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바람 사진기록>

 

:

 

2019년 1월, 2월 사진

 

 

이, 귀염둥이.

 

이음이.

 

겉모습은 작년과 많이 다르진 않지만,

 

네가 있어 우리집 삼형제가 잘 지내고 있단다.

 

(사랑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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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진첩을 보니, 꼬박일기에 올리지 않은 것들이 좀 있다.

생각 날 때마다 조금씩 올려야지.

 

이 사진을 보고, 딱 떠오른 제목은. 든든.

앞으로 이 꼬박 삼형제가 기대된다.

 

2019.7.18.

 

2019.10.3.

 

:

아래에 1편이 있으니 순서대로 보세요. [아래 클릭].

(촬영 순서대로 사진만 주욱-)

 

바로가기 > 1편

 

 

 

 

 

 

 

 

 

 

 

 

 

 

 

 

 

 

 

 

 

 

 

 

 

 

 

 

 

 

 

 

 

 

 

 

 

 

 

 

 

 

 

 

 

 

 

 

 

 

 

 

 

 

 

 

 

 

 

 

 

 

 

 

 

 

 

 

 

 

 

 

 

 

 

 

 

 

 

 

 

 

 

 

 

 

 

 

 

 

 

[추가]

세상에,

아래 사진은 해원이 어릴 적이다.

(우리는 나 닮은 줄 알았는데...)

 

 

 

 

 

 

 

 

 

 

 

 

 

 

 

 

 

 

 

 

 

 

 

 

 

 

 

 

 

 

 

 

 

 

 

 

 

 

 

 

 

 

 

 

 

 

 

 

 

 

 

마지막, 이음이가 만든 사람이다.

맨 위가 얼굴(자세히 보면 눈과 코 있음), 중간에 양쪽 팔, 맨 아래 두 다리가 있다.

 

 

 

*메모1_컴퓨터 바꾸고, 모니터 세팅이 좀 달라졌나.. 색감이 애매하네. 조금씩 잡아가얄듯.

*메모2_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이래저래 집중이 잘 안되는데... 가족으로부터 힘을 얻었다. 감사.

 

 

:

언제 봄날이 좋지 않은 적 있었냐만은,

올해는 남다르다.

초롱산 품에 자리한 아름다운 집과 황우리까지 합류한 꼬박이들 덕택이겠지.

정말 오랜 만에 올리네. 그간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도 있고, 게으르기도 했다. 다시 시작하자.

오래된 카메라이지만, 이렇게 인생을 남길 수 있으니 충분한 도구다.

 

(코멘트도 쓰고 싶은데.. 해원이 글을 기다리자. 이번엔 사진 순서를 철저히 시간 흐름 그대로. pc에서 사진 클릭하면 커져요~)

 

 

 

 

 

 

 

 

 

 

 

 

 

 

 

 

 

 

 

 

 

 

 

 

 

 

 

 

 

 

 

 

 

 

 

 

 

 

 

 

 

 

 

 

 

 

 

 

 

 

 

 

 

 

 

*코멘트 안쓰려 했는데, 아래 울림이 슛팅자세가 너무 마음에 든다ㅋㅋㅋㅋ

 

 

 

 

 

 

 

 

 

 

 

 

 

 

 

 

 

 

 

 

 

 

 

 

 

 

 

 

 

 

 

 

 

 

 

 

 

 

 

 

 

 

 

 

 

 

 

 

 

 

 

 

 

 

 

 

 

 

 

 

 

 

 

 

 

 

 

 

 

 

 

 

 

 

 

 

 

 

 

 

 

바로 보기 > 2편 

:

1.

긴 방학이다.

체력적으로 힘든건 사실이지만 아이들도 나도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오히려 싸우는 시간이 덜 하고 같이 재밌게 노는 방법을 터득 해 가는 것 같다.

하루종일 소리 치고 울고 싸우는 날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하루종일 카드놀이 하나로 하루를 보낸다. 

언제나 '경쟁자' 이기만 했던 형제들이 이제는 조금 '동지'가 된 느낌이랄까.

무당벌레 훈련중ㅋㅋㅋㅋㅋ

우리의 아지트

 

 

2.

며칠 전 남편이 벼르고 벼르던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사서 마루에 설치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 설명 해 주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 중 하나로 생각하는 남편은 그 행복을 더 극대화 시켜주기 위한 도구로 이 거대 칠판을 구입 한 것이다. 

(오늘 밤에도 자야 하는 아이들을 붙들고 '감옥과 죄수'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30분을 떠드는 바람에 나만 혼자 애먹었다)

남편이 처음 커다란 칠판을 사겠다고 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집에 설치 되어 있는 이 칠판을 보니 너무나 황바람스러운 이 물체에  웃음이 났다. 

 

그래도 요 칠판이 있으니 아이들도 아빠도 신이나서 마루에 앉아 그리고 쓰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함께 할 이야기가 더 다양해졌다. 

(방금도 남편은 아까 자기 전에 (엄마가 말리는 바람에)아이들이게 다 설명 해주지 못 한 무언가를 그려 놓았다.........)

 

 

3.

오늘은 어제 아이들이 밭에 만들어 놓은 돌 화덕에 불을 지펴 마쉬멜로를 구워 먹었다.

어제 드디어 아랫밭 만들기에 돌입해서 풀을 베고 있는데 울림이랑 이음이가 옆에 오더니 둘이서 꿍짝꿍짝 뭔가 신나게 만든다.

해가 다 지도록 안들어 오며 만들던 것이 오늘 아침 보니 돌로 만든 작은 화덕이다.

꼼꼼하게 잘도 쌓았다. 둘이 낑낑대며 저렇게 커다란 돌을 옮겨 화덕을 지켜 볼 의자도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울림 이음이의 시그니처 포즈

저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가만히 두기엔 아까워 작은 불에도 구워먹기 좋은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낮엔 볕이 뜨거워 해질 무렵 하기로 하고 밭일을 하는데 아이들이 옆에 와서 "파이어~ 파이어~" 노래를 부른다.

슬슬 시작하기에 앞서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도 초대 하자고 했더니 벌써 초대 했단다ㅎㅎ

 

초대 손님들을 모시고 저 쪼그만 화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젓가락에 마쉬멜로우 하나씩 꽂아 구워 먹는다.

우리도 옆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유기농 곰돌이 젤리를 젓가락에 꽂아 먹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나게 먹었다. 조그만 화덕이지만 나름 화력이 좋다. 

아이들 덕분에 즐거워진 어른들은 다음에 한번 날 잡고 화덕을 더 크게 만들어 생선도 구워먹고 소세지도 구워 먹자고 했다.

곰돌이 젤리 굽는 우리ㅋㅋㅋ

 

그나저나 저기 밭으로 써야 되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옮기지...

 

 

4.

이건 얼마전에 아주 오랜만에 열폭 했던 나의 감정의 쓰나미 기록.

2020. 3. 19
어제 밤 오랜만에 이음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어른들이 늘 별거 아닌 일로 싸우듯,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느날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게 된다. 어제가 그랬다. 이를 닦기 전 캬라멜을 먹겠다고 하는 이음이. 안 된다고 하는 엄마. 결국 이음이는 대성통곡을 나는 신경질. 이음이가 캬라멜을 먹겠다고 하기 전 이미 만화 예고편 귀파기 등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고 평소보다 취침 시간이 늘어지니 점점 지쳐갔다. 남편은 바빠서 없었고 저녁도 못 먹은 나는 배도 고프고 신경이 더 예민해 져 있었다. 울고 불고 하는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강압적으로 달랜 후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캬라멜을 먹지 않고 이를 닦이고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너무 못나서 눈물이 핑 돈다. 사실 귀도 내가 파주고 싶어서 파줬고, 평소에는 이 닦기 전에 먹고 싶은거 다 먹게 해 줬는데 갑자기 내가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소리치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한 내가 너무 못나고 속상하고 미안했다.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사이 몰래 훌쩍거리고 있는데 이음이가 와서는 미안하다고 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히려 이음이가 놀라 “엄마 울어?”라며 내 눈을 쳐다본다. “이음아 엄마가 더 미안해. 귀도 엄마가 파주고 싶어서 파주고 평소에는 먹으라고 했었는데 엄마 힘들다고 안된다고 하고 엄마가 어른이라고 무섭게 해서 정말 미안해...” 조용히 방에 있던 울림이가 슬 나오니 이음이가 달려가 “형아~ 엄마 운다~?” 하고 말하니 울림이가 나지막히 말한다. “알아 듣고 있었어” 사실 울림이는 이음이 보다 내가 훌쩍이고 있는걸 먼저 알고 있었다. 내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는걸 보더니 방으로 슬쩍 들어가서 책보는 척 하며 상황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아까 내가 이음이에게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와 있을때에도 마루에서 울고 있는 이음이에게 울림이가 열심히 달래줬었다. “이음아- 어떻게 하고 싶어서 그래? 지금 먹고 싶어서? 그냥 내일 먹자. 내일 먹고 지금 빨리 가서 엄마한테 이 닦아 달라고 해~ 응? 이음아~”라며 계속 이음이를 설득했다. 부쩍 커버린 울림이도 기특해서 꼭 안아 주며 고맙다고 했다. “울림아 정말 고마워. 아까 이음이도 달래주고 엄마 우는 것도 모르는 척 해줘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던 우리도 옆에서 이제야 안심이 되는 듯 웃는다. 

이 글은 읽을 때 마다 그날 느낀 감정이 생생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눈물이 난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5.

 

코로나와 그로 인해 길어진 방학으로 아이들과 부대끼며고 아웅다웅 지내며 지칠때도 있지만,(딱 3시간 정도 만이라도 혼자 카페에 가서 글 쓰고 싶다)

한편으로는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막상 용기 내지 못했던 '학교도 어린이집도 안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를 실현할 수 있어 즐겁다.

 

아- 언제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나의 꼬박이들.

간만에 꼬박일기에 꼬박이들 이야기를 적었다.

역시, 세상에서 자식 덕질이 제일 재밌다!

 

 

:

2월 20일은 우리 생일, 21일은 이음이의 생일이다.

그런데 마침 올해는 아랫집 할아버지의 생일도(음력 이여서 매해 바뀌는데 올해는) 2월 20일!

생일 파티겸 간만에 아랫집 윗집 식구들 모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

 

조금씩 준비해서 만나자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진수 성찬이다.

아랫집에서는 파스타(크림-토마토 두가지 맛!)와 챱스테이크, 닭봉, 유부초밥을.

우리집에서는 셀러드와 약밥, 홍합스튜, 그리고 생일 케이크를 구워 갔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 못지 않은 메뉴와 맛에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생일 파티를 하러 가기 전에 할아버지는 뭘 좋아하실까 같이 고민 하는데

울림이 이음이 모두 "할아버지는 우리들 그림을 제일 좋아하지~!"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는 울림이가 갑자기 하나 더 생각이 났는지

"아! 할아버지 밀크 캬라멜 좋아해!"라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 밀크 캬라멜이 많은데 이거 삼촌거냐고 물어보니까 삼촌이 할아버지가 좋아신다고 했었어"라며ㅎㅎ

하지만 그건 이미 할아버지네 많이 있다는 아이들 말에 다같이 문구점에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어른들이 이례적으로 주고 받는 선물을 내가 사서 드리는 것 보다

작고 소소하더라도 아이들의 눈으로 직접 고른 선물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구점에 들어가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데 한참을 둘러보던 울림이가 여기 귀여운 향초 있다며 나를 부른다.

알록달록 귀여운 과일 모양에 향초들이다. 울림-이음-우리가 하나씩 드리면 좋을 거 같아 각자 하나씩 골랐다.

그걸로는 아쉬워 이음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피카추 그림이 그려진 연필 세트를,

울림이는 색연필과 연필을 바꿔 낄 수 있는 알록달록한 연필-색연필 세트를,

우리는 빤짝이가 잔뜩 붙어 있는 작은 수첩을 하나씩 골랐다.

 

선물을 준비하고 나니 아이들이 아니면 줄 수 없는 이 선물들이,

포장해서 드리기 직전까지 자기가 같고 싶다며 마음에 들어 하던 것들을

"그래도 할아버지 생일 이니까"라며 큰맘 먹고 전하는 그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리면서 본인들도 기대가 됐는지 주는 사람들이 꺅꺅 거리며 더 난리다.

선물을 뜯고 나서도 이건 어디에 쓰고 어떻게 쓰는거라며 신나게 설명한다.

할아버지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는지 "이런 선물은 평생 처음이다~"라시며 웃으신다.

 

울림이랑 이음이가 할아버지께 직접 그린 카드도 하나씩 드렸다. 

울림이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열심히 그리더니 정말 비슷하게 그렸다.

할아버지도 "내 머리카락이 세가닥이냐~!"라며 장난스레 말씀 하시면서도 울림이가 이렇게 자기를 그려 준건 처음이라며 좋아하셨다.

 

선물 전달식을 마무리 하고 오랜만에 윗집 아랫집 식구들 다같이 둘러앉아 술 한잔 하며 도란도란 즐겁게 이야기 나눴다.

특히 삼촌이랑 남편까지 이렇게 다같이 모인게 오랜만이어서 평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

 

대화 중에 내가 '삼촌이 워낙 깔끔한 성격이어서 아이들이 자주 놀러와서 힘든일은 없냐고, 혹시 집에서 내가 지도해야 할 일들은 없겠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이들과 저의 일이라서요"라는 삼촌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삼촌도 아이들과의 불편함 지점을 나에게 말하신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이들이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 그 문제를 늘 아이들과 직접 해결하려고 하셨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올해는 신기하게도 양력인 내생일과 음력인 할머니 생신이 또 하루 차이가 되어

겸사겸사 우리 엄마 아버지가 오셔서 하루, 또 우인이 언니가 와서 하루 함께 만나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 날 아침에는 엄마랑 아버지가 아랫집 할머니할아버지네서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원이 낳고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며 제일 큰 조기를 구워주셔서 너무 큰 감동을 받드셨다고 했다.

이런 대접은 생전 처음 이라며...

매번 드리는 것 보다 받는게 많아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할머니 생신에는 부담 드리고 싶지 않아 몰래 선물만 드리려고 했는데(지난번 할아버지 처럼).

준비한 선물을 빨리 알리고 싶던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 입이 간질간질 하는 바람에 진즉에 다 들통나고ㅋㅋㅋ

나중엔 오히려 내가 케익이랑 이쁜 꽃다발을 선물 받아 버렸다ㅠㅠ 

 

 

(거의 반 강제로) 나도 아이들과 남편에게 귀여운 선물들을 받았다.

울림이의 편지에는 눈물까지 찔끔 났던.

길었던 생일만큼 오래도록 행복했던 날들 이었다: )

 

:

1

1월 1일 서천에서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 핸드폰에 깔려 있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 했다.

 

'나는 멀리 못 가니까 sns를 통해 다양한 간접 체험을 하는거야'

매일 밤낮으로 틈틈이 sns를 하며 핑계를 댔다.

하지만 sns속 사람들은 온통 즐겁고 이쁘고 행복한 것들만 보여주고, 그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나는 우울했다.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만 늘어나고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부러워 하면서 우울한 마음만 커졌다. 

어플만 삭제하고 sns를 완전 차단 한건 아니어서, 컴퓨터로 종종 보긴 하는데 어플을 삭제 하니 일상을 지배하던 sns활동(?)은 확실히 줄었다.

사실 sns의 문제라기 보다 나약한 내 멘탈이 문제라 어찌보면 편하게 도피 한 거라고도 할 수 있다.

 

어플을 지운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어간다.

처음엔 좀 헛헛하니 왠지 좀 심심한 느낌도 들고 약간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sns어플을 삭제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꼬박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내 삶은 그대로다.

(오히려 덕질 하는 시간이 늘었다ㅋㅋㅋㅋㅋㅋ)

다만 이 도피성 실천이 누군가와 비교하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걸 조금은 사라지게 해 준 것 같아서,

그리고 맘 먹던 것을 움직여 실천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 좋은 한 해의 시작이 된 거 같다고 생각한다.

 

엊그제는 아주 오랜만에 혼자 영화도 보고, 오늘은 이렇게 오래만에 블로그에 글도 쓴다.

2월에는 아이들 방학을 맞이 하여(이음이도 어린이집을 한 달동안 뺐다) 아이들이랑 소소한 여행들을 계획 하고 있...

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모든 일정이 잠정 중단ㅠㅠ 인생 참 맘먹은 대로 진행하기 쉽지 않다...

 

이 글도 쓰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계속 마무리 되지 못하고 있다.

 

 

2

엊그제부터 인가 날이 몹시 춥다.

사실 이정도가 겨울의 보통 기온인데, 올 겨울이 유난히 따뜻해서 이정도에도 엄청 추운 것처럼 느껴진다.

춥다 춥다 하면서도 간만에 느끼는 이 차가운 겨울의 느낌이 싫지는 않다.

 

덕분에 어제 아침에는 아주 오랜 만에 눈도 쌓였다.

아주 아주 조금 밖에 쌓이지 않은 눈이지만 날도 춥고 기분도 낼겸 아이들에게도 오랜만에 올인원 패딩을 꺼내 입혔다.

큰 꼬박이들은 우주인이 된 것 같다며 좋아한다.

눈이 얼마 없어 뭐 놀 게 있나, 싶었는데 아이들은 이 얼마 되지 않는 눈에도 신난다.

 

막내 우리도 이제 엄마 없이도 혼자 형들을 졸졸 잘도 따라 다닌다.

가다가 넘어지면 뒹굴고 누워서 하늘도 한번 본다. 사랑스러운 꼬마들!

 

3

(무맥락, 뜬금 없지만)작년 가을, 남편의 박사논문이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9월쯤 마무리가 되었으니 아직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몇년 전의 이야기 같다.

'언제 끝날까, 무사히 끝낼 수는 있을까'의 막연함 속에서 드디어 해방 되었으나 그도 잠시 도돌이표 처럼 같은 고민이 계속 된다.

우리는 이 긴 여정을 무사히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몇년 째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다들 이렇게 사는건지, 우리만 이렇게 사는건지. 계속 비교하게 된다.

 

매일 도돌이표 처럼 되돌아 오는 질문 속에서 남편과 나는 늘 비슷하게 싸우고 비슷하게 마무리 짓는다.

가장 최근에 내린 결론은,

인생에 명확한 목표지점을 정한다는 것이 가능 할까?

우리가 가는 길이 뚜렷한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은 같지 않아 불안할 지라도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 것 일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그냥 묵묵히 지금 해야 할일들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가진 것이 하나 둘 더 생길 수록 고민 할 것이 많아지고 선택해서 나아가기가 어려워 진다.

더 버리고 더 비우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갈수록 어렵다. 

 

 

4

올해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 부여를 잘 해보고 싶다.

단지 겉치레가 아닌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하고자 하는 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 인지 잘 정리 해 보고싶다.

 

 

올해는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나.

 

:

1.

내친 김에 마구 옮겨 본다.

그러다 보면 내 글도 마구 쓰게 되겠지.

 

2.

2019.6.10

‘모자를 한 것 같아.’ 지칭개 작은 꽃봉오리 앉은 무당벌레 를 보고 이음이가 한 말입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한테 앉고 싶다며 풀을 뽑고 있는 내 무릎에 앉습니다.
나 : ‘내 무릎에 모자를 했네.’
이음 : ‘그건 아니지. 머리에 해야지.’
나 : ‘그럼 이건 뭐라고 하지?’
이음 : ‘이건 합체한 거지.’
요즘 이음이는 어린이집에 잘 가지 않습니다. 형 울림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곤 곧바로 우리 집으로 달려옵니다.
무릎에 앉힌 채, 요즘 형과 많이 싸우지 라고 묻자 처음엔 아니라고 하더니, 조금 싸운다고 합니다. 동생 우리는 자꾸 쫓아오고 형 울림이는 저 멀리 달아나고, 가운데에서 이음이는 제 나름대로 힘들어 하는 듯 보입니다.
개망초와 민들레도 서로 친척이라며 두 손을 다리는 꼭 붙여 움직이지 못하는 풀 흉내를 내거나, 공벌레 흉내를 내며 허리를 굽히는 이음는 여전히 귀엽습니다.

 

6.12

‘우인이 이모하고 지우 삼촌은 어릴 때 왜 싸우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앉혀 놓고 묻자, 울림이가 ‘두 개 있어서.’ 라고 대답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묻자, 울림이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습니다. 그제사 생각이 났습니다. 똑같은 게 두 개씩 있으니 서로 가지려고 싸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울림이와 이음이는, 모종삽도 호미도 물조리도 망치도 킥보드도 자전거도 똑같은 걸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야, 우인이 이모는 여자아이고 지우 삼촌은 남자아이라, 노는 게 달랐기 때문이야.’
언제인가 이음이가 울면서 ‘나는 형이 하는 거 다 하고 싶어.’ 라고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울림이는 동생이라고 마냥 양보만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인이한테 늘 네가 누나이니 양보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동생과 나이 차이가 한 해 보름밖에 나지 않는데, 그 일을 생각하면 우인이한테 참 미안합니다.
동생이라고 무턱대고 양보하지 않는 울림이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막내 우리에게도 무엇을 빌릴 때는 먼저 우리의 생각을 물어 봅니다.
모든 것을 형처럼 하고 싶은 이음이는 형이 너무 좋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너, 평생 안 놀아 준다.’는 울림이의 말이 이음이에겐 무엇보다도 무섭게 느껴졌을 테지요.
요즘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음이도 ‘할아버지, 평생 안 놀아 줄 거야.’ 라며 나에게 겁을 줍니다.

 

6.14

아침을 먹는 나를 기다렸다가, 밥을 다 먹자마자 이음이는 내 손을 끌고 안방으로 갑니다.
‘할아버지, 텔레비전 보자.’ ‘안 돼.’ ‘바둑 볼게.’
이음이는, 가끔 내가 바둑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바둑을 조금 보다말고 이음이는 혼잣말로, ‘만화 보고 싶은 기분이 난다.’ 고 합니다. 단단히 잠가 둔 내 마음이 스스르 풀립니다.
우인이와 지우는 어릴 적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자랐습니다. 저녁이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촛불을 켜서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얼마 전에 우인이에게 어떻게 영어 선생이 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우인이는, ‘아마 어릴적 음악을 들으며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대답합니다.
오늘도 낮에 놀러와 이음이는 텔레비전을 보자고 조릅니다. 엄마가 왜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할까 라고 물으니, 눈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아는 것으로 꽉 차 있는 이음이 머리가 조금씩 비워져.’ 라고 하니, 이음이는 텔레비전을 조금 보다가 머리가 비워졌나 만져보라고 합니다.
이음이 큰 머리를 두손으로 어루만지며 약간 가벼워진 것 같다고 하니, 이음이는 조금 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섭니다.
사진은, 늘 우리 집 나무난간 아래 놓여 있는 아이들 킥보드와 자전거입니다.

 

6.15

‘머라고(뭐라고)?’ 이음이가 자주 쓰는,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이 말투는 아무래도 엄마에게서 온 듯합니다.
이음이가 쓰는 말이 하도 귀여워 그대로 적어 두기도 합니다.
‘호도독호도독’은 빨리 달리는 시늉을 할 때 쓰는 말이고, 원숭이를 흉내낼 땐 ‘우끼우끼’ 라고 합니다.
더러 내가 못 알아들으면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음이가 책에서 본 ‘흰머리독수리’라는 말을 내가 얼른 알아듣지 못하자 ‘흰 색깔 할 때 흰이라고 해 봐.’ 라며 보기를 들어 쉽게 알려줍니다.
이음이가 혼자 만들어 쓰는 말도 있습니다. 홀쭉이라는 말을 모르는 이음이는, 뚱뚱이라는 말에 맞서는 낱말로 ‘얇은이’이라는 말을 씁니다.
‘얇은이’라고 할 땐, 엄지와 검지를 거의 붙을 듯이 사이를 떼어 요렇게 라며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사진은, 부엌 앞뜰에 핀 산수국입니다. 눈부시게 피었다가 가슴 서늘히 지는 꽃도 있지만, 산수국처럼 소리없이 조용히 피었다가 지는 꽃도 있습니다.

 

6.18

날이 어둑어둑하면 재넘이(산바람)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굴뚝 연기 자욱이 깔릴 무렵이면 슬금슬금 도깨비들이 나타납니다.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던 막내 ‘우리’ 도깨비가 돌계단을 구르듯 내려오고, 이어 꽥꽥 소리 지르며 이음이와 울림이 도깨비가 튀어나옵니다.
한바탕 귀여운 도깨비들이 뛰놀고 간 마당에는 부지깽이나 몽당비 대신 킥보드와 자전거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6.24

‘동자꽃이 피었네.’ ‘하얀 동자꽃도 피기 시작했어요.’ 새벽이면 아내와 내가 주고받는 인사말입니다.
초롱산을 넘어온 해는, 아이들이 사는 지붕에서 우리 집 뜰로 눈부신 햇살을 쏟아붓습니다.
마당 가득 햇살이 번질 무렵 아이들이 하나둘 집에서 튀어나옵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크게 소리쳐 부르고, 막내 우리도 ‘어어’라며 반갑게 소리를 지릅니다.
막내 우리는 물장난과 손수레(밀차)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손수레에 다가가 한 발을 올리면, 태워 달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태우고 산길 한 바퀴를 돕니다. 비탈을 내려가다가 손으로 뽕나무를 가리키면 오디를 따 우리 입에 넣어줍니다.
울림이는 거의 저녁에 머리를 감기 때문에 가지런히 빗어도 자고 일어나면 오른쪽 머리칼이 치뻗어 있습니다.
‘너희 반 여학생 다 죽었다. 멋진 머리칼에 반해.’ 내가 놀리면, 울림이는 아니야 아니야라고 하면서 해죽이 웃습니다.
햇살 가득한 아이들은 어디에도 그늘이 없습니다.

 

6.25

‘튀겨 먹든지 놓아주든지 할아버지 좋은 대로 해.’
풀밭에서 잡은 홍그래비(방아깨비) 새끼를 내 손에 쥐어 주며, 이음이가 하는 말입니다. 말투나 표정이 아빠를 닮았습니다.
이음이는 신발 속에 흙이나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럴 땐 내 무릎에 앉히고 신발을 털어 줍니다.
형 울림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말하지만, ‘내 사랑을 받아주세요.’ 라며 날마다 엄마한테 풀꽃을 꺾어 바치는 이음이도 참 사랑스럽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입니다.
얼마 전엔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바보’라고 하길래,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할아버지 마음속에 들어가 보았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는 심술이 네 개 있고, 할머니는 착한 것이 일곱 개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들려준 놀부의 오장칠부 이야기에서 따온 듯합니다.)
걸핏하면 ‘할아버지 싫어.’ ‘나, 집에 갈거야.’ 라며 나를 놀리고 겁을 주지만, 이음이는 내 무릎에 앉는 걸 좋아하고, 집에 갈 때는 꼭 내 등에 업히거나, 가슴에 안겨 갑니다.

 

6.28

‘할머니,할머니’ 팔짝팔짝 뛰며 이음이가 소리지릅니다. 아내는 가슴 설레면서도 마음 한켠으로 살짝 두려움 같은 것이 스쳐간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루 동안 보지 못했는데 저리 온몸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산길 두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제 마음이 조금씩 이어지나 봅니다.
으름나무 잎을 따서 건네주니, 나뭇잎으로 내 얼굴을 간지럽히며 장난을 칩니다. 숲 그늘 아래를 지날 때, 내가 ‘아이, 시원하다.’고 하면 저도 따라 ‘음음’이라고 소리냅니다.
막내 우리는 비탈진 언덕에서 킥보드나 자전거를 굴려 놓고 뒤따라가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킥보드는 혼자 굴러가다 풀섶에 쓰러지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구르듯이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 뛰어가는 우리를 뒤쫓아가거나 먼저 달려가 앞에 섭니다. 우리는 달려와 서있는 내 다리를 꽉 붙잡습니다.
나는 다시 앞으로 달려가고, 멀리서 울림이가 달려오고 이음이가 달려오고 뒤따라 우리가 달려오고, 나는 몸을 낮춰 아이들을 안은 채 뒤로 넘어집니다. 세상을 다 안은 듯합니다.

 

7.1

막내 우리가 제 키를 훌쩍 뛰어넘는 긴 고추막대를 어깨에 멘 채 질질 끌고 다닙니다. 곁을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다니니까, 다치지 않으려면 옆 사람이 비껴나야 합니다.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우리를 보고, 아내가 ‘아무것도 모르니 힘이 세구나.’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내가 이음이에게 ‘너, 저번에 할아버지 보고 바보라고 했지. 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힘이 세다고 하잖아.’ 라고 하니, 이음이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거듭 우깁니다.
그러다가 내 품에 안겨 있던 이음이가, 뜬금없이 ‘할아버지, 시장이 뭐야?’ 라고 묻습니다. 마음속으로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 또 배가 고프다 라는 뜻도 있고’ 하면서 말을 꺼내려는데, 또다시 ‘사람이 뭐야?’ 라고 묻습니다.
‘사람, 뭐라고 해야지?’ 하는 순간, ‘꽃이 뭐야?’ 라고 묻습니다.
그제서야 눈치 챘습니다. 이음이는 ‘시장, 사람, 꽃’ 들이 무엇인지 모르니, 제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 하면서 얼굴을 마구 부비니까, 나를 놀린 게 재미있는 듯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 뒷이야기
오늘 아침 이음이를 만났습니다. 뒤란에서 땄다는 블루베리 한 알을 보여 주길래, ‘그게 뭐니?’ 라고 물어 보니, ‘그것도 몰라. 블루베리지.’ 라고 합니다.
나 :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블루베리를 어떻게 알아?
이음 : 자고 나니까 머릿속에 생겨났어.

사진은, 한 해 전 이음이 모습입니다.

7.6

텔레비전 속 만화영화에 빠진 이음이에게 슬그머니 장난을 치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음이가 너무 좋아.’ 하며, 앉아 있는 이음이를 부둥켜안고는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넘어지면서도 이음이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치 나를 타이르듯이 ‘나를 좋아하면 잘해 줘야지. 만화영화 볼 땐...’ 이라며, 만화영화 볼 땐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맥없이 이음이를 껴안은 손을 놓습니다. 이제는 이음이에게도 말이 밀립니다.

사진은, 이음이 할아버지가 보내주셨습니다.

 

7.7

‘할아버지’ ‘할머니’ 울림이가 부릅니다. 날은 어둑해지고 터덜터덜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와 아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목청껏 소리칩니다.
‘어’ 하며 보이지 않는 울림이에게 소리질러 대답합니다. ‘어’는 막내 우리가 나를 부를 때 내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내는 가슴이 뛴다고 합니다.
‘울림이가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가봐.’ 끌고 가던 손수레를 세워두고 아내와 나는 작은 언덕을 오릅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울림이는 내 손을 끌고가 나무 난간에 세웁니다. ‘아, 노을을 보여 주고 싶었나 보구나!’
‘조금 전엔 더 예뻤어요.’ 곁에 있는 엄마 말을 들으니, 울림이와 이음이, 우리를 안은 엄마가 나란히 서서 노을을 보고 있었나 봅니다. 곧 큰바람이 오려는듯 서쪽 하늘이 참 곱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강아지풀로 콧수염 만드는 걸 가르쳐 주고, 나는 내게 달려와 무릎을 꼭 붙잡은 우리를 두 팔로 들어올립니다.
내 품에 안긴 우리는 작은 두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는 내 두 손에 입맞춤을 하며 밤새 헤어지는 인사를 합니다.

 

7.22

비닐하우스에서 마늘을 다듬어 엮고 있는데 이음이가 찾아왔습니다. 내 곁에 앉으려는 이음이를 보고 아내가 ‘먼지가 나서 어떡하니.’ 라고 하니, ‘괜찮은데 어떡하니.’ 라며 장난스레 맞받아칩니다.
이윽고 울림이가 뒤따라 들어와선 손에 쥐고 온 숫자가 적힌 딱지로 카드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할머니는 일해야 하니까 우리 셋이 하자고 하니 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늘 그렇듯 울림이는 이음이와, 나는 아내와 편을 먹고 놀이를 합니다.
한 장씩 내어 엎어 놓고 숫자가 큰 사람이 나머지를 가져가는 놀이입니다. 내가 17을 내자, 울림이가 얼른 뒤집어 보곤 이음이한테 19를 내라고 합니다.
내가 ‘그건 반칙이야. 가르쳐 주는 게 어딨어.’ 라고 하니, 옆에서 이음이가 ‘어차피 숫자를 모르는데.’ 라며 남의 이야기하듯 합니다. 이음이 저는 숫자를 모르니까 형이 가르쳐 줘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밥 먹으라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울림이는 집으로 가고, ‘싫어.’ 하며 이음이는 나보고 다시 카드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이음이 제가 나누어 준다며 카드를 섞으며 ‘나는 할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는 내가 되고...’ 혼자말을 합니다. 이음이 말을 제대로 받아 적지는 못했지만, 이음이는 할아버지 마음이 되어 내가 이기도록 숫자가 큰 카드를 골라 나눠준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아직 숫자를 읽지 못하지만, 날마다 놀이에서 지는 나를 가엾이 여겨 이리저리 카드를 고르는 이음이 모습은 그대로 한 떨기 사랑스러움입니다.
비닐하우스 아래 개망초 꽃너울이 흘러 넘쳐 내 마음 둑이 와르르 무너지는 저녁입니다.

 

7.25

‘할머니’ 하고 이음이가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우야’ 하며 아내는 이음이는 꼭 껴안아 줍니다.
‘오랜만에 칼싸움 한 번 해 보자.’ 라는 이음이 말에 작은 대나무 막대기로 서로 찌르고 막고 놀고 있는데, 울림이가 뒤따라와 카드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어차피 숫자도 모르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이음이 말을 흉내냅니다. 이 말을 하면서 속으로 이음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움찔했는데, 이음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각에 잠겼다가 ‘어제부터 계속해서 생각했는데’ 라고 합니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해서 숫자 읽는 걸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귀여운 장난말이지만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카드놀이를 시작합니다.
그나저나 카드놀이는 우리가 질 게 불보듯 뻔합니다. 울림이는 미리 카드를 골라 19 같은 큰 숫자는 제가 가지고, 우리에게는 10보다 낮은 숫자를 나눠 주는 까닭입니다.
울림이는 남에게 지는 걸 무척 싫어 합니다.

엊그제도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하다 울림이가 이음이 바지에다 호스로 물을 뿌렸습니다. 두어 차례 물을 뿌리자 이음이도 참지 못하고 발로 울림이를 찼습니다. 이음이 발은 비껴나갔지만 울림이가 일어나 다시 이음이를 차려고 해서, 나는 얼른 이음이를 안고 피하며 공을 차듯 울림이 엉덩이를 차는 시늉을 했습니다.
울림이는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나에게 뿌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건 그러려니 하지만, 이음이도 형을 따라 작은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나를 쫓아오는 것입니다.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무척 억울합니다.
이리저리 물을 피해 주강사님 집까지 달아났습니다. 마침 그곳에 바깥수도가 있어 호스를 찾아 울림이에게 마구 물을 뿌렸습니다. 형이 물을 맞으니까 이음이는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대어들고, 울림이는 우두커니 선 채 속이 상해 어쩔줄 몰라 합니다.
쫓아오는 울림이를 피해, 나는 뒤따라온 우리를 안고 숨가쁘게 뒷길로 달아났습니다.
집에 와서도 울림이는 수돗가 호스로 나에게 물을 뿌립니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내게는 닿지 않고 성이 풀리지 않은 물줄기는 오히려 울림이를 적시고, 우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물을 맞으며 마냥 좋아합니다.
보다못한 아내가 나를 붙잡아 울림이 앞에 세우고, 울림이는 실컷 내게 앙갚음을 합니다.
그제야 속이 풀렸는지 집으로 뛰어올라가 울림이는 엄마에게 자랑하듯 떠벌립니다. 아마 내게 이겼다고 말하겠지요.

 

7.28

‘애기 낳는 거 그 거 해보자.’ 라며 이음이는 내 런닝구를 들추고 뱃속으로 들어가 한참 꼬물꼬물거리더니 밖으로 나옵니다. ‘야, 아기가 태어났구나!’ 하는 내말에 이음이는 지팡이 짚는 시늉을 하며, 태어나자마자 할머니가 됐다고 장난을 칩니다. 갑자기 오래전에 하던 애기놀이가 생각났나 봅니다.
지난 겨울에는 응애응애 기어다니며 애기놀이를 자주 했는데, 요즘 이음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줌을 누다가도 내가 가까이 가면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
오늘도 이음이와 울림이가 만화영화를 보고있는데, 내가 지나가는 말로 ‘너희들 만화 본다고 오줌 마려운 거 참고 있지.’ 하니까, 이음이는 정말 그렇다며 손으로 고추를 쥐고 있습니다.
잠깐 텔레비전 끄고 오줌 누고 오라니까 울림이가 안 된다고 하고, 물병을 가져다 준다고 하니까 이음이는 부끄러워서 안 된다고 합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끝내는 방구석에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린 채 이음이는 세숫대야에 오줌을 누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준 ‘나의라임오렌지나무’란 소설이 생각 납니다. 서부영화를 보다가 오줌이 마려워 극장 벽에다 오줌을 눈, 그마저도 제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오줌을 눠 다시는 극장에 들어오지 말게 했던 이야기.

 

8.24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거나 어디에 갔다오면, 보이지 않는데도 마당에 서서 ‘할머니, 할아버지’ 크게 소리쳐 부릅니다.
언제인가부터 울림이는 이른 아침 잠옷을 입은 채 밖으로 나와 윗밭으로 올라옵니다. 헝클어진 머리칼, 입가엔 침 흘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혼자 일어나 오줌을 누고, ‘우리’가 자는 방에도 가보았다고 합니다. 꿈 꾼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가끔은 참깨 밭 그늘 아래에서 내 무릎에 앉혀 울림이가 가져온 그림책을 읽어 줄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이음이도 함께 데리고 나옵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혼자 눈 떠 마주하는 세상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일까요.

 

8.25

‘우리 반에 은진이라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꾀를 부렸어.’ 마당에서 풀을 매고 있는데 이음이가 말을 건넵니다. ‘무슨 꾀를 부렸을까?’ 궁금해서 물으니, 은진이가 마이쭈를 준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집에 있다고 했답니다. 이음이는 그 일이 참 서운했나 봅니다.
어제는, 미끄럼틀에서 이음이를 떠민 우상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안되겠다. 할아버지하고 사탕 한 보따리를 사서 우상이를 찾아 가야겠다’고 하니, 이음이가 ‘단 거 많이 먹어 이빨 다 빠지게.’ 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집에서 쉬는 날엔 아이들은 흙이나 벌레, 풀이나 나무하고 놉니다.
오늘 아침엔, 날개가 이슬에 젖어 죽은 듯 보이는 배치레잠자리와 톡톡 튀는 송장메뚜기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울림이는 송장메뚜기를 손에 쥐고 메뚜기가 얼굴에 가면을 썼다고 하고, 이음이는 이제 놓아 주라고 합니다.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오무리고 있는 이음이 손엔 공벌레 대여섯 마리가, 울림이가 든 바랭이풀 이파리엔 민달팽이가 매달려 있습니다.
부드러운 모래와 새 깃털, 상수리 열매 껍질과 말라죽은 지렁이를 가지고 놀고, 달개비 풀과 부들 이름도 아는 아이들, 나는 풀섶에 떨어진 귀뚜라미 뒷다리를 보아도 얼른 아이들부터 찾습니다.

 

8.27

‘너희 학교에선 장난이란 과목도 배우니?’ 내가 묻자, ‘아니.’ 하고 배시시 웃는 울림이 얼굴에는 다글다글 장난기가 붙어 있습니다.
아내가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이음이한테 몰래 수도꼭지를 잠그게 하고는 시치미를 떼고, 내 머리에 모래를 뿌리고 달아나는가 하면, 그제는 아이들이 오르내리는 돌계단에 풀을 매는 내 쪽으로 오줌을 누었습니다.
‘밤에 살그머니 장난요정이 귓속으로 들어갔나 보다.’ 라고 해도 귓등으로 듣는 듯합니다. 하지 말라는 건 끝내 하고야 맙니다.
이제 울림이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제 눈으로 보고 제 손으로 만져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8.28

이음이가 싫어하는 냄새 가운데 하나는 치과의사 선생님이 끼는 장갑 냄새입니다. 이음이가 생각하는 엄마의 가장 예쁜 모습은, 이음이가 꺾어 온 꽃을 든 빨간 치마를 입은 모습입니다.
한 해 동안 아이들과 뒹굴다 보니, 아이들 속살 보드라운 마음결을 어느 만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울림이가 화가 났을 땐 이치에 맞게 찬찬히 이야기하면 풀리고, 이음이가 토라졌을 땐 먼저 다친 마음부터 안아줘야 합니다.
울림이는 총명하고, 이음이는 눈물 많고 마음이 따스한 아이입니다.
아이들 보여준다고 아내는 죽은 풀벌레를 벽돌 위에 얹어 놓고, 나는 아침부터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아이들이 궁금히 여기는 ‘거미’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8.31

정작 서울에는 왜 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울림이를 네 차례나 다그쳐 답을 알아냈습니다.
어제도 울림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 가서 자고 왔는데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옆방에서 잤고, 외할버지가 숙소 가는 길을 일곱 번이나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엔 그림을 그려가며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와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탄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스티커를 자랑했습니다.
그제는 아빠 졸업식(학위수여식)이 있어 서울에 갔는데, 울림이는 그 일보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옆방에서 자고, 외할아버지가 길을 헤맨 것이 마음에 깊이 남았나 봅니다.
하루 못 봤는데 우리가 쑥 자란 것 같습니다. 걸음걸이마저 여유가 느껴집니다.

 

 

:

1.

요 근래 글이 쓰고 싶어 근질근질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상황이, 손이, 몸이, 머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쓰지 못하고 있다.

사실 최근에 많은 일들과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영켜 글로 잘 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턱턱 막혔던 것도 같다.

잘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왜 매번 이렇게 무언갈 하려 하면 이렇게나 잔뜩 힘이 들어가는지.

2020년 목표 1번에는 '뭐라도 해보기(힘빼고)'를 넣어야 겠다.

 

아무튼, 이렇게 글쓰기 전에 마음이 복잡 할때 아랫집 할아버지의 일기를 옮긴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할아버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 지고 위로 받고 또 용기가 생긴다.

 

울림이는 이제 1학년이 다 끝나 가는데 옮기지 못한 할아버지의 글 속 울림이는 아직 입학식이다.

이제는 적어도 계절 별로 한번씩은 옮겨 놓자는 생각에 계절도 적어 두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옮기고 싶은데...

 

이곳으로 이사온 지 벌써 일년이 넘어간다. 

겨우 기어 다니던 우리는 이제 뛰어 다니고, 

아직 아기 같았던 이음이의 말투도 점점 또렷해 지고,

아직 유치원생이던 울림이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전히 좋은 이웃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2.

 

2019.3.2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이음이가 대청마루를 내달리며 혼자 소리를 지릅니다. 그럴 땐 온몸으로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우리, 멧돼지가 파 놓은 구덩이 보러 갈까.’ 아이들을 데리고 산길을 오릅니다. 오솔길 왼쪽 제법 가파른 비탈을 내려갑니다. 저만치 다랑논에 서너 군데 커다란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습니다.
‘할아버지, 물이 고여 있어.’ ‘응, 멧돼지들이 내려와 웅덩이를 파고 목욕을 한 곳이야.’ 신기한 듯 한참이나 내려다 봅니다.
‘우리, 나무하고 갈까.’ 지난해 마을 어른이 표고버섯을 키우려고 베어가고 남은 참나무 가지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습니다.
울림이는 기계톱으로 나무를 베는 것을 늘 보고 싶어 합니다. 강화도 사시는 외할아버지가 쓰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음이 손을 잡고 산비탈을 올라 오솔길을 내려가는데, 어느새 끙끙대며 울림이가 기계톱을 들고 옵니다. 울림이는 기계톱이 어디 있는지 눈여겨 보아 두었나 봅니다.
‘너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 걸 들고 와’ 놀라서 묻자 ‘나는 도깨비잖아.’ 울림이가 배시시 웃습니다.
‘너희들 위험하니 저만치 떨어져 있어’ 아이들을 멀찌감치 푹신한 가랑잎 위에 앉혀 놓고, 나무를 벱니다. 나무를 서너 도막이나 잘랐을까 하는데, 울림이가 뭐라고 소리칩니다.
얼른 기계톱을 멈추고 쳐다보니, 이음이가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너무 소리가 커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음이는 아직 어리고 소리에 퍽 예민합니다. 이음이를 데려다 저 위쪽에 앉혀 놓고, 몇 도막 더 자르고 그만두었습니다.
울림이는 아내가 꽃밭 만드는 데 가고, 나는 손수레를 끌고 와서 땔감을 싣고 그 위에 이음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

이음이는 형을 잘 따르고 무척 좋아합니다. 더구나 형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나고 결혼하고 싶다고 합니다. 나도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 우리 울림이와 똑같은 형을 갖고 싶은지 물어봅니다.
울림이 이음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있습니다.
계순옥 황금성, 김정남 노광훈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도 알고 있고, 해뜨리 평원이 삼촌, 지원이 여원이 이모 이름도 압니다. 마을에도 많은 삼촌과 이모들이 있습니다.
지난 번 잠깐 들르신 장선생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아이들 키우기에는 알맞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도란도란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연둣빛 번지는 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3

부옇게 미세먼지가 끼는 날이면, 아이들은 집 안에서 놀거나 입마개를 하고 뛰어서 우리 집으로 옵니다.
냉이를 캐던 그 날도 미세먼지가 끼었습니다. 한참 냉이를 캐다가 뒤돌아보니 어느 새 이음이가 입마개를 벗어 던졌습니다.
‘야, 이음이 너 미세먼지’ 라고 소리 치니까, 이음이는 언덕에 웅크리고 누운 채 주먹을 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숨을 꼭 참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숨을 못 쉬어 죽겠다고 하니, 참았던 숨을 내쉬며 빙긋이 웃는 이음이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울림이는 미세먼지가 코로 들어와 폐에 쌓인다고 가르쳐 주며, 호흡기관과 소화기관을 안다고 합니다. 그 날 그 날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는 것도 울림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제법 높은 산기슭이라, 아랫동네에 비가 오면 여긴 눈이 내리고,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목이 컬컬할 만큼 미세먼지가 낄 때가 있습니다.
어느덧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 삶이 미세먼지를 부르고, 아이들이 마음껏 숨쉬고 놀 수 있는 곳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3.4

늦잠을 깨운 아이처럼 부스스 봄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투정 부리듯 봄도 이 땅엔 오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산허리에 먼지 연기가 가득합니다.
울림이 가는 걸 보려고, 아내는 일찍 바깥에 일하러 나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 어디 가는지 알아.’ 저만치 문 앞에서 울림이가 묻습니다. ‘입학식.’ ‘어떻게 알았어.’ ‘할아버지가 생각했지.’
오늘은 울림이 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 엄마 아빠 우리 이음이와 함께 학교에 갑니다.
저 아이들이 있어 그나마 봄은 피어나고, 세상은 눈부십니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우리 집에 왔습니다. 울림이 손에는, 선물 받은 꽃그릇과 구슬 주머니가 들려있습니다.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도 입학식에 오셨다고 합니다.
방에서 구슬치기 놀이를 하다가 문득 엊그제 ‘할아버지, 나 귀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던 울림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귀를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묻자, 두 귀 모두라며 귀를 움직여 보입니다.
나는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람들도 옛날에는 개나 고양이처럼 귀를 움직였다고 해. 사냥할 때 집중하려고 그랬던 거지. 더는 사냥을 하지 않게 되자 ‘이개근’이란 근육은 퇴화되고, 지금은 몇몇 사람만 귀를 움직일 수 있단다.’
곁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이음이가, 할아버지도 귀를 움직일 수 있냐고 묻습니다. 나는 볼을 씰룩거리고 눈을 찡그려 보기도 하면서 할아버지는 안 된다며, 이음이는 움직일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음이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진화해서 그런 거야.’ 이음이는 진화해서 귀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털끝만큼도 장난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음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울림이, 너는 아직 진화가 덜 된 거야.’ 울림이는 펄펄 뛰듯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얼른 장난말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이음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집에 갔다 온다고 방을 나갑니다.

 

3.5

학교 첫날 울림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물어봐도 잘 말해 주지 않습니다. 겨우 알아낸 건, 담임선생님이 여선생님이고 1반 선생님보다는 나이가 적고 뒷머리를 땋았다는 겁니다.
산들이는 1반이고, 하온이는 같은 반인 2반이라는 걸 오자마자 먼저 떠들썩하게 얘기하는 걸 보면 울림이에겐 동무 사이가 더 마음이 쓰이나 봅니다.
요즘도 학교에서 아이들도 줄을 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청소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때는 왼쪽 가슴에, 접은 손수건 위에 이름표를 달고 ‘앞으로 나란히’ 줄을 맞춰 섰습니다.
청소는, 비로 쓸고나면 석필이나 초를 가지고 교실과 골마루 나무 바닥을 반들반들하게 문질렀습니다.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너무 미끄러워 아이들이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교사가 되어서도 평생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도 소중한 공부라고 생각하여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 사이에 청소 시간을 따로 만들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젊은 선생님 말고는 대부분 선생님들은 하던 대로 아이들에게만 청소를 시키고 딴 일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변기를 사 줄까’ 하니 빙긋이 웃던 울림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울림이는 저희 집 말고 다른 화장실은 잘 가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놀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면 벌써 저희 집 화장실에 가 있습니다. 요즘은 많이 진화했습니다. 지난 번엔 언덕에서도 오즘을 누었으니까요.
이음이는 변기를 선물 한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또 신이 났습니다. ‘공부하다가 똥이나 오줌이 마려우면, 교실 변기에 앉아 똥 오줌을 누며 공부하고 ...’ 라면서 그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서 무척 재미있나 봅니다.

 

3.8

어제는 아이들과 비석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아내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네모난 납작한 돌을 골라 왔습니다. 비석치기 하는 돌을 아내는 ‘목자’라고 부릅니다. 오랜만에 하는 놀이라 아내와 나는 아이들보다 더 들떠 있습니다.
마당에 두 줄을 긋고, 울림이와 아내, 이음이와 내가 편을 먹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하는가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울림이와 이음이가 뒤돌아서 등을 붙이고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가위 바위 보’ 이음이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 ‘이음아 손을 올려 가위바위보를 내야지.’ ‘자, 다시 가위 바위 보’ 이음이는 까치발을 들고 어깨만 올립니다.
아, 이음이는 뒤돌아서 하는 가위바위보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입니다. 손짓을 해서 가르쳐 주니, 그제야 보를 내어 이겼습니다.
처음엔 발등에 돌을 얹고, 다음엔 발목 사이에, 그 다음엔 무릎과 가랑이 사이에 돌을 끼우고 그러다가 차츰 올라가 배꼽 위, 어깨 위, 등 위, 머리 위로 돌을 얹어 나르며 비석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이음이는 거의 한 번도 저 쪽 금에 닿지 못하고 가는 길에 돌을 떨어뜨렸지만,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우습기도 하고 참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이음이에겐 모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울림이가 아닌 아내와 편을 먹은 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놀이를 마무리한 일이 그렇습니다. 놀이 규칙을 잘 모르는 이음이는, 그 동안 놀이를 하다가 지면 억지를 부리거나 울음을 터뜨렸거든요.
울림이는 초등학교에 이음이는 어린이집 ‘나무반’에, 그만큼 떨어진 사이에서, 이음이는 혼자 서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3.9

오늘도 비석치기를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까마득히 잊고 밭에 오자마자 제법 비탈진 언덕을 오르내립니다. 물을 주려고 밭으로 이어놓은 호스 줄을 잡고 마치 산을 타듯 오릅니다. 올라오다 주르륵 미끄러져 울음을 터뜨리다 금방 그치고는, 이음이는 다시 야무지게 가파른 산을 오릅니다. 온통 흙을 뒤집어 쓴 듯합니다. 아내는, 인절미에 흙고물을 묻혀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흙을 잔뜩 머금은 마른 풀뿌리를 언덕 아래로 집어던지고 놉니다. 에고 너희들 때문에 할아버지 ‘죽겠다’(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제목). 너희들이 학교 간 뒤 몰래 집을 짊어지고 이사 가야겠다고 하니,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좀처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울림이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도 먼저 학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은 손을 뺀 나머지 몸으로 제 이름을 표현하는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엉덩이로 이름 쓰는 것도 가르치느냐고 짐짓 놀려댔지만, 나중에 ‘할아버지, 나 우리 반에서 두 명 빼고 친구들 이름을 다 알아.’ 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저렇게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들 이름을 익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제 그제 이틀은 계단 오르내리는 걸 했다고 합니다. 교실이 2층에 있으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오르내리는 공부를 했나 봅니다.
할아버지 학교에서는 계단을 뛰어내리고, 난간에 올라 미끄럼도 타고, 교실 창에 줄을 매어 오르내리는 것도 가르친다고 하니 곁에서 아내가,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그런 위험한 걸 다 가르친다고 핀잔을 합니다.
선생님도 예쁘시고, 학교도 재미있다고 하니 참 다행입니다.

 

3.10

단이가 짖더니 산속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나고 이윽고 꽹과리 소리가 납니다. 지리산에 살 적에도 가끔, 대숲 골짜기 큰 나무 아래 바위 틈에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곤 했는데, 어쩌면 ‘홍동의 강원도’라 부르는 여기도 외딸고 깊은 곳이라 사람들이 찾아와 굿을 하나 봅니다. 초롱산 어디쯤인가 등잔처럼 생긴 명당이 있다고 했는데, 맑은 기운이 감돌아 그런가 보다 생각해 보지만,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귀에 거슬립니다. 내가 받은 서양 교육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지도 않는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할아버지, 저 게 무슨 소리야.’ 하고 울림이가 물으면, 나는 짐짓 못 들은 체하며 ‘어디에 무슨 소리가 나는데’ 라고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저기 산 속 꽹과리 소리 말이야.’ ‘아, 저 소리.’ 한참 뜸을 들이곤 ‘으음, 무당이란 사람들이 굿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나쁜 일이 생기지 말아 달라고 산신령님에게 비는 거야,’
꽹과리는 왜 치냐고 물으면, 주무시는 산신령님을 깨우려는 거라고 말할 겁니다.
울림이는 틀림없이 내 말이 사실일까 아닐까 갸우뚱거리며 머릿속으로 셈을 할 테고, 곁에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이음이는, 재미난 상상을 하며 고 귀여운 입으로 산신령님 구름 타고 어쩌고저쩌고 막 지꺼릴 겁니다.’
그 사이 짧은 굿은 끝났습니다.

 

3.11

어제는 아이들과 주사위 놀이를 했습니다. 주사위 세 알을 한꺼번에 던져, 나온 숫자들을 더해 그 수만큼 말이 앞으로 나아가는 놀이입니다.
주사위 놀이판은 울림이가 그려 왔습니다. 1에서 60까지. 그런데 5와 6이 거꾸로 적혀 있어, 그 곁에 나머지 숫자들도 넘어져 있은 듯 보입니다.
마름모꼴로 둘러싸인 숫자에 가면 한 번 더 주사위를 놀 수 있고, 동그라미로 감싼 숫자에 다달으면 달리던 말을 서로 바꿔 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숫자에 가면 사다리를 타고 앞으로 몇 칸 더 갈 수 있고, 어떤 숫자에 가면 미끄럼을 타고 도로 뒤로 돌아와야 합니다.
울림이가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우리 넷이 주사위를 놀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말이 나고, 아내가 그 다음, 이음이가 그그 다음, 울림이가 골찌로 났습니다.
울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사위 판을 거두며 그만하자고 합니다. 우린 또 그만두어야 합니다.
나는 그제야 울림이에게 들려주려고 생각해 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야. 마을에 사는 한 젊은이가 학교를 다니다가 나라에 전쟁이 나 싸움터에 끌려갔어. 군인들이 수류탄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 그 젊은이가 차례가 됐지. 수류탄 알지. 석류처럼 생긴, 던지면 쾅 터지는 것. 고리를 빼고 던지려는 순간 저 앞에 어미 토끼가 새끼 토끼 여러 마리를 데리고 지나가는 거야. 젊은이는 차마 그 곳으로 던지지 못해 앞에 떨어뜨렸고 젊은이는 그만 흩어지는 쇳조각에 맞아 죽었어.’
나는 이야기를 들려준 뒤, 참 용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울림이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이음이가 갑자기 ‘할아버지, 이렇게 던지면 되지.’ 라며 주먹 쥔 오른손을 몸의 왼쪽으로 방향으로 바꾸어 던지는 시늉을 해 보입니다.
나는, 이미 수류탄은 손끝을 떠났고 그 건 어렵다고 이음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참 용기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음이는 총명합니다. ‘총명하다’고 할 때 ‘총(聰)’은 ‘귀가 밝다’ 라는 뜻입니다.

 

3.17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아이들을 데리러 왔습니다. 벗어 놓은 겉옷을 입히는 데도 한나절이 걸립니다. 이리 달아나고 저리 숨고, 입혀 놓으면 도로 벗고, 아이들은 쉬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할아버지 어릴 땐 비 사이로 막 뛰어다녔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울림이는 바람처럼 언덕을 올라 ‘이렇게 말이지’ 하며 현관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음이는 손바닥을 펴서는 새의 날개처럼 겨드랑이 붙인 채, 스케이트를 타듯 몸을 오른쪽을 비스듬히 옮겼다 왼쪽을 눕혔다 가끔 고개를 들고 비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저러다간 한밤중에나 집에 닿을 듯합니다.
어제는 아빠가 앞마당에 텐트를 쳐주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서 일 마치고 여기 들어와.’ 이음이 울림이가 번갈아 고개를 내밀며 소리칩니다.
아내는 집들이 간다며 돌아가 과자 두 봉지를 챙겨 왔습니다. 텐드 안은 아늑하며, 마당 앞인데도 먼 들판으로 나온 듯 괜히 마음이 들뜹니다.
텐트 안 빨랫줄에 걸어 놓은 아이들 그림책을 보여줍니다. 울림이가 칠해 놓은 빛깔은 어찌 저렇게 고울까요. 이음이가 그어 놓은 금도 이제 이야기로 살아나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듯합니다.

-

텐트 안에서 울림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방엔 한 사람이 권투 연습을 하다가 개미를 쳐다보고 있고 왼쪽 방에서는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치는 모습도 눈에 보이듯 그렸습니다. 콧수염도 있고 뒤로는 방귀를 뿡뿡 뀌고 있습니다.
소리치는 사람의 볼에 동그라니 붉게 칠하고는, 소리치다가 오히려 저쪽 사람에게 반해 볼이 붉어졌다고 합니다.
나는 재미있는 듯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울림이가 교실을 날아다녀 여학생들이 소리치고, 소리치던 여학생들이 도리어 울림이한테 반해서 볼이 발가스레 물들고 울림이반 여학생들 얼굴이 다 빨개지고 ... ‘ 울림이는 헤벌쭉 웃습니다.
그런 울림이를 그저께는 몹시 나무랬습니다. 울림이 너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음이가 형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알면서 혼자 떼어놓고 초등학교에 갔다고.
어린이집에 가면 이음이 손을 잡고 교실에도 데려다 주고 지켜 주었는데, 이음이는 이제 어린이집에도 가기 싫다고 하며 엄마한테 일찍 데리러 오라 하고.
이음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못 들은 체 쉬지 않고 울림이를 혼냅니다. 울림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덟 살이라 ... ‘ 여덟 살이라 저도 할 수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라는 뜻인데, 나는 ‘그래서 우리하고만 초등학교에 같이 입학하고 싶다고 하고 ... ‘
그예 이음이가 크게 소리칩니다. ‘나는 어린이집이 너무 좋아.’
울림이가 가르쳐준, 친구들과 선생님 이름입니다.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교실에 앉아있는 듯합니다. 이름은 울림이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 잘못 적었을 수 있습니다.
최희영 김용원 박주원 신민서 신지용 정우연 송하율 김소율 윤혜린 남혜민 최민 유하온 황울림 윤경아 선생님

 

3.20

마을을 둘러 살펴보러 왔는지 경찰관 두 분이 우리 집에 들렀습니다. 외진 곳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 더욱 정겹게 느꼈을 겁니다.
마당에 서서 이야기하는 경찰관에게, 들어와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아내가 부릅니다. 울림이와 이음이도 함께 따라 들어와 탁자에 마주앉습니다.
아이들은 경찰관이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곤, 우리 집에 처음 들른 날처럼 아내가 주는 음료와 사과를 먹고마실 뿐 아무 말 없이 조용합니다.
‘아이들이 참 얌전하네요.’ 라고 한 분이 묻자, ‘아니에요, 얘들 날아다녀요’ 라고 하니, 울림이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일어섭니다. 아이들보고 인사하러 나가자고 하니까 제 자리에 앉아 꼼짝도 않습니다.
저만치 차에 타 시동을 걸려고 하자, 이음이가 뛰어나와 ‘야, 아저씨 잘 가.’ 라며 소리칩니다. ‘쟤 살아났네.’ 한 분이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울림이 너 무서워 덜덜 떨고 있었지.’ 나는 울림이를 짓굿게 놀립니다.
울림이 : 아니.
나 : 그럼 뭐했어. 혼자 자고 있었어.
울림이 : 그래, 너무 안 무서워 자고 있었다.
나 : 집이 덜덜 떨며 흔들리고 있던데, 너 잘못한 거 있지.
울림이 : 집이 잘못했나 보지.
나 : 아니, 어떻게 집이 잘못해.
울림이 : (잠깐 생각하다가) 우릴 춥게 했잖아.
하긴 구들방이 있는 바깥채보다 안채가 더 춥습니다. 이 쯤에서 나는 슬그머니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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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모나이트 사건’

겨우내 마늘밭을 덮은 볏짚을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일 그만하고 같이 놀자고 소리칩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꾸물대니까 밭으로 올라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조심조심 비탈을 내려오는데, 울림이가 집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합니다. 암모나이트 같은 것을 찾았다고 합니다. 마치 굉장한 것을 발견한 듯 목소리가 들떠 있습니다.
등이 번들거리고 마치 아주까리 씨앗처럼 생겼는데, 납작한 돌 위를 기어갑니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그려놓은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머뭇거리다가, 이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데 ... ‘ 잠깐 멈췄다가 ‘이건 진드기야.’ 라고 말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던 엄마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손톱 끝을 모아, 이만큼 작은 것이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어 이렇게 통통하게 된 거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크게 실망할 줄 알았는데, 이마저도 신기한 듯 자세히 내려다봅니다.
뜰에 내려서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알갱이 무스까리 꽃을 보여주었는데 어서 방에 가서 놀자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꽃밭 귀퉁이 흰 노루귀와 연보랏빛 노루귀 꽃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아직 달팽이 집이나 꼬물꼬물거리는 것에 더 눈이 갑니다.

 

3.22

울림이와 카드놀이를 합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이건 몇이야 이건 몇이야 하며 숫자를 물었는데, 오늘은 10, 20, ... 180까지 거침없이 읽어내려 갑니다.
깜짝 놀란 목소리로 너 어디서 이걸 배웠어 하니까,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울림이가 저절로 알게 되었다는 말은, 여기저기서 듣고 배운 것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숫자를 제대로 알고 있나 보려고, 423을 종이에 적어 읽어 보라고 하니 까먹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에 울림이가 ‘일십백’이라고 하길래 숫자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라고 하니 더듬더듬 ‘사백이십삼’이라고 읽습니다. 다시 903을 써 주니까 ‘구백삼’이라고 금방 읽어냅니다.
‘이제 울림이 학교 안 가도 되겠다, 숫자도 다 읽고.’ 라고 하니, 학교는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온이란 친구가 보고 싶어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온이가 결석하면 어떡할래, 하온이가 멀리 이사 가면 어떡할래 라고 놀리자, 뜬금없이 오늘 학교에서 연필 잡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야, 학교에서 그런 것도 다 가르쳐 주는구나.’ 하니, 빙긋이 웃으며 연필 잡는 법은 알고 있었다고 능청스레 말합니다.
울림이에게 또 당했습니다. 울림이는, 내가 학교 가지 말라고 말리는 줄 알고, 아직 배울 게 있으니 학교에 가야 한다며 내 말을 살짝 피해 간 겁니다.

시들해진 나는, 곁에 있던 이음이에게도 형한테 다 배우니까 학교 안 가도 되겠다니까, 이음이는 작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합니다.
‘나는 아직 글씨를 잘 몰라 학교에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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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도 자꾸 아이들 집으로 눈이 갑니다. 어제도 늦더니 오늘도 해가 다 지도록 아이들이 집에 오지 않습니다.
며칠 전, 반에서 주원이가 말을 듣지 않아 선생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선생님 곁에 주원이 울림이 하온이 이런 차례로 앉았다고 했는데 ...
오늘은 거름더미를 만들었습니다. 높이 1.5m 길이 4m 쯤 되는 철망을 둥그렇게 엮어, 안쪽 둘레를 볏짚으로 둘러 쌓아가며, 가운데 깻묵과 왕겨를 켜켜이 쌓은 뒤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었습니다.
철망은 지우가 가랑잎을 쌓아 두려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가랑잎이 썩으면 달큼한 냄새가 납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아이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하니, 아내가 내려가 전화를 해 보자고 합니다.
불빛을 비추며 차가 언덕을 올라옵니다. 해맑은 아이들 소리가 납니다. 아, 다행입니다.
울림이가 윗니를 뺐다고 합니다. 어스름 속을 뛰어내려 오더니, 아내에게 들렀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나에게 달려옵니다.
손전등으로 이를 비추어 봅니다. 이를 빼는데 하나도 안 아팠는데, 앞니를 빼다가 잘못 건드렸는지 입술이 아팠다고 합니다. 마알간 잇몸에는 아직 핏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 소리에 갑자기 밖이 환해진 듯합니다. 아이들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까닭이겠지요.

 

3.24

‘할아버지 뭐 해?’ 오이 덩굴이 올라갈 울타리를 손보고 있는데, 이음이가 묻습니다.
‘오이가 손 잡고 올라갈 수 있게 울타리를 고치고 있어.’ ‘나도 올라가고 싶다.’ ‘이음이도 오이가 되면 되지.’
‘내가 어떻게 오이가 돼.’ 내 대답이 싱거웠던지, 울림이를 따라가 징검다리 놀이를 합니다.
잔디씨를 뿌려 키운 잔디밭에 벽돌로 테두리를 쳐 놓았는데, 벽돌을 듬성듬성 빼내어 징검다리를 건너듯 건너다닙니다.
아이들에겐 모든 것이 놀이입니다. 가랑잎을 쌓아 두려고 만든 철망 속에 들어가선 그걸 굴리고 다니기도 하고, 작은 비닐 온상을 떠받치는 쫄대를 난간 위에 걸쳐 놓고는 낚시 놀이를 합니다.
그마저 시시해지면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연장을 가지고 놉니다. 호미 괭이 삽 톱 정전가위 들도 모두 아이들에겐 장난감입니다.
손이 시려 보여 집에 가서 장갑을 가져오라니까, 집에 가면 점심을 먹으라고 하니까 안 간다고 하더니, 엄마가 부르니 할 수 없이 달려갑니다.
울림이가 먼저 달려가고. ‘나 좀 데리고 가지.’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뒤따라 가던 이음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때 무엇인가에 소스라치듯 놀란 엄마가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이음이는 울던 것도 까먹었습니다.
‘또 단이가 뼈다귀를 물어다 놓았을까.’ 뛰어올라가 보니 마당에 어른 손가락만한 지네 한 마리가 엎드려 있습니다. 조심스레 집어 보니 죽어 있습니다.
이럴 땐 엄마도 애기 같습니다. 울림이가 그러는데 우리 집에서 벌레를 가장 안 무서워 하는 사람은 우리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무당벌레를 집어 입에 넣은 것을 엄마가 꺼냈다고 합니다.

 

3.25

마당에 벽돌을 깝니다. 장화를 팔에 끼고 로봇처럼 아이들이 걸어옵니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놀자고 보챕니다. ‘이것 다 깔고 놀자, 너희들이 도와줘.’
길바닥에 까는 벽돌이라 제법 크고 무겁습니다. 이음이는 벽돌을 하나씩 들어나르다가 힘이 부치는지 깔아 놓은 벽돌 위에 앉아 쉽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울림이는 네 장씩 묶어 놓은 벽돌을 한꺼번에 들어나릅니다. 더러 떨어뜨려 벽돌 귀퉁이가 깨지고, 바닥에 놓다가 손가락끝이나 발등을 찧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벽돌 한 쪽부터 조심스레 놓는 것을 배웁니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벌레가 나타났다’ 놀이를 합니다. 내가 ‘벌레가 나타났다, 엄마.’ 하면, 아이들은 ‘아아아아아’ 엄마 흉내를 냅니다.
‘아빠’ 하면 ‘으으으으으’, ‘울림이 이음이’ 하면 가만있다가, ‘우리’ 하면 ‘집어 먹어.’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내가 말하면 울림이는 ‘예’라고 대답합니다. 여전히 다른 말은 친구한테 하듯 반말을 하면서도.
아마 엄마가 학교에서도 집에서 하듯 ‘응’ ‘그래’ 하며 반말을 쓸까 봐 존댓말을 가르치나 봅니다. 나는 참 어색한데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데리러 왔는데도 가지 않자, 아빠가 곧 오니 같이 오라고 엄마는 우리를 업은 채 먼저 갑니다.
언덕 아래 아빠 차가 옵니다. 아이들은 달립니다. 어느새 울림이는 비탈을 올라 사잇길로, 이음이는 언덕길을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세상에 저토록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일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 새 저녁을 다 먹었는지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라며 재미있는지 몇 번이고 되풀이합니다. 아이들이 처음 쓰는 존댓말입니다.

 

4.1

층층나무를 옮겨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이들이 달려와 소리칩니다. 우리를 업고 엄마도 뒤따라 왔습니다.
‘호미’가 쥐를 던지며 놀고 있다고, 처음 보는 광경인 듯 무척 놀라워 하는 표정입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덩달아 나도 아이들처럼 가슴이 뜁니다.
저만치 앞에 두고 달아나면 쫓아가 입으로 물어다 던졌다가 놓고 가끔은 앞발로 움켜쥐면서,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고 있습니다.
그런 생쥐를 울림이는 손으로 만지고도 싶고 키우고도 싶다고 합니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결이 달라보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 곱고 맑은 하늘을 지니고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아, 저 뿌리에서 엄마 가지가 돋아나고 그 끝에 봄날 연둣빛 눈부신 새순으로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4.3

가끔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 제법 어른스러워진 울림이 앞에서 내가 재롱을 떠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산을 내려오다가, 수염 기른 도사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 닮은 나무를 주워 와선, 아이들에게 너스레를 떱니다.
‘할아버지가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서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내가 장군일 걸 알아채곤 장군님 하며 이 칼을 바치는 거야.’ 하며, 나무를 들고 휘익 바람을 가르듯 휘둘러 보입니다.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던 울림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산신령이 잘못 본 거지.’ 하며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합니다.
갑자기 찌그러져 어디론가 숨어들고 싶지만, ‘너희들 한 번 덤벼 봐, 후회하고 말거야.’ 하며 우렁차게 소리를 칩니다. ‘후회하고 말 거야.’는 놀이를 할 때 이음이가 나한테 자주 쓰는 말입니다.
나무는 칼이 되었다가 땅에 놓으면 밧줄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몸을 가누며 밧줄을 타고 다니며 놉니다.
이음이는 넘어져 손가락이 긁혀 쓰라린 듯 엄마가 보고 싶다고 글썽입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상처를 소독한 뒤 약을 듬뿍 발라주고, 울림이 손에 박힌 가시도 빼어줍니다.
엄마가 오자 이음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울림이는 가시가 어떻게 박혔는지 설명하느라 바쁘고, 나는 이음이를 아내는 울림이를 업고 집에 바래다 줍니다.

 

4.4

어디에서 들었나 봅니다. 네 잎 토끼풀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울림이는 ‘할아버지, 네 잎 토끼풀 찾았어.’ 하면서, 세 잎에다가 한 잎을 붙여 보여줍니다.
한 잎을 덧붙여서라도 행운을 바라는가 봅니다. 울림이는 ‘행운’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도 들은 이야기를 해 줍니다. 세 잎 토끼풀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토끼풀은 ‘행운’이라고. 울림이는 ‘행복’을 갖고 싶다고 합니다.
세 잎 토끼풀을 뜯어 가득 손에 쥐고 엄마 아빠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울림이가 바라는 행복 가운데 하나는, 아빠가 어서 박사 논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논문이 통과되어 늘 아빠가 곁에서 함께 놀아주는 게 울림이가 그리는 행복입니다.
혹시 알고 있나요. 사람의 입에서 따뜻한 입김과 차가운 입김이 나온다는 것을. 어제 울림이가 알려주었습니다.
손바닥에다 ‘하’ 하고 불면 따뜻한 입김이, ‘후’ 하고 불면 차가운 입김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울림이와 이음이와 함께 노는 것이 날마다 누리는 조촐한 ‘행복’입니다.

 

4.9

툭닥 툭탁 망치질 소리가 골짜기를 흔듭니다. 엄마가 사 준 자그마한 망치입니다. 유리를 낄 때 창틀에 덧대는 나무에 못을 박던 망치가 떠오릅니다.
울림이는 손끝이 야무집니다. 엊그제는 책상 귀퉁이마다 못을 박는데 하도 모질게 내려쳐 ‘죽는다, 죽어.’ 하니까, ‘못이 죽어.’ 하며 빙긋이 웃습니다. 망치 자루 어디쯤을 잡아야 망치 끝에 힘이 가는지 가늠하며 세상을 배웁니다.
‘오랜만에 절벽이나 타 볼까.’ 지난해 가을만 해도 나뒹굴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제 제법 땅에 몸을 붙이고 재빠르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립니다.
마음도 넉넉해진 듯합니다. 높이 2m 너비 20cm 시멘트 난간 위에 서서는, 나무 막대기를 칼처럼 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할아버지는 배가 없으니까 장군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가리킵니다.
내가 배를 불쑥 내밀며, 너희 내 배에 올라타 놀지 않았느냐며, 여기 배가 있으니 장군님이라고 우깁니다. 그 전 같으면 ‘그 배가 아니고.’ 하며 따졌을 텐데, 오늘은 저도 배를 쑤욱 내밀며 장군 흉내를 냅니다.
아장아장 걸어서 우리도 우리 집으로 오고, 아이들은 밭 가생이 풀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4.10

‘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는데...’ 울림이가 묻습니다.
울림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마치 먼지기둥처럼 솟아난, 쇠뜨기 생식줄기인 홀주머니이삭입니다.
‘아, 쇠뜨기란 풀의 꽃줄기야. 뱀밥이라고도 부르지. 할아버지가 살던 운산 아이들은 소가 잘 뜯어먹어 소국수풀이라고도 했어.’ 라며, 그 곁에 흙을 밀고 나오는 쇠뜨기풀을 보여줍니다.
쇠뜨기풀 마디를 떼었다 다시 제자리에 끼우니, 불럭장난감 같다며 재미있는 듯 몇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모기에 물렸을 때 쇠뜨기풀을 짓이겨 바르면 간지러움이 가라앉는다는 이야기, 코피가 나거나 물속에 들어갈 때는 쑥을 뭉쳐 코와 귀를 막았다는 어릴적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이럴 때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울림이보다 많이 아는 것도 있으니까요. 울림이는, ‘논학교’에 풀꽃선생님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풀꽃할아버지라고 나를 치켜세웁니다.
속으로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하긴 학교에서도 담임이 없을 때는 ‘시와풀꽃반’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풀꽃반 담임이라고 부르고 다녔으니까요.

 

4.17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아내한테로 뛰어갑니다. 아내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꽃모를 뜰에 옮겨심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한다며, 아내가 파 놓은 작은 흙구멍에 꽃모를 넣더니 끝내는 아내가 쥐고 있는 모종 칼까지 가지고 갑니다.
부드러운 부엽토가 뿌리를 감싸고 있어, 아기처럼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고 해도, 흙덩이를 부스러뜨리거나 꽃모를 밟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안개꽃 몇 포기를 줄 테니 집에 가서 심어 보라고 하니, 안개꽃을 심으면 우리 집에 비가 오겠다며 장난을 치더니, 그마저 엄마한테 맡기고 또 아내한테 달려듭니다.
손수레에 태워 초롱산까지 데리고 간다고 하자 그제사 따라나섭니다. 조금 올라가면 가파른 자갈길이 나옵니다. 내가 힘든다고 하니, 이음이는 제가 내려서 간다고 합니다.
울림이도 따라 내리고, 우리는 꽃구경도 하고 아까시나무 가시를 따서 코뿔소 흉내도 내며 쉬엄쉬엄 산길을 오릅니다.
길 끝에는 통나무 작업장이 있습니다. 60cm 남짓한 높이에 걸쳐 놓은 통나무 위를 곡예를 하듯 타고 놉니다.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그네도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엄마가 너희들 찾으러 초롱산에 올라갔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산을 올려다보며 ‘엄마’ 하고 소리칩니다.
아이들 소리가 맑게 메아리칩니다. 나도 따라 ‘우리야’ 하고 큰소리로 부릅니다.
길을 내려가는데, 멀리서 아이들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다투듯이 비탈진 길을 달려갑니다.

 

4.18

울림이는 꽃다지 이름을 압니다. 언덕에 나란히 앉아 울림이에게, 냉이와 꽃다지가 어디가 다른지 찬찬히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꽃빛만 아니라 잎과 보이지 않는 뿌리도 서로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금방, 냉이는 하트 모양인데 꽃다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줄기에 매달린 씨앗주머니가, 냉이는 하트 모양이고 꽃다지는 주걱 모양입니다. 나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씨앗이 영글면, 씨앗주머니를 조금씩 아래로 잡아당겨 냉이 줄기를 흔들면 차르르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씨앗 소리가 납니다. 나는 ‘꽃종소리’라고 부릅니다.
울림이는 이제 저만치 떨어져서도, 우리 민들레와 서양민들레를 가려냅니다. 꽃을 받치고 있는 ‘총포’라는 것 말고도, 꽃빛만 봐도 다르거든요.
오늘은 아이들이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놀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개구리가 화상을 입을까봐 아이들에게 면장갑을 끼고 만지게 하는 엄마가 참 지혜롭다고 합니다.
개구리는 살갗이 사람 손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울림이 이음이의 영리함이 엄마 아빠에게서 온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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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지지난해 집을 지어 이사 올 때는 그렇다고 치고, 지난해에도 울림이네 닭장 곁에 한 그루가 눈에 뜨었는데,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골짜기만 해도 스무 그루나 되는 듯합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꽃이 좋아?’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울림이네 마당에 피어 있는 제비꽃이라고 했습니다.
‘울림이는?’ 울림이 제일 작은 꽃이 좋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보여준 꽃마리를 가리키자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 아내가 보여준 봄맞이꽃인가 봅니다. 어제는 예쁘지 않다고 하더니 하늘거리는 그 조그만 하얀 꽃이 떠올랐나 봅니다.
요즘 들어 울림이는 풀이나 꽃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지난 번 광주리나물 꽃대롱 끝에 고인 꿀을 빨아먹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쇠뜨기풀 줄기를 뗐다 붙였다 할 때부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어려운 꽃이름 무스까리도 알고 뭉게구름 하얗게 일렁이는 조팝나무 꽃도 압니다.

 

5.2

‘할아버지, 쓰스삐 쓰스삐 이렇게 우는 새가 뭐야?’ 언덕에 앉아 이음이가 묻습니다. ‘아, 지금 우는 저 새, 곤줄박이야.’ ‘그렇구나. 지난 번 새는 오랑오랑 울었지.’ ‘야, 이음이 너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할아버지가 얘기해 줬잖아.’
이음이가 혼자 집에 왔습니다. 장난말로, 엄마가 이음이 보고싶어 어린이집에 안 보냈구나 하니, 오늘은 어린이집이 쉰다고 합니다.
생강밭에 볏짚을 덮으러 가는데 졸래졸래 따라옵니다.
‘할아버지, 누가 이음아 하고 부르지? 엄마 목소리는 아닌데.’ 가만히 들어보니 멀리서 낮닭 우는 소리입니다.
산은 옅고 짙은 푸르름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소나무 잎이 가장 짙고, 상수리나무 잎은 누르스름한 푸른 빛을 띠고, 밤나무 어린 잎인지 바람에 물결치는 산벚나무 잎인지는 희읍스름한 푸른 빛으로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쓰삐 쓰삐’ 내 마음 저 깊은 산속 가장 귀엽고 예쁜 새는 이음이와 울림이와 우리입니다.
‘쓰삐 쓰삐’는, 울림이가 되지빠귀 소리를 흉내낸 말입니다.

 

5.15

이음이에겐 여자친구 봄들이가 있는데, 이음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하는 울림이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습니다.
‘울림이 너, 오늘 학교에서 뭐 했니?’ ‘까먹었어.’ ‘공부는 안 하고 예쁜 여자친구만 바라본다고 다 까먹었지?’
울림이는 ‘아니야.’ 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내가 가만 있을 리 없지요.
‘너, 여자 친구 이름이 아니야 구나.’ 울림이는 ‘아니야, 아니, 아니라고’ 하면서, 이음이한테 하듯 한 대 쥐어박을 듯합니다. ‘하여튼 여자친구 성이 ‘안’이구나.’ 울림이는 죽을라고 합니다.
엊그제 아침엔 학교 가는 길에 가방을 메고 돌계단을 내려오더니, 마아가렛 한 송이를 꺾어 갑니다. 아내가 ‘선생님 갖다주려나 봐.’ 라고 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울림이에게 ‘너, 그 꽃 아니냐 주려고 했지.’ 라고 물으니, 엄마한테 주었다고 합니다. 울림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엄마인가 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야’ 잘 있느냐며 얼마 동안 울림이를 놀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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