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바람 사진기록>


셋째 이름이 '우리'인 탓에 굳이 이름을 쓸 때면 성(황)을 붙인다. "우리 우리가~"라는 말도 자주 한다. 앞으로 '우리' 존재감이 커지겠지? 아직 표정도 몸짓도 적어 사진이 많지 않다. (태어난지 한달 즈음 지난 후로 태열이 엄청 올라와 얼굴이 난리가 났었다ㅠ 요 며칠 사이 아주 좋아졌다. 그리고 셋째라서 좀 게을렀던 것 같기도... 미안해, 열심히 찍어줄께!)


아울러, 요즘 집에서 육아에 정신 없는 해원이 고생이 많다!!! 한없이 씩씩하고 넘치는 애정에 늘 감탄한다. 작년에 비해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어려운 시기겠지만, 금방 지나갈꺼야~ 조만간 어디든 놀러가자!!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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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사진은 찰나의 기록이라지만, 순간이 모이면 금세 영겁이 되는가 보다. 거침 없는 시간이 야속하면서도 행복은 끝이 없다. 어떻게 남겨야 할까 고민스럽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다. 그냥 가까이서 함께하련다. 가족과 함께 2018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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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리

2018. 3. 5. 12:07 일기/꼬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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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꼬박이의 이름은 '우리'로 정했다. 황우리.

아직 가족들 사이에서는 우리 보다 꼬박이가 더 익숙 하지만, 자주 불러주다보면 울림이 이음이 처럼 익숙해 지겠지.


나는 사실 이름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이쁜 우리말 이름이면 된다, 정도 였기 때문에 어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막상 우리의 이름을 우리의 이름을 짓고 나니 '우리를 우리답게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아이'가 아닐가 하는, 혼자만의 의미를 두었다.


그런 나(얼렁뚱땅 부르기 좋은, 혹은 예쁜 이름을 선호하여 결정하는, 그러고 나서 의미를 부여하는ㅎ)와 달리

남편은 아이들 이름의 뜻이 서로 연결 되었으면 좋겠다며 한명 한명 고민을 많이 했다.

남편이 생각한 울림, 이음, 우리의 뜻은 이렇다고 한다. 


첫째 ’울림'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떠올렸다. 좋은 생각과 삶으로 많은 이들과 공감을 이루길. 

둘째 ’이음'도 비슷한 의미이다. 말 그대로 연결이 주는 좋은 힘을 세상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셋째 ’우리’는 형들 이름과 합을 맞추어 지었다. 소외 없이, 다름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가 되어 ‘우리’를 이루기 바란다. 

세 형제 모두 ㅇ으로 시작하는데, 뭔가 동그라미가 주는 묘한 예쁨과 의미가 느껴지기도. 

이름짓기는 생각만큼 어려웠지만 아주 즐겁고 뿌듯한 과정이었다. 매일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경건하게 꼬박이네 가족이 살아갈 미래를 다짐해 본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우리야!










우리가 태어난지 오늘로 13일째. 이제 거의 2주 남짓 되었는데, 벌써 훌쩍 큰 느낌이다.


그동안 우리는 태어나고 바로 다음날 밤, 어디가 안 좋았는지 몇 시간을 울었던 것과

며칠 전 코로 젖이 역류 하고 10분간 숨을 재대로 쉬지 못 하고 울었던 것(그 후로 숨 쉬는걸 자꾸 확인 하게 된다)

빼고는 잘먹고 잘자고 (많이)잘 싸고 순딩순딩 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아직 아기라 밤에는 3-4시간씩 깨서 수유를 해야 하지만ㅠ 그래도 식구들이 자는 시간에 잠드는 것이 어디냐- 하고 감지덕지 하고 있다.

(어쩌면 자기가 잘 수 있는 시간이 이때 밖에 없다는 것을 벌써 깨달은 것 일지도...ㅋ)

그보다 나는 음식 먹는 것 부터 움직이는 것(집안일, 외출 등등...) 씻는 것 까지- 내 몸을 내 맘대로 하지 못 하니 좀 우울하다.

(아마 이제 몸이 좀 움직일만 하니 몸이 근질거려서 그런 것 같기도...)

더욱이 매일 건강한 밥과 반찬만 먹으며 8시만 되면 잠들어버리는 너무나 건강한 삶이 왠지 모를 허탈 하달까...

요즘 윤식당만 보면 맥주가 엄청 땡긴다ㅠ 맥주는 고사하고 시원한 사이다라도 한잔 먹고 싶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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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이음이는 각자의 심경 변화를 나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처음 태어나자 마자는 각자 서툰 표현들이 이리뛰고 저리뛰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자리 잡는 기분.

그래도 우리에게 (아직까지는)동생을 배려하고 귀여워 할 줄 아는 따뜻한 형아들이 있어서 다행: )




(엄마 처음 씻은 기념 사진ㅋ)








(요즘 낮잠 자는 풍경)



그래도 이음이 태어났을 때 울림이가 힘들어 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울림이 이음이는 서로가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번 소리치고 울고 싸우는 녀석들이지만, 

울림이는 이음이에게 이음이는 울림이에게 외롭지 않게 해주는 좋은 벗이다.

그래서 한편 울림이에게 이음이가, 이음이에게 울림이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 우리도 그 사이에 끼어 뛰노는 날이 오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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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릭하면 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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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이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다 '꼬박이'처럼 생겼다)







둘째 꼬박이 이음이의 생일(21일) 하루 전날, 셋째 꼬박이가 나왔다.

주변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당사자인 우리가 걱정했던(혹은 예상 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전개로. 아주 순탄치 않게 말이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둘다 똑같은 진통 전개(평상시와 1도 다를게 없음->빠르게 지속되는 배뭉침(아프지는 않음)->몇시간 뒤 진짜 진통->3시간 반, 1시간 반 만에 출산)로 낳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똑같겠거니- 아니, 나오는 길이 두 번이나 열렸었으니 더 빨리 나올 것이라 확신하며 예정일 2주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꼬박이가 조산사 선생님이 도착 하시기 전에 나와 버리는 것만 걱정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무색하게 명절 연휴가 시작 되기 전날 부터의 가진통으로 조산사 선생님을 헛걸음 하게 하고,

진짜 진통이 시작되고서도 22시간 만에야 이 녀석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원래는 2박 3일 코스인데 그나마 셋째라서 반나절 줄인거라 하심...).

꼬박이가 나오는 위치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진통을 오래 겪은 거라 나오는 순간도 셋 중 가장 아팠던 것 같다.

세 번째 출산 임에도 이렇게나 다른 경험을 하면서, 임신에서 시작되는 모든 육아에 우리가 장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명절 하루 전, 조산사 선생님 헛걸음 하게 만든 날들. 14-16일)


(그래도 혹시 나오길 기대하며 열심히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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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꼬박이를 집에서 낳으면서 무엇보다 대견했던건 형아 꼬박이들.

가정 출산을 결심했던 가장 큰 계기가 조산원에서 꼬박이를 낳은 후 큰 아이들이 함께 숙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생 이별을 하거나, 

낳자마자 집으로 함께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과 낯선 공간에서 맞이하는 출산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그럼에도 내가 힘들어 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에 꼬박이가 나오기 전에 울림이 이음이에게 늘 일러 주었다.


"엄마가 꼬박이를 낳을 때 많이많이 아파 할건데,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울림이 이음이도 그렇게 낳았고, 꼬박이가 나오면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 했던 것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생길거야. 울림이 이음이가 그랬던 것처럼. 알겠지?" 하고.


그러면 울림이 이음이도 씩씩하게 알았다고 하면서 셋이서 꼬박이가 나오는 순간을 즐겁게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긴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평소처럼(어린이 집에도 가지 않고) 싸우기도 하고 밥도 먹고 간식도 먹으면서 놀다가

엄마가 힘들어 할 때면 와서 손 한번 잡아주고, 그러다 또 가서 놀았다.

더 놀랐던 것은 꼬박이가 나오기 직전에 극심한 진통을 겪을 때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방 한 구석에 앉아 함께 긴장하고 같이 힘을 주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울림이는 자기도 같이 힘 주고 기도 하느라 땀이 많이 났다고.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것은 진통이 시작 된 순간부터 꼬박이가 나오기 까지의 긴 시간동안 조산사 선생님과 남편이 계속 옆에 있어 주었던 것이다.

조산사 선생님은 내가 그 긴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계속 옆에 있으시면서 내 상태를 지켜봐 주셨다.

선생님이 만나셨던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뢰가 생기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서 선생님이 더 편해졌다.

더욱이 꼬박이가 나오기 직전 선생님의 연륜에서 뭍어 나오는 손길에 나도 남편도 정말 감탄했다.

꼬박이가 나오고 난 뒤에도 선생님은 나에게 "꼬박이 엄마, 나는 내 힘 될 때까지 이 일을 할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하며 

내가 이 선생님과 연이 닿은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던 그날 밤 부터 꼬박이가 나오는 2박 3일 동안 아이들과 내 곁을 지켜주었던 남편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었다.

새삼, 나에게 저런 남편이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던 시간들.

나는 사실 이렇게 내가 아무 것도 못 하게 되는 순간에 남편이 집안일이나 아이들 케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ㅋㅋ), 

이번 일을 겪으며 신뢰도 급 상승! 뒷심이 좀 부족 하긴 하지만 

조산사 선생님도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사람' 인 것 같다시며 남편의 모습에 감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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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히 출산 중 출혈이 거의 없었고, 회음부도 찢어지지 않아서(울림이때 찢어진 경험 이후로 출산 할 때 어떻게든 정신 붙들고 신경 쓰는 부분.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기 때문에-) 회복은 빠르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집이라 참지 못하고 방심 하며 집안을 좀 돌아 다녔더니 벌써 무릎이 쑤시려고 한다. 눈 감고 다녀야지 다시 다짐. 

그래도 어제 부터는 산후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쾌적한 집에서 큰 꼬박이들이랑 남편도 나가고 방에서 꼬박이랑 둘이 누워 있으니 조리원에 와 있는 기분이다(가 본적은 없지만).

꼬박이도 형님들이 없으니 너무나 잘 잔다. 그런 꼬박이를 보면 시작부터 험난한 막내 생활에 자기 살길을 찾아 가는 것 같아 우습다.





(왜인지 벌써 피곤한 엄마ㅋ;)






(벌써부터...)


(막내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조금 고생했지만 막내 꼬박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고, 

뱃속에 있을 때는 걱정만 했던 내가 그 걱정들이 무색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작은 생명체에 감탄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독수리 오형제가 된 우리 가족은 변화한 이 상황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더불어 그것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우리 앞에 생겨날지 기대하면서: )







<< 추 가 >>


둘째 꼬박(황이음) 낳던 이야기 링크 : 바로가기

첫째 꼬박(황울림) 낳던 이야기 : 바로가기 (하단에 출산기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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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부터 이음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있다.

원래는 3월부터 4세반 입학인데, 마침 3세반 자리가 나서 운 좋게 조금 빨리 다니게 됐다.

안 그래도 꼬박이 나오자마자 어린이집 가게 되는 이음이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잘 된 일인데 그럼에도 나는 이음이가 막상 어린이집에 바로 다니게 된다니, 주책맞게 또 마음이 몽글몽글 했다.

울림이 갈때도 가기 며칠 전 까지 울림이랑 생 이별하는 이상한 꿈까지 꾸고 훌쩍이더라니-

이럴때면 아이들 보다도 내가 더 아이들에게 의존적이지 않나, 회의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이음이는 

원래는 한 며칠은 엄마가 같이 있다 같이 있다오고 하는 하는 적응기간을 갖다가 조금씩 이음이가 혼자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수순이다.

그런데 이녀석, 첫날부터 집에 일찍 안 가겠다고 하여 밥까지 먹고 오고(선생님 당황ㅋ), 이틀 만에 이음이 혼자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처음엔 낯 가린다고 문 앞에서 잘 들어가지도 못 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30분 만에 말문이 트이고 1시간 만에 교실 곳곳을 뛰어 다닌다.

어린이집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아무래도 처음이라 이것저것 신기한게 많겠지.


내친김에 그 바로 다음주(이틀 뒤 한주가 넘어갔음) 버스를 태워 보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엄마 찾으며 훌쩍 거린다 하여 오전에 내가 출동 하기도 했다.

이음이는 나를 보자마자 으앙- 울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묻지도 않았는데 "내일은 엄마 생각 나도 안 울거야" 하고 씩씩하게 말한다.

다 커서 간 울림이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니기 시작하는 어린 이음이가 더 잘 적응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을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재밌는건 덩달아 결석을 밥먹듯이 하던 울림이까지 빠지지 않고 잘 다니고 있다는 것ㅋ

그런 울림이를 보면서 어쩌면 울림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았던 날보다 내가 울림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날이 더 많았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걱정과 염려와는 다르게, 이렇게 갑자기, 잘 적응해 버리는 큰 꼬박이들을 보면서 역시 문제는 아이들 보다 나에게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마음 잡기.

이렇게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나만의 시간이 생기니 그동안 미뤄 왔던 일들이 생각난다.

블로그, 계좌정리, 새탁기 청소, 오븐 청소, 묵은 때 닦기 등등-

내가 게을러서, 혹은 관심이 없어서 미뤄 두고 있는 일들이

이렇게 조금의 시간이 생기자마자 그런 일들이 먼저 떠오르고 실천하는 손이 나가 걸 보면서 내가 그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을 알게됐다.

늘 이렇게 지나고 나서야 내 상태를 알게 되는 나. 예전엔 늘 동동 거렸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그런 나도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2



예정일을 보름 남짓 남기고서야 꼬박이 맞을 준비를 한다.

일단 이곳 저곳에서 잔뜩 받아 놓은 꼬박이 옷, 출산 용품 등을 꺼내 버릴 것과 쓸 것을 분리하고 빨고 삶으며 때를 지운다.

그래도 셋째라고 나한테도 약간의 노하우가 생겨서 예전엔 아깝다고 잔뜩 쟁여 두던 것들을 다 버렸다.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 놓고 묵은 때를 깔끔히 지우는 스킬이 늘어난 내 모습에 뿌듯해 하면서 이제사 꼬박이가 곧 우리 곁에 올 것을 실감하고 있다.






셋째 꼬박이는 가정출산을 준비중이다.

조산원에서는 아이들(울림 이음이)과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이 큰 이유였고, 

둘째까지 나름 무난히 낳은 자신감으로 좀 더 편한 공간에서 온가족이 함께 낳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가정출산을 처음 결정 하면서 가장 놀란건 남편의 반응 이었다. 

울림이 때는 조산원에서 낳는 것도 걱정 하던 남편이 꼬박이의 가정출산은 고민 없이 냅다 그러자 하고, 어떤 면에선 나보다 더 적극적이다.


처음에는 가정출산이나 조산원 출산이나 아이가 나오는 과정은 비슷하겠거니- 하고 쉽게 생각 했었는데,

막상 막바지가 되어 꼬박이를 집에서 맞을 준비를 하다보니 내가 꼬박이를 낳은 이후 책임지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꼬박이를 낳은 직후 상황을 계속 생각 한다.

조산원에서 자연스럽게 해 주던 것들을 떠올린다.

출산 할 방의 밝기, 온도, 가족들이 꼬박이와 함께 자고 생활할 공간에 대한 것들, 출산 후 내 몸 상태에 대한 대비(오로, 빈혈 등), 식단 관리 등등-

물론 조산사 선생님이 가장 초반의 관리는 도와주시겠지만, 출산 이후의 것들을 내가 더 생각하고 책임져아 한다는 생각에 

집안 곳곳을 다니며 머리 속에서 이런저런 상황을 떠올리며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 하게 된다.

출산의 과정과 출산 이후의 상황에 더 큰 책임감이 생긴 기분.


무엇보다 지금 가장 걱정은 꼬박이가 나오기 전 까지 조산사 선생님이 오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정출산을 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다보니 대구에 계신 선생님과 연이 닿았는데,

대구와 홍성의 거리가 꽤 멀고, 나는 출산 속도가 빠른데다 셋째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나와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

우리도 선생님도 꼬박이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결코 알 수 없으니,

그저 꼬박이가 조금만 더 일찍 신호를 주기를, 선생님이 도착 하실 때 까지 조금만 천천히 나와 주기를, 무엇보다 건강히 잘 나와주길 기도할 뿐-




꼬박이 가족 모두 화이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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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발뮤다'를 샀다ㅋㅋㅋㅋㅋㅋ









































오오, '자수'를 한다.




































무려, '자연도감'이다!!!!



































'만들기의 신', 고기 구워먹는 씬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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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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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꼬박일기... 갈증이 나네요.





시기가 좀 지났는데 올리지 못했던 B컷 풉니다.





(해원이가 살 좀 붙여주면 좋으련만..)





사진은 추억이라고, 걍 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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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ㅎㅎ.)






추석 때 사진이다. 밀린 거 다 갚을라면, 한 참 멀었네~

















































































































늘, 할머니 할아버지네는 좋다!


(서천과 강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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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람 사진기록>




사진 찍는 아이들.



감성 '사진'






































































































































(2015년, 울림)








아이들이 찍은 사진_이음













'



이음이가 사람만 찍으려고 해서 "이음아, 사진은 사람 말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뭐든 찍는 거야" 하고 알려주니 "아~!" 하고는 찍어 온 것들






"엄마~! 임미가 우디 죠아하니까 찌글꺼야. 요로케 들고 이써죠"







아이들이 찍은 사진_울림



넘나 즐겁게 찍는 이음이가 샘이 났는지 갑자기 작가 열정 뿜뿜 하며 찍은 울림이 작품


















(198?년, 아빠)


itistory-photo-1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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