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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9. 23:07 일기/해원 일기

1.

 

지난주 부터 2주간 '콜링북스의줌콜링'이라는 기록 모임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을 기록 하는 연습 이랄까. 함께 신청한 몇 명의 사람들과 매일매일을 기록하고 함께 공유한다.

이 모임 덕에 며칠 전 부터 5년 다이어리 라는 것도 쓰기 시작 했다. 

 

그렇게 쓰고 있는 글을 sns에 종종 올리곤 했는데, 남편이 어제 반쯤 취한 소리로 하나에 플렛폼에 쌓아 두는 것이 중요하고,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쌓아 가야 한다며 sns에 올리듯 블로그에 올리라고 잔소리 한다.(부부 사이에 조언은 잔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숙명)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척 했지만 마음에 남아 어떻게든 다시 여기에 쌓아 보려 한다.

 

이번 기록모임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생각하고 따지기 전에 뭐라도 쓰고 있다 보면 무언가 쓰여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곳에도 언제부터 어떤 것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생각 하다보면 귀찮아지고 때를 노치고 만다.

처음 쓴 것 부터 옮기려면 생각이 많아 지기 때문에... 일단 어제 썼던 글 부터 공유.

 

 

2.

8.18 황울림

 

울림 : 이음아,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이음 : 음~ 몰라. 생각 안 해 봤는데

울림 : 나는 옛날부터 되고 싶은 거 있는데

이음 : 뭔데?

울림 : 평민. 누워서 만화 보고 배고플 때 짜장면 먹고 싶어

 

오늘 기억에 남은 울림이와 이음이의 대화다. '평민'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았으며, '누워서 만화 보고 배고플 때 짜장면 먹는 것'이 평민이라 생각하는 울림이의 말이 너무 황울림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언젠가 울림이 교실에 자신의 꿈을 적어 두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울림이는 '그냥 사람'이라고 써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울림이의 그런 말들에 내심 안도 했다. 울림이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구나. 요즘 말도 안 듣고 얄밉게 따져대는 울림이를 조금 더 이해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주 아이들이 '착하기만 한 아이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 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내가 어른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착함을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하며 오늘도 반성했다. 

집중하면 인상쓰는 울림이 (Feat.바람)

막내동생 장난감 변신 시켜주는 멋진 형아.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울림이의 의젓한 모습.

 

3.

오늘의 기록은 아직 미완성.

오늘도 뭐라도 쓰다보면 무언가 적혀 있겠지.

 

(나 글 쓰는 사진 찍은 거 있으면 보내 달라고 하니까 요구사항도 계절도 맞지 않는 이런 사진 보내주는 내 남편...^^ 최고최고!^^)

:

1.

Art Of Debut. 공연이 끝나고 어떻게 정리 해야 하나, 하다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새로운 Art Of Debut의 구상을 시작 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번 공연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되었다.

 

첫 시작이 그랬듯 앞으로 벌어질 일들도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나에게 준 한가지 확신은, 마음과 마음이 닿은 곳의 순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하루 마음을 다 하며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닿는 순간 다시 또 함께 할 것이다. 

 

 

2.

첫번째 'art of debut_조동연 Piano 조대연 Classial Guitar 클래식 리사이틀'(아트 오브 데뷔: 조동연 피아니스트 데뷔 with 클래식기타리스트 조대연)의 기록

https://canyon-nymphea-30b.notion.site/Art-of-Debut-d9fcab2d58e24311bec85f20027d9db8

 

Art of Debut

조동연 piano 조대연 classical guitar 클래식 리사이틀

canyon-nymphea-30b.notion.site

 

어쩌면 시작이었을 지 모르는 어느날. 

 

5. 26/ 두 번째 회의. 동연, 대연이네 집 첫 집 방문

 

5.31/ 홍주문화 회관 답사, 세번째 회의.

동연이의 피아노

 

6.9/ 네 번째 회의

 

6.14/ 준표와 포스터 촬영

 

6.25/ 다섯번째 회의

 

6.28/ 여섯번째 회의, 지원이랑 포스터 작업, 중간 회식(준한)

(나에게 있는 사진이 애들이랑 논 사진 밖에 없는 것 일뿐, 회의하고 포스터 만들고 중요한 자리였음(강조))

 

7.1/ 책자와 포스터 도착

art of debut 책자.pdf
1.38MB

 

7.9/ 홍주문화 회관 방문, 피아노 조율, 창현쌤과 음향 정검

 

7.10/ art of debut, 공연날

(준표의 사진)

 

준표(사진), 창현(음향), 지원(미술), 바람(사진,촬영,노해원 멘탈케어 등), 해원(기획), 동연(피아노), 대연(클래식 기타)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애들 없는)뒷풀이 최고다!

:

<아빠 바람 사진기록>

밀린 사진_2021년 03월

밀린 사진_2021년 04월

밀린 사진_2021년 05월

밀린 사진_2021년 06월

요즘 오랜 침묵을 깨고,
서서히 사진 삘 엄청 받는 중 !

:

1.

최근 쓰던 메모장의 메모들을 모두 날리고 뒤늦게 이곳 저곳에 있는 글들을 모으다 발견한 이음이의 말들. 

(뒷따라 오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여기 민들레 많아요!”
(옆에 있는 우리에게)
“우리야, 이 민들래 해처럼 별처럼 이쁘다. 그치?”
/21.4.8

'오늘은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마당에 놓인 긴 탁자 밑을 보더니, 호수 같다고 합니다. 무리진 토끼풀이 호수 물 같고, 띄엄띄엄 피어 있는 봄까치꽃이 연꽃 같아 참 예쁘다고 합니다’ 
/같은 날 아랫집 할아버지 일기

이음, 울림이랑 ‘더블 미얀코’(아이스크림)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울림이가 “엄마, 내가 왜 이 아이스크림을 고른지 알아?”라고 묻는다. 
나는 짐짓 기억나는 것이 있어 “아~ 알거 같아”라고 했더니
“이 아이스크림에 추억이 있기 때문이지”라며 울림이가 1학년 때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가 빠진 이야기를 해 준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음이는 집에 돌아와 아랫집 할아버지를 만나지마자 소리쳤다.
“할아버지~ 나 지금 형의 추억을 먹고 있어요!”
/21.4.10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시를 뱉는 이음이.

 

 

2.

"짧게라도 올려"

남편에게 인스타에 올릴 글을 정리하며(위의 글) 보여주었더니 블로그에도 올리라며 한마디 한다.

"블로그에 올리긴 너무 짧지 않아?"

"뭐어때"

 

순간 오늘 읽은 장기하의 책에서 '아무 것도 안 하기'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든지 아무것도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상황은 점점 불리해 진다. 아무 것도 안 해도 상관 없고, 또 뭔가를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 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장기하, '상관 없는 거 아닌가?', 문학동네, p60

 

그렇게 뭐 어때, 상관 없지. 하며 올리는 오늘의 꼬박일기.

 

(아래 사진은 지난달, 울림이 숙제 하러 간만에 나들이 간 날.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과 이응노 생가)

:

1.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멈춰 두고 잠깐이라도 해보려 한다. 사실, 그렇다고 거창한 것들을 할 여력이나 시간이 나는 것은 아니고, 아주 잠깐이라도 몸과 마음을 멈추어 책을 읽거나 글을 써 보거나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본다. 다급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멈춰 서면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도 조금씩 달라 보인다.

 

 

2.

지난달 마을에서 익명의 몇몇 이웃들과 3주간 '매일 열 문장 쓰기'라는 것을 했다. 매일 밤 머리를 싸매며 총 열다섯 편의 짧은 글들을 썼다. 매일 약속 시간을 잘 지켜서 상으로 책도 한 권 받았다(이 부분이 가장 뿌듯하다). 이 글들을 모아 조그만 책도 만들기로 했다. 이웃들과 함께 글을 쓴다는 것과 글을 매일 꾸준히 쓰고 마무리 짓어 내는 경험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임이 마무리 된 뒤에도 꾸준히 글을 써보리라 마음먹고는 쓰다 말다 한 글들만 쌓여 간다. 좀 더 책임을 줘야 꾸준히 마무리 지으며 글을 써갈 수 있으려나.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여러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어제 읽던 책 '쓰기의 말들'에서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 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라는 글이 마음에 남았다. 저자 은유님은 그럼에도 글을 써내고, 부끄러워지고, 부끄러워진 다음 깨닫는 과정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오늘 이 글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까, 스스로 부끄러워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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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 점심시간 (주제:점심시간)

  “얘들아~ 밥먹자~!!” 창문을 열고 소리친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럴 줄 알고 10분 전에 불렀지. 오늘 점심은 메뉴는 등갈비를 이용한 폭립. 날짜가 오늘까지라 그런지 고기에서 조금 꿉꿉한 냄새가 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 

  나는 장을 볼 때 새로운 음식을 해먹어 보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이것저것 사두고는 못 먹게 되기 직전에 급히 해 먹거나 상해서 버리게 될 때가 많다. 매번 같은 상황을 맞이 하면서도 나는 왜 자꾸 책임지지 못할 재료들로 냉장고를 채우게 되는가. 나에 대한 지나친 신뢰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지나친 희망인지, 뭐가 됐든 지나친 선택. 냉장고도 내 마음도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것을 더 많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 와서 그런지 열심히 잘 먹고, 나는 점심을 먹으며 저녁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한다.

 

3월 9일 / 산책 할 수 있을까? (주제:산책 후 글쓰기)

  산책을 갈 수 있을까? 가지 못할까? 이미 시작부터 마음이 50대 50이다. 결국 산책을 가지 못했다. 원래 걷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산책은 좀 귀찮게 느껴지거나 임무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러워진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 혼자 산책을 한 해 본지가 언제였지, 떠올려 보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근 몇 년 동안  산책을 할 때 항상 아이들과 함께했고, 아이들을 위한 산책을 해왔던 것 같다. 오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아직 집에 있는 우리랑 둘이 슬쩍 나가 볼까, 하다가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꼬맹이 쫓아다니다 힘 빠질 것 같고 결국 귀찮아져서 나가지 못했다.

  … 에잇,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늘은 귀찮아서 못 나간 게 크다. 오늘은 혼자만 있었어도 산책은 나가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날씨도 따뜻하고 좋은데 한번 나갔다 올 걸 그랬나. 오늘은 왠지 글도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3월 10일 / 느긋한 계획 (주제:오후 4시)

  평소 오후 4시면 학교에 간 아이들을 데리고 왔거나 데리고 오고 있는 시간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아이들을 데려와서 4시에는 조금 느긋하게 집에서 글쓰기를 위한 관찰을 좀 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우리랑 둘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3시가 훌쩍 넘었고, 부랴부랴 나가서 아이들 데리고 집에 가려고 보니 벌써 4시다. 오늘은 논밭상점에서 고구마 사서 오느라 평소랑 다른 길로 갔더니 남편이 일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랑 겹쳐 우리가 아빠 보러 가자고 조른다. 얼굴만 잠깐 보고 올까, 하고 들렀다 집에 오니 5시가 넘었다.

  인생에 내가 계획한 데로 흘러가는 게 얼마나 있을까. 나는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포기도 잘한다. 자주 지각을 하고, 마무리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자책할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해원씨는 참 느긋 거 같아”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안심한 적이 있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3월 11일 / 덕후의 추억 (주제:애정하는 물건)

  나는 덕질 하는 게 취미다. 아마 중학교 때 nell이라는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였던 것 같다. 아니,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처음으로 만화 잡지를 샀던 때부터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덕질하는 게 너무 좋다. 덕질 그 자체로의 즐거움이 제일 크지만 물건, 혹은 그 대상과 쌓이는 추억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부터 장난감과 동화책을 좋아했다. 엄마가 된 후 이 두 가지를 수집하는게 훨씬 유리 해 져서 너무 좋다. 일반 어른들보다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이 볼 수 있으며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세상엔 이쁘고 귀여운 것들이 너무 많고, 그것들이 하나 둘 쌓여 있으면 기분이 좋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자식 덕질인데 오늘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미뤄 둔다.

 

3월 12일 / 사진 속 마음 (주제:핸드폰 속 사진)

  내 핸드폰 사진의 지분은 90%가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언제부터인지 나는 나를 찍는 게 어색하다. 나를 잘 찍지 않다보니 막상 찍으려 할 때는 어떻게 찍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연애 시절엔 남편이 나를 많이 찍어 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가 찍은 사진의 지분도 대부분 아이들 차지다.

  얼마 전 동생이 셀카를 찍어 보내 길래 나도 찍어 보려 했으나 역시 잘되지 않았다. 액정이 깨졌다는 핑계를 대려다 아이들에게 한 장씩 찍어 달라고 해 봤다. 아이들이 찍은 나의 모습이 내가 찍은 나의 모습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사진에도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나 자연스러운데 되려 나는 왜 나를 어색해 하나. 조금 더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 생각했다. 

 

3월 15일 / 추억의 무게 (주제:영화소개)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기생충이었던가, 어쨌든 나의 인생 영화를 뽑으라 하면 나는 가장 먼저 ‘이터널 선샤인’을 뽑는다. 짐 캐리와 미쉘 공드리의 좋합 이라니, 이 두 사람이 만들어 오던 각각의 영화를 사랑해 오던 나에게 이 소식은 엄청난 기대와 행복을 안겨 주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서로의 기억을 지워 서로를 잊으려고 했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잊혀진 기억 속에서 다시 서로를 찾고, 끌리고, 도망가다 결국 붙잡게 되지만 다시 망설이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당연하고 평범한 연인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미쉘 공드리 식 표현과, 짐 캐리 식 정극연기가 만나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피해 도망가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결국 막다른 곳에 도착하고 기억이 곧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말한다. “그냥 음미하자”라고. 

  우리의 기억, 혹은 추억은 결국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 추억을 어떻게 해야 음미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추억들을 떠올릴 때면(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무언가 서운해져서 인지 심장이 저릿저릿하다. 언젠가 아랫집 할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추억에도 무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3월 16일 /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 (주제:자유주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 빨래는 평소에 세배 이상 쌓여 있고. 설거지는 평소와 같이 산더미. 뭐라도 해야 하는데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많은데 해야 할 일은 계속 생긴다. 집안일은 왜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는 거야 투덜투덜. 심지어 오늘 난생처음 인터넷 사기도 당했다. 애들 재우고 일어나 남은 집안일도 하고 글도 쓰려했건만, 막내가 늦게 자는 바람에 같이 잠이 들어 버렸는데 일어나니 10시가 넘었네. 아, 망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다, 주문을 왜 우며 오늘은 글도 마음도 생각도 가볍게… 가볍게…. 약속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아무렇게나 끄적여 본다. 

 

3월 17일 / 당연하지 않은 꾸준함 (주제:꾸준히 한 것)

  ‘꾸준하다’를 사전에 찾아보니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봐도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다. 오히려 ‘가끔 부지런하고 끈기가 없다’라는 뜻이라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벌려놓고는 어떻게든 마무리는 짓는다, 하면서 쌓아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꾸준히 해야 하는 일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날도 가끔 있지만 지치는 날이 더 많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꾸준히 이뤄 오는 일들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 같을 때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꾸준하게 해 오는 일들은 그저 당연하게 이루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치열하게 이루어 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나는 너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너희를 돕는 사람이지, 당연하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하고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

 

3월 18일 / 이음이와의 다짐 (주제:자유주제)

  이음이는 날 닮아 그런지 우유부단하다. 며칠 전에도 바쁜 와중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말았고, 서로 화해하며(주로 내가 사과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눠 보았다. 

나 : 이음이랑 엄마는 왜 이렇게 선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

이음 : 음…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

나 : 오, 맞아.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겠네. 그럼 우리 미리 생각해 두는 연습을 해볼까? 예를 들어 이음이가 평소에 많이 고민하는 어린이집을 갈지 안 갈지, 옷은 뭘 입을지 같은걸 하루 전 날, 자기 전까지 생각해서 미리 결정 해 두는 거야.

이음 : 오~ 좋아! 

나 : 그리고 미리 결정 해 둔 것은 바꾸지 않기. 만약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된다면 그다음 번엔 그것과 다른 결정을 하면 되니까. 무슨 선택을 하든 완전히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하긴 쉽지 않거든. 엄마도 그래~ 

이음 : 아~ 엄마도?

나 : 그럼~ 엄마는 지금 이음이보다 훨씬 많이 살았는데 아직도 어려워. 그래서 엄마도 매일 연습해. 그러니까 이음이도 엄마랑 같이 연습해 보자!

  이음이 덕분에 나도 다시 마음에 새겨 보는 다짐.

 

3월 19일 / 존중의 태도 (주제:책 소개)

  ‘어린이라는 세계’, 다 읽는 것이 아쉬워 조금씩 조금씩 아껴서 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 김소영이 가지고 있는 그 시선과 존중의 태도에 계속해서 감탄하고, 감동받는다. 작고 힘없고 어린것들이 가진 순수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특별하다.

  언젠가 내가 아랫집 삼촌에게 아이들과 함께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지(아이들이 힘들게 하는 점이 없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삼촌은 나에게 “그건 아이들과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서요.”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과의 문제를 어른의 말을 거치지 않고, 당사자인 아이들과 아이들의 언어로 해결하려는 모습에 크게 감동받았던 기억이다.

  사랑과 존중은, 그것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이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그것을 잘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핑계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이를, 나아가 인간을 대하는 존중의 태도를 배운다.

 

3월 22일 / 처진 가슴 (주제:나의 몸-여성의 몸)

  모유 수유를 하면서, 인간을 신이 만들었다면 신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열 달이나 품고 고생해서 낳았는데 모유 수유까지 왜 여자 몫인 걸까, 남자는 필요도 없는 찌찌를 왜 달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세 아이의 모유 수유를 다 끝내고 나니 아이들이 다 가져가기라도 한 듯 가슴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홀랑 사라져 축 처지고 납작해졌다. 젖꼭지도 두꺼워지고 갈색이 되었다. 더 이상 출렁거릴 것도 없고 가벼워서 편하기는 한데, 처진 가슴을 보면 가끔 좀 슬프다. 

  나도 핑크 빗 젖꼭지가 있던 시절이 있었던가. 처진 가슴을 보면 슬프고 핑크 빗 젖꼭지가 부러운 이유는 젊은 여성의 상징을 탱탱한 가슴과 발그스름한 젖꼭지로 만들어 버린 미디어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처진 가슴도 당당히 들어내며 비키니를 입어 보리라. 세 명의 생명을 먹여 살리고 여전히 나의 오르가즘을 책임져 주는 나의 이 처진 가슴을 더욱 사랑해 주리라, 마음먹어본다. 

  그래도 신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면 모유 수유는 꼭 남자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면…

 

3월 23일 / 수많은 별일들 (주제:자유주제)

  별일 없어?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별일은 많은 것 같은데 늘상 있는 별일 들이라 무던해진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멋지게 살고 싶은데,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무서워’라고도 덧붙였다. 가슴 저린 그리움은 덜 하고 현실을 좀 더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즐겁기만 했던 글쓰기도 요즘은 좀 무겁다.

  오늘은 울림이를 잃어버려 울다가 결국 찾아 웃으며 집에 들어왔는데 ‘도마’라는 나보다도 어린 인디 가수가 엊그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참 좋아하던 가수였는데. 사는 건 뭐고 죽는다는 건 뭘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3월 24일 / 우리의 죽음 (주제:자유주제)

  어제 ‘도마’의 부고를 접한 이후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첫 죽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나에게 슬픔보다 오히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족들이 각자의 다른 기억 속에 사소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순간들이 참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언젠가 죽는다면, 나의 장례식장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그 속에서 나를 좋은 기억으로 남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친정 식구들에게 우리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죽음에 대한 워크숍’을 하고 싶다고 제안하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나 우리 중 누가 사고나 병에 의해 진짜 죽을 준비를 해야 할 때 이런 걸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고, 우리 네 식구 이렇게 젊고 건강할 때 즐겁게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죽음 앞에 많이 외로워 봤던 엄마는 젊은 애가 뭐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며 처음에는 노발대발했었지만, 최근에는 ‘나는 수목장이 좋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장례를 치르게 될까,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사는 걸지도 모른다.

 

3월 25일 / 시끄러운 마음 (주제:자유주제)

  요즘 나의 최대 난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이다. 마음은 시끄럽고 기운도 없어서 뭘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주어진 일들만 겨우 할 뿐이다. 근데 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자꾸 비교 대상을 찾게 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오늘도 밍기적 밍기적 대다가 아이들 하교하고 집에 왔더니 벌써 5시가 다 되어 버렸다.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 버려야 하나, 하다가 그래도 오늘은 흙을 좀 만져 볼까 싶어서 코딱지만 한 텃밭이자 정원에 가서 저절로 뿌려져 나온 새싹도 구경하고, 풀을 좀 뽑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극적인 기분 전환은 아니었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한 날에 바보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보려는 시도 정도에 그친 것 같다.

  동생이랑 이런저런 힘들게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다가 내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은 자기도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느끼는 요즘’이라 대답했다. 우리 인생 어디로 흘러갈라나, 어디로든 가긴 갈 텐데… 잘 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좀 편해지려나, 도인이 아니고서야 그게 가능한가, 나이가 들고 가진 게 많아질수록 생각만 많아진다.

 

3월 26일 / 나의 글 (주제: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아이들과의 이야기다. 왜 내 글에는 항상 이렇게 아이들 이야기뿐일까. 이렇게 맨날 아이들 얘기만 하다가 나는 나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주제를 받고 쓰는 글쓰기를 해 가면서 아이들이 빠진 글은 나에게 오히려 어렵고 힘들 뿐 아니라 이상하고 어색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이 있는 나의 글 속에서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찾고 있었고, 아이들 덕분에 나와 더 마주 할 수 있는 거였다. 그걸 깨닫고 나니 아이들이 있는 내 글이 좋아지고, 불안함보다는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나는, 왜인지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는 말에 그만 울컥했다. 그런 어린이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서였는지, 그런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쥐여준 수많은 잘못들이 쓰라려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아이들의 그 ‘아무런 잘못이 없는 착함’이 가지고 있는 순수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한 시선을 사랑하며 글을 쓸 계획이다. 

 

3.

작년에 길고 길었던 코로나 탓인지,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는 오히려 힘이 쭉 빠져서 몹시 무기력했다. 이런 나를 보며 '올해 텃밭정원은 물 건너갔네'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다시 호미를 들고 밖으로 나가 풀을 뽑으며 코딱지 만한 이 텃밭에 무엇을 어떻게 심어볼까 고민하고 있다. 아마 작년에 늦게 심어 죽을 줄 알았던 튤립이 꽃을 피우고, 제대로 거두지 않아 그 자리에 떨어진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우며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주말에는 창문 앞에 무너진 작은 밭을 보수하고 잘 먹지도 않는 완두콩도 심었다. 잘 먹지도 않는 완두콩을 심은 이유는, 언젠가 자기는 먹지 못하는 작물(아마 토마토였던 것 같다)을 그 작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심는다고 했던 글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주기 위해 심는 작물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고, 멋진 행동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흉내 내 보기로 했다. 나는 완두콩을 먹지 않지만, 나 대신 맛있게 먹어 줄 친구들에게 선물할 생각을 하면 조금 설렌다. 

 

4.

며칠 전에는 스페인과 독일에서 오랫동안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공부해 온 청년 조대연씨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기타 청년 대연씨는 코로나로 갑자기 한국에 돌아와 최근 군대를 갓 해결하고 가족들과 함께 옆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몇년 전 한국에 잠깐 머무르고 있을 때 마을에서 독주회를 열기도 했었는데, 당시 우리는 아이들이 어려 눈물을 머금고 못 갔더랬다. 뿌리깊이 클래식을 사랑하고 있는 남편은 이 청년의 존재를 알고 난 후 종종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팬심을 키우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이 청년이 우연히 남편이 일하는 곳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 둘이 이야기를 하다 잘 통했는지 베프가 되어서는 갑자기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심지어 단독 콘서트가 코앞에서 열렸다…! 우리집 책장 앞에 대연씨가 기타와 함께 앉으니 갑자기 눈앞에 tiny desk concert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공연장이 된 우리집도, 갑자기 나타난 대연씨도, 그렇게 탄생한 지금 이 순간이 조금 황당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관람이라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였는데도 연주를 하는 순간 집중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처음 기타 연주에 앞서 조율하고 있는데 유심히 듣던 이음이가 갑자기 엄청 반가운 목소리로 "어?! 저거 아빠가 맨날 치는 거다!" 해서 한참 웃었다ㅎㅎㅎ 

 

기타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술과 삶의 다양한 경험과 깊이에 함께 나눌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여 그날 밤 함께한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 자주 만나고 싶은 인연! 무엇보다 낯을 꽤 가리는 꼬박이들, 특히 덩치 큰 남자들을 보면 자주 만났던 사람이라도 무서워하는 ‘우리’(미안해요 제이콥)가 단 몇 십분 만에 마음을 열어서 놀랐다. 아무튼 요즘 우리 가족 모두 대연 홀릭…!

 

 

5.

어쨌든 저쨌든 살아간다. 코로나 때문에 멀어지는 인연이 생기는가 하면 코로나 덕분에 이렇게 가까워지는 인연이 생긴다. 힘들고 우울하다가도 작고 사소한 일들로 행복해진다. 인간은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렇지 사실은 아주 단순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단순하게, 더 가볍게 살아야 하는데 하며 내가 가장 못 하는 것들을 괜히 속으로 되뇌어 본다. 그리고 내가 가장 못하는 그것을 힘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꼬박이들을 떠올려 본다. 매일 복잡한 생각들로 마음이 시끄러운 내 옆에 하루 종일 작은 것 하나에 깔깔 대는 이 순수한 존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순수한 이 존재들을 보고 있자면 복잡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별일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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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 포스팅에 자극을 받아, 즉흥적으로 몇 장 고름

 

1. 집 주변 산책(2021.1.24)

 

2. 서천 할아버지네(2021.1.30)

 

3. 상용 삼촌, 희주 이모네 젤라부(2021.1.31)

 

4. 우리, 이음 생일파티(2021.2.20)

 

5. 울림(10살), 이음(7살), 우리(4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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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2021. 3. 7. 23:09 일기/꼬박일기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개학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늘어지게 쉬고 싶을 줄 알았는데 왜인지 아이들 만큼이나 나도 들떠서 하루 종일 묵혀둔 청소들을 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팔다리가 후들후들 한걸 보고는 힘이 너무 들어갔나, 했다.

 

언제부턴가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날 아침이면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아침인사를 하러 나와 계신다.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가 인사를 나눈다.

할아버지가 "이제 못 놀아서 어떻게 하지?"라고 하시니 

이음이는 "괜찮아, 전에도 갔다 와서 많이 놀고 그랬잖아. 그치?"라며 되려 할아버지를 달래듯 말한다.

부엌일을 하다 뒤늦게 보시고는 할머니도 달려 나와 잘 다녀오라 환하게 인사해 주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학교를)2학년 때까지만 다닐 거야"라고 했던 울림이도,

오늘 어린이집 앞에서 '쑥스러울 것 같은데...' 하며 망설이던 이음이도, 다행히 씩씩하게 잘 갔다.

오히려 나만 괜히 삐쭉 나온 이음이의 난닝구에 찡해져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고 뒤돌아 보다 나왔다.

 

 

나오는 길에 선생님들이 함께 온 우리를 보고 혹시 모르니 우리 교실(이 될 뻔한 곳)도 같이 한번 둘러보고 가라고 하셔서 슬쩍 들어갔는데

조금 흥미로워하는 듯하다가는 나가고 싶다며 곧장 놀이터(큰 자동차들이 많은 곳)로 간다.

놀이터에 있는 큰 자동차 들을 보며 우리는 "안에는 실코 바께가 조아"라고 말한다.

나는 곧장 "우리야~ 어린이집 다니면 밖에서도 많이 놀 수 있어~"라고 했지만 엄마가 없어서 싫다는 우리.

자기 의견에 있어서는 야무진 녀석이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작년 가을에 심어 둔 튤립이랑 마늘 싹이 쑥쑥 올라와 있다.

두꺼운 볏짚 이불도 덮어 주지 못했는데 잘도 자라 주었구나.

특별한 보살핌 없이도 자기 몫을 다 하는 모습이 꼬박이들을 보는 것 같아 튤립과 마늘에게도,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도 참 고마왔다. 

 

 

:

새해

2021. 2. 14. 01:39 카테고리 없음

1.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은 마음만 품고 있다가 막상 쓰려 하니 뭐 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여기에 마지막으로 썼던 글이 작년 새해에 썼던 글 같은데, 다시 쓰기까지 꼬박 일년이 걸렸다.

어떤 제목으로 시작하지?하고 고민 하다 '시작은 조금만, 마무리는 끝까지'인 올해 나의 목표를 생각하며 가볍게 오늘의 이야기 부터 시작 해 본다.

 

오늘은 아이들과 아빠가 며칠 전 부터 약속 했던 '레고 만들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아빠가 레고를 만드는 동안 나는 최근 윤스테이에서 나온 밤을 넣은 떡갈비?를 큰 맘먹고 도전 했다.

다행히 요리는 성공 했으나 가족들에게 이 요리는 만들기 너무 힘들어서 일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수 있는 음식이니 맛있게 먹어 두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오늘 아주아주 오래만에 혼자 집을 나섯다. 그덕에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쓴다.

장을 보거나, 집안 일을 보러 후다닥 나왔다 들어간 것을 빼고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도 '우리'를 낳고 처음 인 것 같다.

고작 2-3시간이지만 집을 나와 이렇게 묵혀 놓았던 짐을 풀어 헤치니 마음이 조금 시원 해 지는 기분이다.

아주 가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 자기도 하지만 왜인지 이렇게 글을 쓰기는 어렵다.

집에 있으면 생각과 마음의 회로가 어느 한쪽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다. 

 

 

2.

어제는 우인이 언니에게 타로를 부탁했다.

나의 질문은 '직업-육아 사이에서의 내 미래' 였고, '직업-육아-미래-조언'의 이야기를 들려 줄 네장의 카드를 뽑았다.

 

직업 ; 스스로 방향을 제시 할 때.

육아 ; 나의 밑거름이 되어준.

미래 ; 밝은 미래

조언 ; (아주 옛날의 나까지)과거의 길을 되돌아 볼 것. 

 

이런거 잘 믿는 편은 아닌데, 뭔가 용기가 생긴다.

옆에서 울림이 이음이도 봐달라고 해서 올해 학교 생활,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물어보고 '선생님-친구들-조언'의 이야기를 들려 줄 세장의 카드를 각각 뽑았다.

 

 

근데 울림이 선생님으로 이런 사자 카드가 나와서ㅋㅋㅋㅋㅋ 올해 울림이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이음이는 신기하게도 세장의 카드 중 두장이나 나와 울림이가 뽑았던 카드를 뽑았다.

평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 우리 이음이와 맞닿아 신기했던 경험.

 

 

3.

오래만에 꼬박이들 이야기를 해 본다.

 

'울림'이는 올해로 10살. 10대로 들어섰고, '이음'이는 올해 7살로 어린이집에서 가장 큰 형님이 되었다.

자기는 아직 3살이라고 우기고 있는 막내 '우리'는 올해로 4살이다.

다 알고 있던 사실 이었는데도 이렇게 적어 두니 뭔가 약간 울컥 한다. 이렇게 또 훌쩍 커버렸구나, 하는 마음 때문인가. 서른 두살이 되었어도 엄마의 주책은 여전하다.

 

10살 울림이는 조금 의젓해 지고 더 많이 개구져졌다. 

 

7살 이음이는 어쩐지 더 울음이 많아졌는데, 요즘은 조금씩 용기내어 씩씩해 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4살 우리는.... 뭘해도 마냥저냥 귀여운 막내둥이ㅠㅠㅋㅋㅋㅋㅋ

막둥이를 대하는 엄마 아빠의 자세 ㅋㅋㅋㅋ

 

12월말 이음이 방학, 1월 울림이 방학을 시작으로 삼형제와 하루종일 아웅다웅 지낸다.

처음엔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아이들의 에너지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이제 슬슬 적응 되어 간다 싶으니 2월이 벌써 훌쩍 지났다.

하루세끼 해먹기 대 작전이 이제 슬슬 막이 내리고 있다.

(하루에 한끼라도 매일 건강한 식단으로 밥 먹여주는 지역의 교육기관들이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4.

올해 우리를 어린이집에 보낼지 말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조금더 집에 있어 보기로. 기저귀, 마스크, 선생님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내가, '형아들 처럼 아침먹고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 네살이 되기 싫다'는 우리를 억지로 떼어 놓고 돌아올 자신이 없다.

 

 

한 달 전 부터 산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고,

지난 가을 심어둔 튤립이랑 마늘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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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내가 일하고 있는 마을에는 몇몇 공부모임이 있다. 해원이는 그림, 바느질, 사진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종종 나와 아이들도 따라 간다.

 

사진모임에선 매주 주제를 잡아 각자 사진을 찍어와 함께 본다. 이번주엔 "풀 사진 찍기"였다. 날씨가 엄청 좋았던 지난 토요일(2020.9.19.), 아이들이 사진기를 들고 숙제를 해야한다며 나섰다. 덩달아 뒤쫓아가 사진 찍는 아이들을 찍었다.

 

(나름 사진모임이라서)

1.평소 잘 안쓰던 summitar를 달았다. 회오리 보케, 육각 플레어와 같은 낡은 것들이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 결과물을 보고 참 뿌듯했다.

2.큰 강당에서 빔프로젝터로 커다랗게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아이들 표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흐뭇했다.

3.최근에 억누르고 있던 렌즈 뽐뿌가 밀려온다. 참아야 한다.

 

 

 

 

 

 

 

 

 

 

 

 

 

 

 

 

 

 

 

 

 

 

 

 

 

 

 

 

 

 

 

 

 

 

 

 

 

 

 

 

 

 

 

 

 

 

 

 

 

 

 

 

 

 

 

 

 

 

 

 

 

 

 

 

 

 

 

 

 

 

 

 

 

 

 

 

 

 

 

 

 

 

 

 

 

 

 

 

 

 

 

 

 

 

 

 

 

 

 

 

 

 

 

 

 

 

 

 

 

 

 

 

 

 

 

 

 

 

 

 

 

 

 

 

 

 

 

 

 

 

 

 

 

 

 

 

 

 

 

 

 

 

 

 

 

 

 

 

 

 

 

 

 

 

 

 

 

 

 

 

 

 

 

 

 

 

 

 

 

 

 

 

 

 

 

 

 

 

 

 

 

 

 

 

 

 

 

 

 

 

 

 

 

 

 

 

 

 

 

 

 

 

 

 

 

 

 

 

 

 

 

 

 

 

 

 

 

 

 

 

 

 

 

 

 

 

 

 

 

 

 

 

 

 

 

 

 

 

 

 

 

 

 

 

 

 

 

 

 

 

 

 

 

 

 

 

 

 

 

 

 

 

 

 

 

 

 

 

 

 

 

 

 

 

 

 

 

 

 

 

 

 

 

 

 

 

 

 

 

 

 

 

 

 

 

 

 

 

 

 

 

 

 

 

 

 

 

 

 

 

 

 

 

 

 

 

 

 

 

 

 

 

 

 

 

 

 

 

 

 

 

 

 

 

 

 

 

 

 

 

 

 

 

 

 

 

 

 

 

 

 

 

 

 

 

 

 

 

 

 

 

 

 

 

 

 

 

 

 

 

 

 

 

 

 

 

 

 

 

 

 

 

 

 

 

 

 

 

 

 

 

 

 

 

 

 

 

 

 

 

 

 

 

 

 

 

 

 

 

 

 

 

 

 

 

 

 

 

 

 

 

 

 

 

 

 

 

 

 

 

 

 

 

 

 

 

 

 

 

 

 

 

 

 

 

 

 

 

 

 

 

 

 

 

 

 

 

 

 

 

 

 

 

 

 

 

 

 

 

 

 

 

 

 

 

 

 

 

 

 

 

 

 

 

 

 

 

 

 

 

 

 

 

 

 

 

 

 

 

 

 

 

 

 

 

 

 

 

 

 

 

 

 

 

 

 

 

 

 

 

 

 

 

 

 

 

 

 

 

 

 

 

 

 

 

 

 

 

 

 

 

 

 

 

 

 

 

 

 

 

 

 

 

 

 

 

 

 

 

 

 

 

 

 

 

 

 

 

 

 

 

 

 

 

 

 

 

 

 

 

 

 

 

 

 

 

 

 

 

 

 

 

 

 

 

 

 

 

 

 

 

 

 

 

 

 

 

 

 

 

 

 

 

 

 

 

 

 

 

 

 

 

 

 

 

 

 

 

 

 

 

 

 

 

 

 

 

 

 

 

 

 

 

 

 

 

 

 

 

 

 

 

 

 

 

 

 

 

 

 

 

 

 

 

 

 

 

 

 

 

 

 

 

 

 

 

 

 

 

 

 

 

 

 

 

 

 

 

 

 

 

 

 

 

 

 

 

 

 

 

 

 

 

 

 

 

 

 

 

 

 

 

 

 

 

 

 

 

 

 

 

 

 

 

 

 

 

 

 

 

 

 

 

 

 

 

 

 

 

 

 

:

<아빠 바람 사진기록>

 

 

비눗방울은 언제가 즐겁다.

 

2020.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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