) 행복하게 진행 중.
어제도 동연이 형네서 피아노를 치고 나오던 이음이는 "엄마 손가락이 간질간질해.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라며 설레어했다.
3 최근 나의 단짝이자 껌딱지 '우리'. '우리'는 요즘 바쁜 엄마를 따라다니느라 덩달아 바쁘다. 그래도 옆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며 기다려주는(혹은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우리'가 참 고맙다.
4 어제는 바깥 일정이 있어 멀리 다녀온 남편이 밤늦게 집에 들어오며 (웬일로)야식을 사 왔다. 고급진 새우 초밥이었는데, 저녁으로 먹다가 나와 울림이가 생각나서 싸왔다고. 집을 들어설 때부터 내가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뭐든 챙겨 오면 좋아함) 이미 뿌듯해져 있는 남편의 표정이 귀여웠다.
자꾸만 내 겨드랑이를 파고들더니 ‘우리’가 내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들었어요. 낮잠 잘 시간인데 울림와 이음이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니까 엉겁결에 따라온 듯해요. 이불을 덮어주고 가만히 무릎을 빼내어 베개를 베어주었어요. 하르르 꽃잎 한 장이 내려와 앉았을까.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고요한 숨결이 함박눈 내린 새벽 같아요. 한 시간 남짓 그렇게 잠들었을까. 짓궂게 울림이가 곁에 누워 끌어안고 볼을 만지니, ‘우리’가 깨어났어요. 금방 울먹이며 엄마를 찾아요. ‘엄마가 보고 싶구나.’ 두툼한 윗옷에 싸 안아 엄마에게 데려다 주었어요.
2021. 1. 19
부드러운 새의 속깃털이 날리는 듯하더니 가루눈이 뿌리고 눈연기로 하얗게 흩어져요. 소복히 쌓인 눈을 따라 아이들이 왔어요. 눈 위에 드러누웠다가 엎드려 헤엄치기도 하고, 끝내 ‘우리’는 눈을 먹었어요. 나는 부엌 창가에 기대어 그 광경을 훔쳐보고 있었어요.
2021. 1. 26
부산한 발길에 떠들썩한 목소리, 갑자기 언덕길이 환합니다. 밭에서 대나무로 엮은 낡은 꽃울타리를 뜯어내고 있는데, 울림이와 이음이가 언덕을 뛰어내려가고 있어요. 나는 짐짓 모른 체 ‘너희들 어디 가니?’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가던 걸음을 재촉하며 ‘아랫집 할아버지네.’ 하고 대답해요. 마치 남의 일처럼 ‘그렇구나.’ 하고 딴청을 부리며 하던 일을 계속하니, 이음이가 ‘할아버지는 옆집 할아버지, 텃밭 할아버지이잖아. 우린 아랫집 할아버지 집에 가.’ 하며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달려갑니다. 현관엔 아이들 신발이 나자빠져 뒹굴고 있겠지요. 아이들이 늘 눈부신 건 가슴에 빛덩이를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2021. 2. 1
아이들이 서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새해 인사하러 왔다고, 해뜨리 삼촌이 그린 그림과 함께 황금성 선생님이 보내준 사진이에요. 울림이 손에는 ‘책도 조금만 읽어라.’ 하는 할아버지 편지가 쥐어져 있네요. 울림이는 책에 폭 빠져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겐 서천 할아버지인 친할아버지와 강화도 할아버지인 외할아버지와 초롱산 할아버지인 아랫집 할아버지가 있어요.
2021. 2. 6
<어쩌구와 저쩌구가 경험하는 이상한 모험>은 다음 편에
<어쩌구와 저쩌구의 이상한 모험. 1
등장인물 : 어쩌구, 저쩌구, 달도맨(나쁨), 루로전기, 자장지, 가제영감
#1
저쩌구 : 어! 넌?
어쩌구 : 자장지. (아마 자장지를 가리키는 듯함)
#2
어쩌구와 저쩌구가 자장지에 함께 올라탔는데, 저쩌구만 타고 있고, 루로전기가 나타났어요.
울림이의 연재만화 ‘어쩌구와 저쩌구가 경험하는 이상한 모험’,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
2021. 2. 17
수북이 가루눈이 쌓이고 다시 겨울이 온 듯해요. 말긋말긋 꽃눈들은 맨몸으로 이 추위를 견디고 있겠지요. 숯으로 그린, 아이들 그림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궁이 불을 쬐고 있어요. 가운데가 물개를 그린 ‘우리’ 그림, 왼쪽 아래가 이음이 그림, 어쩌구 저쩌구를 그린 울림이 그림은 오른쪽에 있어요.
2021. 2. 20
눈밭에서 고라니처럼 소리 지르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뜰에 나온 나를 보자, 자빠질 듯 ‘우리’가 달려와, 언덕으로 이어진 마당 가장자리에 오똑 멈춰섰어요. ‘우리야!’ 하고 반갑게 소리쳐요. 내가 ‘우리’를 부를 땐 늘, 첫음절인 ‘우’를 높게 소리내지요.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우리’는 눈사람처럼 서서 아무말없이 나를 내려다봐요. 그러더니 팔을 내려 허벅지에 붙인 채 두 다리를 벌려요. 나도 따라 두 다리를 벌리고 ‘우리’ 흉내를 내자, 얼른 다리를 오무리고, 그런 채로 서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와 ‘우리’는 벌써 ‘배를 튼 사이’라 아무말 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아요. 며칠전 마당에서 놀다가 느닷없이 배를 보여달라잖아요. 내가 배를 보여주자, 우리도 웃옷을 걷어붙이고 배를 보여줬어요.
어제 그제는 아이들과 연을 날리며 놀았어요. 엊저녁 통나무 작업장에 올라가 날린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떠있는 매보다 높이 올라갔어요. 까마득히 올라갔다가는 끝내 세차게 굽이치는 바람에, 울림이 연은 얼레에 묶인 실이 풀리어 초롱산을 넘어가고, 이음이 연은 바위절벽 아래로 떨어져 높다란 나무에 걸렸지만요. 언제인가 연을 찾으러 초롱산에 올라가자고 약속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어요. 나에게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꽃이 지고 나서야 늘그막에 가슴에 피어나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꽃이에요.
2021. 2. 28
‘할아버진 손바닥에 바람을 일으켜 너희들을 쓰러뜨릴 수 있어.’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내자, 어디 해보라며 이음이가 먼저 내 앞에 떡 버티고 섭니다. 오른 손바닥을 펼친 뒤 가지껏 힘을 모아 앞으로 쫙 내뻗어 봅니다. 이음이는 꼼짝도 않습니다. 한 차례 더 해보지만, 딱 잘라 ‘봐, 안 되지.’ 하며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다음은 울림이 차례입니다. 나는 울림이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울림이만은 쓰러뜨릴 자신이 있습니다. 힘을 모으고 손을 뻗어 울림이 겨드랑이 가까이에 대자, 울림이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봤지, 너희들.’ 하며 큰소리쳐 보지만, 간지럼을 잘 타는 울림이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합니다. 다시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부챗살처럼 손을 펼쳐 파란 하늘에 매 일곱 마리를 띄우며, ‘할아버진 새들도 날게 할 수 있다.’고 하자, 이음이는 언제 보았는지 ‘아니잖아. 먼저 이렇게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고(하늘에 매가 나는 것을 보고) 나서 손을 들었잖아.’ 라며 통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엊그제는 공을 차다가 아이들에게 토네이도슛을 선보이겠다고 했습니다. 가끔 공이 휘는 바나나킥과 발로 마당을 차 흙바람을 일으켜 회오리슛을 자랑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무 빨라 축구공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어디 해 봐.’ 하는 아이들 앞에서, 공을 세워 놓은 채 힘껏 헛발질을 하곤, 앞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봐, 공이 안 보이잖아.’ 라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내 발 밑에 그대로 멈춰있는 공만 쳐다보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곤 나 혼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할아버지 얼굴 빨개지는 거 봐.’ 멀뚱멀뚱 아이들이 쳐다봅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와 놀아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집에서 쉬었다가 학교로 돌아간 우인기가 틀어준 노래를 듣습니다. 마룻바닥에 무겁게 갈아앉아 있던 공기가 날아올라 새털처럼 가볍게 떠다닙니다. 오늘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나뭇가지처럼 출렁입니다.
2021. 3. 1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부엌 창문 밖, 텃밭으로 오르는 언덕 오른쪽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집 임자가 살려고 손수 지은, 다락이 있는 이층 통나무집입니다. 오랫동안 세를 놓고 보살피지 않아 이제는 낡고 칙칙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집 왼쪽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물이 올라 연둣빛 바람이 일렁이는 듯합니다. 빛 바랜 거무스름한 통나무집이 산뜻한 연둣빛에 묻힐 듯한데, 버드나무 실가지가 한결같이 집 쪽으로 쏠리고, 집 전체가 부옇게 그렁그렁 눈물 속에 부풀어오르는 까닭은 그 곳에 울림이 이음이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 3. 3
‘얘들아, 어서 집에 가야지.’ 날이 어둑해져서 지나가듯 말을 꺼냈는데, 전혀 뜻밖에 ‘아직 안 깜깜하잖아.’ 하고 ‘우리’가 대꾸를 해요. 그저 아무말 없이 형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던 ‘우리’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에요. 그 말이 하도 귀여워, 손을 펴 ‘우리’ 눈을 가리고, 윗옷을 들춰 ‘우리’ 얼굴을 덮어씌워 어둡게 해보지만, ‘우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자꾸 안 깜깜하다고 해요. 점심 때가 되어,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하면, 밥 먹으러 가면 다시 못 논다며, 안 가려고 떼를 쓰던 울림이 이음이 생각이 나요. 아이들은 놀아도 놀아도 시간이 모자른 듯해요.
요즘 ‘우리’와는 하키 놀이 비슷한 걸 하며 놀아요. ‘우리’가 처음 시작한 놀이인데, 마당비로 작은 축구공을 쳐서 몰고다니는 거예요. 공이 굴러가면 그저 웃으며 따라가고, 아직 아무런 규칙이 없어요. 그러다가 마당을 벗어나 공이 비탈길을 내려가면 큰소리로 웃으며 데굴데굴 굴러가듯 따라가 주워오곤 하지요.
어젠 새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아내와 함께 배웅하러 나갔어요. ‘너희들, 못 놀아서 어떡하지?’ 하니,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갔다와서 마음껏 놀면 되지.’ 라며 환하게 소리쳐요.
2021. 3. 4
큰일났어요. ‘우리’가 나보고 밀차(손수레)를 사달라고 해요. ‘반들’이네 집에도 밀차가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고요. ‘반들’이는 ‘우리’ 친구예요. 그래서 밀차를 어디에다 쓰려느냐고 물으니까, 작은 축구공을 넣어둔대요. 빚을 내서라도 ‘우리’에게 노란 밀차 한 대를 뽑아줘야 하겠어요.
하나 더 일러바칠 게 있어요. 글쎄 어제 ‘우리’가 ‘이음이 바보!’라고 놀렸대요. 사연은 이래요. 나하고 ‘우리’는 마당에서 작은 축구공으로 하키 놀이를 하고, 어제따라 책벌레인 울림이는 ‘why’라는 책을 들고 와서는 폭 빠져있었어요. 이음이는 혼자 심심해서 나보고 축구를 하자더니, 데구루루 마루 밑으로 들어간 작은 축구공을 따라 들어가 공을 움켜쥔 채 꼼짝도 않고 있었거든요. 다행스럽게, 몇 번이나 ‘우리’가 ‘바보’라고 소리쳐도, ‘이음’이는 아무 대거리도 하지 않았어요.
2021. 3. 5
벌써 열흘이 지났나 봐요. 연이 잘 날지 않자, 울림이가 ‘아빠가 오면 잘 날 텐데...’ 라고 해요. ‘그럴 거야, 아빠는 무엇이든지 잘하니까.’ 라고 내가 말하자, 울림이는 ‘아빠(이름)는 바람이니까.’ 하며 배시시 웃어요. 괜히 내 말이 싱겁게 돼 버렸어요. ‘아빠가 화내면?’ 엊저녁 아궁이 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울림이가 꺼낸 말이에요. 그 때 마침 아이들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나는 또 잊고, 아이들 아빠가 화내는 모습을 잠깐 떠올려 보았는데, ‘토네이도’ 라며, 울림이와 이음이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아빠 이름을 가지고 놀아요. 아빠가 오면, 이음이도 울림이 형아도 아궁이 불도 할아버지네 집도 다 집어삼켜버린다며.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우리’가 ‘삼촌도(집어삼켜요.)!’ 라고 해요. 내가 ‘삼촌?’ 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도!’ 라고 하며, 대화에 끼어들어요. 아이들 아빠가 화내는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2021. 3. 7
오늘은 아이들과 ‘스무고개’가 아니라, ‘무한대고개’ 수수께끼 놀이를 했어요.
첫째 고개 : 우리 집에 있어?
울림이 : 없어.
둘째 고개 : 울림이 집에는 있는 거니?
울림이 : 없어.
셋째 고개 : 이 세상에 있기는 한 거니?
울림이 : 없어.
...
답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울림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진흙 덩어리’였어요.
울림이 :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릴 때 엄마 아빠와 친구였어요. (‘엄마 아빠를 닮아 할아버지도 잔소리가 많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나 : 왜?
울림이 :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요.
복수초 곁에 또 한 송이가 흙을 들추고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었어요. 흙을 들추었다기보다는, 복수초의 속삭임을 듣고 땅이 문을 열어준 것이겠지요.
2021. 3. 11
요즘은 ‘우리’에게도 짓궂게 장난을 쳐요. 마당에서 놀다가 ‘우리’가 넘어지면, 나는 부리나케 ‘이~오 이~오’ 구급차 소리를 내며 달려가지요. ‘우리’는 얼른 일어나며 ‘괜찮아요.’ 라고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하겠는데.’ 하며 놀려요. 그러면 아파서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울음을 삼키며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되풀이해요. ‘우리’는 병원에 가고,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하거든요. 내가 자꾸 놀려서인지, 어제는 내 뒤를 따라 오다가 넘어졌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며 혼자서 ‘괜찮아요.’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뒤돌아보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올해 네 살인데도, 몇 살이냐고 물으면 ‘세 살’이라고 우기는 ‘우리’. 네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가야 된다고 했는지, 엄마 곁에 꼭 붙어있고 싶어서 해가 지나도 ‘우리’는 영영 나이를 먹지 않아요.
2021. 3. 14
‘어디야? 어디야?’ 하고 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더니, ‘놀러갈래요.’ 하고는 전화가 끊깁니다. ‘우리’ 목소리입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잠바를 두 겹이나 껴입고, 엄마가 다듬어서 보냈을 머리핀 두 개를 꽂고 왔습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방안에서 지우 삼촌과 놀고,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해서 ‘우리’와 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초롱산 아래 통나무를 옮기는 커다란 크레인이 보입니다. 저기 가 볼까 하니, ‘우리’가 선뜻 따라나섭니다. 두발자전거를 끌고 끙끙대며 비탈길을 올라가니, 자동차 뒤꽁무니가 보입니다. ‘우찬이 아빠 차다.’(처음엔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 ‘우상’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제대로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어요.) 우찬이는 이음이 친구인데, 우찬이 아빠 차라는 걸 ‘우리’는 금방 알아챕니다.
며칠 전부터 우찬이네 집을 짓는다고 통나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름이 어른 손으로 두 뼘이나 되는 ‘더글라스 퍼’라는 아름드리나무를 기계톱으로 켜는 일입니다. 귀를 후벼파는 시끄러운 기계톱 소리, 눈보라처럼 날리는 톱밥. ‘우리’는 내 다리에 바싹 붙은 채, 오랫동안 뚫어지게 지켜보고 서있습니다. 문득 ‘캄펑의 개구쟁이’에 나오는 만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고무나무 숲에서 윙윙대는, 주석을 채취하는 준설기에서 나는 소리를 듣던, 만화 속 주인공. 어느새 나도 ‘라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우리’와 함께 서있습니다.
2021. 3. 15
아이들 말처럼 나는 이제 ‘늙은이’이어서 아이들만큼 높이 뛰거나 빨리 달리지 못해요. 놀이기구인 ‘방방’ 위에서 놀 때도,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웠거나 엎드려 있지요. 아이들은 내 둘레를 방방 뛰어다니다가 마치 나무 위를 오르듯 내 등을 타거나 내 목을 두 손으로 휘감고 놀지요. 링 위에서 레슬링을 할 때는, 울림이 혼자 편을 먹고, 나는 이음이와 ‘우리’와 한 편을 먹어요. 먼저 이음이가 나섰다가 힘에 부쳐 ‘터치’라 하며 내 손바닥을 치면 내가 나가 싸우고, 내가 힘들면 ‘우리’와 터치를 하지요. 고라니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울림이는 이제 아무도 상대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거나 두발자전거로 쏜살같이 내달릴 때도, 나는 길 한쪽에 비켜서서 서로 부딪치거나 비탈로 떨어지지 않도록 손짓을 하거나 크게 소리치는 일밖에 하는 일이 없지요.
울림이 이음이는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도 무엇이든지 혼자 힘으로 해 보겠다고 우겼어요. 톱질, 망치질, 도끼질,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까지도 끝내 저희들 손으로 해 보아야 직성이 풀려요. 그럴 때 나는 곁에서 조바심 치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형들을 닮았어요. 엊그제는 손가락에 붙인 밴드가 떨어져 새 것으로 붙여주겠다고 하니, 내 손을 밀치며 제 손으로 덕지덕지 감아놓더니 또 그 위에 약을 발라야 한다잖아요. 이제 ‘우리’는 혼자 외발손수레에 올라타기도 해요. 그러던 울림이가 이제 제 힘으로 되지 않을 땐 내게 부탁을 해요. ‘나무총’을 만들며 나무를 빗금으로 자르는 건 힘드니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더니, 어제는 나무 모서리에 못을 박아 달라고 가져왔어요. 남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만큼 울림이 마음이 성큼 커버렸어요. 땅에서 발을 뗀 채 바람처럼 내달리다가도 자전거 핸들이 삐뚤어질 땐 ‘할아버지’ 소리지르며 고쳐달라고 내게 뛰어오는 ‘우리’는 봄하늘이 안겨 오는 듯해요.
2021. 3. 16
집에 뛰어가더니, 울림이가 로봇자동차를 가지고 왔어요. 무선조종기로 전후좌우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차 앞에는 두 손이 달려 있어 물건을 집을 수도 있어요. 바퀴는 무한궤도(탱크 바퀴)로 가벼운 장애물도 뚫고 지나갈 수 있어요. 마당가에 있는 지하수 펌프 위 평평한 함석에 놓고 한 번 멋지게 선을 보이더니,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연결한 선을 빼어버려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음이와 ‘우리’가 어느만큼 거리를 둔 채 손으로 만지지도 않고 ‘나도 한 번 해 보겠다.’고 떼를 쓰지 않는거예요. 울림이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위엄까지 느껴졌어요. 그 위엄은, 이런 복잡한 기계를 조립할 수 있다는 울림이만의 자부심에서 오는 것 같았어요. 곁에서 보다 못해 ‘이음이와 우리도 해 보고 싶을 거야.’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요. 울림이는 뻐기듯 ‘집에 들어가서 해 줄 게.’ 하며,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안방 침대 위에서 먼저 ‘우리’에게, 나중에 이음이에게 어떻게 조종하는지 찬찬히 설명해주고 한 번씩 움직여 보게 해주었어요. 가끔 느끼지만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요. 그 질서는 아무리 동생 것이라도 남의 것을 만질 땐 꼭 허락을 받는 거예요.
요즘은 ‘우리’도 만화영화에 맛을 들여, 우리집에 오면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만화영화(보고 싶어요.)’ 라고 해요. 엄마는 못 보게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들이닥치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요. 만화영화를 보다가 초인종이 울리면 얼른 텔레비전을 끄고 시치미를 뚝 떼지만, 집에 가서 저희들이 먼저 털어놓거나, ‘우리’가 말을 배우고 난 뒤부터는 ‘형아들 뭐했어?’ 하고 엄마가 물어보면 ‘만화’라고 일러바치지요. 안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뒤로부터는, 허구한 날 텔레비전을 켜놓고 멍하니 죽치고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보면 마음이 사나워지는 것 같아 아예 텔레비전을 없애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울림이네처럼 빔프로젝트를 사서 가끔 영화를 보자는 것이었어요. 먼저 아이들에게 번지르르하게 자랑을 늘어놓았어요. 할아버지네는 너희 집보다 엄청 좋은 빔프로젝트를 사서 밤낮으로 틀어놓을 거라고.
아이들이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돈이 없지 않느냐고. 우물쭈물 내가 대답했지요. 초롱산에서 산삼을 캐거나, (지금도 어디에서 숨어서 자라고 있을) 댕구알버섯을 팔아서 사겠다고. 그러자 울림이가 조용히 말했어요. ‘그냥 싼 거 사.’ 라고 말이에요. 한껏 부풀려 놓았던 풍선이, 울림이가 툭 던진 그 한 마디로 탁 터져버렸어요. 엊그제는 아내와 빔프로젝트 사는 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아내는 너무 비싸니까 좀더 생각해보자 하고, 나는 기왕 사는 바에 제대로 된 것을 마련하자고 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울림이가 ‘질투 나서 그러는 거지.’ 라고 하잖아요. 울림이에게 또 한 방 얻어맞아 지금 나는 그로기(실신) 상태예요. 글쎄 내가 울림이네 집에 있는 걸 보고 시샘이 나서 덩달아 빔프로젝터를 산다는 거예요.
2021. 3. 17
울림 여자친구 이름을 아세요? 예, 맞아요. ‘안’이에요. 울림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반에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울림이는 ‘아니야.’라고 했어요. ‘안’이야라고? 그럼 여자친구 이름이 ‘안’이겠구나 하니, 아니라고 해서, 그래 ‘안’이라고. 울림이는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채 짜증을 내듯이 아니라잖아 라고 되풀이했어요. 가만히 물러설 내가 아니지요. 그래 ‘안’이라잖아. 울림이는 죽을상이었어요. 그렇게 되어 울림이 여자친구는 이 세상에 없는 ‘안’이 되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안’은 잘 있느냐고 짓궂게 물어봤지요. 이제 울림이는 삼학년으로 올라가고, 울림이와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는데, 엊그제 이음이와 놀다가 무슨 말 끝에 이음이가 속삭이듯 ‘아니(‘안’이)’는 울림이형 여자친구 이름이잖아 라고 하며 씩 웃어요. 아침에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눈물이 나도록 크게 웃었어요.
날이 끄무레해서인지 엊그제 저녁에는 아궁이에 불이 잘 들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앉기에는 비좁은 아궁이 앞에서 이음이가 나무 부스러기를 집어넣고 몽당비로 불을 부치고 하더니 죽어가던 불씨가 살아났어요. 이음이 너, 인디언 이름으로 ‘불을 살리는 자(사람)’라고 불러야 하겠구나 라고 했어요. 울림이가 오자, 이제부터 이음이 이름을 ‘불을 살리는 자’라고 부를 거라며, 이음이 이름은 오래 전에 까먹었다고 하니, 방금 할아버지가 이음이라고 했잖아 하며 울림이가 따져요. 나는 또 장난스럽게 하여튼 다시는 이음이란 이름은 안 부를 거라며 이음이라는 이름을 꺼냈어요. 비탈길에서 킥보드를 탈 때도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나는 더 크게 ‘불을 살리는 자’라고 외쳤어요. 울림이가 그 이름은 너무 길어 싫다고 해서 ‘불을 살리는 자, 불을 살리는 사람’을 줄여 ‘불사’라고 하니, 저희들끼리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가 좋니, ‘불사’가 좋니? 하다가, 정작 어둑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이음이가 나보고 ‘할아버지, 나는 이음이라고 불러.’ 라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어요.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지어 준 ‘이음’이란 이름이 좋은가 봐요.
2021. 3. 18
‘우리’가 도시락 가방을 메고 우리 집에 왔어요. 엄마가 아침 먹고 할아버지 집에 놀러가라니까 하도 섧게 울어서 할 수 없이 도시락을 싸보냈다고 해요. 그림책을 읽으며 빵과 햄과 딸기도 먹고 ‘붕놀이(장난감 자동차 놀이)’도 하다가 마당으로 나왔어요. 햇빛이 비치니 ‘우리’가 ‘아, 따뜻하다!’ 라고 해요. 자전거를 타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한 발을 핸들 위로 들어올리는데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졌어요. ‘다시 해 볼 까.’ 하고 ‘우리’ 오른발을 잡아 자전거 손잡이 위로 올려줘도 비틀거리며 다시 넘어져요. ‘아빠는 그렇게 탔는데.’ 라고 하니까, ‘응, 아빠도 그렇게 탔어.’ 라고 하더니, ‘그 건 안 돼.’ 하며 그만두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아빠는, ‘캄펑의 개구쟁이’라는 만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빠를 가리키는 거예요.
며칠전 ‘우리’와 함께 ‘캄펑의 개구쟁이’를 읽었는데, 만화 속에서 아빠가 두 다리를 핸들 위로 올리고 있는 모습(사진)이 떠올라 ‘우리’가 따라한 거예요. 갑자기 생각난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그 장면을 마음에 꼭 새겨두었을지 몰라요. 마늘밭에서 걷어낸 짚을 길가에 까는 것을 도와주다가, ‘할아버지 터널 봐.’ 라고 하더니,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내 목소리에 힘입어,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지나는 10m 남짓한 긴 시멘트 관을 아래에서 위로 기어올라왔어요. 나는 윗구멍에 얼굴을 들이밀고 잇달아 소리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아찔한 모험은 울림이 이음이도 여태껏 한 번도 도전하지 못한 거예요.
2021. 3. 19
학교에 갔다오자마자 가방을 멘 채 우리집으로 달려와 ‘연못놀이’를 하고 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호미를 가져다가 수국나무 아래에다 구덩이를 파고 ‘우리’는 조그만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와 퍼붓는 거예요. ‘야, 할아버지 밤에 가다가 연못이 빠지겠다.’ 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이음이 등에 꼭 붙어있는 어린이집 가방에는, 이음이가 삐뚤빼뚤 글씨를 쓴 동그란 이름표가 매달려 있어요. ‘ㅣㅇ음황’, ‘이’는 거꾸로 돌아앉아 ‘음’을 바라보고 있고’, ‘황’은 얼마나 크게 썼는지 ‘이음’을 끌어안고도 남아요.
뜰에는 이제막 무스까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어요. ‘얘들아, 이 꽃 이름이 뭐지?’ 울림이가 먼저 달려왔어요. 쭈그려 앉아 꽃을 보더니, ‘포도알꽃’이라고 하며, 이음이 도감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우겨요. 그러고 보니 보랏빛 작은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포도송이 같아요. 이음이는 알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귀에 담아 두고 있거든요. 입을 오물오물하더니 ‘미시까리!’ 라고 소리쳐요. 나는 얼른 이음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워담아, ‘봐, 이음이가 무스까리 라고 했잖아.’ 라며 ‘미시까리’를 무스까리라고 고쳐 말했어요. 울림이는 이음이가 ‘미시까리’라고 말했다고 우겨대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지. 저렇게 빼뚜름히 서서 말을 하면, 말이 입에서 나오다가 미끄러져서 무스까리가 미시까리가 될 수 있어.’ 라고 덩달아 우겨요. 그러면 ‘미숫가루’도 미끄러진 것이냐며, 울림이가 기가 찬 듯 웃으며 대들어요.
마침 아이들 아빠 차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어요. ‘야! 아빠다.’ 하더니 이음이가 뭐라는지 알아요. 아빠가 집에 온 건 우리가 한 시간 더 놀 수 있다는 뜻이라며, 말도 안 되는 뜻을 갖다 붙여요. 그러면서 이음이는 도끼질을 시작하고, 울림이는 대나무를 쪼개고, ‘우리’는 벌써 두 벌째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갔어요.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소리친 것도 꽤 오래됐어요. 아마 하룻밤이 지난 지금 아침에도 밖에 나가면 밤새 집에 가지 않고 아이들이 뛰놀고 있을 거예요.
2021. 3. 25
집에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아이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울림이, 이음이, ‘우리’ 차례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음이는 집에 갈게 하면서 장난스레 우리 집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고, 아쉬운 듯 벽돌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그제서야 일어섭니다. ‘우리’는 두발자전거를 끌고, 나 보고는 작은 축구공을 들고 오라고 해서, 나는 축구공을 볼모로 잡혀 따라갑니다. 집에 올라서자 ‘우리’는 그예 방방을 타고 가라며 나를 붙잡습니다. 빙글빙글 뛰어다니다가 엉금엉금 기어다니다가 그물 위에 드러눕습니다. 동쪽 하늘에 활 모양의 현(弦)을 엎어 놓은 것 같은 하현달이 떠있습니다. ‘아! 달이 떴네.’ 하니, ‘우리’가 ‘나무가 떴네.’ 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파란 하늘연못에 나무도 떠있습니다.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일어서면, ‘우리’가 밀어뜨기를 되풀이합니다. 창문을 열고 ‘우리’ 밥 먹어어야지 하고 소리치는 엄마에게, ‘우리’가 나를 안 보내줘요 라고 일러바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마당에 놓인 지붕 달린 자전거를 타고는, 이건 뭐고 이건 뭐고 이건 기름 넣는 거고 하며 고 조그만 입으로 재잘거리며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손으로 배를 가리키며 ‘할아버지도 기름 넣어야 해.’ 하니까 ‘아니야, 밥이야.’ 하더니, 그제사 나를 풀어주며 ‘안뇽!’ 이라고 합니다.
2021. 3. 26
‘우리’가 ‘자전거’라고 소리낼 때,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꽈리를 문 듯 입안 가득 몽글몽글 공기방울이 피어나, 마치 영화 속 부시맨이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렸어요. 아! 그 소리가 ‘자전거’를 뜻하는구나 하고 알았을 때도, 따라할 수도 없고, 새소리처럼 받아적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다 엊저녁에서야 제대로 알아들었어요. ‘우리’는 ‘자전거’를 ‘장겅거’라고 소리내요. 여린입천장소리인 ‘ㅇ’소리와 ‘ㄱ’ 소리가 네 차례나 이어지니, 입안 가득 동그라미를 물고 있는 듯 들린 거지요. 이제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해요. 어제는 괴물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괴물이 나타나서 돌도 던지고, 나무도 던지고, 할아버지 집도 던져서 괴물이 죽었는데, 할아버지 집 속에는 할아버지도 들어 있었다며 혼자 숨넘어가듯 크게 웃어요. 또 괴물을 만나 ‘메롱!’ 이라고 해서 괴물이 죽었는데, 내가 ‘괴물이 약올라서 죽었겠다.’ 라고 하니, 그 말은 무슨 뜻인지 몰라, 그건 아니라고 해요. 어제는 ‘어흥!’ 하며 내가 괴물이 되어, 혼자 집에 놀러온 ‘우리’와 온종일 ‘괴물놀이’를 했어요. ‘우리’가 신이 날 때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고 자전거를 달려요. 그러다가 가끔 풀숲으로 들어가기도 하지요. ‘우리’는 늘 파아란 하늘에 살고 있어요.
2021. 3. 31
나무를 하러간 사이에 벌써 두 차례나 ‘우리’한테서 전화가 와 있어요. 전화를 거니 ‘우리’가 받아요. 아침이면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놀고 싶어.’ 라고 하더니, 오늘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싶다고 해요. 부엌 창으로 내다보니, ‘우리’는 보이지 않고 현관 문이 소리 없이 열려요. 서둘러 나가 어서 오라고 맞이하니, 달려와 우리 식구들 품에 폭 안겨요. ‘우리’ 등에 매달려 온 가방에는, 장난감 자동차와 엄마가 싸서 보낸 도시락이 들어 있어요. 참(간식)으로 먹으라고 넣은 꿀을 섞은 옥수수 알갱이에요. 사진은, 내 신발 옆에 벗어 놓은 ‘우리’ 신발이에요. 이렇게 ‘우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2021. 4. 3
울림이 이음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에요. 엄마는 차에서 내리더니 뒤로 돌아가 뒷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를 번쩍 들어 내려요. 엄마가 텃밭 앞에 쭈그려 앉아요. 엄마 따라 ‘우리’도 엄마 곁에 쭈그려 앉아요. 때를 맞춰 지붕 너머에서 아침 햇살이 건너오고, 텃밭에는 이제막 새순들이 흙을 들추고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요. 엄마와 ‘우리’가 쪼르라니 앉아 있는 뒤쪽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듯 부옇게 흐려요. 요즘 내 가슴에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2021. 4. 6
저녁나절 마른 대나무를 쪼개 불쏘시개를 만드는데 ‘우리’가 왔어요. ‘모자 어딨어?’ 하고 묻자, 순간 ‘우리’가 어리둥절해 하는 듯했어요. 아침에 엄마를 뒤세우고, 살랑살랑 밝게 빛나는 녹둣빛 모자를 쓰고 ‘우리’가 걸어왔거든요. 모자를 가지고 한나절은 놀았어요. 눈이 안 보이게 푹 눌러 쓰고 자전거를 달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눌러 돼지코 흉내도 내고, 나무 꼬챙이에게도 모자를 씌워 주고, 내 모자 위에 ‘우리’ 모자를 덧씌우며 까르르 웃고, 그 모자를 쓰고 내가 만든 으아리 꽃울타리 밑을 ‘터널’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줄도 몰라요. ‘우리’에게는 자꾸자꾸 시간 가는 대로 이 세상 모든 게 낯설고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어른들은 지나간 시간에 얽매여 시큼털털한 것들을 곱씹고 사는데, ‘우리’는 나뭇가지에서 갓 따낸 싱그러운 ‘야생사과’ 한입 햇살 가득 베물고 있어요.
2021. 4. 7
엊그젠 이음이가 와서는 ‘할아버지 집에 오랜만에 왔지.’ 하길래, 얼떨결에 나도 ‘아, 그래! 그 동안 너희들 어디 먼 데 갔다 왔구나.’ 하며 장단을 맞춰 보지만 어딘가 어설프게만 느껴졌어요. 그러고 보니, 토요일 낮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아침엔 거미줄 같은 가랑비 어른거리고 하루종일 날씨가 궂었던 일요일 빼고 오늘(월요일) 왔으니 겨우 하루 우리 집에 오지 않은 거예요. 나는 겨우 ‘하루’라고 말하지만, 이음이게는 어쩌면 천 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지요. 이음이가 오랜만에 왔다고 말할 때, 나도 ‘할아버지도 이음이가 보고 싶어 그 새 폭삭 늙어버렸다.’고 하며 모자를 벗어 허옇게 센 머리를 보였주었으면 좋았으련만은, 이음이와 나는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듯해요. 하긴 온종일 부엌 창문으로 아이들 집만 바라보고 있으면, 보다못해 지우가 ‘아버지, 이젠 그만 쳐다봐요.’ 라며 안스러워 하니까요.
땔나무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쪼르르 달려와서 김밥 하나를 쥐어주고 갑니다. 다시 쪼르르 집으로 달려가더니 또 김밥 하나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잘 나눠 줍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젤리사탕 같은 것도 먼저 제 입에 하나 넣고 나에게도 하나 줍니다. 오늘은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마당에 놓인 긴 탁자 밑을 보더니, 호수 같다고 합니다. 무리진 토끼풀이 호수 물 같고, 띄엄띄엄 피어 있는 봄까치꽃이 연꽃 같아 참 예쁘다고 합니다. 그 너머에는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이 자갈 사이에 피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나비가 수선화꽃을 스치며 날개가 노란빛으로 물들었는지, 노랑나비가 날아가며 수선화 꽃잎을 노랗게 물들였는지 알 수 없는 맑게 갠 봄날입니다.
2021. 4. 8
처음에는 이음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할아버지, 꽃 모양을 보고 동쪽인지 남쪽인지 알 수 있는 나무 이름이 뭐지?’ 하고 물어볼 때였어요. 한참만에 생각이 떠올라 ‘아, 참나무. 참나무 가운데 단단한 상수리나무.’ 라고 대답했어요. 벌써 서너 달이 훌쩍 넘은 일이에요. 등산길을 내느라 벌목해 놓은 상수리나무 가지를 주워 와 톱으로 베고 있는데 아이들이 왔어요. 이렇게 촘촘한 곳은 겨울에 자라고, 성긴 곳은 여름에 자라났으며,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나이테를 보고 남쪽 북쪽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이테를 둘러싼 짙은 무늬가 마치 꽃잎인 듯 예뻤는데, 이음이는 제 마음속 나이테에 그 고운 꽃무늬를 깊게 새겨두었던 거예요. 요즘 울림이는 말수도 적어지고 건들건들 겉도는 것 같아, 어제는 ‘너, 사춘기지?’ 하니까, 아직 초등학교 삼학년이라서 ‘삼춘기’라며 제법 말을 가지고 놀아요. 언제가는 울림이 저는 부천에서 태어나서 ‘부처님(부천님)’이라며,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흉내를 내기도 하더니, 지금 그런 나이인가 봐요.
2021. 4. 9
‘우리’가 구들방에 들어가더니 책 한 권을 들고 와서는, 이 책 엄마 집에도 있다고 해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면 아랫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아이들 생일 때 엄마가 저희에게 선물한 거예요. ‘아, 그렇구나!’ 글씨도 모르는 ‘우리’가 저 나름대로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 같은 것을 보며 익혀 두었나 봐요. 오늘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울림이 자전거를 끌고 마을 저 아래까지 놀러갔어요. 논을 흙으로 메워 비닐하우스를 지은 터에 마사 흙이 내 키만큼 쌓여 있었어요. 미끄러지듯 올라가 내려오기를 수차례, ‘우리’와 나는 구름비행길 타고 날아가 몽골 고비에 서 있는 듯했어요. 마사 흙더미 아래 노랗게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자, ‘우리’가 ‘민들레꽃’이라고 또렷이 말해요. 누가 이름을 알려줬냐고 물어보니 그냥 알았대요. ‘민들레꽃이 나를 민들레라고 불러달라고 했구나.’ 하니, ‘응’이라고 대답해요. 오지 않으려는 ‘우리’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오며, 애기똥풀 꽃가지도 꺾어 보이고, ‘할아버지, 메롱!’ ‘우리, 메롱!’ 혀를 내밀며 놀았어요.
2021. 4. 10
‘우리’가 밀차(외발 손수레)를 몰고 다니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기기로 했어요. 곁에서 울림이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내 보내려고 그러냐고 물어요. 하긴 돌이 지나면서 밀차를 타고 다니고, 세 살부터는 손수 몰고 다녔으니까 그럴 만도 하네요. ‘우리’가 ‘빨간불이에요.’ 묻는 것은 파란불이어야 출발한다는 뜻이에요. 사진을 찍으려 하니, 운전 솜씨가 평소보다 영 서툴러요. 오늘도 ‘우리’가 저희 집으로 밀차를 몰고 갔어요. 밀차는 ‘우리’ 곁에서 하룻밤 행복하게 보낼 거예요.
2021. 4. 23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마을길을 내려갔습니다. 비탈이 가파른 곳은 발바닥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가고, 기울기가 느슨한 곳은 발을 땅에서 뗀 채 바람을 가르며 달려갑니다. 작은 다리를 지나 마을회관 쪽으로 가는데, 빈 밭에 쌓여 있는 흙무더기를 보자, 그리로 가보자고 하여 발길을 돌립니다. 걸어서도 올라가고 자전거를 끌고도 올라가선 미끄러지듯 내려옵니다. 그러다 자전거 오른쪽 바퀴가 빠졌습니다. 손으로 나사를 조여 보지만 다시 빠져, ‘우리’ 자전거는 내가 끌고간 울림이 자전거에 싣고, ‘우리’는 빠진 바퀴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도랑물 소리를 좋아합니다. 물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물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차가 지나가면 얼른 달려와 내 뒤에 섭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내 등뒤에 숨습니다. ‘아빠 차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가다가 ‘우리’를 보고 차를 멈춥니다. ‘아빠 차 타고 갈까?’ ‘우리’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럼 이따 만나.’ 하곤 아빠 차가 먼저 올라갑니다. ‘이따 만나.’ ‘이따 만나.’ ‘이따 만나.’ 아빠가 떠난 뒤, ‘우리’는 혼자서 높게 낮게 말의 가락을 바꿔가며, 아빠가 다정스레 건네던 말을 세 차례나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놀러왔어요. 가방 속에 넣어온 그림책을 꺼내 로봇자동차가 그려진 스티커 붙이는 놀이를 하다가, 내 핸드폰을 잠깐 달라고 해요.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이것저것을 누르며 ‘이 건 뭐야?’ ‘이 건 뭐야?’ 꼬치꼬치 캐묻더니, 사진을 눌러서 펼쳐 봐요 한 장 한 장 넘기더니, 지난번에 만화영화를 보며 먹던 과자 사진이 나오자 그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해요. 과자를 찾으러 다락에 올라갔는데, 마침 엄마가 ‘우리’를 데리러 왔어요. 엄마는 바깥에서 점심 약속이 있나 봐요. ‘우리’가 안 가려고 해요. 점심은 할아버지 집에서 먹으면 된대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고 해도 안 간대요. 엄마는 밖에 나가면 늦어질 텐데 걱정이라고 해요. 내가 나서서, 올 때 할아버지 아이스크림도 사 가지고 오라고 하니 그제야 엄마를 따라나서요. ‘우리’는 손가락 두 개를 펴더니 ‘두 개.’ 하더니,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요. 하나, 둘, (셋)까지 셀 줄 아는 ‘우리’에게 ‘다섯’은 엄청 많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엔 ‘하나’, ‘둘’, ‘(셋)’, 그리고 ‘많다’이니까요.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돌아올 땐, 할아버지 집에 먼저 들르자고 엄마한테 약속을 받아내더니, 차에 타고는 할아버지는 무슨 아이스크림이 좋은지 물어 봐요. 저녁 무렵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왔어요. 엄마가 깜빡 잊고 집으로 올라가려다, ‘우리’가 말을 해서 차를 돌려 할아버지 집으로 먼저 왔다고 해요. 나는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요. ‘우리’가 손에 쥐어준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먹고 있어요.
2021. 4. 24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나는 결코 그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를 왜 셋이나 낳았지.’ 하고요. 사실은 이래요. 그 날 ‘우리’는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보채고, 이음이는 나무 계단 위 내 곁에 앉아 동그란 나무 조각을 유리처럼 맨들맨들하게 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말했지요. ‘할아버지가 셋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우리와, 하나는 이음이와, 하나는 울림이와 놀아주게.’ 그러자 이음이가 ‘아이를 왜 셋이나 낳았지.’ 하고 먼저 말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보챌 때면 이음이 말이 재미있어 따라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엄마한테 가서는 할아버지가 그 말을 했다고 일러바치고, 엄마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장난이라고 말했다나요. ‘이실직고’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들 셋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울림이는 내 머리를, 이음이와 ‘우리’는 내 두 발을 잡아 들어올려 날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위를 떠다니게 하니까요. 출렁이는 방방 위에 누워 있을 때처럼요.
2021. 4. 25
오늘 하루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아침나절엔 아이들이 아빠와 방방을 뛰며 노는 모습을 한참동안 흐뭇이 지켜보았는데.
저물녘에도 방방을 뛰며 노는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자글자글하고, 밥 먹으라는 엄마 목소리도 스쳐갔는데.
금방이라도 금방이라도 ‘우리’가 저 언덕을 내려오면 가슴이 쿵쾅거리며 무너질 것만 같아, 지그시 손바닥으로 가슴을 누르고는 비껴서서 저녁 하늘을 본다.
잠 잘 때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우리’ 목소리가 자꾸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일하고 나서 놀자고 하면 ‘그래도, 그래도.’ 하며 달리기 시합을 먼저 하자고 하던.
2021. 5. 4
‘우리’가 가지고 노는 컵에는 영문자로 ‘나는 플라스틱이 아니에요’ 라고 적혀 있어요. 뒤쪽에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었다고 한글로 풀어놓았는데,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었다고 해요. 방방(트램펄린)에 올라와서는 컵에 담아온 자갈을 쏟아 버리더니, 콧등과 눈에, 입가에 컵 주둥이를 대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여요. 그러더니 바닥에 휙 던지고는 컵도 방방을 태워주고 축구공이라고 발로 차고 다니기도 하다가 컵 앞쪽 두 군데가 위아래로 찢어졌어요. 찢어진 두 쪽을 아래로 열어젖히더니 엘리베이터 문이라고 해요. ‘우리’가 벗어놓은 양말 두 짝을 태우자 문은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가요. 내가 크게 소리내어 층수를 세고, ‘우리’는 빨강 검정 짝짝이 양말 손님을 5층에다 13층에다 내려주곤 다시 내려와요. 지금도 궁금하기만 해요. 어떻게 엘리베이터가 컵 같은 통인 줄 알았을까요. 읍내 롯데마트에서 타 봤다고 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을 ‘우리’ 모습을 떠올려 봐요.
2021. 5. 5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은 울림이가 좋다고 해서 보게 됐어요. 202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으로, 며칠전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보았다는 영화에요. 할아버지도 보았다고 하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어요. 이음이는, 문어가 상어에게 물려 다리 하나가 뜯겨 나갔는데 그 곁에 다시 조그만 다리가 생겨 자라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 목소리가 가장 높고 빨라진 곳은 다시 상어가 문어를 공격하는 장면에서였어요. 문어는 마치 방패를 들고 선 것처럼 수없이 많은 빨판에 온갖 조개와 굴 껍데기를 붙여 몸을 숨기더니, 그래도 상어가 달려들자 어느새 몸을 피해 상어 등에 올라탄 거예요. 상어는 제 등 위에 달라붙어 있는 문어를 더는 공격할 수는 없었어요. 이 이야기를 할 적에는 아이들이 마치 저희들이 문어가 된 것처럼 볼이 발가스레 피어났어요. 문어가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는 엄마에게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은 암컷 문어가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어젯밤엔 아내와 함께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좀처럼 영화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아내가 참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해요. ‘이 눈은 언제 그치려나.’ 라고 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슴에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에요. 창밖엔 줄곧 세차게 봄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2021. 5. 12
‘우리’가 흙더미에서 기차놀이를 하다가 꿈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꿈에... 컴컴한데...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왔어.’ 이렇게 ‘우리’가 한 말을 적어 놓으니 짧기만 한데, 그 말을 들을 땐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내가 물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우리’는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무슨 까닭인지 ‘우리’는 대답을 않고, 꿈 이야기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어요. 전에 ‘우리’ 동무 ‘반들’이네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우리’가 말한 적이 있었어요. 엄마가 밥 먹으라고 ‘우리’를 불러요. 우리는 기차놀이하던, 움푹 파인 넓다란 흙구덩이를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 해요. 가만히 둘게, 밥 먹고 와서 놀아라고 하니까, 그래도 아쉬운지 흙 한 줌과 길쭉하고 네모난 돌멩이 기차를 들고 갔어요.
2021. 5. 22
엊그제 하루종일 비가 뿌리던 날, 아내가 고구마를 튀겨 아이들 집에 갖다 주러 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가 나와 ‘할머니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더라며, 그 말을 전하면서도 아내는 가슴이 설레는 듯했어요. 어제도 등에 자동차 장난감을 한 짐 지고 와 안방 침대에 쏟아 놓으며, ‘할아버지 집에 오고 싶었어.’ 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혼자 ‘붕(자동차)’을 운전하여 서천에도 가고 강화에도 가는 붕놀이를 했어요. ‘우리’ 눈빛에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버지가 보고 싶은 그리움이 가득 일렁여요.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꽃 지는 봄산처럼
꽃 진 봄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함민복 ‘마흔 번째 봄’
2021. 5. 23
오늘은 흙더미에서 ‘붕놀이’를 했어요. 마을로 내려가는 오른쪽 산기슭에 이음이 친구 ‘우찬’네가 집을 지어 이사를 오는데, 통나무집 짓는 게 궁금해서 ‘우리’한테 같이 내려가보자고 하니 안 가고 싶다고 해요. “‘우리’는 집 짓는 게 궁금하지도 않니?” 하고 따지듯 물어도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해요. 나도 물러서지 않고 잠깐만 보고 와서 ‘붕놀이’를 하자니까, ‘우리’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글쎄 ‘엄마가 찾을 수 있어.’ 라고 하잖아요. 엄마가 찾으면 가까이 있어야 하니까 멀리 가면 안 된다는 논리예요. 그 전에는 엄마가 몇 번이나 소리쳐 불러도 꿈쩍 않았는데, 한 마디로 가기 싫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우리’ 너, 저 번에는 할아버지와 집 짓는 거 보러 갔잖아 하고요.
우리 : 그 때는 크레인 보러 갔어.
나 : 지금도 크레인이 있잖아.
우리 : 지금은 안 움직이잖아. (이 말도 가기 싫다는 ‘뜻이에요.)
며칠전엔 ‘우리’네 베란다에서 같이 ‘붕놀이’를 하다가, 문득 집에 세워 둔 자전거가 생각났나 봐요. 언덕을 내려오며, “할머니, 할머니 집에 ‘우리’ 자전거 있어?” 하고 ‘우리’가 소리쳐요. 아내가 부러 ‘없어.’ 하고 딱 잘라 말하니까, ‘우리’가 혼잣말인 듯 ‘할머니가 지금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먼저 뛰어내려가요. 뒤따라 오며 그 말이 무척 귀엽게 느껴졌어요.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할머니 말은 틀렸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직 ‘ㄷ’ 발음과 ‘ㅈ’ 발음이 헷갈리게 들리지만은 ‘우리’는 제 생각과 느낌을 한껏 표현해 내요. 이음이는 ‘먹으는 거, 잡으는 거’를 거쳐 ‘먹는 거, 잡는 거’로 소리냈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먹는 거, 잡는 거’라고 소리내는 것도 달라요.
2021. 5. 25
이음이와 ‘우리’가 잠옷 바람으로 왔어요.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언덕길을 내달리고, 마당에서 물놀이 하고, 이제막 익기 시작한 오디를 따먹으며 바깥에서 한참 놀다가, 할머니를 보러 방에 들어갔어요 ‘야들 보소.’ 하는 말이 들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아내 배에 올라타고 목을 끌어안고, 할머니 어서 일어나라고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야단이에요. 한참 있다 조용해서 다시 들어가보니, ‘우리’는 아내 팔을 베고, 이음이는 침대 곁에 쭈그려 앉아 강아지 키우는 영상을 보고 있어요. 할머니 병문안 왔다더니 저러고들 있어요.
2021. 5. 31
‘우리야, 물 꼭 잠가.’ ‘우리야, 물 꼭 잠가.’ 하고 아내가 두 차례 되풀이하여 말하니까 ‘우리’가 물조리를 들고 달려가며. ‘물 꼬옥 잠갔어.’ 하며 ‘꼭’을 ‘꼬옥’으로 두음절 늘여 말해요. 엄마 생일 때였던가.’ 그그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해.’ 라고 쓴 울림이 편지가 떠올랐어요. 잠깐 ‘우리’가 보이지 않길래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진흙에서 놀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왔어요. 그러곤 또 붕놀이를 하재요. 흙더미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다가, 공을 차기고 하다가, 굴러가는 공을 따라 내려가 길가에서 오디를 따 먹기도 하다가, 아내와 함께 우찬이네 집 짓는 데까지 갔어요. 아직 기와를 얹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천으로 지붕을 덮어 이제 거의 집 모양을 갖추었어요.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집으로 올라오는데, 갈림길에서 아내가 ‘우리’에게 이제 엄마 집에 데려다 줄까 하고 물었어요. ‘아직 20분 안 됐어.’ 라며 ‘우리’는 더 놀다 가고 싶어 해요. ‘20분이 뭐야. 훨씬 지났는데.’ 하고 내가 말하니까. ‘우리’는 지금 40분이라고 해요. ‘우리’는 아직 40분밖에 안 지났다고 가기 싫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숫자를 잘 모르고 20분이 40분보다 훨씬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아내가 장난스레 ‘40분이 뭔데?’ 하고 물으니까, 조금 생각하다가 ‘비밀이야.’ 라고 말해요. 엄마나 형들한테 듣긴 했는데 ‘우리’는 40분이란 뜻을 저도 몰라 안 가르쳐 준다는 말일 거예요. 말을 조금씩 익혀가는 ‘우리’가 여간 사랑스럽지 않아요. 요즘은 ‘게임 중독’이란 말도 쓸 줄 알아요. 오늘 아침에도 내복 바람으로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기곤 붕놀이를 하러 밖에 나가재요.
2021. 6. 6
신현태 : 이제야 ‘우리’를 만나는구나!
이후란 : 니가 동화 속에 나오는 ‘우리’구나!
어제 아침 두 분 선생님이 초롱산에 들러 처음으로 ‘우리’를 만났어요. ‘우리’는 수줍어 고개를 숙이고 엄마 곁에 꼭 붙어 있었어요. 갑자기 현태 선생님은 차로 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왔어요. ‘칼림바Kalimba’라는 악기였어요. 선생님이 문방구에 들렀다가 ‘우리’ 생각이 나서 사둔 거래요. 손톱으로 튕겨서 소리내는 악기인데, 선생님은 어려서 양철을 오려 돌돌 말아 튕기며 이런 악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해요. 나중에 다시 엄마와 함께 ‘우리’, 울림이, 이음이가 집에 왔어요. 엄마가 갑자기 준비한 선물이라며, 종이에 무언가를 싸서 선생님께 건네 주었어요. 외할머니가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한 듯한 비누 공예품과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였어요. 나는 그 자동차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들을 학교에 배웅하러 갈 때에도 날마다 우리 집에 올 때에도 제 몸처럼 등에 붙어있는 가방에 소중히 모시고 다니는 거예요. ‘우리’도 선생님에게 제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주고 싶었던 거예요. 오늘 아침 아내가 말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듯 기뻤어.’
2021. 6. 8
제목 : ‘어차피 못 씻어!’
울림이와 이음이가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고 있어요. ‘우리’의 손가락과 손바닥, 입가에는 벌써 검보라빛 오딧물로 흥건히 물들었어요. 수돗가로 가더니 물을 틀어 비누를 잔뜩 칠하고 거품을 내며 손을 씻어요. 아무리 씻어도 금방 물든 오딧빛은 약간 바랜 채 그대로 남아 있어요. “‘우리’ 너, 어떡할거니? 엄마가 보면.” 하고 말하니, 엄마한테는 손을 안 보여 주겠다고 해요. 그래, 엄마한테는 놀다가 손이 없어졌다고 해라 하며, 다시 뽀득뽀득 손을 씻어 주고 입가도 닦아 주었어요. 조금 있다가 이음이가 수돗가로 달려가고, 뒤따라 무슨 말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누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 더구나 ‘우리’가 한 말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차피 못 씻어!’ ‘우리’가 이음이에게 소리친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짐작하겠어요. 저도 순간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씻어 봤자 오딧물이 안 지워지니 쓸모 없는 짓이란 뜻이었어요. ‘어차피 씻으나 마나야.’ 라는 말이겠지요. ‘어차피’란 말을 네 살짜리 아이가 쓴 것도 재미있지만, 조금 전 ‘우리’가 겪은 일을 이렇게 여섯 마디로 뭉뚱그려서 나타낸 게 놀라워요. 어차피 못 씻어!’ 그 자리에 알맞은 말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머릿속에서 제 힘껏 만든 문장이지요.
2021. 6. 9
‘우리’ 가방을 떠난 ‘붕(장난감 자동차)’은 지금 어디를 달려가고 있을까요. 청양을 지나 부여로, 저녁놀 가득 번지는 논산으로, 신현태 선생님 마음속으로 씽씽 달리고 있어요. 선생님이 보내온 글과 그림이에요. 어쩌면 ‘우리’가 겪는 첫번째 이별이었을 '붕카의 떠남'.....선물을 받았지만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잔잔히 남아있어요. "우리야! 붕카는 잘 있어요"~~
2021. 6. 10
‘모자를 한 것 같아.’ 지칭개 작은 꽃봉오리 앉은 무당벌레 를 보고 이음이가 한 말입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한테 앉고 싶다며 풀을 뽑고 있는 내 무릎에 앉습니다.
나 : ‘내 무릎에 모자를 했네.’
이음 : ‘그건 아니지. 머리에 해야지.’
나 : ‘그럼 이건 뭐라고 하지?’
이음 : ‘이건 합체한 거지.’
요즘 이음이는 어린이집에 잘 가지 않습니다. 형 울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곤 곧바로 우리 집으로 달려옵니다. 무릎에 앉힌 채, 요즘 형과 많이 싸우지 라고 묻자 처음엔 아니라고 하더니, 조금 싸운다고 합니다. 동생 우리는 자꾸 쫓아오고 형 울림이는 저 멀리 달아나고, 가운데에서 이음이는 제 나름대로 힘들어 하는 듯 보입니다. 개망초와 민들레도 서로 친척이라며 두 손을 다리는 꼭 붙여 움직이지 못하는 풀 흉내를 내거나, 공벌레 흉내를 내며 허리를 굽히는 이음는 여전히 귀엽습니다.
2021. 6. 18
어서 엄마는 집에 가라고 되뇌자 엄마는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집에 가서 혼자 펑펑 운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어요. 엄마는 혼자 집으로 가고 ‘우리’는 흙더미 위에서 붕놀이를 하며, 어두울 때까지 할아버지와 계속 놀자더니 잠은 엄마 곁에서 잔대요. 오늘 처음 ‘우리’를 무등(목말) 태워 주었어요. ‘우리’는 내 이마를 잡은 채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라고 속삭였어요. 잠깐 바람처럼 스쳐가는 ‘우리’ 말에 마음이 간지러웠어요.
2021. 6. 23
‘할아버지, 아픈 데 괜찮아졌어요?’
앞마당에서 소리치는 우렁찬 ‘우리’ 목소리는 서천할아버지를 닮았어요.
‘어, 괜찮아.’ 있는 힘껏 소리치자 ‘우리’는,
‘엄마, 엄마, 할아버지 괜찮대.’ 하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내일 (놀러) 갈게.’ 라고 해요. 그러더니, 울림이가 두 손에 이음이 신발을 신고 강아지처럼 기어서 내려오고, 이음이는 뒤쫓아 오고, ‘우리’는 구르듯이 작은 언덕길을 뛰어와요.
늘 그렇듯이 ‘우리’와 나는 붕놀이를 해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우리’가 내년에 어린이집에 간다고 해요. ‘우리’가 어린이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누구하고 놀지? 라고 하니, ‘우리’는 금방 마음을 바꿔 어린이집에 안 가고 할아버지와 논다고 해요.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 ‘우리’ 바지를 만지게 하며, 오늘은 기저귀를 안 차고 팬티를 입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해요. 일년 가운데 낮이 가장 긴 날, 낮과 밤 사이에 나는 ‘우리’와 함께 있었어요.
2021. 7. 6
텔레비전 속 만화영화에 빠진 이음이에게 슬그머니 장난을 치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음이가 너무 좋아.’ 하며, 앉아 있는 이음이를 부둥켜안고는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넘어지면서도 이음이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치 나를 타이르듯이 ‘나를 좋아하면 잘해 줘야지. 만화영화 볼 땐...’ 이라며, 만화영화 볼 땐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맥없이 이음이를 껴안은 손을 놓습니다. 이제는 이음이에게도 말이 밀립니다. 사진은, 아음이 할아버지가 보내주셨습니다.
2021. 7. 15
강아지를 보러 개집에 들어갈 땐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우리’는 요즘 형들과 붙어다니며 잘 놀고 있어요. 어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등이 가렵다고 긁어 달라고 해요. ‘업드렷!’ 하면, ‘우리’는 무릎을 꿇고 팔굽혀펴기하듯 엎드리고, 나는 옷속으로 ‘효자손’을 넣어 등을 긁어 주지요. 내가 손으로 긁어주려고 하면 꼭 등긁개(등긁이)로 긁어 달래요. 토돌토돌 땀띠가 난 듯한 등을 긁어 주다간 가끔 엉덩이도 긁어 주지요. 등이 시원해지면 곧 붕놀이가 시작 되고, ‘효자손’은 어느새 ‘우리’가 가장 아끼는 차 위로 올라가 ‘크레인’으로 변신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뭐라고 뭐라고 지껄여요. 나는 ‘우리’가 하는 말을 거의다 알아들어요. 아마 엄마와 형들, 아빠 다음으로 나는 ‘우리’와 가장 말이 잘 통할 거예요.
2021. 8. 29
아이들 집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풀을 깎고 있었어요. 뒤에서 차가 멈추더니 창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아이들이 소리를 쳐요. 몇 년만에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할 수 없어요. 어제도 밭에서 당근을 옮겨심고 무씨를 뿌릴 때 만났거든요.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엄마하고 도서관 나들이를 가나 봐요. 엄마 뒤에 앉은 ‘우리’는 자리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어요. 마치 천 년을 두고 앞에 서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던 바위의 눈빛 같았어요. 차는 미끄러져 내려가고, 얼마 있지 않으면 엄마와 함께 밤을 주우러 나올 아이들을 생각하며 밤나무 아래 칡덩굴이 엉킨 풀숲을 말끔히 깎았어요. 부엌 뜰에 이름 모를 풀꽃이 날아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커다란 잎과 몸집에 견주어 꽃은 작아요. 꽃은 파르스름하니 나팔꽃 같고 열매는 꽈리 같아요. 창문으로 아이들이 사는 집이 보여요. 세 아이가 소리치면 초롱산 골짜기는 마치 떠들썩한 교실에 들어선 듯해요.
2021. 9. 3
길을 쓸고 있는데, 아이들 집 쪽으로 올라가던 차가 멈췄어요. 먼저 엄마가 내리고 뒤따라 이음이와 ‘우리’가 내리더니, 반가이 ‘할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뛰어올라 왔어요. 가까이 와서 ‘우리’가 걸치고 있던 윗도리를 자꾸 벗으려고 하니, 이음이가 맨위에 채워져 있던 단추를 조심스레 끌러줘요. 아, 그러고 보니 윗옷을 벗어 한 손으로 빙빙 돌리고 올라오던 이음이 형처럼 따라 하고 싶었나 봐요. 요즈음 이음이는 어린이집엔 가지 않아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힘을 아껴두어야 한대요. 집에 들어오더니 ‘우리’가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더니 옥수수 냄새라고 해요. 아내가 갓 쪄낸 옥수수를 주니 그 자리에서 두 자루나 먹었어요. 그것도 키를 재어 가장 큰 것으로요. 저녁나절 엄마 카카오톡으로 사진 한 장이 날아왔어요. 어제 아침 집에 와서도 나무조각으로 집들을 지었는데, 기차가 다니는 정겨운 마을, ‘우리’가 꿈꾸는 마을일까요? 나는 사진을 받고 ‘우리’에게 답장을 썼어요.
‘우리’ 마음속엔 예쁜 마을이 도근도근 숨쉬고 있구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초롱산 기슭 백동마을(내가 사는 마을 이름)이야. 날마다 울림이 이음이 ‘우리’가 뛰노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얼굴도 볼 수 있으니까.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어 주어 고마워^^
2021. 9. 18
‘우리’가 문을 열고 나와 서있어요. 나는 ‘우리야!’ 하고 소리쳤어요. 뒤따라 이음이가 나오더니 ‘할아버지’ 하고 손을 흔들어요. 아이들을 보러 언덕을 뛰어 올라갔어요. 이윽고 책을 든 채 울림이가 나와요. 아직 엄마 아빠는 아무런 기척이 없어요. 마루 위에 놓인 접는 걸상에 앉으니, 그것은 작다며 ‘우리’가 큰 걸상을 가져와 펴 주어요. ‘우리’와 나란히 앉으니 세상이 참 예뻐 보여요. ‘여기서 바라보니 하늘이 참 곱구나.’ 라고 하니, ‘우리’가 ‘구름도 멋있어.’ 라고 되받아요. 내가 ‘우리’ 등을 긁어주고 있는데, 이음이가 내 손등을 만지며 왜 이렇게 꺼칠꺼칠하냐고 물어요. 늙어서 그렇다고 하니, 이음이가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 죽지 마.’ 라고 해요. 가슴이 아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이음이가 다시 할아버지는 형제가 몇인지 물어 봐요. 넷이라고 하니까, 그네를 타며 책을 읽고 있던 울림이가 형제가 많으면 좋지 라며 이야기에 끼어들어요.
얼떨결에 나는 할머니 형제는 아홉이라고 했어요. 그러자 울림이가 혼잣말로 ‘일병이, 이병이, 삼병이’ 라고 하잖아요. 나는 넘겨 짚어 ‘너, 윤구병 선생님을 알아?’ 하고 물으니, 아빠가 이야기해 주었다고 해요. 선생님 형제는 첫째가 윤일병, …, 아홉째가 윤구병이거든요. 할아버지는 변산반도에 윤구병 선생님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고 하니, 아빠한테 말한다고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아빠도 벌써 일어나 있었나 봐요.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해줄까 하며, ‘춥지도 덥지도 않는 어느 날…’ 하며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실은 엊그제 아이들과 함께 읽은 ‘팥빙수의 전설’이란 동화예요. 아이들은 다 알면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요. 나는 줄거리만 거칠게 이야기하는데, 곁에서 듣고 있는 이음이는 사이사이에 팥빙수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사를 정확히 이야기해요. 아직 글씨도 모르는 이음이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 기억하고 있는지 참 신기해요.
2021. 9. 19
일하다 쉬며 누워서 보는 아이들 집이에요. 오늘은 아침 일찍 아이들이 서천할아버지네 가서 집은 텅 비고, 가을볕에 자전거만 졸고 있어요. 아내는 아이들이 없으니 집에 향기가 사라졌다고 해요. 목화송이 부푸는 하늘은 파아랗기만 한데 입가엔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이란 노래가 맴돌아요.
2021. 9. 21
걸상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우리’가 내 무릎으로 올라오더니 내 눈가에 내 볼에 붙은 것을 떼어줍니다. 예초기로 언덕을 깎을 때 묻은 풀 부스러기입니다. 하나 하나 떼어주는 고 조그만 손가락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우리’와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걷기 전부터, 말을 배우기 전부터 내 손수레를 타고다녀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는 어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강화로 데리고 같습니다. 울림이 말로는 3박3일인데, 가는 날은 강화에 가서 자기만 해야 하니까 그런 셈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다시 초롱산은 고요 속으로 돌아가고, 이따금 풀벌레 소리만 가늘게 떨립니다.
2021. 9. 28
이야기 하나 ‘딸꾹질’
‘우리’가 침대 위를 기어다니며 ‘붕놀이’를 하고 있어요. 꼬물꼬물 발가락이 귀여워 뒤에서 양쪽 새끼발가락을 잡았는데, 뒤돌아 보며 그건 딸꾹질할 때 하는 거래요. 그 말이 귀여워 나는 계속 ‘우리’ 새끼발가락을 붙잡고, ‘우리, 너 지금 딸꾹질하고 있지?’ 하며 딸꾹질 놀이를 했어요. 밖에서 도토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이음이에게 ‘우리’가 들려 준 얘기를 하니, 그게 아니라고, 딸꾹질을 할 땐 새끼발가락이 아니라 새끼손가락을 꼭 눌러야 한다며, 서천에 사시는 친할머니가 가르쳐 주었다고 해요.
이야기 둘 ‘가여워’
‘가여워’
이음이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곁에서 놀고 있던 ‘우리’가 혼잣말처럼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가 ‘할아버지, 단이는 몇 번 결혼을 해?’ 하고 물어, 일년에 두 번이라고 하니, 이음이가 그 동안 단이가 나은 새끼가 엄청 많았겠다 라고 하던 때였어요. ‘우리’는 문득 올봄에 태어난 강아지들이 생각났나 봐요. 지금은 텅 빈, ‘우리’가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개집에 꼬물꼬물거리던 강아지가 가여웠던가 봐요.
이야기 셋 ‘오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뛰어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데, 길 아래 쪽을 쳐다보며 ‘우리’가 ‘오디가 열었나?’ 하는 거예요. 갑자기 오디 따먹던 생각이 났나 봐요. ‘오디는 (초)여름에 열어.’ 라고 대답하니, 여름이 언제냐고 다시 물어, 더울 때라고 하니, ‘우리’는 지금 덥다고 해요. ‘야, 니가 덥다고 오디가 열리냐.’ 하고 놀리니, ‘우리’도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려요.
이야기 넷 ‘오줌 멀리 누기’
며칠 전에 ‘우리’가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언덕으로 데려가니, 자꾸 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동안 변기에 앉아서 눠서 그랬나 봐요. 오줌은 서서 이렇게 누는 거야 라고 가르쳐 주며, 울림이와 이음이와 할아버지는 누가 멀리 오줌을 누나 내기를 했다는 얘기도 들려 줬어요. 이제는 오줌이 마려우면 쉬 마렵다며 내 바지를 잡아 끌고가서는 둘이서 누가 멀리 누나 내기를 하지요. 엊저녁엔 넷이서 오줌 누기 시합을 했어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멀리 누려고 물을 잔뜩 마시고 참느라고 난리였어요.
2021. 9. 29
이음이 한글 배우기 1
‘이음이 한글 가르치기’란 말보다 ‘이음이 한글 배우기’라는 말이 어울릴 듯해요. 어차피(‘우리’가 쓰는 말) 한글은 이음이가 배우기 때문이지요. 며칠전 엄마가 와서 이음이가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해요. 아이들이 그림과 글자로 일기를 쓰는데, 이음이도 울림이 형처럼 글씨로 적어 보고 싶다고 한대요. 이음이가 배우고 싶다면 한 번 가르쳐 보겠다고 선뜻 대답했어요. 나도 내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까지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이음이가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글자는 ‘이, 음, 우, 유, 두’ 다섯 개예요. 나는 ‘가, 나, 다, 라 …’부터가 아니라, 이음이가 알고 있는 글자로부터 한글을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유’는 우유갑에서 날마다 봐서 저도 모르게 익히게 되었다고 해요. 나는 먼저 이음이가 모르는 ‘으’이라는 글자를 적어 읽어 보라고 했어요. ‘음’이라는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가 한 소리 ‘음’으로 뭉뚱그려진 것이 아니라, 낱낱의 소리 ‘으’ 소리(모음)와 ‘ㅁ’ 소리(자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에다 ‘ㅁ’을 붙인 ‘임’이라는 글자를 읽어 보라고 하니, 금방 ‘임’이라고 소리내며, ‘이런 거야!’ 하며 이음이도 놀라워 했어요. 나는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는 일이 글자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한글이라는 틀, 동시에 우리말의 틀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21. 9. 30
엄마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어요. 한쪽에는 이음이가, 또 한쪽에는 ‘우리’가 볼펜으로 그려넣은 예쁜 문신이에요. 엄마가 두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줄 때, 엄마 얼굴에는 뿌듯해 하는 느낌이 묻어났어요. 문득 지우가 병설유치원에 다닐 때 만들어 준 카네이션이 생각났어요. 삐뚤빼뚤 종이를 오려 만든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가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나는 내가 퍽 자랑스러웠어요. 사진은 우리 집 강생이들이에요. 비가 그치고 살짝 부푼 듯한 파란 하늘을 매 한 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천천히 돌고 있어요.
2021. 10. 2
“‘우리’는 세 살이야.”
묻지도 않았는데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가 말했어요. 나는 얼른 알아채고 “‘우리’는 내년에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구나.” 라고 하니, 풀죽은 목소리로 ‘응’이라고 해요. ‘우리’는 올해 네 살이고, 내년에는 다섯 살이거든요. “‘우리’는 엄마가 좋지. 엄마 곁에 있고 싶지.” 라고 이어 말하니, ‘우리’가 속삭이듯이 ‘할아버지, 좋아!’ 하며, 엎드려 기어와 조그만 두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져요. 내가 ‘우리’ 마음을 보듬어 주어서 그런가 봐요.
오늘은 집 둘레길을 세 바퀴 돌았어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나는 걸어서요. 가다가 풀섶에 밤이 떨어졌나 살피기도 하고, 자동차 바퀴에 밟혀 뭉그러진 도토리도 주워서 만져보고, 빠알갛고 마알간 넝쿨 열매도 따서 맛보고, 너무 시어서 같이 퉤퉤 뱉고, 미국자리공 열매를 으깨서 검보랏빛 물이 든 손가락을 치켜들고 ‘아이고, 무서버라(무서워라)’ 놀이도 했어요.
2021. 10. 3
엊그제 ‘우리’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수줍게 “‘우리’는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했을 때, 마치 사랑의 고백을 듣는 듯했어요. 어젯밤에는 울림이네 풀밭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닥불놀이을 했어요. 불가에 둘러앉아 한참 놀고 있는데, 아빠 곁에 앉아있던 ‘우리’가 아빠에게 “‘우리’는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말했어요. 아빠는 ‘우리’는 왜 할아버지만 좋아? 우리 가족 모두 좋지 라는 뜻으로 말을 고쳐주었어요. 그러자 얼른 ‘우리’는 아빠도 좋고, 울림이 이음이 형도, 삼촌 할머니도 다 좋아 라고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왔어요.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엄마를 빠뜨렸어요. 아빠가 ‘엄마는?’ 하니까 그제사 ‘아! 엄마도 좋아.’ 라고 서둘러 말했어요. 아빠는 한 가지 잊은 게 있어요. ‘우리’가 할아버지가 좋아 라고 말할 때 ‘우리’ 속에는 이미, ‘우리’가 좋아하는 아빠 엄마, 울림이 이음이 형,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지원이 이모가 들어있다는 사실을요.
2021. 10. 8
이음 : 할아버지가 지리산에 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없었지?
나 : 음, 한 살쯤이었을까, 엄마 뱃속에 있었을까?
이음 : 아, 애기씨로. … 근데 그 때 내 생각은 있었을까?
이음이는 묻고 있어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지금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에 묻혀 썩지만 마음(생각)은 죽지 않고 살아 다른 옷(몸)을 입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해 주었어요.
나 : 이음이는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 다시 태어날거야.
이음 : 할아버지도 좋은 곳에 갈거야.
나 : 자꾸 자꾸 다시 태어나다가 아주 아주 착해지면 빛처럼 환해져서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아.
이음 : 부처님처럼.
나 : 응.
일곱 살 이음이와 네 살 ‘우리’가 그린 그림이에요. 울림이가 일곱 살이고, 이음이가 네 살 때 그린 그림과 거의 비슷해요. 요즘 ‘우리’는 달팽이를 제법 잘 그리는데, 더듬이는 꼭 세 개를 그려넣어요.
2021. 10. 10
이제 나는 아랫집 할아버지일뿐 더는 이음이와 울림이 친구가 아니에요. 요즘 이음이와 울림이는 집에 오면 ‘지우 삼촌’만 찾아요. 인터넷 게임을 알고나서부터는요. 지난번 이음이보고 ‘할아버지, 이음이 친구지?’ 하고 말하니, 이음이가 ‘그럴리가 있어? 할아버지이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봐서 괜히 머쓱했어요. 엄마가 불러 울림이와 이음이는 밥 먹으러 가고, ‘우리’만 남아 나보고 집에 바래다 달래요. 닭이 닭장에서 꼬꼬 소리내서 무섭다나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고, 나는 터덜터덜 뒤따라갑니다. 내가 ‘터덜터덜’ 입으로 소리내고 가면, ‘우리’는 그 말이 우스운가 봅니다. 집에 가선 장난감을 마당에 놓고 왔다고 해서 되돌아와 다시 가는데, 언덕 도랑에 가로질러 놓은 다리까지 배웅해준다고 하니까 개미가 있어 무섭다고 해요. 맨날 다니는 길이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집까지 같이 가자는 이야기이지요. 나는 나이를 먹지 않고 늘 네 살에 늘 머물러 있는 듯해요. 네 살인 ‘우리’하고만 친구 사이이니까요. 달팽이 그림은 ‘우리’ 수첩에서 옮겨왔어요.
2021. 10. 15
이음이가 드디어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어요. 며칠 전 거추장스러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자전거 뒤를 서너 차례 잡아주었는데, 엊그제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 50m남짓 달려갔어요. 이음이는, 내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어떻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는지 자세히 알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 준 지 두 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재미있어 해요. 이음이도 자전거를 나처럼 배웠어요. 뒤에서 자전거 꽁무니를 잡고 따라가가다 슬그머니 손을 놓고는, ‘이음아, 할아버지 손 놓았어.’ 하면 이음이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몇 바퀴 못 가고 넘어졌어요. 몇 번 넘어지곤 하다가 ‘할아버지, 이제 잡지 말아 봐.’ 라고 말하곤 혼자 내달렸던 거예요. 이음이 스스로도 대견한지 소리없이 흐뭇이 웃었어요. 넘어질 땐 자전거와 함께 땅에 나뒹굴어서, 자전거 탈 땐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말을 하며, 지리산에 살 때 신현태 선생님이 지게를 질 때는 지게를 벗어 나뭇짐을 부리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안장이 높아 혼자 올라탈 수는 없지만, 이제 멈출 때는 사뿐히 뛰어내릴 줄도 알아요. 이음이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그림은, 울림이 만화 속 주인공들이에요.
2021. 10. 20
올 들어 첫추위가 찾아온 날 금당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들이를 갔어요. 엄마는 빨래를 널고 온다고 해서, 우리 먼저 지우 삼촌 차를 타고 떠났어요. ‘우리’는 앞자리 할아버지 무릎에 앉고, 울림이와 이음이는 뒷자리 할머니 곁에 앉았어요. 마치 햇살 반짝이며 시냇물 흘러가듯 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마을길을 내려갔어요. 학교에 닿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텅빈 운동장을 내달리고 놀이터에서 한참이나 놀았어요. 얼마전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엄마는 혼자 공 모는 연습을 하고, 삼촌은 농구를 하고, 할머니는 꽃씨를 모으다가 잔디밭에서 은행을 주웠어요. 나중엔 편을 갈라 축구를 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음이가 같은 편을 먹고, 울림이는 삼촌과 엄마와 한 편이 됐어요. 울림이가 공을 몰고 오자 할아버지가 울림이 몸을 잡아 넘어뜨리며 반칙을 했지만, 공은 또르르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끝내는 2대2로 비겼어요. 엄마가 싸온 참(간식)을 먹고, 돌아올 무렵에는 시이소와 미끄럼틀을 타고 나란히 앉아 그네도 탔어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유난히 파아란, 엄마가 깨끗이 빨아 널은(넌) 눈부신 하늘을 보며, ‘우리’와 할아버지는 더 오래토록 엄청 늦게까지 놀고 싶었어요.
2021. 10. 22
틀림없이 ‘찝게(집게)’라고 들렸어요. 나뿐 아니라 아내 귀에까지도요. ‘우리’가 고구마를 캐는데 밭에 올라와서는 ‘할아버지, 찝게.’ 라고 소리쳤거든요. 갑자기 무슨 찝게일까 하는데 ‘찝게 먹어.’ 라고 해서, ‘우리’ 뒤를 따라가면서도 혹시 ‘쥬스’라고 한 말을 잘못 들었나 했어요. 그런데 내려가보니 ‘식혜’였어요. 식혜를 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고 한 거예요. 식혜 한 깡통을 따서 나눠 마시며 ‘할아버지는 찝게라고 한 줄 알았어.’ 라고 하니까, ‘당연히 찝게는 아니지.’ 라며 딱 잘라 말해요. 아직도 나는 ‘우리’가 소리내는 ‘ㅅ(ㅆ), ㄷ(ㄸ), ㅈ(ㅉ)’ 들은 잘 가려내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식혜’라는 말은 모를 거라는 생각이 굳어져 안 들렸는지도 몰라요. 마치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 가운데 ‘숙주나물’이나 ‘고사리’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2021. 10. 25
‘뛰어다니는 풀’
울림이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와서 ‘뛰어다니는 풀’이라고 해요. 나는 금방 알아들었어요. ‘메뚜기구나!’ 라고 하니, 손가락 사이에 낀 메뚜기를 보여주며, 벼메뚜기라고 해요. 한참 지나, 울림이 이음이와 같이 마을길을 올라오며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메뚜기를 뛰어다니는 풀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풀도 푸른 빛깔을 띠고 메뚜기 푸른 빛깔을 띠고, 메뚜기는 풀 조각이 뛰어다니는 것 같아.’ 라고 하니까, 울림이 저도 그렇게 똑같이 생각했다고 해요. 푸르고 맑은 바랭이풀 영혼이 벼메뚜기로 옮아가는 신비로운 순간을 나와 울림이가 함께 본 거예요.
사진은 울림이(위)와 이음이(아래)가 벽돌에 숯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2021. 10. 26
‘자석의 탄생’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자석을 서로 가지려고 다투었어요.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자석을 내다버리려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다 넣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마음이 약해 자석이 탄생했어요. 이음이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마음 약한 엄마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던 자석이 다시 태어난 것이지요. 아, 이럴 때 ‘탄생’이란 말을 쓰는구나! 이음이에게서 탄생이란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어요.
뒷이야기
‘아이고! 아깝다. 할아버지 같으면 자석을 멀리 던져버렸을 텐데.’ 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여서 던지는 척하다가 돌려줄 걸.’ 이라고 이음이가 말했어요. 나중에 학교에서 돌아온 울림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니, 할아버지는 자석을 더 많이 사주었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사진은, 이음이가 그린 이음이네 집이에요.
2021. 10. 27
이음이 한글 배우기 2 ‘감’의 탄생
오랜만에 이음이가 한글을 배우러 왔어요. 며칠전에 지나가는 말로 ‘우리’라는 글자를 쓸 수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먼저 이음이한테 아는 글자를 적어 보라고 했어요. ‘리, 으, 응, 우, 유, 야, 아, 음, 움, 어, 이’ 열한 자인데, ‘리, 응, 움’은 이음이가 새로 알게 된 글자이고, ‘리’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거꾸로 써 놓았어요. 이음이는 동그라미 ‘ㅇ’이 없는 ‘ㅣ’도 [이]라고 하는 게 아직 이상하다고 했어요. 그건 무척 중요하다며, 이음이가 모르는 글자 ‘기’를 종이에 적고는, 이 글자는 ‘[기~ㅣ](일부러 길게 소리냄)라는 소리를 적은 걸까, [가~ㅏ]라는 소리를 적은 걸까?’ 하고 물어보니, ‘기’라는 소리를 적은 거래요. ‘그래, 맞아.’ 라고 칭찬하자, 이음이는 무언가 찾아낸 듯, ‘할아버지, 나, 감(열매)도 쓸 수 있어.’ 하더니 색연필로 커다랗게 ‘감’이라고 적었어요. 놀라운 일이에요. 이음이 쪽에서 보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낸 거예요. 다시 이음이 말로 고치면 ‘감’이라는 글자가 ‘탄생’한 거지요. 이음이는 ‘ㄱ’에다 ‘ㅏ’를 붙이면 [가]라고 읽고, ‘가’ 아래 ‘ㅁ’을 붙이면 [감]이란 소리를 나타낸다는 것을 찾아낸 거예요. 시나브로 이음이는 한글의 원리를 깨치고 있어요. 그러고는 ‘응’이라는 소리에서, 위에 있는 동그라미 ‘ㅇ’은 소리가 없는데, 아래에 있는 ‘ㅇ(이응)’은 왜 소리가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옛날에는 소리값이 있는 ‘ㅇ’은 꼭지 달린 ‘ㆁ’으로 구별하여 썼다고 하니, 이음이도 앞으로 그렇게 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글자로 적었어요!
2021. 10. 29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저리 비키라고, 안 보이는 데로 가라고 ‘우리’가 눈치를 줘요. 처음에는 자꾸 귀찮게 무엇을 물어봐서 그런 줄 짐작했어요. ‘우리’에게,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는 어디 있었느냐고 캐물었거든요. ‘우리’는 엄마 젖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어요. ‘아니,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젖을 먹고 있어.’ 라고 하니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곁에서 듣고 있던 이음이가,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고 하는 것일 거야 라며 손가락 빠는 흉내를 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는 왼쪽 새끼손가락이 긁혀 혼자 쓰린 아픔을 참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보고 저리 가라고 한 거예요. 며칠전에, 자다가 눈이 아팠다고 했던 ‘우리’ 말이 떠올랐어요. 그 때는 눈을 뜨고 있었다며. 아, 아이들도 모두 잠든 한밤중에 홀로 깨어 그 아픔을 참고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어요. 가끔 꿈 이야기도 하는 ‘우리’ 말을 듣고 있으면 새나 꽃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해요. 그림은, 울림이 ‘동물도감’에 나오는 고슴도치예요.
2021. 11. 4
새벽녘 살짝 비가 뿌리고 숲속에 가을이 무겁게 내려앉았어요. 마당 한 귀퉁이에 받쳐 놓은 ‘우리’ 자전거가 어느새 꽃나무처럼 우리 집 풍경이 됐어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었던 자전거, 왼쪽 손잡이가 떨어져 고쳐 달라고 끌고 오면 푸른 테이프로 칭칭 감아 주곤 했는데…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우리’의 세 살이 세발자전거에 고스란히 얹혀 지금도 꿈속을 달음박질치고 있어요.
2021. 11. 5
“‘우리’는 기저귀 안 하고 이제 팬티 입어.”
‘우리’가 한 말이에요. ‘우리’가 언제 이 말을 했는지 들려주려고 해요. 달리기 내기를 할 때, 울림이가 있으면 울림이가 심판을 보지만, ‘우리’와 나, 이음이 셋이 있을 적엔 번갈아가며 ‘준비, 시작’이라고 출발하는 말을 해요. 한번은 이음이 차례인데, ‘준비, 시작’이라고 하지 않고, ‘준비, 시~’하고 한참 끌더니 ‘자장면’이라고 하는 거예요. ‘시작’이 아니고, ‘시자장면’이니, 이 때 출발하면 물론 반칙을 하는 거지요.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다음날부터 ‘우리’는 웃음 가득 머금고는 ‘시~자장면, 시~자장면’이라고 몇 차례나 되풀이했어요. ‘준비’라는 말은 잊어버리고요.
엊그제였어요. 뜬금없이 “‘우리’는 기저귀 안 하고 이제 팬티 입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순간 ‘무슨 말일까? 기저귀 안 찬 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하며, 너무 차분하게 말해서 깜박 속을 뻔했어요. 그러다 생각이 났어요. 언제인가 내 차례일 때, ‘준비’라는 말을 꺼내놓고 한참 뜸을 들이며 ‘저기 하늘 좀 봐. 오늘은 매가 아주 낮게 날아.’ 하며 딴소리를 하다가 재빨리 ‘시작’이라 소리치곤 나 혼자 내달린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는 그 때 생각이 나서 나를 따라한 거예요. 나는 뒤늦게서야 알아채고 “‘우리, 너!” 하는 사이에 ‘우리’는 먼저 자전거를 타고 내뺐어요. 물론 ‘준비, 시작’이란 말도 빼놓고요. 아침이면 저기 언덕에 서서 ‘안녕!’이라고 먼저 소리치고, 내가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답하면 따라서 손을 흔드는, 초롱산 숲속에 하나뿐인 귀여운 친구, ‘우리’가 있어 날마다 몸 가눌 길 없는 기쁨을 누리고 살아요.
2021. 11. 8
아이들이 뛰어오던 발소리도, 까르르 웃음소리에 출렁이던 언덕도 초겨울 비에 젖습니다. 덩그러니 남은 까치집, 창으로 내다보이는 상수리 나무에 앉았던 이파리들도 날아가고 지금은 옷깃을 여미고 집으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비가 그치자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들어서자마자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두 손을 만져보라며 내밉니다. 이음이가 구름이 헥헥거리며 숨차게 달려가다 땀이 나서 비가 온다고 하니, ‘우리’도 한 마디 거듭니다. ‘구름이 해를 덮었어. (그래서) 비가 떨어져. (손으로 접는 시늉을 하며) 구름이 접혀서 비가 오는 거야.’
2021. 11. 9
예쁜 조약돌이나 가랑잎을 줍듯,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우리’가 쓰는 말을 모읍니다. 곁에 종이가 있으면 얼른 적어 두지만, 밖에서 놀 때 ‘우리’가 하는 말은 땅바닥에 적거나 혼자 속으로 되풀이하여 기억해 둡니다. 요즘 문득 알게 된 ‘우리’의 말버릇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저를 가리킬 때 ‘나’를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라고 말하지, ‘나는, 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 형들이 ‘우리’라고 부르니, ‘우리’는 저를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이음이에게 이 말을 하니, 이음이가 “‘우리’야, ‘우리’가 ‘나’야.” 하고 말해 줘도,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만 짓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저를 ‘나’라고 말할까요? 이제부터 ‘우리’를 ‘나’라고 불러볼까 하는 재미난 생각도 합니다. 사진은,이음이가 그리고 쓴 그림문자와 한글입니다. ‘이음이랑 엄마’란 글자도 보이는데, 나머지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입니다.
2021. 11. 12
‘바람이 나와서 말라.’
‘엄마 차도, 뱀이 그래서 죽은 거야.’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면서 ‘우리’가 한 말이에요. ‘우리’와 나만이 알 수 있는 두 문장으로 이어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울림이와 이음이에게 풀어 보라고 했어요. 울림이는 장난스럽게, 이음이는 차분하게, 서로 다투며 제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여러분도 무슨 말일까 짐작해 보아요.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시간에 겪은 일을 한 순간에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첫째, 여름날 엄마 차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둘째, 뱀이 엄마 차(짐작)에 깔려 죽었다.
셋째, 죽은 뱀이 말라 있었다.
이제 어렴풋이 짐작이 가나요? 얼마전 ‘우리’가 나와 함께 눈으로 본 것은, ‘우리’네 집으로 올라가는 찻길에서 차바퀴에 깔려죽어 말라 비틀어진 뱀이었어요. 그 길로 다니는 차는 엄마 차이고, 깔려죽은 뱀을 마르게 한 것은 엄마 차에서 나온 바람이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뱀을 보자, ‘아! 불쌍해.’ 라고 말했어요.
2021. 11. 16
“‘우리’는 손이 없다고.”
길에 떨어진 가랑잎을 쓸어 모읍니다. ‘우리’가 나오고, 곧이어 이음이가 나옵니다. 풀숲에 수북이 가랑잎이 쌓이자, 이음이는 ‘낙엽산’이라고 부릅니다. 마당비도 가져오고 뜨락을 쓰는 비도 가져와 낙엽산을 만듭니다. 낙엽 무더기 위를 뛰어다니던 ‘우리’가 아까부터 나한테 어제 두고간 세발자전거를 가져다 달라고 보챕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와야지.’ 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도 덩달아 “‘우리’는 손이 없어요.” 하며 거듭니다. ‘손’이 없다니? ‘우리’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나를 따라 집에 와서 이음이는 킥보드를,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다시 집으로 갑니다. 이음이가 ‘우리’한테 장난감 트럭도 가져와야지 하는 바람에 한 손으로는 장난감 트럭을 들고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길을 올라갑니다. 이음이는 다시 길에 놓여있는 뜨락비도 ‘우리’한테 가져오라고 합니다.
“‘우리’는 손이 없다고.”
‘우리’는 투덜대며 집으로 갑니다. ‘우리’는 아까 내가 한 말 뜻을 알아차리고 금방 배워 따라합니다.
2021. 11. 19
내일 아침에는 ‘우리’와 이음이와 함께 새총 만들 Y자 나뭇가지를 찾으러 산에 가기로 했어요. 울림이도 따라가고 싶다고 해요.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체험학습을 내면 되지 않을까 하니, 그건 안 되고 내일 아침 감기 걸리면 된다고 해요. 울림이와 이음이와 둘러서서 감기 걸리는 여러가지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물장난에서부터 이마를 100도로 올리는 방법까지. 내가 장난말로 이음이가 울림이 형이 열받도록 막 약을 올리는 것은 어떨까 하니, 여태까지 잠자코 앉아 있던 ‘우리’가 갑자기 ‘메롱, 메롱!’ 하는 거예요. 설마 이런 말은 모르겠지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우리’는 다 알아듣고 있는 거예요. 내가 꼭 안아 주니까 숨이 막힌다고 놓아 달래요. 밭일을 마치고 마루에 걸터앉아 신을 갈아 신는데, 저만치 숲의 안섶에 커다란 나뭇잎 몇 이파리가 팔랑거려요. ‘가지 끝에 새가 날아와 앉았을까, 저 곳에만 바람이 부는 걸까?’ 하는 순간, 숲 가장자리에 서있는 졸참나무 이파리들이 마구 손을 흔들고, 바람이 지나는 길이 보여요. 아침이면 ‘우리’ 웃음소리로 맑게 메아리지던 숲속으로 저물어 가는 눈빛이 참 고와요. 이윽고 나무들은 총총 머리에 별을 이고 또 하룻밤 나들잇길을 떠나지요.
2021. 11. 21
이제부터 할아버지는 ‘초롱산 할아버지’라고 불러. 서천에 사는 친할아버지는 ‘서천 할아버지’이고, 강화에 사는 외할아버지는 ‘강화 할아버지’이고, 할아버지는 초롱산에 사니까. 가만히 있더니 그 말에 대답은 않고; “‘우리’는 자전거 타는 ‘우리’야.” 라고 해요. ‘우리’는 저를 ‘자전거 타는 우리’라고 불러 달라는 거예요. ‘자전거 타는 우리와 초롱산 할아버지’ 무슨 책이나 영화 제목 같지 않나요? 드디어 울림이 이음이 생물도감과 ‘우리’도감이 책으로 나왔어요. 엄마가 펴낸, 손바닥만한 크기의 사랑스런 책이에요.
2021. 11. 22
‘할아버지, 눈 와!’ 이음이가 소리를 질렀어요. 창밖에 흩뿌리던 비가 어느새 싸래기눈으로 바뀌었어요. 곧바로 ‘엄마한테 전화해.’ 라고 말했을 때, 순간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음이를 바꿔주니, ‘엄마, 눈 와!’ 라고 하는 거예요. 이음이는 첫눈 내리는 모습을 방안에 있을 엄마에게 맨처음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사진은, 엊저녁 늦게까지 집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엄마 품에 안겨 돌아가는데, 미처 따라기지 못한 ‘우리’ 신발이에요. 엄마에게 안겨가면서 잠깐 눈을 뜨곤 ‘할아버지 집에서 놀고 싶어.’ 하던 목소리도 신발과 함께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2021. 11. 23
‘할아버지, 나중에도 할아버지 집에 놀러오고 싶은데 …’ 내 품에 안겨 이음이가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는 이다음에 커서도 지금처럼 할아버지 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인가는 아이들이 초롱산을 떠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슬펐어요. 얼른 마음을 일으켜세워 ‘언제든지 오면 되지.’ 라고 하니까, 길을 몰라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생각난 것이 ‘초롱산 할아버지’였어요. 아이들이 나를 가리킬 때 ‘아랫집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초롱산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초롱산이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해서요. 초롱산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이음아, 네 마음속엔 이미 초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단다. 할아버지는, 하늘 높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미끄러지던 매의 날개짓으로 저물녘이면 웍웍 울던 뒷산 바위 부엉이 소리로 네가 나무에 바짝 붙어 깨금발 하고 따먹던 검보랏빛 오디 열매로 잎새에 물결치는 햇살로 나뭇가지를 흔들면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로 빈 숲길을 스치는 바람으로 언제까지나 초롱산에 살아있을 거야.’
2021. 11. 24
눈싸움을 하다가 이음이는 먼저 돌아가고, 혼자 남아 나무 난간 턱에 쌓인 눈 위에서 붕놀이를 하던 ‘우리’는 내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갑니다.
‘할아버지, 뒤가 계속 보여.’ 할아버지 등 뒤로 길이 계속 따라오고 강아지 단이도 쫓아옵니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안고 가니 눈이 네 개이구나.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
언덕을 올라서자, ‘우리’에게 따뜻한 꿀차를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 목소리가 부엌 창으로 새어나옵니다.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며, 갑자기 ‘우리’가 무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는지, ‘우리’ 말을 잘못 들었는지 이상하게 여깁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조금전 ‘우리’에게 ‘점심 먹고 이따 만나.’ 라고 하니까, ‘점심 먹고?’ 라며 ‘우리’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거든요. ‘우리’는 얼른 다시 만나 놀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할아버지에 놀러올(놀러갈) 거야, 라고 말한 것입니다.
2021. 11. 25
아침나절 이음이가 새의 깃털을 주으러 가자고 전화가 왔어요. 이음이를 만나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물으니, 책을 보다가 깃털펜이 나와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먼저 닭장에 들러 닭의 깃털을 세 개 줍고, 이음이랑 ‘우리’와 함께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열흘 전쯤 나무 하러 갔다가 숲길에 깃털이 부스스 흩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매가 잡아먹고 남긴 산비둘기 깃털 같았어요. 그 사이 세찬 바람에 모두 날려갔는지 몇 차례 둘러봐도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비둘기나 까마귀 깃털은 너무 가늘어 깃털펜으로 쓸 수 없다고 해요. ‘펜(pen)'의 어원이 라틴어로 '깃털'이라는 의미를 지닌 'penna'인 것도 알게 되었고요.
다시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산으로 올라갔어요. 저만치 예산이 보이는 산마루까지 올라갔는데도 오늘따라 까치 깃털 하나 만날 수 없었어요. 내친김에 산을 돌아 저 쪽 골짜기로 감을 따먹으러 갔어요.아무도 돌보지 않는 감나무 높이 바알갛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이따금 새들이 감을 쪼아먹으러 왔어요. 장대로 쳐서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것은 그 자리에서 먹었어요. ‘우리’ 입술에 감물이 덕지덕지, 첫눈이 온 뒤라 꿀처럼 달았어요. 그 가운데 성한 것 하나는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나뭇잎에 싸서 이음이가 들고 왔어요. 덤불을 지나며, 떨어뜨릴까 조심하라고 하니, 이음이가 ‘손에 든 감을 엄마라 생각하고 죽지(다치지) 않게 잘 들고 간다.’고 해요. 언제 친구로 사귀었는지 이음이가 ‘바위 친구’라고 부르는 곁으로, 길이 아닌 곳으로 내려가다가 그만 넘어졌어요. 가랑잎 위에 나동그라져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감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왼손에 고이 받쳐들고 있었어요. 넘어지는 순간에도 엄마 생각을 했나 봐요.
2021. 12. 9
‘좋은 장소 찾으러 갑시다.’ 라며, 전화를 받자마자 느닷없이 이음이가 어른 말투로 말했어요. 엊그제 함께 산책을 가자고 했는데, 달려오는 울림이 이음이 손엔 사진기가 들려 있는 걸 보면 멋진 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봐요. 마을회관까지 가기로 했어요. 울림이 이음이는 킥보드를 타고 미끄러지듯, ‘우리’는 엄청 빨리 달려, 나는 뒤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바람이 휘몰아치듯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조용하던 온 마을이 들썩거려요. ‘안녕하세요.’ 라며 이제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해요. 마을회관 빈 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는 운동기구가 있는데, 아이들은 제 키와 몸집에 맞게 놀이기구처럼 타고 놀아요. 네 시가 넘어 집을 나왔으니 이제 곧 어두워지려고 해요. 저 너머에서 오셨는지 낯선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회관을 나오시면서 아이들이 참 예쁘다며 딸을 셋이나 두었느냐고 물으셔요. 머리카락도 길고 곱상하니 여자아이처럼 보였나 봐요. 아니라고, 아들 셋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아빠가 된 듯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안아 달라고 해요. 얼마만큼 올라오는데 이음이가, 할아버지가 힘드니 ‘우리’한테 내려서 걸어가라고 하니, ‘우리’는 싫다는 몸짓으로 나를 더 꼭 붙잡아요. 다시 등에 업혀 오면서, 따라오는 강아지들을 ‘단이씨’ ‘보리씨’라고 부르더니, 엄마 이름은 노해원이고, 아빠 이름은 황바람이라며 ‘해원씨’ ‘바람씨’ 라고 혼자 불러 보아요. 저기 달님이 있다며 먹는 시늉을 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는 ‘우리’가 한 쪽 베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초생달이 떠 따라오고 있었어요.
2021. 12. 13
‘우리’는 두 다리를 까딱까딱하다가 어느새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고, 울림이는 가끔 지루한지 기지개를 켜는데, 이음이는 처음 앉은 그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 자세로 아빠 연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기타리스트 조대연 연주회가 있었어요. 홍동면 장곡리 ‘오누이다목적회관’에서 마을사람들을 모시고 열린 조촐하고 정겨운 음악회였어요. 독주가 끝나고 이어 아빠 황바람과 함께 세 사람이 연주하는 차례가 됐어요. ‘시네마천국’이란 영화음악이 흐르는데, 아빠 기타소리는 뒤늦게 나오고, 그 소리마저 가느단 빗소리나 벌레소리처럼 끊일 듯 말 듯 들려와 이음이를 무척 애태웠나봐요.
다음날 아침 아내를 만나자, 이음이는 아빠 (기타) 소리가 너무 작아 안타까웠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과 말소리를 생생하게 붙잡아 글로 쓸 수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아내가 아쉬워했어요. 아내는 개망초와 냉이 같은 풀꽃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아빠 기타소리는 대연이 삼촌 기타소리를 더 빛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역을 다해냈다고 이음이에게 말해 주었다고 해요. 물론 두 번째 함께하는 연주곡에선 아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기타소리가 먼저 나와 마을사람들의 큰 환호성과 함께 손뼉소리가 터지고 이음이 마음이 활짝 꽃 피어났겠지만요.
2021. 12. 24
엊그제 저녁에는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 마을활력소에서 열린 아카펠라 공연에 갔어요. 마을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는, 아직 이름도 정하지 않은 노래 모임인데, 성탄의 기쁨을 함께하고 한 해를 보내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마을사람들을 불렀어요. 손님은 서른 남짓 왔는데, 거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고, 늙은이는 아내와 나뿐이었어요. 노래를 하다 음정(?)이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부르고, 어설프고 소박한 그대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었어요.
1부, 2부가 끝날 때마다 경품행사가 있었는데, 경품으로 나온 선물은, 노래를 부르는 아홉 사람이 준비한, 저마다 사연이 있는 정성스러운 물건이었어요. 책이나 장난감, 손수 가꾼 채소 들이 있었는데, 가장 갖고 싶었던 선물은, 언제든지 부르면 그분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약속이 적힌 엽서였어요. ‘뭉게구름’ ‘수고했어, 오늘도’ … 내 무릎에 앉아 두 발을 까닥이는 ‘우리’와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는 이음이와 울림이. 홍동에 살아서 누리는 조촐한 기쁨이었어요.
2021. 12. 24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인데, 이음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할아버지 지금 어디 있냐?’고,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할아버지 먼 데 가서 저녁에 돌아온다고 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지금이 저녁이지.’ 하고 소리치는 ‘우리’ 목소리가 들려와요. 별일 없으면 이음이는 ‘우리’를 데리고 날마다 집으로 놀러 와요. 지금 놀러오고 싶다는 말일 거예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우리’가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별 따 줘.’ 라고 해요. ‘그래, 알았어.’ 라곤 했지만, 여간 걱정이 아니에요. 며칠전 ‘우리’가 크리스마스에는 별을 따는 것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만 알았어요. 별 따는 장대라도 준비해야 하는지, 기차를 타고 가며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 따라 생각이 흔들리고 있어요.
2021. 12. 25
아이들이 성탄 인사를 보내왔어요. 다행히 별은 ‘우리’가 딸 수 있다고 하네요. 오늘 만나면 별을 어떻게 따는지 물어 봐야 하겠어요. 또 ‘비밀이야.’ 하며 안 가르쳐 줄 수도 있겠지만요. 밖에 가루눈이 뿌리고 있어요. 아궁이에 장작 한 부섴을 넣으니 삼킬 듯이 빨아들여요.
할아버지 별 우리가 딸 수 있어서 안 따도 돼요. 선물 고마워요. -우리-
오늘 트리 만들었는데 못 보여줘서 다음에 보여 드릴게요. -울림-
머랭사탕도 고맙고 케이크도 고마운데 케이크에 있는 난쟁이 누가 먹어요? 나눠 먹어요? -이음-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도 메리크리스마스! -울림 이음 우리-
‘머랭사탕도 고맙고 케이크도 고마운데 케이크에 있는 난쟁이 누가 먹어요? 나눠 먹어요?’
엊저녁 아이들이 보낸 성탄 인사에서, 이음이가 한 말이 떠올라요.엊그제인가 이음이와 ‘우리’가 집에 놀러왔어요. 아내가 사과를 깎아 주자, 이음이가 한두 입 먹더니 오른쪽 이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려요.이가 썩었나 보구나 하니, 아니라고 새 이가 돋아나 아프다며 이럴 땐 얼음을 먹어야 한대요.‘아이스크림을 줄까.’ 아내가 말하니, ‘아이스크림!’ 하고 곁에서 ‘우리’가 반가워해요.장난말로 아이스크림은 이가 아플 때 먹는 거라고 하니, ‘우리’가 또박또박 말했어요.‘아니야,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야.’ 라고.아내는 아이스크림 대신 얼린 망고를 냉장고에서 꺼내 작은 접시 두 개에 나누어 주었는데, 쏟다 보니 이음이 그릇에는 수북이, ‘우리’ 그릇에는 너댓 개가 담겼어요.‘우리’는 제 그릇에 담겨 있는 망고를 다 먹고는, 아직도 제법 남아 있는 이음이 그릇은 아예 넘보지 않고, 먹던 사과를 먹어요.오늘은 느닷없이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달려와 문을 열어젖히더니 AA건전지를 여덟 개를 빌려 달래요. 서랍을 다 뒤지고 손전등에 있는 건전지를 빼내어 여덟 개를 맞췄어요.문제는, 이 여덟 개를 어떻게 나누어 가져가는가예요. 알고보니 집에서 오면서 울림이 이음이는 세 개씩, ‘우리’는 두 개를 가져간다고 정하고 온 거예요. 셈을 아는 울림이와 이음이가 정한 것이겠지요.‘우리’는 두 개를 주머니에 넣은 뒤, 안 흘리게 지퍼를 잠가 주니 기분 좋게 뒤따라 뛰어갔어요.엄마는 늘 큰아이 울림이나 둘째 이음이나 막내 ‘우리’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는데, ‘우리’는 아직 셈을 모르는 듯해요. 물론 말로는 열까지 셀 줄 알지만요.
2021. 12. 30
‘우리’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몸을 잘못 가누어, 방바닥에서 엎드려 놀고 있는 이음이 머리에 부딪혔어요. 이음이는 아팠는지 얼른 일어나 주먹을 쥐고 ‘우리’ 어깻죽지를 때렸어요. 그렇게 끝났으면 됐는데, ‘우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고 자꾸 우기는 바람에 두 대나 더 맞았어요. 나도 이음이한테 맞아 봤는데 이음이 주먹이 꽤 맵거든요. 어제는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는 비행기 이름이, 내 귀에 들리기는, ‘수퍼이스’라고 하는 거예요. ‘수퍼이스?’ 라고 내가 따라 하니까 아니라고 해요. ‘스파이스?’ 그래도 아니라고 해요. 아무래도 잘 몰라서 이음이한테 물어보니까 ‘슈퍼윙스’라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한테 따라해보라면서 ‘슈•퍼•윙•스’라고 하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라고 몇 차례나 되풀이하면서 한 마디도 따라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울림이 이음이와는 달리 우직한 구석이 있어요.
1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그리고 두 번의 결혼식. 긴 행사 주간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까지 연달아 5일째 쉬고 있는 울림이는 이렇게 쉬는 날이 계속되니 방학인 것 같다고 좋아하고, 이음이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조금 아쉬워했다. 생긴 것만큼이나 참 다른 형제들. 내 눈에 울림이랑 이음이는 앞머리 없는 장발 이라는 것 빼고는 같은 것이 하나 없어 보이는데, 얼마 전 상담했던 울림이 담임 선생님은 이음이를 멀리서 봐도 '울림이 동생'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했다.
2 어제와 오늘은 두 차례의 결혼식이 있었다. 동네친구 지인-하영과 남편의 동생 해뜨리-나라의 결혼식.
지인-하영의 결혼식(사진 노지원)
해뜨리-나라의 결혼식(사진 황바람)
분위기도 방식도 다른 결혼식이었지만 각자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지향을 그대로 녹여냈다는 것이 닮았던 결혼식들이었다. 사랑의 모양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사랑이 향하는 방향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결혼식에 가면 자식의 마음보다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더 이입이 된다. 자식과 함께 걸어온 길을 추억하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하며 여전히 아끼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것. 이제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짐작이 되어서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마음이 함께 울렁울렁한다.
3 어제는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고 나름 이것저것 챙겨줬다. 뭐 받고 싶냐고 해서 각자 그림 하나씩이랑 밥 한 끼 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원래는 주먹밥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마침 집에 유부초밥 재료가 있어 유부초밥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름 둘이 쌀도 씻고 얼추 밥을 안쳤다. 비록 만들면서 자기들이 거의 다 먹고 나는 세 개밖에 못 먹었지만 그래도 나름 시도라도 해 준 어린이들이 기특했다.
그림은 언제 주냐 하루 종일 보챘는데, 모르는 채 하더니 자기 전에 놀이방에 가보라고 손짓한다. 가봤더니 이런 귀엽고 감동적인 짓을...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편지를 놓아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물이 날 뻔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고기를 구워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 아니면 선물 받은 책들을 보느라 엄마 깨우는 것을 까먹었는지,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있는 아침 시간이 좋아서 였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푹 자는 엄마를 재우고 싶었는지(가능성은 가장 희박하지만 사심 가득 엄마 마음 1순위) 어쨌든 10시가 되도록 아이들이 나를 깨우지 않았다. 간혹 우리가 내가 덮고 있는 이불속으로 들락날락하고, 뜨문뜨문 아이들이 묻는 소리에 답을 한 것 같긴 한데 비몽사몽 꿈을 꾸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오후에는 여지없이 졸음이 왔고 또 꾸벅꾸벅 졸았다. 잠은 많이 잘 수록 졸려 지는 경향이 있다. 나도 졸고 어린이들도 옆에서 같이 졸다가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 돼서야 밖으로 나갔다.
날이 더워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남편이 머리 자르러 간다길래 백년만에 외식하고 들어왔다.
2.
생각해 보니 어제도 조금 늦게 일어났다. 오늘 만큼은 아니지만 평소보다는 늦게 일어났었지, 이 글을 쓰며 문득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먼저 일어나 있던 아이들은 강화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신나는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아침도 먹기 전에 잠옷 바람으로 방방을 뛰었다.
아침을 거의 다 먹었을때 쯤 강화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모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랫집 할아버지 할머니랑도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은 들뜨고 신났다가 싸우고 울다가 이내 다시 깔깔댔다.
어린이날 선물로는 더이상 장난감을 들이기 싫어 만화책을 잔뜩 사서 줬다.
엉아들 용 마블 만화책들과 동생들 용으로 '에밀과 마고', 그리고 '꼬마 마녀 주크'라는 책들을 샀다.
울림이는 워낙 만화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제 좀 컸는지 '이만하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우리'는 어린이 날 선물은 원래 이런 건가 하며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린이 날에 선물 꽤나 받아 본 이음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이모가 자기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 했다고 같이 문구점 가서 선물을 골라오자는 말에 안심하며 웃었다.
식구들끼리만 있어도 북적이고 즐거웠던 어린이날, 그리고 어쩐지 어린이날의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 보이던 어린이날이었다.
언제나 자연농을 흉내 내다 결국은 방치농이 되어 버리는 나의 밭에는 몇 년째 저절로 씨가 떨어져 자가 수명을 이어 오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도 카모마일, 켈리포니아 포비, 수레국화, 들깨, 딜, 봉숭아, 댑싸리 등의 싹들이 머리를 쏙쏙 내밀고 있다.
겨울을 버티고 스스로 싹을 틔운 이 새싹들을 발견하면 고맙고 귀해서 어디 옮기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두게 된다.
그래서 내 정원과 밭은 무질서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밭과 정원이 맘에 든다.
카렌듈라는 벌써 훌쩍 자라 꽃대가 올라왔다.
2
어제와 오늘은 해야할 일과 새로 일어날 일,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 등으로 분주했다.
다행히 억지로 하는 일보다는 기대되고 즐거운 일들이 더 많아 몸은 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아주 맑은 상태다.
어제 이음이의 허락을 받고 울림이 운동회도 다녀왔다.
울림이 운동회 가기 직전에는 동화작가 조혜란 선생님 댁에도 다녀왔다.
최근에 울림이 학교 앞에 집을 짓고 살게 되셨는데 이사 오시면서 동화책 들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홍동초 책아마(책 읽어 주는 엄마 아빠)에게 먼저 나누고 싶다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발만 걸치고 있던 나도 운 좋게 소식을 듣게 되어 다녀오게 되었다. 아이들 등 하교할 때마다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가게 되다니...! 우리랑 손잡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무지 설레었다.
마루를 중심으로 좌 우에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을 분리하여 배치하고 2층에는 갤러리 겸 작업실로 꾸며놓은 아주 멋진 공간이었다. 특히 선생님의 작업 공간과 집안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선생님의 작업 물들을 이렇게 편안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3.
남편에게 아직은 괜찮은데 앞으로의 일정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다고 걱정 했더니 과부화가 걸렸을 때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나를 독려하는 것인지, 채찍질하는 것인지,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말을 해주었다.
어제는 갑자기 아랫집 할아버지 일기를 한 번에 정리하겠다 마음먹는 바람에 밤늦게 까지 작업하다가 졸리다, 힘들어서 못하겠다 징징대는 나에게 자기는 마감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샌다는 또 위로인지 질타인지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해줬었다.
엄마 차 둘레에서 서성대는 아이들을 보니, 방학인데도 아침 일찍 어디를 가려는가 봅니다. ‘야, 너희들 어디 가?’ 하고 소리치니,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간다고 합니다. 아, 어린이집은 방학이 아닌가 봅니다. ‘할아버지 이제 눈 안 아파?’ 이음이가 묻습니다. 어제 도라지를 캐다가 눈에 흙이 들어가 잠깐 병원에 갔다 온 일을, 이음이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살 이음이가 지금 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차는 타지 않고, 울림이와 이음이는 언덕으로 조금 내려가더니 길가에서 놀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땅속에서 흘러나온 물이 얼어붙은 위에서, 얼음을 지치기도 하고, 돌로 얼음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이러다간 엄마 혼자 어린이집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서둘러 아이들을 들어올려 차에 태웁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자 그냥 ‘엄마.’ 라고만 합니다. ‘엄마?’ 하고 되물으니, 뒷자리에 타고 있던 울림이가, ‘엄마와 같이 간다는 뜻이야.’ 라고 알려줍니다. ‘엄마라는 말 속에 그런 긴 뜻이 있었구나.’ 라고 하니, 엄마가 빙긋이 웃습니다. 아이들을 태운 차는 몇 걸음 못 가서 또 멈춥니다. 배웅하는 아내와 인사를 하는데, 이제 다시는 영영 못 볼 사람들처럼 오랫동안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고 미끄러지듯 차는 마을로 내려갑니다.
^^ 그림은, 울림이 이음이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에게 준 새해 선물입니다.
2020. 1. 24
망원경을 목에 걸고,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장난감 총을 들고 울림이와 이음이가 달려옵니다. 오늘은 우리가 집에서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포장지를 뜯고 설명서 그림 보고 어찌어찌 하더니, 스폰지 총알을 넣고는 유리창 쪽으로 쏩니다. 바깥에는 막 해가 지려 합니다. 놓지지 않고 나는, ‘타르왁(тарвага)’이란 땅다람쥐에 얽힌 몽골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옛날 옛날에, 몽골 초원에 해가 일곱 개가 떴어. 해가 하나만 떠도 더운데 일곱 개나 떴으니 세상이 얼마나 뜨겁고 더웠을까. 세상의 물들이 모두 말라서 가뭄에 시달려야 했지. 동물들은 목이 말라 고통을 받고 풀들도 바싹 타들어 갔어.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이 일어날 듯했어. 그래서 사람과 동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에르히 메르겡'을 찾아가서 해를 없애달라고 부탁을 했지 ... “ 창밖에 지는 해는, 수천 개의 바늘잎 같은 빛 화살을 쏘아대고, 아이들은 개어 놓은 이불 뒤에 숨어 해를 겨냥하여 총을 쏩니다. 그예 하나만 남아 있던 해는, 울림이와 이음이가 쏟아붓는 총탄에 맞고 붉게 상처를 입은 채 산 너머로 떨어져버렸습니다.
2020. 2. 5
뜨락에 싸락눈이 하얗게 쌓여있습니다.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아래채 공방 처마 끝에 앉습니다. 크기는 동고비만 한데 등빛이 검푸릅니다. 또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함께 치솟아 날개에 햇살 가득 펼치고는 남쪽 하늘로 날아갑니다. 쪼르르 아이들이 달려옵니다. 울림이가 뛰어오고 이윽고 이음이가 오고 한참 뒤에 우리가 따라옵니다. 집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뜰에서 눈을 가지고 놉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코코아 타 줄 물을 끓이고, 나는 이쪽저쪽 오가며 아이들 몰래 부엌 창으로 밖을 내다봅니다. 눈 치우는 가래를 끌고 다니지만 눈이 잘 모아지지도 뭉쳐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 아래채 계단을 올라가더니, 어! 미끄러질 텐데 어떡하지 하는 순간, 거꾸로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내려와 아궁이로 달려갑니다. 날마다 내 곁에 앉아 군불을 때는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장작을 두 손으로 들어 아궁이 속으로 넣을 줄도 압니다. 잠깐 꿈을 꾸었나 봅니다. 아이들이 마당 끝으로 달려가더니 포르르 날아 해가 뜨는 동쪽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뜰에는 아이들이 남긴 귀여운 발자국만 여기저기 찍혀 있습니다.
2020. 2. 13
세발자전거를 탄 채 우리가 손을 들어 손수레를 가리킵니다. 저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갈 테니, 나보고는 손수레를 끌고 오라는 뜻입니다. 마을길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봅니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뒤따라오는 나를 보고는 얼굴이 환해집니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마을 쪽에서 차 한 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손수레를 길가에 받치며, ‘우리야, 차 와.’ 하니까, 얼른 세발자전거에서 내려 내 다리를 붙듭니다. 나는 몸을 숙여 우리를 꼭 안아줍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아랫집 민기와 민서 누나를,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서 바라봅니다.
‘아빠뿌까’ ‘엄마뿌까’ 다시 길을 올라오면서, 무슨 말인지 자꾸 되뇝니다. 저러다간 금방이라도 말문이 트일 듯합니다. 자건거에서 내려서는 손수레 가까이 다가섭니다. ‘우리, 손수레 타고 싶구나.’ 하니 ‘응’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를 들어올려 손수레에 태우니, 다시 손짓으로 세발자전거를 가리킵니다. 자건거를 손수레에 함께 실어달라는 뜻입니다. ‘오랑오랑’ 산개구리가 우는 다랑논으로 내려갑니다. 우리가 ‘무우’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는 어둑한 곳에는 도랑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습니다. 저 쪽 산기슭 아래 다랑논에서는 무언가 움직이는 둣 물결이 일고, 마른 연꽃 줄기로 산개구리가 기어오르는 모습이 넘어가는 햇살에 어슴푸레 빛나 보입니다.
2020. 2. 15
어제는,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차를 가리키며 ‘부우’라고 했거든요. 세발자전거는 무어라고 할까 하곤, 내가 자전거를 가리키니, 또 ‘부우’라고 합니다. 우리에겐, 바퀴가 달린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부우’라고 하는 듯합니다. ‘엄마뿌까’가 ‘엄마 차 타고 갔다.’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벌써 문장을 말한다기보다는, ‘엄마뿌까’를 통째로 한 단어(낱말)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엄마’ ‘아빠’ ‘엉아’ ‘임이(이음이)’ ‘함미(할머니)’ ‘응’ ‘떼떼뽀뽀(칙칙폭폭)’ 들이 있습니다.
2020. 2. 21
아이들이 구들방으로 놀러왔습니다. 이불 위에 장난감을 풀어놓습니다. 나는 짐짓 ‘그게 뭐니?’ 라고 묻습니다. ‘그것도 몰라. 어제 생일 선물로 받은 거잖아.’ 라고 따집니다. ‘그랬구나.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지.’ 하고 시치미를 뗍니다. 어제는 내 생일과 우리 생일이 겹쳐, 오늘 태어난 이음이 생일을 당겨,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우리 집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나 : ‘어제가 이음이 생일이었구나.’
이음 : ‘아니, 오늘이 내 생일이야.’
나 :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나’를 가리킴)
이음 : ‘아니, 내 생일이라고.’ (‘이음’이를 가리킴)
나 : ‘그러니까 내 생일이라고.’ (‘나’를 가르킴’)
이음 :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너가 아니고 나.
나 : <나도 이음이를 가리키며> 그래, 너 아니고 나 말이야.
거의 울상이 된 이음이는 ‘할아버지,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라고 말하더니, 느닷없이 ‘나 생일이 아니고 할아버지 생일이야.’ 라고 합니다. 이음이는 이렇게 거꾸로 말하면 제가 말하려고 하는, ‘오늘이 이음이 생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니가 웃기려고 하는 거지. 어떻게 할아버지가 어제도 태어나고 오늘도 태어나니?’ 이음이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입니다.
2020. 2. 22
“오늘 낮에 이음이와 같이 쓴 이야기입니다. 이음이는 기뻐서 울 때도 있다고 합니다.”
이음이는 곤히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온누리가 잠든 듯한 고요함이 가느단 울음소리에 흔들립니다. ‘누구일까?’ 고개를 돌려 이 구석 저 구석 두리번거립니다. 엉금엉금 기어가 창문을 열어봅니다. ‘오르랑 오르랑’ 창가에 몰려와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개구리 울음소리만 방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잠이 덜 깬 두 눈에는 부스스한 햇빛이 어립니다. ‘이음아, 우릴 좀 살려 줘.’ 가만히 보니, 종이 위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 세 마리가 실낱같은 목소리로 애타게 소리칩니다. 이음이는 가엾은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지.’ 이음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종이 아래쪽에 강을 그리고, 그곳에다 물고기들을 쏟아줍니다. 물고기들은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갑니다. 물풀 속에 숨어 잡히지 않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물고기가 손자 물고기들을 꼬옥 안아줍니다. 이음이 얼굴에도 환히 웃음이 번집니다. 그러다 다시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어항에 줄을 그어 화살표로 잇고 커다란 바다를 그립니다. 물고기 다섯 마리가 마음껏 뛰어놀기엔 이음이는 강이 답답해 보였나 봅니다. 바다에 풀어놓은 물고기들은 기뻐서 웁니다. 저희들 마음을 알아준 이음이가 무척 고맙습니다. 그 날 밤 이음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낮에 놓아 주었던 물고기들이 그림 속에서처럼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해가 뜨고 초승달이 떠있는 하늘입니다. 물고기들은 파아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음이는 몸이 근질근질거립니다. 아래를 쳐다보니 몸에서 비늘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반짝거리는 비늘을 달고 물고기들과 함께 어깨를 겯고 이음이는 하늘을 마음껏 누빕니다. 이음이는 자꾸자꾸 꿈을 꾸고 싶습니다. 오늘 낮엔 부연히 미세먼지가 끼어 밖에 나가놀지 못하고, 방안에 갇혀 끄적끄적 그림만 그려야 했으니까요.
2020. 2. 25
비밀인 듯 나중에 보여준다더니, 깜빡하고 그냥 갔어요. 울림이가 쓴, 이렇게 긴 이야기글은 처음 마주해요. 왼손잡이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도 거꾸로 쓰지요. ‘화조새하라버지가딸각딸각우리장남감을가지고논다. 화조새하라버지이름은김종도.’ (화조새 할아버지가 딸각딸각 우리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화조새 할아버지 이름은 김종도.) ‘화조새’가 뭔지 모르겠어요. 뒷장에 ‘하라버지 애기’라고 쓰고, 새 한 마리가 젖병을 들고 있는 걸 보면 무슨 새 이름인가 봐요.
2020. 2. 26
내 생일에 건네 주지 못한 우리 선물이 엊그제 도착했습니다. 보동보동한 귀여운 손으로 내 손에 쥐어 주는 선물은,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면 빛깔이 바뀌는 작은 마술 수첩입니다. 엄마 생일이 곧 다가옵니다. ‘엄마한테는 무슨 선물을 하지?’ 울림이가 말을 꺼냅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잖아.’ 예쁜 꽃만 보면 엄마에게 꺾어 바치는 아이들이 떠올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밥도 좋아해.’ 라고 울림이가 말합니다. 그 말을 이어받아 이음이는 ‘엄마는 나도 좋아해.’ 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음이를 예쁘게 포장해서 엄마한테 선물하면 되겠네.’ 라고 말하니, 이음이는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오무려, 보이지 않는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흉내를 냅니다. 울림이도 뒤따라 ‘엄마는 나도 좋아하고 우리도 좋아해.’ 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이음이가 선물 상자 깊숙히 들어가 꼼짝하지 않은 지는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사진은, 비를 맞고 있는 우리 저전거입니다. 얼른 달려가 나무난간에 옮겨 놓았습니다. 아내는, 비 맞는 자전거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어요.
2020. 3. 2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다녀갔습니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손자들이 보고싶어 강화도에서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어찌 저리 곱게 자랐을까. 어렴풋이 나는, 엄마 아빠의 포근한 품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운 손길을 떠올렸는데, 이틀 동안 함께 지내며 그분들의 봄햇살 따스한 사랑을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음아, 장구 배워 볼래? 네가 배운다면 할아버지가 가져다 줄게.’
나처럼 아이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들 의견을 묻고 기다려주는 외할아버지 속에서, ‘작은나무’라는 인디언 소년 이야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겹쳐 왔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손자가 부르면, 앞서가던 걸음을 멈춘 채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몸을 낮춰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 ... 엄마에게도 높임말을 쓰고, 손자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 구들방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습니다.
2020. 3. 7
오늘 겨우내 잠 든 밭을 깨워 풀을 뽑고 거름을 얹고 흙을 뒤집어 감자를 심을 두둑을 만들었어요.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또 낯설고 농사일은 늘 서툴기만 합니다. 아까시나무에는 어느새 날아왔는지 쓰스빙 쓰스빙 곤줄박이 한 마리가 지저귀고, 오늘도 아이들이 돌계단을 올라 밭으로 달려옵니다. 막내 ‘우리’도 꽥꽥 소리를 지르며 뛰어옵니다. ‘너도 형들을 닮았구나.’ 하니, 뒤따라오던 이음이가 ‘할아버지, 내가 더 크게 소리질러 볼게.’ 하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입만 크게 벌립니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뒤로 쓰러지는 척합니다. 이음이는 지난해 내가 해 준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도는 소리는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했거던요.
아이들과 ‘얼음땡놀이’를 했습니다. 놀이 규칙은 늘 아이들이 정하기에 우리는 웃기만 하다 끝이 납니다. 하루 해가 저뭅니다. 초롱산 위로 열사흘 달이 떠오르고,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우리’는 손수레에 태우고 이음이와 울림이는 걸려서 데려다 줍니다. 우리는 헤어질 때 손을 흔들지 않고, 손바닥을 펴 코 밑에 대고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이마에 대고 하는 인사는, 언제인가 엄마가 무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2020. 3. 9
겨우내 마늘밭을 덮어 두었던 짚을 걷었어요. 하얗고 얇은 막 속에서 뾰족이 마늘 싹이 돋아났어요. 파르스름하니 햇빛이 어른거려 더욱 고왔어요. 오늘은 밖이 따스한지 이음이와 우리가 가운뎃머리를 묶고 왔어요. 저희들끼리 꿩의 머리라고 깔깔대더니, 이음이가 닭 흉내를 내어 한참 웃었어요. 울림이가 오늘은, 구덩이를 파놓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얹고 그 위에 흙을 덮고는 나를 몰래 빠뜨리려고 했어요. 운이 좋게 흙을 너무 두텁게 덮어 빠지지는 않았지만 울림이 장난이 날마다 늘어요. 동강할미꽃에 벌이 날아들고 드디어 숲길에 생강나무 노란 꽃이 피었어요. 김유정 소설 ‘동백꽃’(생강나무꽃을, 강원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지요.)에서처럼 알싸한 꽃내가 숲을 흔들어 놓겠지요. 잘 지내요.
2020. 3. 14
‘이러다간 할아버지가 되겠다.’ 이음이가 내뱉은 말입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며 아이들 등을 떠미는 내말에, 이렇게 멀어서 산에 갔다 오면 할아버지가 다 되어 있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냐?’ 웃으며 되물었지만 아이들은 여간 힘들지 않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 집으로 달려온 아이들에게, ‘오늘은 초롱산에 한 번 올라가 볼까?’ 하며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숲이 우거져 나무하러 다니던 길은 없어진 지 오래이고, 길도 없는 가파른 비탈을 오르며, 고라니 똥과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구덩이도 보고 가랑잎을 뚫고 나온 현호색과 가느단 나뭇가지에 봉긋이 솟은 진달래 꽃봉오리도 만났습니다. 산기슭에서는 보이지 않던 굴참나무도 눈에 띕니다. 아, 커다란 매 두 마리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꼭대기가 가까워지자 아이들 키를 훌쩍 뛰어넘는 조릿대 사이로 큰 절벽 아래 너른 빈 터가 나오는데, 여기저기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걸 보니 마을사람들이 말하는 절터인가 봅니다. 이음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울림이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합니다. 어디에선가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렇게, 검은 돌에 ‘초롱산 339M 홍성군’이라고 적혀 있는 초롱산 꼭대기에 올라섰습니다. 아이들이 살던 홍성 읍내 부영아파트도 보이고 오른쪽으론 예산군 광시면과 멀리 예당저수지 물줄기도 보입니다. 네 시간 남짓 긴 산행, 아이들은 지금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잠에 곯아떨어졌을 겁니다. 초롱산 산신령을 만나지 못해 못내 아쉬워 하는 이음이는, 어느새 머리칼이 새하얘지고 꿈속에서 산신령 할아버지 친구를 만나 실컷 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0. 3. 25
울림이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도둑이 있었어. 거지 집에 물건을 훔치러 갔는데 아무것도 없어, 닭깃털 하나를 뽑아왔어. 하나로는 모자라서 다시 거지 집에 가서 닭 한 마리를 훔쳐와 치킨을 해먹고, 깃털을 다 뽑아 그 깃털로 이야기를 썼는데,(아이들은 깃털로 잉크를 찍어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할아버지에게 들려 준 이야기야.’ 그러곤 그 거지가 바로 도둑이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대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울림이가 들려준, 도둑이 거지가 사는 곳으로 도둑질하러간 장면만 떠올려도 참 재미있습니다. 어느 날 도둑들이 모였습니다. 한 늙은 도둑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늙은 도둑 : ‘우리, 거지네 집을 털러갈까?’
젊은 도둑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집으로 무얼 털러 간다는 말이에요.
늙은 도둑 : 우린 오랫동안 셀 수 없이 부자집을 털어 왔잖아. 많이 있는 곳을 터는 것보다 아무도 없는 곳을 터는 것이 진짜 실력 있는 도둑이 아닐까.
젊은 도둑은 뭔가 아리송하지만, 늙은 도둑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젊은 도둑 : 한데, 재미가 없잖아요. 그 곳에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으니까요. 높다란 담도 뾰족한 창살도 밤하늘을 찢는 개 짓는 소리도 더구나 cctv도 없잖아요.
늙은 도둑 : 그러니까 말일세. 아무도 지키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자신 안에 쌓아둔 보이지 않는 담을 넘어야 하고, 시시각각 자기를 돌아봐야 하니까 말이야. 이를 일러 ‘허공에서 무엇을 얻는다.(득허 得虚)’라고 하네.
내가 이렇게 뻔한 고리타분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냥 재미로 한 얘기야.’ 하며, 울림이는 내가 쌓아올린 이야기의 탑을 발로 툭 차 뭉개버리겠지요.
사진은, 얼마 전 엄마 생일 때 울림이가 선물한 축하 글입니다.
2020. 4. 5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어디로 나들이를 떠났는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엌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리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살았나 봐요.’ 라고 하는 아내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초롱산 골짜기가 텅빈 듯합니다. 자다가 눈을 떠서도, 엊그제 놀다가 다친 우리가 눈에 어른거립니다.
쪼르르 언덕길 따라 내려가는 공을 붙잡으려다가 그만 엎어졌습니다. 얼른 달려가 일으켜 세우자 금방 울음은 그쳤는데 코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안고 뛰어와 휴지로 왼쪽 코도 막고, 부드러운 수건에 물을 묻혀 핏자국을 닦아주었는데, 다행히 피는 그쳐 있었습니다. 입가로 피가 흘러들어가, 이렇게 헹구어 내라고 내가 먼저 물을 마신 뒤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뱉어버리니, 우리가 환히 웃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니 우물우물하기도 전에 삼켜 버리곤 웃습니다. 다시 물을 주자 또 삼키곤 재미있는 듯 웃습니다. 엄마가 놀랠까봐 아내에게 데리고 가니. ‘우리가 콧등에 팥을 갈았네.’하며 꼭 안아줍니다.
2020. 6. 9
나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도 자주감자처럼 곁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에요. 아이들이 ‘아랫집 할아버지, 하비’라고 부르는 나는, 키가 조금 더 크고 힘이 조금 더 세고 풀이나 나무 이름을 몇 가지 더 아는 늙은 친구일 뿐이지요. 가끔 우리를 손수레에 태워 숲길 한 바퀴 돌고, 동화책을 함께 읽고, 뽕나무 윗가지를 잡아당겨 아이들이 오디를 딸 수 있게 해 주고, 코감기가 다 낫지 않았는지 줄줄 흘러내리는 울림이 콧물을 보드라운 뽕잎이나 칡잎으로 닦아주는 일이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두예요. 하지만, 언덕에 풀을 베고 있을 때 ‘할아버지, 댕댕이덩굴은 베지 마.’ 하고 울림이가 말할 때나, 이음이가 ‘지칭개, 소루쟁이, 고마리’ 풀이름을 알고,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가 고 조그만 입술로 ‘오디’라고 소리내어 말할 때, 내 마음 잔잔히 빛나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지요.
2020. 6. 10
며칠 전에 아빠가 뜰에 ‘방방’(트램펄린)을 세워주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도 한낮에도 쉴 새 없이 아이들이 올라가 뛰고 있어요. 멀리서 보면 벼논에서 톡톡 튀는 메뚜기들 같고 나뭇잎에 튕기는 햇살 같아요. 이틀날, 어른들도 탈 수 있다며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아내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아이들이 통통 뛰니까, ‘솜이’(고양이)도 아이들이 뛸 때마다 아래로 쳐지는그물을 잡으려고 밑에서 함께 폴짝폴짝 뛰고 있어요. 한참 뛰어놀다가 아내는 어지럽다며 먼저 내려가고, 아이들은 저희들은 누워 있을 테니 나보고 세게 뛰라고 해요. 내가 뛸 때마다 아이들은 엎어졌다 뒤집어지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부딪혀 내가 그만하려고 하면, 자꾸 ‘앵콜’이라고 해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 달아나듯이 빠져나왔어요.
2020. 6. 18
오늘쯤은 이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엊그제 아침 엄마는 소리내어 섧게 울었어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삼태기로 덮었어요. 아이들은 지우 차로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나는 숲속에 구덩이를 파고 머리를 해 뜨는 쪽으로 해서 눕혀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주고, 커다란 돌을 얹어 놓았어요. 엄마는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하루종일 엄마 차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저녁 늦게 부엌 불이 켜지지 않아 걱정이 되었어요.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이 커다란 슬픔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우리 곁에 다녀간 아기천사. 한 쪽 눈이 파아랗고, 털이 솜처럼 하얘 아이들이 ‘솜이’라 불렀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엄마가 왜 저렇게 울어?’ 하고 우리에게 물으니, ‘엉아 (학교에) 가서.’ 다행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어제는 아이들이 솜이를 묻은 곳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숲길을 올라가니, 엄마는 또 울었어요. ‘엄마, 또 울어.’ 하며 울림이가 저만치 내려와 혼잣말인 듯 얘기해요. 고맙다고, 아내와 나에게 인사를 온 엄마는, 슬픔으로 여윈 두 손으로 솜이를 묻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2020. 6. 28
며칠전 울림이 친구 산들이가 놀러왔어요. 나는 무슨 말이라도 걸려고, ‘산들아, 어떻게 왔어?’ 하고 물었어요. 아무 대답이 없어, ‘걸어서 왔어?’ 또 대답이 없어, ‘그러면, 날아서 왔어?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날아다니는데.’ 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 산들이는 고개를 돌려 딴 데를 쳐다보고 있어요. 혼자 괜히 멋쩍어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우리 울림이는 순간이동도 해.’ 하니까, 곧바로 ‘내가 언제?’ 하며 울림이는 시치미를 딱 잡아떼고, 이음이마저 아니라는 듯 얼굴이 굳어져 있어요. ‘분신술도 하는데 ...’ 내가 말끝을 흐리며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난간 계단을 뛰어내려가 멀리 가버렸어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나한테 올 적에만, 겨드랑이 깊숙이 감춰 두었던 눈부신 날개를 펴 날아오는가 봐요. 팔꿈치는 겨드랑이에 붙인 채 손바닥은 쫙 펴서 앞으로 내밀고 이리왔다저리갔다 하며 순간이동을 하던 이음이가 눈에 어른거려요.
2020. 6. 29
엊그제는 아이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녁을 같이하자고 해서, 언덕 위 통나무집으로 올라갔어요. 이음이가, 형이 축구하다가 시멘트 바닥에 살이 쓸렸다고 했는데, 울림이는 안방 낮은 걸상에 앉아있었어요. 드러내놓은 무릎에 까진 상처가 무척 쓰라려 보였어요. 울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며 포켓몬카드 몇 장을 골라 건네주며 자랑을 했어요.
저녁을 먹으며 술 한 나누는데, 느닷없이 방안에서 울림이 울음소리가 터져나왔어요. 일하다 조금 늦게 온 아빠가 무릎에 난 상처를 소독해 주고 있나 봐요. 저렇게 자자러지게 우는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이사 온 첫해에는 이마를 몇 바늘 꿰맬 만큼 많이 다쳤어도 저리 울지는 않았는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그런 것일까요. 그런데 아까부터 이음이 얼굴 표정이 야릇해요. 자랑스러움일까, 우쭐거리기라도 하는 걸까. 터져나오는 기쁨을 참고 있는 듯하지만, 비싯비싯 눈가로 삐져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나봐요. 드디어 형이 울음을 터뜨린 거예요. 좀처럼 울지 않던 형이, 그것도 오랫동안을. 조그만 일만 터져도 울기부터 하는 이음이는 갑자기 키가 커진 듯, 위에서 아래로 형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을까요. ‘야, 울림이 너, 이제 사람 됐다. 울기도 하고.’ 라며 놀리는 듯 말하니, 한참만에 방에서 나오는 울림이는 멋쩍은 듯 배시시 웃어요. 아, 나에게도 놀림거리가 생겼어요. 울림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듯이, 나는 가끔 주머니에서 ‘놀림감’을 꺼내어 울림이를 놀려 먹을 거예요.
2020. 7. 5
‘구름 아저씨, 비껴 주세요.’ 달이 구름에 가리자, 이음이가 한 말이에요. 어느덧 나는 동화 속으로 들어왔어요. 동화 속에서 ‘우리’가 뭐라뭐라 하면서 엄마 옷자락을 끌어당겨요. 뭐라뭐라 달이 나왔으니 같이 가서 보자는 이야기예요. 이럴 때 구름을 사이에 두고 달님과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한다고 해요.
뜰에 서서 ‘우리’가 웃고 있어요. 아이들 이모 지원씨가 ‘우리’가 웃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해요. 지우 어릴적 모습이 떠올라요. 저리 달님처럼 환히 웃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친구 하나 없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구석에 혼자 갇혀 있어요. 가끔 지우는 우인이의 아픈 그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우는 늘 아이들 외할아버지와 술 한 잔 하고 싶어해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섬기는 마음으로 마주하는,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지우는 편한가 봐요. 아이들 외할버지는 마냥 허허로우시기만 하시지 않아요. 무심한 듯 하시지만, ‘지우씨, 도자기 시작해야지요. 너무 기다리면 안 돼요.’ 라고 하실 때는, 지우를 꿰뚫어 보는 듯해요.
아이들은 마루난간에서, 지우가 가르쳐 준 대로 맥주 깡통을 꽉 눌러 발에 끼고 깡통로봇처럼 뛰어다니다가, 마당으로 집어 던지고 뜰에서 축구를 하기도 해요. 일하다 늦게 온 아빠가 술 한 잔 하는 동안, 엄마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밤이 이슥할 때야 돌아갔어요. 지우는 혼자 남아 술을 마시고 있어요. 실은 오늘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둘째 따님 지원씨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 지우는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우는 아이들 외할아버지와 술을 주거니받거니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지도 몰라요.
2020. 7. 9
밭을 내려오는데, 뜰에 세발자전거에 앉아 있던 ‘우리’가 나를 쳐다봐요. 내가 손을 흔드니까, 엄마한테 고개를 돌려 무어무어라고 해요. 그 전 같으면 같이 손을 흔들었을 텐데, 이제 제법 말을 할 줄 아니 엄마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무계단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지, 손으로 무엇을 만지작거리는 엄마는 가만히 웃음을 지어요. ‘우리’가 뭐라고 했을까? 엄마의 고운 그늘 아래 ‘우리’가 피어나고, 오늘 아침 이 세상 모든 꽃들이 활짝 피어났어요.
2020. 7. 12
온종일 하늘이 끄무레하더니 저물녘 빗줄기가 조금 세차지자 꼼짝도 않던 아이들이 꼬물꼬물 기어나와요. 빨강 우산은 울림이, 흰 우산은 이음이, ‘우리’는 분홍 우산. 우산을 빙빙 돌리는 울림이, 우산은 뒤집어지고, 마당에 쭈그려앉아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이음이, ‘우리’는 뒤늦게 콩콩콩 나무계단을 내려오고 ... 마치 이웃집토토로 마을에 사는 아이들 같아요. 느슨해진 거친 현을 긁는 치렁치렁 늘어진 목쉰 빗소리가, 창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이 사는 나라에는 피아노 맑은 건반 위를 통통 뛰어다니며 빗방울이 춤추고 있어요.
2020. 7. 15
‘나, 홀수 짝수 알아.’ 이음이가 말을 꺼냈어요. 우인이가 ‘내가 문제 낼게 알아맞혀 봐.’ 라고 말했어요.
우인 : 3
이음 : 홀수
우인 : 7
이음 : 홀수
우인 : 8
이음 : (한참 생각함.)
나 : 바로 옆에 있으니까.
이음 : (다시 생각하다가) 홀수
우인 : 틀렸어.
이음이는 홀수 짝수 홀수 짝수 손가락을 꼽아 셈하는데, 잘못 세었나 봐요. 우인가 다시 해 보자고 했어요.
우인 : 5
이음 : 홀수
우인 : 10
아내 : (뒤에서 우인이 몰래 양손 손가락을 서로 짝지어 보여줌)
이음 : 짝수
우인 : 9
아내 (다시 손가락을 붙여 하나가 짝이 없음을 보여줌)
이음 : 홀수
우인 : 야! 이음이 너, 학교 안 가도 되겠다.
이음 : 나, 학교 안 가.
다음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몹시 궁금했어요.
이음 : 나, 어린이집에 가.
나는 무슨 말을 기다린 것일까요? 이음이가, 나는 다 아니까 커서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그런 말 ... 이음이는 한 방에 날려버렸어요.
2020. 7. 16
‘우리’를 손수레에 태워 숲길을 오르는데, 참 오랜만에 이음이가 함께 태워 달라고 해요. 이음이는 내가 무릎이 아프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래, 타.’ 하니까, 이음이가 ‘할아버지, 괜찮아?’ 라고 묻자,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도 따라 ‘괜•찮•아?’ 라고 해요. ‘우리’는 앞으로 당겨가고, 이음이는 뒷자리에 앉고, 이음이는 다시 ‘할아버지, 왜 빨리 낫지 않아?’ 라고 물어요.
나 : 나이가 들어서 그래.
이음 : 알아, 늙으면 죽을 수도 있잖아.
나 : 그럼, 김종철 선생님도 돌아가셨잖아.
이음 : 산책하다 ...
이음이는 엄마 아빠에게 들어,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어요.
나 : 그 전에 잠을 통 못 주무셨대. 밤이면 귀에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음 : (소리없이 웃으며) 진짜 비행기가 지나간 것 아니야.
나 : 다른 사람은 못 들었는걸. 그런 병을 ‘이명’이라고 해.
이음 : 나도 병 이름 알아.
나 : 니가 무슨 병 이름을 알아? (니가 어디가 아프다고 병 이름을 아느냐고 물은 거예요.)
이음 : 쥐병.
나 : 쥐병?
나는 순간, 오랫동안 잘 낫지 않는 ‘지병’이란 말일까, 또 쥐를 잡아넣은 병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음이가 ‘안전교육 책에서 봤는데.’ 라고 하자, 그때서야 발에 쥐가 나는 것을 말하는구나 하고 눈치챘어요.
이음 : 어떤 아이가 잘난 체한다고 멀리 헤엄쳐 가다가 갑자기 발이 ...
이야기를 다 끝내기 전에 집에 닿았어요. 손수레를 나무난간에 걸쳐 ‘우리’를 내려주고, 이음이는 짐처럼 쏟아 달라고 해서, 마당에 부어 놓고 돌아왔어요.
2020. 7. 18
어둑해진 뒤에서야 내일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비설거지를 했어요. 낮에 아내가 꽃밭에서 뽑아놓은 풀이 가득찬 손수레를 비우고 돌아오는데, 풀숲에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있었어요. 풀잎 사이로 반짝이는 모습이 구름 사이로 비치는 아슴한 별빛 같았어요.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아쉬운 듯 발걸음을 뗐는데, 그 때 나는 아이들 생각을 했나 봐요. 내 마음이 이어졌는지, 방에 들어오자 아내가, 아이들한테서 반딧불이 봤느냐고 전화가 왔다고 해요. 얼른 전화를 걸어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어요. 그 때 시각이 8시 38분이었어요. 먼저 나가서 숲길에서 기다리는데, 울림이와 이음이가 손전등을 들고 뛰어내려왔어요. 그새 날아갔는지 사그라진 불빛이, 숨죽여 기다리면 되살아나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우리와 엄마, 이모 지원씨도 나왔어요. 우리는 나를 보자마자 ‘한미(할머니)는 어디 있어?’ 하고 아내를 찾아요. 울림이와 이음이는 반딧불이를 잡고 싶어하는데, 손전등을 비추면 보이지가 않았어요. 손전등을 들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보고 지원씨가 혼잣말인 듯 너희들이 반딧불이 같다고 해요. 우리가 달려와 엄마 다리를 꽉 붙잡고 있길래, ‘어, 반딧불이가 날아와 엄마 다리에 붙었네.’ 하고 내가 소리치자, 어느새 울림이는 손전등을 가랑이 사이에 거꾸로 끼고 반딧불이 흉내를 내며 잰걸음으로 숲길을 오르내려요. 이음이도 따라하고 꽁무니에 불을 켠 채 아이들 반딧불이가 밤하늘 밝히며 언제까지나 동동 떠다니고 있었어요.
뒷이야기
다시 반딧불이를 찾아나선 아이들을 두고 집에 들어왔는데, 밖에서 울림이가 반딧불이 애벌레를 찾았다고 크게 소리를 쳤어요. 아까 엄마가, 반딧불이가 날아가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애벌레 같다고 했는데, 끝내 울림이가 찾아냈어요. 손전등을 비추니 밥그릇 뚜껑에 담긴 반딧불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꽁무니에 흐릿한 불빛을 달고 기어가고 있었어요. 나중에 엄마한테 문자가 왔는데, 애벌레가 아니고 날개가 퇴화한 늦반딧불이 암컷이라고 해요.
2020. 7. 19
아이들이 놀러왔어요. 신발에 붙인 스티커 인형을 자랑하더니, 아내에게도 보여주려고 할머니를 찾아요. 내가 ‘여보!’ 하고 부르자, 이음이도 ‘여보!’ 하며 내 흉내를 내고, 우리도 따라 ‘여보!’ 하고 아내에게 달려가요. ‘우야(아이구)! 내 새끼들.’ 뒤꼍에서 일하다 나온 아내가, 흙 묻은 손을 털고 아이들을 꼭 안아줘요. 이제 제법 말문이 터진 우리가 ‘한미, 이리 와 봐.’ 라고 할 땐, 아내는 몸이 다 간지럽다고 해요. 신발 왼쪽 오른쪽을 바꿔 신은 우리를 보니, 이음이 생각이 나요. 발이 불편해 보여 제대로 신겨 줘도, 다음날이면 이음이는 또 바꿔 신고 나타나요. 배움은 때가 있나 봐요. 그 날도 신발을 바꿔 신고 와서, 이음이에게 발 모양을 손으로 그려 보여 주고는 이렇게 신는 거라고 가르쳐 준 뒤로, 다시는 바꿔 신지 않았어요. 오늘도 이음이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었는데, 우리는 세 살이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겠지요. (엊그제 일어난 일이에요.)
2020. 7. 27
우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하비, 어디 있어?’ 하길래, 밭에 있다고 하니 전화를 끊어요. 다시 전화가 와서 뭐라뭐라 하는데, 곁에서 엄마가 ‘하비, 놀러 갈게.’ 라고 하니, 우리도 따라 ‘하비, 놀러 갈게.’ 라고 말해요. 밭일을 멈추고 계단 쪽으로 마중을 갔는데, 비옷을 입고 나를 쳐다보자마자 ‘하비!’ 라며 온몸으로 기뻐해요. 형들은 어디 갔는지, 들깨를 모종하는 내 곁에서 혼자 놀아요. 흙을 파선 두꺼비집 놀이도 하고, 흙을 집어 위에서 내 손에 뿌리며 ‘비가 온다.’ 라고도 해요. 손수레를 태워 달라기에, 아침에 마을일을 나간 할미한테 가자고 하니까, 아까 엄마차 타고 오다가 할미를 봤다고 해요. 마을회관 지나 길가에 풀 뽑은 흔적 따라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나왔으나, 아내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제 집에 갈까 하니 싫다고 해요. 내려오는 데만 삼십 분 남짓 걸렸을 거예요. 나중엔 우리가 ‘하비 집 밥 먹자.’ 해서 겨우 길을 돌렸어요. 우리는 맨밥을 구운 김에 싸주어도 잘 먹거든요. ‘하비, 엄마하고 엉아하고 이모하고 할미하고 같이 밥 먹어.’ 라고 할 땐 마음이 싸아했어요. 지나가던 트럭이 멈추더니, 마을아주머니가 ‘혼자예요?’ 하길래, 오늘은 형들이 함께 오지 않아 물어보시는구나 해서 ‘예’ 하고 대답했는데, 생각해 보니 ‘손자예요?’ 하고 물었던 거예요.
2020. 7. 30
이음이 말투가 떠올랐을까요. 낯선 작가에 내용도 모르는 ‘미움’이란 그림책을 선뜻 주문한 까닭은. 혼잣말인 듯 무뚝뚝한 말투, 굵은 금으로 그려진 그림이 좋았어요. 책을 주문하면서 먼저 아이들에게 읽어줄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오면 나도 그림책 있다며 자랑하고, 무뚝뚝한 말투로 읽어줄 거예요. 아이들은 날마다 잔치에요. 비가 와도 잔치, 비가 그쳐도 잔치, 엊그제는 이모 지원씨가 홍성에 방을 구했다며 잔치 ... 이번주 토요일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와서 또 잔치가 벌어지겠지요. 우리 목소리는 잠에서 막 깨어난 새소리 같아요. 벌써 우리집 마당 한바퀴를 돌고갔어요.
2020. 8. 3
엊그제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 지원씨가 왔어요. 이음이가 먼저 달려와 식구들이 온다고 알려주었어요. 이윽고 외할아버지와 ‘우리’가 문으로 들어섰어요. ‘우리’는 신발을 벗더니 문 쪽으로 앞을 두어 가지런히 놓았어요. 이제는 왼쪽 오른쪽 신발을 가려 신은 줄 아는 듯해요. 엄마가 가르쳐 주었을까. 형들을 따라한 것일까. 며칠 전만 해도, 한 쪽 신발은 날아와 대청 문턱을 넘고 다른 쪽은 뒤로 내팽개쳤는데.
‘우리’는 마루를 빙빙 돌아요. 외할아버지 까슬한 수염도 만져 보고, 조심스레 지우의 빡빡 깎은 짧은 머리칼도 만져보고, 앉아있는 내 등 뒤에 와 목을 움켜잡고 매달리기도 해요. 아이들은 안방에 들어가 우인이와 카드놀이를 하다가 ‘벼랑 위의 포뇨’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외할아버지는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일어서셨어요. 빗속에 처음 피어난 날, 짙은 보랏빛으로 새치름하게 보였던 큰꽃으아리 꽃잎 여섯 장이, 닷새가 지나자 빛이 엷어지고 너부데데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2020. 8. 6
비바람이 잠깐 그친 사이, 무너진 길을 돌아보고 오다 엄마 차를 만났어요. 뒷자리에 ‘우리’가 혼자 타고 가길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디 가느냐고 물었어요. ‘떼떼뽀뽀엄마뿌’ 라고 하길래, 속으로 ‘엄마 차를 타고 어디 간다는 말이구나.’ 라고만 짐작했어요. 엄마가 말을 이어받아 지원이가 기차역에 와서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했어요. 헤어지고 숲길을 올라오다가 그 때서야 생각이 났어요. 아, 내가 왜 ‘우리’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 ‘우리’는 제 생각을 정확히 나타낸 것이었어요. ‘엄마 뿌(차) 타고 떼떼뽀뽀(기차) 역에 간다.’는 말을 한 거예요. ‘떼떼뽀뽀’를 먼저 꺼낸 것은 기차라는 말을 먼저 꼭 하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알아들었으면, ‘우리’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아이들 몸짓 하나 말 한 마디에는 다 뜻이 있는 줄 알면서도 내가 놓친 거예요. 새벽 숲을 뒤흔드는, 너울 같은 큰바람에도 오늘 아침 큰꽃으아리 나머지 두 송이가 피었어요.
2020. 8. 10
엊저녁 저희 집에 와서 ‘우리’가 처음 그린 그림이에요. 마치 바위에 새겨 놓은 듯한 암각화 속엔, 엄마, 할머니, 우인이 이모, 엉아, 강아지, 엄마 차, 아빠 차 들이 있어요. 그림 속,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가며, 짚신벌레 같은 것이 셋이 있는데, 가운데 가장 크고 긴 것이 나를 그린 거예요. 짚신벌레 옆으로 위로 아래로 가늘고 긴 털은 손발이고요. 암호 같아 보이지만, 다시 만나 ‘우리’에게 물어보면, 누굴 그렸는지 하나 하나 다 알아맞힐 것 같아요. (아, 아래 종이가 찢긴 곳에도 짚신벌레 하나가 더 있네요.)
2020. 8. 17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듯해요. ‘우리, 너 졸리는구나.’ 차 옆자리에 앉아 내가 놀리면, ‘아니.’ 하곤 눈에 힘을 주어 동그랗게 떠요. 또 눈이 감기고 내가 졸리는구나 놀리고 ‘우리’는 아니라고 하고, 몇 차례 그러다 쏟아지는 잠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는 ‘우리’는 잠이 들어요. 어제 ‘우리’네 식구들과 예산출렁다리로 나들이를 가, 내포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엊그제는 ‘우리’가 전화를 걸어 ‘하비 집에 가서 맛있는 거 같이 먹어.’ 해서 기다렸는데, 텃밭에서 따서 삶은 옥수수 한 봉지를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었어요. 오늘은 뒷마당에 엄마 아빠가 만들어 놓은 실내수영장에 가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어요. 물 가운데 서서 부르르 몸을 떠는 ‘우리’가 추워 보여, ‘우리, 너 춥지.’ 하니까 어제처럼 아니라며 ‘우리’는 웃음을 지어 보여요.
2020. 8. 24
여름방학이 끝나고, 어제는 엄마 차를 타고 우인이를 학교 사택에 데려다 주고 왔어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침에 먼저 일어난 아빠가 ‘우리’ 보고 엄마를 깨우라 하니, ‘우리’가 ‘엄마 혼자 일어날 수 있어.’ 라고 하더래요. 앞 운전석에 엄마, 바로 뒷자리에 타고 가는 ‘우리’ 모습이 마치 영화 한 장면 같아요.
2020. 8. 26
바람의 끝자락일까. 싸리비로 쓸듯 벼논을 쓸어가면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나요.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어제 홍성읍내 지원 이모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온다며, 나는 어느 구석에서 잘 거라며 이음이가 들떠 얘기했는데 ... ‘우리’가 받쳐놓고 간 자동차만 마당에 외롭게 서 있어요. 지금은 산자락에 숨겨두고 있지만, 곧 여울처럼 큰바람이 온산을 뒤흔들어놓겠지요. ‘사각사각’의 본딧말이 ‘사그락사그락’인데, 이런 뜻들을 지니고 있어요. ‘벼, 보리, 밀 따위를 잇따라 벨 때 나는 소리’ ‘눈이 내리거나 눈 따위를 밟을 때 잇따라 나는 소리’ ‘연한 과자나 배, 사과 따위를 자꾸 씹을 때 나는 소리’ ‘갈대나 풀 먹인 천 따위의 얇고 빳빳한 물체가 자꾸 스칠 때 나는 소리’ ‘종이 위에 글씨를 잇따라 쓸 때 나는 소리’
2020. 9. 4
아이들이 놀러왔어요. 울림이는 그냥 뛰어서, 이음이와 ‘우리’는 하늘이 맑고 파란데 우산을 쓰고 달려와요. 아이들과 함께 우산바랭이 풀로 우산을 만들며 놀았어요. 어제는 빌궁 삼촌네 가서 저녁을 먹고 왔대요. 옥원이 이모는 지원이 이모 집에서 자고, 오늘 데리러 간다고 해요. 걸상에 앉았던 울림이가 혼자 구구단 몇 개를 외더니, 나에게 ‘6*3’은 하고 물어봐요. ‘18’하고 대답하니, 아니라고 해요. 다시 ‘2*9’는 하길래 ‘18’이라고 하니 아니라며, ‘29아나(이구아나)’라고 해요. ‘6*3’은 ‘63빌딩(육삼빌딩)’이래요. 나도 어릴적 생각이 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얇은이(홀쭉이를 가르키는, 이음이가 쓰는 말)는?’ 하고 물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비사이로막가’라고 일러주었어요. 앞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는 엄마 재채기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가 물어요. ‘이게 뭐지?’ 그러곤 얼마 있지 않아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갔어요.
2020. 9. 8
어젯밤 별 너댓 송이가 바람에 밀려와 반짝이더니, 눈부신 햇살을 안고 ‘우리’가 달려오고 있어요. ‘우리 너, 머리 깎았구나.’ 하니 ‘이모가 깎아 줬어.’ 라며 또렷이 대답해요. 왼쪽 얼굴에 보이지 않던 상처가 있어 물어보니, 이음이가 곁에서, ‘우리’가 나무 계단에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서 그렇다고 해요. 이음이는 짧게 깎은 단발머리가 너무 싫다고 해요. 아빠 젊었을 때처럼 허리까지 기르면 좋겠냐고 하니, 발바닥에 닿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밭언덕을 오를 땐 이음이 머리카락을 붙잡고 오르고, 밤에는 이음이 머리카락은 우리 집에서 재우고 이음이 몸뚱이는 저희 집에서 자기로 했어요.
좁다란 나무난간 턱을 고양이처럼 아슬아슬하게 기어다니는 ‘우리’와 이음이를 데리고 통나무 작업장으로 올라갔어요. 며칠 줄곧 비가 와서 도랑이 깊게 패어 물이 제법 많이 흘러요. 둑을 쌓고 나뭇잎배도 띄워 보내고 한참이나 놀다 왔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 오늘도 ‘우리’는 머리를 감고 배를 씼었어요.
2020. 9. 17
켜켜이 쌓인 어둠 속에 도랑물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해요. 불빛에 풀잎 끝 맺힌 빗방울들이 반짝이고, 어기적어기적 두꺼비 한 마리 길을 건너고 있어요. 비 그친 하늘 구름 사이로 별들이 일렁이는데, 아이들 집은 불이 꺼진 채 컴컴해요. 어디로 간 것일까. 낮에만 해도 내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언제 올 거야?’ 셋이 번갈아가며 물었는데. 지하수가 또 고장나고 크레인이 왔다갔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다른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걸까. 아이들이 없다는 생각이 밀려와 갑자기 이 세상에 우리만 홀로 남겨진 듯한데, 이따금 바위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요.
2020. 9. 18
내일 아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어떤 아이 둘이 길을 가는데, 큰아이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동생인 듯한 아이에게, 꼬챙이에 비닐을 둘둘 감아 놓은 것을 보고 허수아비 같다고 했어. 그러고는 길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마침 꼬마가 끌고 내려가는 자전거에 걸려 넘어졌어. 넘어진 큰아이는 화를 내며 꼬마 아이 가슴팍을 때렸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음이는 ‘그 거 형과 우리 이야기잖아.’ 라고 말하고, 울림이는 멋적은 듯 배시시 웃겠지요. 아이들은 저희들 이야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저희들이 이야기 속에 나오면 재미있어 하며 끝까지 들어요.
정말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자전거를 끌고 그저 앞만 보고 내려갔을 뿐이에요. 무릎과 팔꿈치가 시멘트 바닥에 쓸려 너무 아픈 나머지 엉겁결에 울림이가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엉엉 울면서 울림이는 집으로 가고, 세게 맞지는 않았지만 너무 속상한 ‘우리’도 울면서 엄마 품으로 달려갔어요. 두고간 킥보드와 자전거를 들고 터덜터덜 뒤따라가는데, 이음이가 혼잣말인 듯 ‘모두 어린아이였으면 좋겠다. 혼내지 않게.’ 라며, 울림이 형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해요. 가끔 울림이는 어른처럼 구나봐요. 어제도 차에 깔려 죽은 두꺼비를 보려고 이음이가 달려가니까, 먼저 보고 온 울림이가 뒤따라가며 ‘어린이는 안 보는 게 좋을 걸.’ 하고 말하던 것이 떠올라요.
2020. 9. 19
울림이네 집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에요. 하나는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돌계단으로 질러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숲으로 난 샛길로 에돌아 가는 길이에요. 샛길은, 지난번 큰비가 왔을 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덮쳐서 한쪽이 무너졌어요. ‘우리’가 자전거를 끌고 좁다란 길을 건너올 때마다 안타까웠는데 오늘에서야 메웠어요. 돌을 쌓은 뒤, 내가 삽으로 흙을 퍼서 담으면, 울림이는 손수레를 끌고가 쏟아붓고, 이음이는 갈퀴로 흙을 고르게 펴요. 우리 곁에서 농사 공부한 지 두 해가 지난 울림이와 이음이는 제법 큰일꾼이에요. 내가 발로 구르며, 이렇게 단단하게 다져야 나중에 비가 와도 푹 꺼지지 않는다고 하니, 아이들도 통통 뛰면서 따라해요. 지우 삼촌이 와서 발로 구르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음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귓속말인 듯 작은 목소리로 울림이가 ‘할아버지, 이음이가 지우 삼촌 1톤이래.’ 라고 해요. ‘뭐, 지우 삼촌 몸무게가 1톤이라고!’ 나는 혼자 껄껄 웃어요. 초사흘달이 떴어요. 마치 박주가리 솜털씨앗 같아요. 곧이어 하늘 속에 잠겨있던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겠지요.
2020. 9. 21
마당에서 고추잠자리를 쫓아다니다가, V자 길로 밤을 털러 갔어요. V자 길은, 마을에서 올라오다 아이들 집과 우리 집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을, 울림이가 이름을 붙이고 이음이와 나까지 셋이만 알고 부르는 말이에요. 낮은 곳은 잠자리채로 털고, 높다란 가지에 매달린 밤송이는 돌을 던져 땄어요. 밤송이가 떨어지는 곳에는 풀이 우거지고 칡넝쿨이 뒤엉켜 있어, 아이들을 기다리게 하고 집에 올라가 예초기를 가져와 말끔히 벴어요. 기계 다루는 게 서툴고 풀벌레들이 다칠까봐 늘 애타고 안절부절못하지만, 이럴 때는 내가 예초기를 쓸 줄 안다는 게 뿌듯하게 느껴져요. 밤들은 까서 ‘우리’가 등에 진 가방에 넣어요. ‘우리’에게는 밤송이 터는 일이 처음일 거예요. 나머지 밤송이는 내일 대나무 장대로 털기로 하고 헤어지는데, 울림이 이음이가 번갈아 달려와, 할아버지 할머니 지우 삼촌도 먹으라고 밤 세 알을 내 뒷주머니에 몰래 넣고는 달아나요.
2020. 9. 22
‘할아부지, 할아부지, 할아부지, 할아부지,’ 엄마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쳐 부르고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샛길로 달려와요. 이음이도 나를 부르며 뒤따라 오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날마다 이렇게 넘치는 기쁨을 누리며 사는지요. 이음이가 킥보드에 앉은 채 비탈을 내려가다 멈춰선 ‘우리’ 자전거와 맞부딪쳤어요. 넘어진 이음이를 보고 ‘괜찮아?’ 하곤 ‘우리’가 걱정스럽게 물어봐요. 이음이가 손목에 조금 벗겨진 생채기를 보여주자, ‘우리’는 ‘이음이 안 아파.’ 를 두어 번 되풀이하는데, 물어보는 말이 아니라 ‘이음이는 아프지 않다.’고 하는 말처럼 들려요. 그래서 이음이도 ‘이음이 아파, 이음이 아파.’ 라고 되뇌어요. ‘우리’는 손가락으로 왼쪽 이마 위아래를 가리키며, 지난번 나무 계단에서 넘어져 많아 아팠다고 몸짓으로 말해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하늘이 갈대 위로 눈부시게 빛나요.
2020. 9. 24
‘우리’ 몸에 늘 붙어다니는 자전거는 발판이 없는 두발자전거예요. 브레이크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손아귀 힘이 모자라,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갈 땐 얼른 안장에서 일어나 두 발로 털털털털 뛰어가지요. ‘우리’ 두 발이 자전거 페달과 브레이크인 셈이지요. 얕은 내리막길에서 내가 ‘우리, 발 놓아.’ 하면, 땅에서 두 발을 떼곤 아슬아슬 신나게 달려요. 자전거 방향을 바꿀 때는, 오른손을 뒤로 해서 안장을 들고 빙 한 바퀴 돌아요. 안장을 들고 자전거 앞뒤를 바꾸는 건 ‘우리’가 몸으로 깨친 듯해요. 신발을 신을 때 잘 들어가지 않으면 신발 앞꿈치를 바닥에 툭툭 치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할아부지, 안녕!’ 부엌 창문으로 ‘우리’가 소리치면 비로소 나에게 아침이 밝아오지요. 무밭에 웃거름 주다 바라본 저녁 하늘이에요.
2020. 9. 26
‘할아버지, 옷 빨아 입어.’ 느닷없이 이음이가 말을 꺼냈어요. ‘아, 이 옷, 일할 때 입는 옷이야.’ 라고 말했지만, 순간 적잖이 당황스러웠어요. 흙투성인 바짓가랑이가 더러워 보였던 거예요. 하긴 여기에 살다 보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잠옷 차림으로 마당이나 길을 나서고, 일할 때만 일옷으로 갈아입는데, 그 옷마저 며칠만에 갈아입지요. 아이들도 우리 집으로 올 땐 잠옷 바람이에요. 울림이는 수더분한 구석이 있는데, 이음이는 퍽 깔끔해요. 색칠할 때도 조금이라도 금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참지 못해요. 이음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신발 속으로 흙이 들어가는 거예요. 저녁나절 무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이음이는 제가 해보겠다고 하며, 손에 쥐고 있는 입마개(마스크)를 내게 맡기며, ‘할아버지, 주머니는 깨끗하지?’ 하며 물었어요. 요즘은 바람의 빛깔도 결도 소리도 달라진 듯해요. 어제는 산을 오르다가 물봉선화 한 무리를 만났어요. 가만히 앉아, 깔대기 같은 대롱 꽃이 어디에 매달려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꽃빛은 자줏빛을 띤 빨간색인 연짓빛이에요.
2020. 9. 29
땅콩밭을 둘러친, 검정색 그물로 된 달래망을 개고 있는데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이음이가 저도 해보겠다며 옆에서 거드니, 울림이도 같이한대요. 나는 길 위쪽으로 올라가 달래망을 팽팽하게 잡고, 아이들은 아래에서 둘둘 말아 올려요. 한참이나 하다가 힘에 부치는지, 아이들은 한숨 자고 해야겠다며 달래망을 베개 삼아 길바닥에 드러누웠어요. 두말할것도없이 울림이가 먼저 그랬어요. 아이들과 일을 하다 보면 놀이인지 일인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많이 달라졌어요. 형들 따라 놀러 오거나, 혼자서도 자전거를 끌고 우리 집으로 달려왔는데, 요즘은 엄마가 데려다 줘야만 해요. 놀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놀란 듯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고,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녀요. 아내한테 얘기하니, ‘아시타나’ 보다 라고 하는데,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올봄만 해도, 커서 엄마와 결혼하겠다는 이음이 생각이 겹쳐 왔어요. 물소리 그친 도랑에는 풀벌레 소리가 흐르고, 하늘에서 내려와 다소곳이 앉은 개쑥부쟁이 꽃이 머잖아 뜰과 언덕을 연보랏빛으로 뒤덮겠지요.
2020. 10. 5
추석을 쇠고 오랜만에 울림이가 학교에 갑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긴급 돌봄’이라며, 학교 가는 울림이 따라 이음이도 어린이집에 갑니다. 차창 밖으로 두 손을 내밀어 이음이와 울림이는 헤어지는 인사로, 나와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천 번이나 했어요.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울림이는 체험활동을 가서 만들었다며 마들렌이란 빵 세 개를, 이음이는 선생님이 삶아주었다며 쥐밤(산밤) 여섯 알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왔어요.
어제 만들다 만, 대나무 칼과 칼집을 마무리해서 허리에 차고 산적을 잡으러 나섰어요. 산길을 내려가다 금방 산적 잡으러 가던 것도 잊어버리고, 칼집을 묶은 비닐끈과 길섶에서 주운 상수리를 가지고 놀았어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아래 피어있는 메리골드 꽃을 보고 이음이가 느닷없이 ‘곤드레밥’이라고 해서 한참이나 웃었어요. 날은 어둑해지고 이음이는 발목에 줄이 묶인 채 울림이에게 끌려갑니다. 이음이는 엎드려 졸졸 따라갑니다. 내가 얼른 끈을 풀어 안고 가는데, 내 품에 안겨서도 이음이는 강아지 흉내를 내며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집으로 갑니다.
2020. 10. 8
무슨 일인지 울림이 혼자 방으로 뛰어들어 와서 ‘잠깐 할머니를 볼 일이 있어 왔다.’며 침대로 올라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내를 살펴 보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어요. 손에 연필을 쥔 걸 보니 아내를 그리려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얼마쯤 지났을까, 울림이와 이음이가 달려오고 그 뒤를 ‘우리’와 엄마가 오고 있어요. 보여줄 게 있다며 울림이와 이음이가 주머니에서 몇 겹 접은 종이를 꺼내는데, 그림편지일까 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도감’이라고 해요. 울림이 학교에서 숙제로, 집에서 기르고 싶은 동식물을 하나씩 골라, 그에 관한 내용을 책이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도감을 만들어 오라고 했대요. 울림이는 ‘리버쿠터’라는 거북이 도감을 만들고 있는데, 이음이도 덩달아 도감을 만들고 싶어, 무엇을 만들까 하다가, 문득 ‘할머니 할아버지 도감’을 생각해 낸 것이었어요. ‘할아버지 도감’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어요.
앞표지 : 할아버지 도감
1쪽(이음) : 콧털 한 가닥, 콧털이 하얗다.
2쪽(울림) : 알통이 없는데 힘이 세다. 맨날 일한다. 재밌다.
3쪽(이음) : 하얀 머리카락 까만 머리카락이 있다.
4쪽(울림) : 맨날 똑같은 옷만 입는다.
5쪽(이음) : 할아버지는 맨날 우리 아이들을 다른 아이로 말한다. 밀차를 잘 끄신다. 맨날 목욕한다. 개구쟁이다.
6쪽(울림) : 배가 뽈록 나왔다.
뒤표지 : 끝. 2020. 10. 7.
아이들 고모할머니가 내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에 달아 놓으신 댓글에, 아이들이 ‘날마다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행복을 안겨주네요.’라고 하셨는데, 오늘도 가슴 뻐근한 행복을 선물 받았어요.
2020. 10. 8
지난해만 해도 엄마가 좋아한다는 가수 ‘아이콘’의 노래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를 흥얼거리고 다녔는데, 얼마전부터 엄마가 손홍민 축구에 관심을 보이자, 울림이와 이음이는 저희가 서로 손홍민이라고 우기며 바람 빠진 축구공을 들고 뛰어왔어요. 축구 하면 또 김종도 아닌가. 까불지 마라, 너희 손홍민 형제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마. 나는 아이들을 제치며 요리조리 공을 몰아 골을 넣고는, 머쓱해진 아이들 앞에서 참새처럼 뛰며 혼자 소리지르고 좋아하지요. 문제는 ‘우리’예요. 나와 ‘우리’가, 울림이와 이음이가 같은 편을 먹었는데, ‘우리’는 공만 보면 손으로 잡고 우리 편 골대 너머 저만치 들고 가서는 혼자 공을 몰고 오는 거예요. 누구라도 ‘우리’ 앞을 막아서는 안 되기에, 나는 울림이와 이음이를 손으로 붙잡아 길을 내주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울음보를 터뜨리거든요. 그렇게 애써 공을 몰아 상대편 골대 앞에 가서는 다시 공을 손으로 잡아 우리 편 골대로 되돌아오는 일을 ‘우리’는 되풀이하는 거예요. ‘반칙이다. 시시하다.’고 이음이는 투덜대고, 울림이는 ‘우리, 귀엽지.’ 하고 말하는데, 나는 문득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오는 ‘해파리 소녀’의 한 장면을 떠올렸어요.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길엔 한창 개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었어요.
2020. 10. 15
요즘은 아이들과 ‘방방’을 타고 놀아요. ‘트램펄린’이란 놀이기구인데, 우리말로 ‘잇달아 공중으로 뛰는 모양’이라는 뜻을 지닌 ‘방방’이란 말이 잘 어울려요. 아이들과 뛰면서 빙빙 돌다보면 소용돌이치는 물결 같아요. 어지러워서 그만 쉬려고 하면, ‘우리’가 ‘엄청 많이, 엄청 많이’ 하자고 해서 멈출 수가 없어요. 아이들은 지칠 줄 몰라요. 놀다보면 아이들은 가끔 나를 ‘아빠’라고 불러요. 아이들에게 가까운 사람은 모두 ‘아빠’인가 보아요. 지난번에도 모래놀이를 하다가 ‘우리’가 나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더니, 뭐가 잘못되었는지 혼잣말로 ‘아빠 아니 할아버지’ 라고 더듬듯이 고쳐 말해서 혼자 웃었어요.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새나 꽃이 사람의 말을 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을 만나면 늘 ‘방방’ 위를 뛰고 있는 기분이에요.
2020. 10. 19
아침에 뜰을 거닐던 아내가, 날씨가 추우지니 쑥부쟁이 꽃빛이 더 짙다고 해요. 보랏빛은 빨강과 파랑 가운데 서있는 빛깔인데, 경계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게 느껴져요. 낮과 밤, 뭍과 물, 땅과 하늘, 비올녘, 시월에서 십일월로 건너가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지요. 울림이가 뛰어와 톱으로 나무를 베어 달라고 하고, 잇달아 이음이가 쫓아와 정전가위로 막대기를 잘라 달라 하고 ... 뒤늦게 달려온 ‘우리’가 할아버지 밀차 태워 달라고 해서 엊저녁에는 저 아래 가로등이 비추는 마을길까지 갔다왔어요. ‘엄청 많이’라는 말을 배워, 아주 멀리 가자고 ‘우리’가 자꾸 졸라대요.
2020. 10. 20
울림이가 달려왔어요. 학교에 일찍 갈 수 있었는데, 이음이가 입을 옷을 고르느라 30분이나 걸렸다고 해요. 울림이 말로는 정확히 37분이래요. 아침에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이음이는 파란 운동복 바지에 바둑판 무늬 윗도리를 입고 연둣빛 얇은 목도리를 두르고 햇빛 반짝이는 숲 위를 날아 어린이집에 갔어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윗밭으로 올라왔어요.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저희들이 하겠다며 호미를 가지고 가요. 그러더니 느닷없이 ‘저희가 도움이 되긴 해요?’ 라며 이음이가 물어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니, 전혀 도움이 안 돼.’ 라고 딱 잘라 말해도, 아이들은 전혀 마음 쓰지 않아요. 이음이는 뾰족 내민 고구마를 손으로 잡아당기고, 울림이는 오늘따라 장난스레, 흙을 부드럽게 해 준다며 꼬챙이로 찌르고 갈퀴를 가져와 밭두둑을 긁어요. ‘너희들이 곁에만 있어도 엄청 도움이 돼.’ 라고 다시 고쳐 말하자, 이음이가 ‘왜요?’ 라고 물어요. ‘옷도 멋있게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웃게 해 주고, 귀엽고 사랑스러우니까.’
‘깜짝 놀랄 뻔했어.’
‘우리’가 한 말이에요. 나무난간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혼자 놀고 있기에, 밭을 내려오다가 ‘우리, 뭐 하니?’ 하니까, 얼른 자전거에서 내려와, 마당 빨랫대에 널어놓은 헝겊강아지를 손으로 가리켜요. 아마, 우리 집에도 강아지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나 봐요. 그러더니 할아버지 집에 ‘애기 강아지’ 보러가자며 내 손을 잡고 따라와요. 눈 뜬 지 며칠이 지났는데 강아지 네 마리는 집에서 나오려 하지 않아요. ‘우리’가 개집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은 채 강아지를 만져 보려고 고개를 들이미는데, 내가 ‘오요요요’ 하자 한 마리가 불쑥 앞으로 기어나오니, 움찔 물러나며 ‘우리’가 한 말이에요. ‘어떻게 깜짝 놀랄 뻔할 수가 있어. 깜짝 놀라면 놀란 거지, 놀라려다가 안 놀랄 수가 있는 거야.’ 울림이 이음이였으면 이렇게 따지며 말장난을 하며 놀았을 텐데, ‘우리’가 하는 말은 마냥 귀엽고 신비스럽기만 해요. ‘우리’는 누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을까요. 혼자 생각한 말은 아닐까요. 아마 ‘크게 놀라지 않았어.’나 ‘깜짝 놀라긴 했는데, 아무일도 없어 괜찮아.’와 같은 뜻으로 썼겠지요. 더듬더듬 말의 세계를 찾아가며, ‘우리’는 저 높고 빛나는 언덕으로 올라가겠지요.
*’애기 강아지’는 ‘우리’가 쓰는 말이에요.
2020. 10. 23
가끔 나는 ‘우리’에게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낱말을 쓸 때가 있어요. 오늘은 갑자기 바깥 날씨가 차가워져서, 손수레를 탄 ‘우리’에게 ‘바람이 쌀쌀하네.’ 라고 말했어요. 내 말을 받아 ‘우리’는 놀랍게도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라고 해요. ‘우리’가 ‘시원하다.’ 라고 말했어요! 언제인가는 ‘우리’에게서 이 말을 꼭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내가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말이거든요. 그 땐 여름이었고, ‘우리’는 거의 말을 못했어요. ‘우리’를 손수레에 태워 그늘 아래로 지나갈 때면, ‘아, 시원하다.’ 라고 자꾸 되풀이 했어요. ‘우리’도 내 말을 따라 신음 소리처럼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땐 전혀 뜻 모를 웅얼거림이었는데, 지금 또렷이 ‘시원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마을로 올라오는 샛길로 들어서는데, ‘우리’가 ‘이 거 무슨 냄새지?’ 하고 물어요. 내가 되받아 ‘무슨 냄샐까?’ 라고 하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빠가 불을 땠어.’ 라고 하길래, ‘아, 연기 냄새구나.’ 라고 하니 그건 아니래요. 마른 볏짚 냄새일까, 가을 들녘 냄새겠지요. 손수레에서 내려 함께 벼를 벤 빈 논으로 내려 갔어요. 청개구리도 보고 벼메뚜기도 잡고, 볏짚도 한 단 묶어 가지고 왔어요. 청개구리를 쫓아갈 때는 ‘우리’도 쭈그려앉아 개구리 걸음으로 폴짝폴짝 뛰었어요. 가을빛이 짙어지자 숲도 더 깊어진 듯해요. 오는 길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 우수수 가랑잎비가 내리고, ‘우리’와 나는 흰구름 하얀 새깃털이 되어 파란 하늘을 떠다녔어요.
2020. 10. 28
참나무 가운데, 왼쪽부터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가랑잎이에요. 떡갈나무와 갈참나무 잎은 동시란 달걀꼴에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상수리나무 잎은 길고 갸름하며 가장자리에 비늘처럼 뾰족한 톱니가 있어요. 떡갈나무는 잎자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진 속 떨갈나무는 잎자루가 뚜렷해, 떡갈나무와 갈참나무의 잡종인 ‘떡갈참나무’인지도 모르겠어요. 이웃에 사는 노씨 어른은, 상수리나무를 ‘참나무’라고 하고, 갈참나무를 ‘가나무’라고 부르는데, ‘가나무’ 원목에는 버섯이 잘 피지 않는다고 해요.
‘할아버지, 나왔다!’ 내가 마당으로 나오자, ‘우리’가 부엌 창문 안에서 보며 크게 소리쳐요. ‘아, 우리구나!’ 라고 하니까 뭐라뭐라 말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 성큼성큼 언덕을 올라 ‘우리’네 뜰로 들어서니, ‘아빠,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왔어.’ 하며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어요.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 가슴이 콩콩 뛰는 듯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세발자전거를 탄 ‘우리’와 함께 엄청 멀리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가 놀러가 물장난 치던 그 슬픈 강물에 떠가는 가랑잎처럼 하염없이 떠다니다가 왔어요.
2020. 11. 1
낮에 언덕에 자란 호박을 따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할로윈데이 호박등이에요. 촛불을 넣어 어젯밤 아이들 집 문앞에 몰래 두고 왔는데, 아이들 엄마 해원씨가 사진을 찍어 보냈어요. 울림이 동무 산들이도 초롱산으로 놀러왔어요. 밖에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문득 한용운 선생의 시가 떠올라요.
병을 앓고 나서
仙巖寺病後作
흘러오니 남쪽 땅의 끝인데
앓다가 일어나니 어느덧 가을 바람……
매양 천리길을 혼자 가다가
길 막히면 도리어 흐뭇하더군.
客遊南地盡
病起秋風生
千里每孤往
窮途還有情
초가을 병 핑계로 사람 안 만나고
하얀 귀밑머리 늙음이 물결치네.
꿈은 괴로운데 친구는 멀고
더더욱 찬비 오니 어쩌겠는가.
初秋人謝病
蒼鬢歲生波
夢苦人相遠
不堪寒雨多
2020. 11. 3
‘우리’ 할아버지가 보낸 단풍 사진이에요. 마음마저 곱게 물드는 듯해요. 그 길의 끝은 늘 그리움으로 이어져 있겠지요. ‘우리’ 마음을 글로 옮겨 보았어요.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까치발 들고 부엌 창문으로 내다보며 크게 소리쳤어요.
성큼성큼 할아버지가 돌계단으로 올라와요.
땅이 흔들리듯 쿵쾅쿵쾅 할아버지 발소리가 울릴 때마다,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어요.
빼곰히 문을 열고 나서자 갑자기 햇살이 쏟아지고
할아버지는 우리 집 앞마당에 무리지어 핀 제비꽃으로 숨어들고
나는 머리가 하늘에 닿은 아름드리 나무로 섰어요.
2020. 11. 5
길을 가다가 바지춤을 추키려고 손수레를 멈추고 ‘할아버지 바지 좀 올릴 테니 기다려.’ 라고 하니, 손수레에 탄 ‘우리’가 제 바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엉아와 꺼풀(커플)’이라고 해요. 그러고보니 울림이도 똑같은 빛깔의 바지를 입은 걸 본 적이 있어요.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산속에서 새소리가 들리니, ‘저 소리 뭐지?’ 하며 ‘우리’가 물어요.
나 : 까치 소리야.
우리 : 아니야, 째째야.
나 : 째째?
우리 : 임이(이음이)가 째째라고 했어.
‘우리’는 ‘할아버지 말은 틀리고, 이음이 말이 맞다.’는 듯 딱 잘라 말해요.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지만, 이음이를 만나면 따지려고 해요. ‘이음이 너, 어떻게 우리한테 까치를 째째라고 가르치냐.’고. 이음이 표정이 궁금해요. 이음이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 ‘할아버지, 우리는 아직 아기니까 아기말로 알려 줘야지.’ 오늘은 마을사람들이 ‘대령리’ 라고 부르는 ‘대영리’를, 고개 넘어 굴다리 밑을 지나 두 시간 가까이 걸려 갔다 왔어요. 나도 처음 가 본 길이에요. 청양에서 오는 650번 시내버스를 보자, ‘우리’는 저 차를 타고 싶다고 해요. 언제인가 시내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우리’와 함께 엄청 멀리 가보자고 약속했어요.
2020. 11. 9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양파밭을 덮을 왕겨를 실으러 갔어요. 차창밖으로 홍동천 너머 울림이가 다니는 학교가 보이자, 울림이는 ‘홍동초등학교다.’ 하고 소리치더니, 홍동초등학교는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다고 해요. 그러자 곁에 있던 이음이가 밤이 되면 학교를 지키려고 이순신 장군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돈다고 해요.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으니, 지원이 이모가 말해 주더래요. 울림이와 이음이가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줄 때처럼 목소리가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말해서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어요. 마치 ‘오늘 아빠가 회사 갔어.’ 라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들렸어요. 몇 차례 푸대(자루)에 왕겨를 오삽으로 퍼담더니 힘에 부치는지, 줄지어 세워놓은 왕겨 푸대 위를 마치 헤엄치듯이 기어다니며 놀다가, 온몸이 왕겨투성이인 채 돌아왔어요.
2020. 11. 12
‘단이’와 ‘보리’는 하루종일 고라니를 쫓아다녀요. 늘 허탕을 치곤 논두렁에 빠져 아랫도리는 다 젖은 채 진흙투성이로 돌아와요. 그러다 그예 고라니를 잡았어요. ‘단이’와 ‘보리’ 두 마리 힘으로는 어림없지만, 어제는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도둑개가 함께 고라니를 몰아 잡은 거예요. 마늘밭에 짚을 깔다가 보니, 고라니가 산으로 올라가길래 이제 살았구나 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서둘러 달려가니, 입을 벌리고 두 눈은 뜬 채 도랑에 고꾸라져 숨이 끊어져 있었어요. 아이들이 뒤따라왔어요. 사내아이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런 주검을 눈으로 자주 봐서 그런지, 가엾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다큐를 찍는다며 집으로 돌아가 사진기를 가지고 왔어요. 정작 산기슭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준 사람은 나와 ‘우리’였어요. 울림이는 동영상을 20분 2초를 찍었다고 해요.
2020. 11. 15
‘할아버지저울림이애요7시쯤오시면돼겟어요’ 울림이가 엄마 손전화기로 내게 보낸 첫 문자예요. 어제는 울림이 생일이라 아내와 내가 저녁 초대를 받았어요. 아이가 태어난 날에 이웃을 불러 함께 축하해 주고 싶은 엄마 아빠 마음이 따듯하게 느껴졌어요.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레고 장난감을, 지원이 이모는 아기자기한 학용품 한 묶음을, 나는 ‘캄펑의 개구쟁이 1,2’와 ‘이빨 사냥꾼’이란 그림책을 선물했어요. 울림이네 집 부엌과 대청을 가로지르는 들보에는 ‘생•일•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한 해 줄곧 붙어 있어요. 그래요, 울림이네 집은 날마다 새 생명이 태어나듯 기쁨과 설렘으로 물결치고 있어요. 사진은, 오늘 딱지치기 마을 잔치에 나가 딱지를 치는 이음이(오른쪽에 날고 있는 아이)와, 잠깐 자리를 비운 엄마가 보고 싶어 먼 길을 나섰다가 홍동중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우리’ 모습이에요.
2020. 12. 6
엊그제 아침에는 잠옷 바람으로 단이와 보리, 밤이 아침을 주러 나갔다가, 날씨가 제법 차서 얼른 들어오려는데, 학교에 가려고 뜰에 나온 아이들이 반가이 나를 불러요. 언덕을 뛰어올라가며, ‘야, 오늘같이 추운 날에도 학교를 가냐, 집에서 쉬어야지.’ 하고 장난스레 말을 거니, 아이들은 시큰둥하게, ‘할아버지는 잠옷을 입어서 그렇지.’ 라고 울림이가 말을 꺼내자, 덩달아 이음이는 몇 차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너무 덥다고 너스레를 떨어요. 괜스레 말을 꺼내 놓고 혼자 머쓱해졌어요. 이제 아이들이 너무 커 버려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듯해요. 초롱산으로 이사 온 다음날 아침, 부엌문을 빼곰히 열고 얼굴을 내밀던 일곱 살 울림이와 네 살 이음이가 떠올라요.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지요. 언제인가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닭장을 치운다고, 이음이 보고 아랫집 할아버지한테 가서 ‘장화 빌려 주세요.’ 라고 (공손히) 말하라고 하니까, 이음이가 ‘우린 친구니까 그냥 달라고 하면 돼.’ 라고 했다는 일도 생각나고, 언덕에 뒷짐을 지고 서서 ‘야, 김종도’ 하고 부르던 아이들 목소리도 그리워요.
2020. 12. 11
‘우리’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몸을 흔들며 엄청 빨리 달려왔어요. 달려오면서 ‘엄청 빨리!’ 라고 소리쳐요.’ 며칠 못 본 사이에 목소리도 커진 듯해요. ‘할아버지, 엄마한테 할아버지(에게) 간다고 했어.’ 라며, 쫄쫄 따라와요. 그 사이 울림이 이음이도 달려왔어요. 뒤뜰 마루에 눕혀져 있는 사다리를 보자, 올라가고 싶은지 ‘저 거.’ 라며 아는 척해요. 지난번에 한 번 타 본 적이 있거든요. 사다리를 세워 주자 한 칸 한 칸 조심스레 올라가더니 마지막 한 칸을 두고 머뭇거려요. ‘올라가 봐. 할아버지가 잡아줄게.’ 라고 부추키니, ‘여기 올라가면 위험해.’ 라며 더는 오르지 않아요. ‘우리’가 ‘위험하다’라는 말을 썼어요! 내려올 땐 맨 아래칸을 밟지 않아 주르르 미끄러졌어요. 울림이에 이어서 이음이도 올라가니, ‘우리’도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요. 올라가며 발을 헛디딜 듯해, ‘우리, 너는 발에 눈이 없니?’ 라고 하니, ‘우리’는 어리둥절하며 여기 있다고 하는 듯 손으로 왼쪽 눈을 가리켜요. ‘할아버지는 손에도 눈이 있고, 발에도 눈이 있다.’고 하면서 두 눈을 감은 채 손으로 ‘우리’ 볼을 만져 봐요. 이제 ‘우리’에게도 슬금슬금 장난을 걸어봐요.
사진은, 꼭 한 해 전 ‘우리’ 모습이에요.
2020. 12. 15
문을 열고 엄마가 나오고, 이윽고 울림이가 나옵니다. ‘오늘 같이 추운 날도 학교에 가나 보다.’ ‘이음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는가 보지.’ 하는 순간 이음이도 나옵니다. 아내가 부엌 창으로 내다 보며, ‘세 마리가 나왔다.’ 하길래, ‘아니, 두 마리지.’ 하니까, 아내는 아이들이 나오자 달려간 우리 집 강아지 단이까지 세 마리라고 합니다. ‘그러네. 우리 강생이(강아지) 세 마리.’ 오늘 ‘우리’는 아빠와 함께 집에 있나 봅니다. 차는 뒤로 나아가더니 방향을 틀어 숲길을 스르르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뜰에 나섰다가도 뒤돌아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시려 와서요.
초인종이 울립니다. 이 시각에 누구일까. 아이들이겠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울림이, 이음이, 엄마 등에 업힌 우리가 와 있습니다. 엄마 손에 들린, 속이 훤히 보이는 플라스틱 통 안에는 반딧불이 세 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아, 반딧불이를 보여 주려고 여덟 시가 다 된 어둑어둑한 때 우리 집에 온 것입니다.
뜰을 나섭니다. 울림이를 손에 잡고 반딧불이를 찾아 나섭니다. 무엇이 얼비친 것은 아닐까. 반딧불이 한 마리가 풀섶에서 반짝이다가 곧 사라집니다. 우리도 걸려 함께 숲길을 흘러갑니다. 아이들 집 마당에 올라서니 반딧불이 두세 마리가 떠다닙니다. 울림이와 이리저리 몰아 두 마리를 잡고, 한 마리는 거미줄에 걸린 것을 잡았습니다.
‘왜 할아버지 집에는 반딧불이가 없을까?’ ‘반딧불이는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 라며 말을 주고받는데, 이음이는 ‘할아버지 집에는 아이가 너무 커서 그런가 봐.’ 라고 말합니다. 너무 큰 아이는 지우를 말합니다. ‘지우 삼촌은 어른이야.’ 라며 엄마가 웃습니다. 하늘에는 뭇별이, 내 가슴에는 꽁무니에 등을 단 반딧불이가 동동 떠흐르는 밤입이다.
오늘 울림이는 선생님한테 초콜릿 두 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열, 스물, 서른 ... 아흔’ 우리말로 숫자 세는 것을 다 외워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말로 ‘백’은 ‘온’이라고 한다며, 할아버지가 어릴적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할 때에는, ‘하나, 둘, 셋 ... 아흔아홉, 온’ 하고 아이들을 찾아나섰다고 하니, 그렇게 많이 세느냐고 합니다. 내가 빨리 세는 흉내를 내니, 울림이도 ‘일, 이, 삼, 사 ...’ 하며 숨이 넘어갈 듯 숫자를 세고, 재미있는 듯 이음이가 웃습니다.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가다, 길에 민달팽이가 있다고 하니, 울림이가 반딧불이를 준다고 나뭇잎으로 줍습니다. 반딧불이는 이슬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하니, 울림이는 엊저녁에 잡은 것은 늦반딧불이 수컷이며,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을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는다고 하며, 엄마와 같이 찾아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 ‘아빠 공부 다 끝났어.’ 라고 소리치던 울림이는, 마치 제가 겪은 일처럼 나에게 ‘공부하는데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음이는, 학위 논문을 마무리한 아빠에게 선물한다며, 고마리와 여뀌 꽃을 바랭이 줄기로 묶어 집에 가지고 갑니다.
2019. 9. 19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우리는 손수레에 타서도 칭얼거립니다. 손수레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해도 그대로입니다. 이음이가 풀섶에서 강아지풀을 꺾다가, 손수레 사이에 끼워 둔 가위를 건네주자 그제야 얼굴이 펴집니다. 이음이에게 그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저는 박사라서 다 안다며 입은 옷을 보여줍니다. 박사가 입는다는, 무릎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갈색 외투입니다. 아빠 황박사도 이런 옷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 하는 건 기분이 좋다는 뜻이랍니다.
오늘은 이음이가 오줌 마려운 것을 어떻게 아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오줌이 마려우면 고추가 머리에게 전화를 걸어 안다고 합니다. 숲길을 도는데 산에 사는 작은 모기가 눈에 띕니다. 올해 들어와서 초저녁이면 유난히 극성입니다. 우리 머리 둘레로 빌빙 도는 모기를 두 손으로 잡으려 하자, 이음이는 ‘외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며 시늉을 해 보입니다. 형 자랑, 아빠 자랑, 외할아버지 자랑, 이음이는 자랑쟁이입니다.
2019. 9. 21
문 앞까지 몰려와 서성이던 어둠이 문을 열자마자 떠밀듯이 확 덮칩니다. 부엌 창으로 새어나오던 울림이네 집 전등은 꺼져 있습니다. 아침마다 가슴 딛고 미끄러지듯 숲길을 내려가던 아이들이, 오늘은 강화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갔습니다. 토끼풀 밭에 꽂아 둔 나지막한 꽃등이 아이들이 오르내리던 언덕길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따금 바위산에서 올빼미가 울고, 흐린 하늘엔 풀벌레 소리만 가득합니다.
이제 딱지치기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슬놀이 한 지도 참 오래되었습니다. 킥보드는 대청마루 밑에 잠들어 있고, 베이블레이드나 자동차 변신 로봇 들이 더는 마당에 나뒹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사이에 ‘순간이동’이나 ‘변신’이란 말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울림이가 학교에 가고 글자도 배우고 바깥세상을 만나며 동화 속에서 빠져나오는 듯합니다. 하기는 우리가 외발 손수레를 혼자 밀고 열 걸음 남짓 가니, 시간도 꽤 흘렀습니다.
어제는 울림이가 ‘오랜만에 킥보드 한 번 타볼까.’ 하더니 반 바퀴도 돌지 않고 그마저 금방 그만둡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킥보드를 타고, 나는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누가 빨리 가나 내기를 하곤 했는데, 산을 오르는 비탈길과 마당이 참 심심합니다.
2019. 9. 24
고마리 줄지어 피어난 속으로 도랑물이 소리내며 흘러갑니다. 어느새 벌과 꽃등에가 찾아들었습니다. 밤새 이슬 젖은 위를 햇빛이 비추며, 울림이네 지붕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납니다. 콩잎에는 섬서구메뚜기 곁에서 베짱이가 가늘게 더듬이를 떨고 있습니다.
이음이는 오늘 어린이집에서, 홍성읍에 있는 남산으로 가을나들이를 떠납니다. 울림이는 물기 어린 바깥 차창에 우스꽝스러운 사람 얼굴을 그렸다가 다시 차에서 내려 낙서를 하고, 저러다가 차는 언제 떠날지 모르겠습니다. 차창에 손바닥을 대니, 우리도 안에서 고 귀여운 손바닥을 펴서 내 손바닥에 마주댑니다.
2019. 9. 26
방에서 아이들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아, 살았나 보다. 어제는 고뿔이 걸렸는지 우리는 줄줄 콧물이 나오고 이음이는 39도까지 열이 올랐는데. 윗밭에서 갓을 솎아주다가 아내는 ‘아이들 소리가 나서 참 좋다.’고 합니다. 누군가 밖에 나왔는가 봅니다. 내가 아이들이 나왔다고 하니, 아내는 까치 소리라며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렇게 들리느냐고 합니다. 가끔 새소리나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아이들 소리로 들리기도 하니까요.
오늘 아침엔 내가 제대로 들었습니다. 울림이가 밖에 나와 소리치고 있습니다. ‘빨리 나와.’ ‘당장 안 나와.’ 가만히 들으니, 울림이는 서둘러 밥을 먹고 학교 가기를 기다리고 식구들은 아직 아침을 먹고 있나 봅니다. ‘오늘은 아빠가 데려다 줘.’ 이음이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음이는 아파 어린이집에 못 가고, 아빠가 울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려는가 봅니다. 이음이는 괜찮을까. 두 눈이 퀭하니 온몸에 열이 가득하던 이음이가 생각납니다.
2019. 9. 28
오미자를 담근 유리병들을 엄마 혼자 들기에는 힘들어 보여, 함께 나누어 들고 울림이네에 잠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가 왔다고 인사를 하라고 하자, 오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옵니다. 아이들은 잘 됐다며 집에서 놀다 가라고 나를 붙듭니다. 울림이는 아빠한테 내가 못 가게 문을 닫으라고 하고, 이음이는 내 손을 붙잡고 안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아직 할아버지가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밥을 먹고 놀자고 하니 울림이와 이음이는 멈칫하는데, 우리가 따라나와 나에게 장화 한 짝을 건넵니다. 신을 신고 밖에 나가자는 뜻입니다. 우리를 번쩍 들어 품에 앉고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마당 귀퉁이에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은 장화 빛깔을 닮은 연노란 민들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뜰에서 서성이는 외할머니 마음일까요.
2019. 9. 30
‘야, 너 이 거 없지.’ 바둑판을 내밀어 보이며 이음이가 자랑합니다. 여기에서 ‘야, 너’는 물론 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에 울림이와 서로 ‘자랑 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울림이가 ‘우리 집엔 레고, 베이브레이드, 킥보드가 있어.’ 라며 이것저것 다 끌어내어 자랑을 하면,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단이, 보리, 호미, 밤이’ 우리 집에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을 들먹이며 자랑을 하고, 기가 죽은 듯 아무말이 없던 울림이가 생각납니다.
나무 난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바둑과 오목을 두고 알까기 놀이도 합니다. 오목은 외할아버지한테 두 번이나 이겼다는데 아무래도 외할아버지가 져 준 듯합니다. 몇 수 놓기 전에, 한꺼번에 두 알을 놓거나 내가 놓은 바둑돌 위에 제 것을 겹쳐 놓으며 울림이는 제가 이겼다고 우깁니다. 알까기도 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손가락으로 바둑알을 눌러 마치 끌어당기듯 내 바둑알 가까이 와서 튕겨냅니다.
아내는 밖으로 아침을 차려옵니다. 벌써 바나나와 빵을 먹었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밥에 참기름과 깨를 버무려 김밥을 싸 줍니다. 울림이가 ‘먹보 귀신’이라 부르는 우리는, 입에다 두어 개 넣고, 잘게 자른 김밥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분이 참 좋은가 봅니다. 앉아 있는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서서 느긋이 사과를 먹기도 하고, 아내 두 발을 붙잡고 서서 빙긋이 웃기도 합니다.
2019. 10. 7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 밤을 주으러 갑니다. 마을길을 내려가니,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에 묶어 둔 개가 짓습니다. 손수레에 탄 우리가 ‘웍’ 하며 그 소리를 흉내냅니다. 나는 우리가 내는 소리를 따라합니다. 요즘 우리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울림이는 ‘엉아’, 이음이는 ‘임이’라고 부릅니다. 밤 몇 톨 줍고 돌아오는 길에 고욤 두 알과 감꼭지 닮은 버섯 하나를 따서 나뭇잎에 싸 가지고 옵니다. 지금 그 길에 사느란 가을비가 내립니다.
2019. 10. 11
아이들이 학교에 가나 봅니다. 울림이가 마당에 나와 ‘할머니’ 하고 부르더니, 고개를 젖히고 서둘러 무엇인가를 입에 털어넣습니다. 이윽고 이음이가 ‘할아버지’ 부르고는, ‘야, 너 머리 깎았지.’ 라고 소리칩니다. 이음이 말이 따뜻이 내 가슴에 머뭅니다. 마을사람들이 절집 같다는 외딴 곳에 사는, 아무도 눈여겨 보아 주지 않는 나를, 더구나 머리 깎은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울림이와 이음이도 머리를 깎았습니다. ‘야, 너희 머리 깎았구나.’ 하고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울림이는 윗머리와 아랫머리가 층이 나게 가지런하게 깎았습니다. 아내는 도토리처럼 귀엽다고 합니다. 늘 보던 머리 생김새와는 달라, 어디서 깎았느냐고 물어보니, ‘저 위에 무료로 깎아주는 데서 깎았다.’고 이음이가 장난스레 대답합니다. 아, 엄마가 깎아주었나 봅니다. 아이들 머리는 늘 엄마가 깎아주는데, 이 번엔 머리 맵시가 조금 다릅니다. 젊었을 때는 내 머리와 우리 아이들 머리도 아내가 깎아주었습니다. 가끔은 내가 아내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는데, 따뜻한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2019. 10. 13
‘’야, 김종도.’ 성큼성큼 언덕을 내려오더니 돌계단 끝에 떡 버티고 서서 이음이가 나를 부릅니다. 아이들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기시던 장길섭 선생님이, ‘너, 할아버지와 친구구나.’ 라고 하시더니 여긴 평등한 세상이라며 웃습니다. 그 날은 통나무 일을 하시는 목정 선생님이 우리 식구와 울림이네 식구를 저녁식사에 부르셨습니다. 문당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이장 일을 하시는 장 선생님도 함께 모셨는데, 잠깐 사이를 내어(틈을 내어) 우리 집에 들르신 겁니다. 이음이가 내 이름을 대놓고 부른 일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낯선 사람 앞에서 나를 제 친구라고 우쭐거리고 싶었는 듯 보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이음이가 내 이름을 불러줘서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울림이가 절대 밟지 말라는, 모르고도 밟지 말라는, 아이들이 마당에 쌓아 놓은 모래성이 아침 햇살에 빛납니다.
2019. 10. 19
마당에서 아이들이 부드러운 흙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데리러 왔습니다.
울림 : 싫어. 밥 먹고 다시 놀게 하면 갈게.
이음 :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갈 거야.
우리 : (처음에는 따라나서더니, 형들이 가지 않자 절레절레 도리질을 치며 가기 싫다고 합니다.)
엄마는 해가 저 산 너머로 내려가면 오라고 하면서 혼자 돌아갑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오늘은, ‘엄마한테 갈까.’ 하니, 우리는 타고 있던 자전거를 눕혀 두고 내 품에 안기고, 이음이와 울림이는 뒤따라옵니다. 우리는 요즘 몸에 붙은 듯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발걸이도 없는 자전거를 두 발을 땅에 딛고 계단도 오르고,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비탈진 언덕을 제법 몸을 잘 가누며 오르내립니다.
어제는 아이들에게 잠자리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긴 대나무에 굵은 철사를 동그랗게 휘어 붙잡아 매고 나서, 이것으로 잠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울림이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어떻게 잡았을까.’ 하고 물으니, 울림이가 잠자리채를 내 목에 걸어 잡아당겨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이 동그란 철사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쳤을까). 우리 둘레에 있어.’ 라고 하니, 울림이는 꽃을 따서 넣었다고 합니다. 꽃으로 잠자리나 나비를 꾀어 낸다는 뜻이겠지요. 벌이나 나비, 잠자리 들이 날아다니다가 걸리는 것이라고 귀띔을 하니, 한참만에 이음이가 거미줄이라고 합니다. ‘야, 오늘은 이음이가 맞혔구나.’ 하고 꼭 안아주고 싶지만, 울림이가 틀림없이 서운해 할 것이기에 무심한 듯 ‘그래, 맞아.’ 라고만 했습니다. 엄마도 이런 잠자리채는 처음 본다고 합니다. 채에 쳐 놓은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리면 날개가 다칠까봐 조심스레 떼어주던 어린시절로 잠깐 돌아갑니다.
2019. 10. 21
초인종이 잇달아 울립니다. 문 앞에서 빤히 올려다 보는데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숲길을 쓸 때 낯선 차 두 대가 세워져 있어 울림이네 손님이 왔나 했는데 이 아이들인가 봅니다. 울림이 친구인 여덟 살 ‘세라’와 이음이 친구인 다섯 살 ‘종민’. 눈빛이 서양 아이인 듯한데, 동생 이름이 이종민이니 엄마가 외국인인가 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새로 사귄 친구들을 아내와 나에게 소개하고 싶어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할아버지, 이게 뭐야?’ 단이 털에 묻은 풀씨를 보고, 세라가 묻습니다.
나 : ‘이건 쇠무릎쟁이라는 풀의 씨앗이야. 단이가 풀밭에 돌아다니다가 몸에 묻은 거야.’
세라 : ‘왜 단이(다니)라고 한 줄 알겠다. 많이 다니니까.’
나 : 맞아. 단이는 온 산을 쏘다녀.
울림이와 이음이가 미리 알려주었는지, 세라는 단이(다니) 이름도 알고, 보리가 낯을 가려 사람을 피한다는 것도, 아랫밭도 윗밭도 할아버지 밭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씁니다. 나도 경상도에 살다가 지금은 여기에 산다고 하니, 왜 그런지 묻습니다. 엄마는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며, 엄마 아빠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구미에 산다고 합니다. 개쑥부쟁이 꽃이름을 묻더니, 이 꽃은 밝은 빛깔을 지닌 러시아 전통의 꽃이라고 엄마가 알려 주었다며, 러시아말로 알려주는데 따라 소리 내기가 힘듭니다. 주워 놓은 밤을 까 주었더니, 세라는 처음 먹어 본다며 참 맛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 꼬마친구들에게 주려고 금방 캔 고구마를 찝니다. 낮에는 아내와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는데 울림이가 중요한 일이라고 소리치며 우리를 찾습니다. 세라와 종민이가 간다는 것입니다. 울림이도 참 서운한가 봅니다.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라고 손을 흔들며 세라는 개쑥부쟁이 흐드러진 꽃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울림이 이음이 덕분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예쁘고 귀여운 친구들,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2019. 10. 22
세라가 강아지 이름을 왜 단이라고 했는지 안다고 했을 때, 순간 ‘단군’에서 따왔는지를 알고 있을까 했는데, 많이 다니(단이)니까 단이라고 불렀을 거라고 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잠깐 만났지만 세라는 우리말에 관심이 많고, 궁금한 게 참 많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도랑에 우렁이가 살고 있다고 하니, 세라는 울어(우러)서 우렁이인가 하고 묻습니다. 윗밭에 더덕과 도라지를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냐고 묻습니다. 단이가 몇 살인지, 단이가 할머니가 되면 몇 살인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도 물었습니다. 열두 살쯤이면 할머니가 되고 그 다음엔 죽는다고 하니,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아, 안타까워라.’고 가냘프게 내뱉습니다. 오늘 따라 울림이와 이음이도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도 많은가 봅니다. 갑자기 ‘쥐와 고양이 놀이’도 하자고 합니다. 꽃밭에 수 천 마리 벌들이 잉잉거려 세라가 무섭다고 해서, 괜찮다며 내가 벌을 잡아볼까 하자, 울림이가 그건 침을 쏘는 벌이 아니고 꽃등에라며 제가 잡는다고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으면 달려와 우리에게 자랑하는 울림이와 이음이에게, 오늘은 아내와 내가 자랑거리여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들깨를 베어낸 자리에 마늘을 심으려고 깻대를 뽑고 있는데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이음이가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어.’ 라며 울림이는 할머니를 찾습니다. 이음이가 하고 싶은 말은 말랑말랑한 사탕 봉지에 적혀 있다고 하는데, 이음이가 아내에게 건네준 사탕 봉지에는 ‘힘내요.’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가 손에 흙이 묻었다고 하니 사탕을 싼 봉지를 벗겨 입에 넣어줍니다. 쑥스러운 듯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울림이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꺼내 내 손에 쥐어 주는 사탕 봉지에는 ‘사랑해’ 라고 쓰여 있습니다.
밭에서 흙을 쌓아 섬을 만들고는 물을 길러 간 울림이는 돌아오지 않고, 이음이는 혼자 흙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엄마가 불러도, 대답이라도 하라고 해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습니다. ‘이음이 너, 배가 고파 대답할 힘도 없구나.’ 하니 장난스레 그렇다고 합니다. 이음이가 먹은 사탕 봉지에는 ‘배고파요.’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함께 두더지 집을 만들다가 내 등에 업혀 이음이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가 넘어간 뒤에도 어슴푸레한 빛이 있어 이음이는 ‘왜, 아직 어둡지 않아?’ 라고 묻고는, ‘우리가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아 어둠이 기다리고 있나 봐.’ 라고 혼자 대답합니다. 이 곳 초롱산 기슭에는 아이들이 일어나야 해가 뜨고 아이들이 잠들어야 그제야 어둠이 찾아오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지구가 돕니다.
2019. 10. 23
어제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이음이가 우리와 함께 놀러왔습니다. 이음이는 종이를 달라고 해서 스케치북을 찾아 주고, 나는 우리와 놉니다. 우리가 손으로 손수레를 가리키면, 태어나서 아기수레(유모차)보다 더 많이 탔다는, 손수레를 태워 달라는 말이 아니고, 나와 달리기 내기를 하자는 겁니다. 우리 둘만 알아듣는 손짓말입니다. 우리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는 손수레를 끌고 뒤따라갑니다. 우리는 늘 앞서가다가 잠깐 멈춰 뒤를 돌아봅니다. 내가 따라오는 걸 보고는 그제사 웃고는 소리를 지르며 내달립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숲길을 내려가 가랑잎 서너 장 도토리 몇 톨 손수레에 싣고 돌아옵니다.
이음이는 아직도 나무난간에 앉아 종이를 자르고 있습니다. 사람과 나비와 별 모양으로 종이를 오려서 종이인형극을 보여줍니다. 이음이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별과도 이야기합니다.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놀란 듯 우리가 세발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엉금엉금 계단을 기어올라 내 무릎에 앉습니다. ‘소리야, 달아나라.’ 하고 나는 우리 두 귀를 손바닥으로 막습니다. ‘어, 비행기가 지나갔을까.’ 두 귀를 열었다가 막기를 되풀이하고, 이음이는 재미있는 듯 웃습니다. 가을 바람이 차가운지 내 몸으로 막아달라고 하던 이음이도 얼른 내 품에 안깁니다. 지금 내 마음은 깃털 가벼이 하얀 구름이 떠가는 파란 가을 하늘입니다.
2019. 10. 24
울림이와 ‘쥐와 고양이’ 놀이를 합니다. 내가 고양이가 되어 쥐를 쫓아가면 얼른 계단을 딛고 나무난간으로 올라갑니다. 내가 뒤따라가려 하면 여긴 쥐구멍이라 고양이는 올라올 수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난간 둘레를 서성거리면,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며, 눈을 감고 오라고 합니다. 이는 울림이가 만든 규칙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노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웃고 소리 지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울림이가 만든 ‘사육사와 고양이’ 놀이는, 나와 이음이가 고양이가 되어 사육사를 쫓아가고, 잡힐 만하면 갑자기 사육사가 멈춰서서 주머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모이를 꺼내주고, 우리는 엎드려 모이를 주워 먹는 놀이입니다. 그러고는 사육사는 또 달아나지요. 울림이는 지금쯤 잠들어 있겠지요. 울림이 꿈속으로 들어가려면,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듯 눈을 감고 더듬더듬 찾아가면 되겠지요.
2019. 10. 31
‘할머니, 할아버지 있다.’ 아이들끼리 수런거리더니, 이윽고 이음이가 언덕을 내려다보며 ‘할머니.’ 하고 소리칩니다. 아내는 껄렁껄렁 다리를 흔들며, 보이지 않는 이음이 흉내를 냅니다. ‘이리 와 봐.’ 하고 이음이가 아내와 나를 부릅니다. 아내는 이음이가 눈부시어 쳐다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햇살이 울림이네 지붕으로 넘어오는 까닭도 있습니다. 햇살을 헤치며 울림이네 마당으로 올라갑니다. 엄마는 이음이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가 새로운 레고를 선물했나 봅니다. 이음이는 숲과 들판을 누비는, 한 쪽 바퀴가 큰 자동차를 보여주며 자랑을 쏟아 놓습니다. 뒤에 선 울림이도, 조각들을 맞추기가 꽤 까다로워 보이는, 우주선 같은 레고를 들고 한껏 자랑스러워 합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이음이는 ‘이거 좋지.’ 하며 다시 자동차 레고를 들어 보입니다. 언덕을 내려오며 아내는, 우리를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우리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2019. 11. 1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언덕을 내려옵니다.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아이들을 맞으러 얼른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오늘 학교에서 음악회가 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보러 오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울림이는 첫번째 나온다며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할아버지한테는 울림이가 말했으니, 할머니한테는 이음이가 말하면 좋겠다.’고 엄마가 얘기합니다.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 우리 음악회 해요.’ 라고 크게 소리치며 울림이가 집으로 달려갑니다. 이음이는 두 눈이 커지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합니다. ‘할아버지가 어서 가서 울림이가 입을 틀어막을게.’ 이음이를 달래고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울림이를 쫓아갑니다. 나는 잇달아 소리치는 울림이 입을 틀어막고, 낌새를 알아차린 아내는 아무말도 못 들었다며 시치미를 뗍니다. 그제야 뒤따라온 이음이가 ‘할머니, 오늘 음악회를 하니 와.’ 라고 합니다. 울림이가 어디에 서 있나 두리번거리며, 음악회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가끔은 두 눈이 젖곤 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이 부르는 ‘가을 밤’이라는 동요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오늘 아침 막 하늘에서 내려와 늘 아내와 나를 가슴 뛰게 합니다.
강당에서 퍼져 나오는, 5학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더니, 이음이가 ‘아, 어디서 들은 노래인데.’ 라고 합니다. 내 귀에도 익은 노래입니다. 뒤 운동장으로 올라가서 다시, ‘봐, 어디서 들은 노래 맞지. 내가 거짓말 안 했지.’ 라고 합니다. ‘그래, 맞아.’ 라며 앞뒤도 모른 채 나는 맞장구를 칩니다. 나는 짐짓, ‘거짓말은 어떻게 치지. 그거 되게 어려운데.’ 라고 이음이에게 물어봅니다. 그건 쉬운 거라며 이음이는 보기를 들어 말합니다. ‘하늘에 구름이 있지. 구름 위에 앉아 놀았다고 하는 거는 거짓말이야.’ 그래도 내가 어렵다고 하니까. ‘물고기 알지. 물고기가 땅에서 파닥파닥한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라며 다른 보기를 들어줍니다. 손에 구름 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 아이 하나를 그려 놓고는 ‘구름아 놀자.’고 하던 이음이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하기는, 단이가 고라니를 쫓아다닌다고 온 산과 다랑이논을 쏘다니다 오면, 내가 아이들 말로 ‘단이 옷이 다 젖었다.’고 하면, 이음이는 ‘그건 옷이 아니고, 털이 젖었다고 하는 거야.’ 라며 어른 말로 바꿔줍니다. 나는 갈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고, 아이들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갑니다.
2019. 11. 3
젊은 날,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깁니다. 하루는 뭘 팔러 다니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에 들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분이 가엾어 수세미 하나를 사 주고, 더운데 잠깐 쉬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이 집 큰아들은 늘그막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들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니 아이들이 늘 내 둘레를 맴돌았지만, 늙어서도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찾아들곤 했습니다. 예순이 가까워서도, 담임을 발표하는 날 내 이름이 불리면, 소나기 쏟아지듯 손뼉을 치며 아이들이 그리 좋아할 수가 없기는 했지만요. ‘이 거 귀엽지.’ 하며 울림이가 가리키는, 이음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팔랑개비 같기도 한, 종이 팽이 날개에 그린 그림은, 마치 ‘캄펑의 개구쟁이’ 라는 만화에 나오는 시골 아이들 같이 정겹습니다. 겁나게 귀엽다고 하니, 이음이가 더 귀여운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나는 안 된다고, 할아버지 쓰러진다고 두 눈을 가리니, 아이들은 억지로 눈을 가린 내 손을 떼어냅니다. 마치 알밤을 까먹는 다람쥐처럼, 두 손을 오무려 턱밑에 대고 입도 오물오물 이음이는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날마다 찾아오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그 할머니가 말한, 내 노을질 녘에 찾아든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9. 11. 8
‘할머니, 아직 그거 가슴에 있어요?’ 이음이가 묻습니다. 아내는 윗옷을 들추고 가슴속에 넣어둔 쪽지를 꺼내 보입니다. 순간 이음이 얼굴이 환히 피어나고, 아내는 이음이를 꼭 안아줍니다. 잇달아 우리와 울림이 볼을 쓰다듬고는 보듬어 줍니다. 엊그제 울림이 소풍 가는 날, 김밥과 함께 엄마가 받아쓴, 이음이 편지를 현관 밖에 두고 갔습니다. 몸이 아픈 아내는 이음이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에 젖어 목이 메고, 편지를 가슴속에 고이 넣어두었습니다.
‘할머니, 누워서 김밥 드세요. 그러면 또 소화가 안 되면 앉아서 먹으던가 하세요. 할머니 김밥 안에 좀 빠진 것도 있고, 김밥 그림도 색깔이 없어서 좀 다르게 했어요. 이제 끝. -이음-
(왼쪽 아래에는 ‘누워서 김밥 먹는 아내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2019. 11. 9
‘톳제비가 장난을 친 걸까. 어떻게 이게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걸까.’ 옷을 갈아입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니,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윗밭에서 양파모를 심고 있을 때, 울림이가 찾아 올라와 자랑하던 것이었어요. 내가 어릴적엔, 단추 구멍에 무명실을 끼어 빙빙 돌려서는 팽팽히 늘였다 줄였다 하면 잉잉 소리를 내며 단추가 돌아가는 노리개였습니다. 아까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를 손수레에 태워 산길을 내려갈 때 차삯을 달라니까, 울림이가 가랑잎 한 닢을 내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어준 건 기억이 납니다. 생각하면, 아이들이 우리 집 이웃으로 이사온 일도 톳제비 장난처럼 놀라운 일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신기한 것이 있으면, 달려와 맨먼저 우리에게 알려주는, 늘 가슴 뛰게 하는 아이들은 머언먼 신비한 나라에서 왔겠지요.
2019. 11. 11
엊그제는 강화에 사시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내가 집을 잠깐 비운 사이, 외할아버지가 닭장을 치우신다며 아이들이 장화를 빌리러 왔습니다. 엄마는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가서 장화 빌려주세요.’ 라고 하라며 가르쳐 주자, 이음이는 ‘우린 친구니까 그냥 빌려줘 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아내 말로는, 이음이가 광대나물 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장화를 빌려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발장 천사 인형 앞에 광대나물 꽃이 시든 채 놓여 있습니다. 저녁에는 외할아버지가 나와 아내를 집으로 부르셔서 오랜만에 술 한 잔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내 무릎으로 기어올라 아내에게 안기더니 내 품으로 건너와 폭 안깁니다. 이오덕 선생님 임길택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2019. 11. 14
웃음 가득 베문 채 몸을 흔들며 울림이가 계단을 내려옵니다. ‘울림이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 라고 물으니, 세 밤만 자면 생일이라고 합니다. 태어난 기쁨을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다녀가시고, 엊저녁에 서천에 사시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할아버지 수염을 어루만지던 우리, 엄마를 꼭 안아주던 할머니 모습이 가슴에 따뜻이 남아있습니다. 사진 속에 내가 웃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황금성 선생님이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2019. 12. 3
‘부채쉬’란 말을 아시나요. 참 오랜만에 만난 이음이가, ‘할아버지, 부채쉬 보여 줄까.’ 했을 때, 나는 금방 알아챘어요. 오줌이 마렵다고 했으니까요. 어제는 ‘할아버지, 부채쉬 하는 방법을 알려 줄까.’ 해서 ‘그래.’라고 했더니, 힘을 세게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부채쉬’는, 부챗살처럼 퍼지는 오줌’을 가리키는, 이음이가 말들어 낸 말이에요. 이음이와 울림이와 나는 가끔 나란히 언덕에 서서, 누가 오줌을 멀리 누나 내기를 하지요.
2019. 12. 4
‘이음아, 너는 할아버지와 친구지.’
‘응.’
‘할아버지와 친할버지도 친구거든. 그럼 이음이는 친할아버지와도 친구겠네.’
아무리 따져 꼬드겨도 이음이는, 친할아버지와는 친구가 아니랍니다. 엄마는 연극 연습하러 가고, 아이들은 포롱포롱 우리 집 구들방을 날아다닙니다.
2019. 12. 14
아궁이에 군불을 지핍니다. 굴뚝에서 피어올라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연기는,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이내’ 같습니다. 아이들 소리가 창문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어젯밤에도 구들방에서 늦게까지 놀다 갔습니다. 처음에는 울림이가 가져온 카드로 ‘메모리 게임’을 했습니다. 두 장의 카드를 뒤집어 같은 그림이 나오면 가져오는 기억력 놀이인데, 아이들이 훨씬 잘해, 아이들이 열 개를 맞추는 동안 나는 하나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합니다. 이어서, 울림이가 생각해낸 ‘텔레비전 놀이’를 합니다. 내가 채널을 돌리는 시늉을 하면 울림이는 전등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손전등으로 저희 얼굴을 비추며 노래도 하고 광고도 하고 연극도 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며 웃느라고 무엇 하나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합니다. 그 놀이마저 시들해지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노래를 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놀이를 합니다. 서로 먼저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울상을 합니다. 끝내 울림이가 들려주고 싶은 ‘감자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아내 흉내를 내어 뒷짐을 지고 다닙니다.
2019. 12. 19
햇빛이 비치니 창문에 난 아이들 손자국이 드러납니다. 저만치 높이이면 우리 손자국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락 계단도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내려옵니다. 곁에서 잡아주려고 하면 손을 뿌리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우리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내가 보니까,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구름 위를 걷듯 허공을 걷는 것입니다. 바닥에 풀썩 떨어져 손을 짚은 채 다시 일어납니다. 침대에서 거꾸로 흘러 내려와 쳐박히기도 하고,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높이 멀리 날아갑니다.
2019. 12. 26
이음이가 네 살 때 그린 ‘인어공주’를 아내가 수를 놓았어요. 이음이가 그린 인어공주는 눈이 참 선해 보여요. 이럴 땐 ‘착하다’보다는 ‘선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듯해요. 한자말이어서가 아니라 소리가 부드럽게 느껴지거든요. 수를 놓으면서 아내는, 이음이 마음이 되어 보았다고 해요. 살포시 웃음 띤 가느단 입술 선도 따라 그리기 어려웠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